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 성균관대 회계학, 전 대우증권 근무,전 토러스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전 신한금융투자 투자전략팀장 사진 메리츠증권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 성균관대 회계학, 전 대우증권 근무,전 토러스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전 신한금융투자 투자전략팀장 사진 메리츠증권

주식 시장에서 경기 침체는 ‘양날의 칼’이다. 기업의 실적 악화와 몸값 하락으로 직결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앙은행의 긴축 속도를 늦추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실제로 10월 한 달간 우리나라와 미국 등 주요국에서는 경기 침체 가능성 때문에 증시가 반등하는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났다. 미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한 달 만에 14% 가까이 급등했는데, 이는 1976년 1월 이후 가장 큰 상승 폭이다.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경기 침체가 주가지수를 일시적으로 끌어올리더라도 결국 증시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상반기 중 글로벌 경제가 본격적인 침체기에 돌입할 것이라며, 당분간 주식 비중을 늘려서는 안 된다고 단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고강도 긴축이 우리 증시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연준은 (9월 기준 8.2%인)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까지 내려올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고금리를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말했듯, 우리는 이제 ‘뉴 노멀(new normal)’, 즉 ‘저성장 속 고물가’ 상태에 적응해야 한다. 이는 곧 주식 시장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스태그플레이션을 의미한다. 위험 자산에 대한 투자 심리를 전혀 이끌어내지 못하는 환경이 돼버렸다.”

경기 침체는 언제쯤 본격적으로 시작될까. 이미 침체가 시작됐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실질적인 침체는 내년 상반기에 본격적으로 시작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제 관건은 경기가 연착륙하느냐 혹은 경착륙하느냐 그리고 침체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느냐다. 장기적 경기 침체에 들어간다면 그 어떤 주식도 사선 안 된다. 불행 중 다행은 장기 침체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일시적이며 가벼운 수준의 침체에 그칠 확률이 높다. 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지려면 투자와 소비가 둘 다 무너져야 하는데, 현재 투자는 부진한 반면 소비는 과거의 장기 침체 때만큼 줄어들지 않았다. 또 장기 침체까지 가려면 디폴트(채무 불이행)가 나고 신용과 유동성 리스크가 동시에 발현돼야 한다. 부채를 강제로 줄여야 해 구조조정이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이러면 회복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지금은 가계와 기업의 부채 비중이 심각하게 높지 않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중이 50% 정도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이 정도 부채 비율로 대공황이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 같은 파산을 겪지는 않을 것이다. 스타트업이나 투자금 조달로 버텨온 산업군에서 일부 디폴트가 나올 수는 있지만, 나라 전체가 휘청일 정도의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킹달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 달러 강세가 심각한 수준이다. 미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원·달러 환율)은 대체 얼마까지 오를까.
“애널리스트는 적정 가치가 얼마인지를 계산하는 사람이다. 우리 경제 체력에 따른 적정 환율, 기업 이익에 따른 적정한 주가 수준은 계산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예외적 구간에 접어든 환율이 얼마까지 갈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지금 환율은 이미 심리적인 적정선, 즉 정상적인 범위에서 벗어난 상태다. 평균에서 표준편차의 두 배 정도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통계학적으로 굉장히 예외적인 구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원·달러 환율이 낮아지려면 연준의 금리 인상이 어느 정도 마무리될 것이라는 신뢰가 생겨야 한다. 또 위안화와 유로화 약세가 멈춰야 한다. 중국은 지난해 부동산 경기를 누르기 위해 애썼는데, 지금 이에 대한 반작용이 크게 나오며 부동산 시장의 침체와 위축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유럽은 올겨울 에너지 위기를 무사히 넘기는 것이 관건이다.”

달러 강세가 단지 연준의 매파적 정책에만 기인하나.
“일본과 유럽이 글로벌 경제 리더십에서 탈락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부상하며 미국과 중국·러시아 양대 축으로 나뉘는 ‘경제 블록화’가 나타나고 있다. 지금 중국의 GDP는 미국의 60%까지 따라잡았다. 이런 상황에 미국이 리더십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달러 패권을 강화하는 것이다. 강달러 국면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자본 유출은 늘어나고 리더십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고 있는 데는 이 같은 정치·경제학적 이유도 있다고 본다.”

한국은행은 계속 연준을 따라 기준금리를 올릴까.
“한국은행이 연준보다 먼저 완화적 스탠드로 돌아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경기 침체 위험 때문에 금리를 인상하기 쉽지 않다는 우려도 있으나, 한국 경기 수준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나쁜 것은 아니다.”

우리 증시가 다른 나라들의 증시와 비교해 지나치게 저평가됐다는 지적이 많이 나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의 시가총액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전 세계 반도체 시황이 나빠지자 우리 증시가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이다. 또 한국 시장은 외자 유출입이 용이한 유동성 환경을 갖추고 있어 투자 심리가 냉각될 때 자금 이탈이 쉽게 이뤄진다. 그 외에 배당 성향 등 주주환원율이 낮다는 점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한국 주식을 저가 매수해도 될 시기는 언제인가.
“지금 당장은 아니다. 내년 상반기쯤 경제 지표들을 확인한 후에 진입해도 된다. 물가가 정점을 통과하는 걸 확인해야만 저가 매수에 대한 판단이 설 것 같다. 그때가 주식 비중을 확대할 만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