유승운 스톤브릿지벤처스 대표는 이른바 ‘메이저’ 벤처캐피털(VC) 두 곳을 이끈 독특한 이력이 있다. 2015년부터 약 4년 동안 카카오벤처스(옛 케이큐브벤처스)의 대표를 맡았으며, 2019년부터 스톤브릿지벤처스를 이끌고 있다. 그 외에도 타임와이즈인베스트먼트(옛 CJ창업투자), 소프트뱅크벤처스 등을 거쳤다.
스톤브릿지벤처스는 유 대표가 취임한 이래 괄목할 투자 실적을 쌓아왔다. 운용 자산 1조1000억원을 돌파한 대형사가 됐으며, 지난해 여성복 쇼핑 플랫폼 ‘지그재그’ 매각을 통해 11배 넘는 수익을 냈다. 채용 플랫폼 원티드랩을 통해서는 16배 넘는 투자 수익을 얻었다. 그 외에도 현재 상장을 추진 중인 쏘카, 부동산 거래 플랫폼 직방 등이 일찍이 스톤브릿지벤처스의 선택을 받은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넘는 비상장 기업)이다.
최근 서울 역삼동 스톤브릿지벤처스 본사에서 유 대표를 만났다. 유 대표는 “코로나19의 반사이익으로 몸값이 크게 오른 비대면 플랫폼 기업들의 가치가 대폭 하락할 수 있다”며, 올해는 인공지능(AI)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술 기업과 반도체 및 이차전지 관련 업체 등에 투자할 것을 권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해 투자 성과를 간략히 소개한다면.
“한 해 동안 약 1600억원을 투자했고, 2000억원을 회수했다. 벤처 펀드 두 개를 청산해 좋은 성적을 냈다. ‘미래창조네이버-스톤브릿지초기기업투자조합’이 내부수익률(IRR) 33.3%를 달성했다. 특히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을 통해 9.1배의 수익을, 부동산 거래 플랫폼 업체 직방을 통해 11.5배의 수익을 냈다. 원티드랩과 펄어비스를 통해서는 각각 16.4배, 7.1배의 투자 수익을 얻었다. 인수합병(M&A)을 통한 엑시트(투자금 회수)도 활발했다. 스타일쉐어가 무신사에 인수되며 6.5배의 수익을 안겨줬다. ‘지그재그’를 운영하는 크로키닷컴은 1조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고 카카오스타일에 매각되며 11.3배의 투자 수익을 가져다줬다. AI를 이용해 맞춤형 뉴스를 추천해주는 스타트업 데이블은 야놀자에 인수됐으며, 이를 통해 7.7배의 수익을 냈다.”
요즘은 어떤 산업을 눈여겨보고 있는지.
“먼저 AI를 기반으로 한 기술 기업들을 많이 검토하고 있다. AI 에지 컴퓨팅 기술을 보유한 노타라는 업체가 대표적인 예다. 도로 교통량을 분석해 특정 도로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붐비는지를 예측하고, 신호등을 교통량에 최적화해 작동시키는 기술을 보유했다. 상용화만 된다면 교통 흐름을 크게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원프레딕트라는 회사에도 투자했다. 이 회사는 발전소 등에서 가동되는 터빈 부속품이 내는 소음을 분석해, 해당 부속품을 언제 교체해야 할지 예측하는 기술을 제공한다.”
AI 기술 기업 외에 또 유망한 회사는.
“디지털 치료제 및 헬스케어 관련 기업이 유망하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치료제의 대표적인 예로는 치매의 전조 증상을 살피고 병의 경과를 최대한 늦추거나 억제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우리가 투자한 이모코그가 그런 사업을 한다. 디지털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서 뇌의 시냅스를 자극하는 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마인즈AI라는 회사는 우울증과 소아 난시를 치료하는 기술을 보유했다. 우리나라는 특히 인터넷 네트워크가 잘 발달돼 있고 디지털 기기 사용률이 높아, 디지털 치료제가 발전하기 좋은 환경이다.”
반도체 및 이차전지 관련 기업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반도체 디자인하우스를 운영하는 가온칩스에도 투자했다. 디자인하우스란 팹리스 회사에서 설계한 반도체를 파운드리 업체에서 잘 제조할 수 있도록 설계를 최적화하는 기업을 말한다. 가온칩스는 삼성전자의 가장 큰 디자인하우스로, 5월 20일 코스닥시장에 상장했다. 이차전지 관련 기업 중에서는 분리막을 만드는 에너에버배터리솔루션에 투자했다.”
초기 투자한 쏘카가 연내 상장을 앞두고 있지 않나. 동종 업계에서는 최초의 기업공개(IPO) 사례라 부담이 있을 것 같은데(‘카카오T’를 운영하는 카카오모빌리티는 연내 상장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동종 업계의 다른 기업이 먼저 상장한다면, 해당 기업은 자연스럽게 쏘카의 비교 기업이 돼서 시가 총액을 산정하는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특정 분야에서 가장 먼저 상장해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
올해 스타트업 시장의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 미국과 우리나라 등이 본격적인 긴축에 돌입하며 시장이 조정받고 있다.
“VC 업계에 20년 이상 종사한 사람들은 대부분 큰 굴곡을 한두 번 이상 경험한다. 마지막에 투자받은 몸값보다 낮은 기업 가치로 상장하는 사례도 많이 봤다. 올해도 어느 정도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드라이파우더(투자 재원)는 굉장히 많지만 그 드라이파우더가 모든 스타트업을 살려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예전 같으면 특정 산업군의 4~5위 기업에도 VC의 투자금이 들어갔지만, 이제는 1~2등을 제외한 나머지 회사들은 투자받기 어려워졌다. 다만 업종에 따라 조정에 편차는 있을 것이다. 단기간에 몸값이 급상승한 업종일수록 그만큼 많이 조정받을 것이다. 특히 차입을 통해 몸집만 키우고 이익을 내지 못한 기업들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나 AI 기술과 관련된 기업은 조정을 덜 받을까.
“상대적으로 호흡이 긴 산업이기 때문에 단기 조정은 덜 받을 것이다. 오히려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대비 주가 수준)이 하향 조정되면 VC 입장에서는 더 편하게 투자할 수 있을 것이다.”
VC 입장에서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면 어떤 회사에 투자해야 할까.
“아무래도 시장 지배력이 있는 회사가 안전할 수밖에 없다. 또 어려운 시기가 왔을 때 개선과 피봇(스타트업이 신제품을 출시한 후 시장 반응을 보고 다른 사업 모델로 전환하는 것)을 빨리 할 수 있는 경영진이 있어야 한다.”
아직 시장에 투자 재원이 많은 만큼 VC들의 경쟁도 여전히 치열하다. 스톤브릿지벤처스가 가진 최고의 강점은 무엇인가.
“요즘 상위권 VC들은 대부분 비슷한 전략을 취한다. 초기 투자를 많이 해서 좋은 씨를 많이 뿌려놓고 후속 투자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다. 이른 시기에 투자해 놓지 않으면 회사가 어느 정도 성장한 다음에는 투자 기회를 얻기가 굉장히 어렵기 때문이다. 좋은 씨를 더 많이 뿌리기 위해 초기 투자 전용 펀드도 결성했다. 지난해 2월 결성한 265억원 규모의 ‘스마트대한민국네이버스톤브릿지라이징투자조합’이다. 이 같은 전략을 계속 추진해 기업으로부터 가장 먼저 선택받을 수 있는 VC가 되는 것이 올해 목표다.
올해 실적은 작년보다 훨씬 더 좋을 것이다.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와 직방에 투자한 펀드 두 개를 연내 청산할 계획이기 때문에 상당히 높은 수익률이 기대된다. 우리 회사의 주주들에게도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