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8일 오후 서울 구로구에 있는 보안 솔루션 기업 지슨의 기술 연구소. 연구소 한편에 공중화장실을 재현한 실험 부스가 설치돼 있었다. 잠시 후 연구소 직원이 갑 티슈 하나를 들고 들어가 양변기 위에 올려놨다. 공중 화장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1분 정도 시간이 지나자 연구소 벽면에 설치된 커다란 모니터에 빨간 깃발 표시가 뜨기 시작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갑 티슈였지만 사실 그 안에는 소형 불법 촬영 기기, 이른바 ‘몰카’가 있었다. 지슨이 개발한 상시형 몰카 방지 시스템은 갑 티슈 속 몰카를 적발하고 경고 알람을 보냈다.
새끼손톱만 한 몰카를 1분 만에 잡아낸 건 지슨이 개발한 ‘상시형 몰카 탐지 시스템(ALPHA-C)’이다. 이 시스템은 몰카에서 나오는 미세한 열을 감지해 몰카의 존재를 찾아낸다. 지슨은 지난해 기술 개발에 성공했고, 올해 8월부터 본격적인 제품 양산에 들어갔다. 현재 국내 주요 대학과 지자체, 기업 등에서 도입해 사용 중이다.
ALPHA-C는 어떻게 손톱만 한 몰카를 찾아내는 걸까. 이 시스템은 열 감지 센서, 원격 컨트롤러, 모니터링 소프트웨어 등 총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화장실 칸마다 달린 열 감지 센서는 열 분포 데이터를 수집해 천장 속에 있는 원격 컨트롤러로 전송한다. 컨트롤러는 정해진 알고리즘에 따라 열 분포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상 열원, 즉 몰래카메라가 있는지를 탐지한다. 몰카가 있다는 판단이 내려질 경우, 모니터링 소프트웨어가 설치된 관제실로 몰카 위치를 즉각 알려줘 후속 조치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서울 구로구 지슨 본사에서 한동진(52) 대표를 만났다. 한 대표는 고려대 전자공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고 2000년 지슨을 창업했다. ‘지슨(GITSN)’이라는 사명은 ‘Global Intelligence Technology Solution Network’의 약자로, 세계적인 첨단 보안 솔루션 기업을 만들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다. 그는 이번에 내놓은 상시형 몰카 방지 시스템이 몰카와의 전쟁에서 ‘게임체인저(판도를 바꾸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다음은 한 대표와 일문일답.
상시형 몰카 탐지 시스템을 개발하게 된 계기가 있나.
“몰카 범죄는 대부분 내부자 소행이기 때문에 일회성 단속으로는 성과가 없다. 경찰청에 따르면 몰카 이용 범죄는 지난해 6212건으로 전년 대비 23.4% 증가했지만, 지자체가 자체 진행한 몰카 탐지에서는 한 건도 적발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내부인이 몰카를 설치한 경우 탐지 일정을 미리 알고 사전에 몰카를 제거해서다. 이에 24시간 무인 경비 시스템처럼 몰카 대응도 상시로 이뤄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몰카 대응을 적발에서 예방으로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몰카범을 잡는 게 아니라, 몰카 범죄 자체가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을까.”
실제 성과가 어떤지 궁금하다.
“상시형 몰카 탐지 시스템을 도입한 서울 시내 대학들의 경우 잊을 만하면 발생하던 몰카 범죄가 사라지고 있다. 서울대의 경우 올해 1월 제품 도입 이후 몰카로 인한 범죄가 사라졌다. 해수욕장을 운영하는 지자체들에서도 올 여름 공용화장실이나 탈의실 등에 시스템을 도입해, 몰카 신고가 한 차례도 안 들어왔다. 이 밖에 여러 기업과 시·도 교육청에서도 설치 계약을 이어 가고 있다.”
지슨은 이미 보안 솔루션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기업이다. 무선 도청 탐지 시스템은 청와대에도 들어갔다고.
“지슨의 주력 제품으로는 ‘상시형 무선 도청 탐지 시스템(ALPHA-S)’ ‘상시형 무선 해킹 탐지 시스템(ALPHA-H)’이 있다. 도청 탐지 시스템은 대통령실부터 공공 기관과 지자체장의 사무실, 국회, 국방부, 경찰서, 대기업 등 국내 주요 기관에 대부분 들어가 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용 중이다. 미국, 영국, 싱가포르, 사우디아라비아 등 여러 국가의 정부 부처와 기업에서 무선 도청 탐지 시스템을 도입했다. 가장 최근에 계약한 보츠와나 정부 기관을 포함해 300여 곳에서 우리 시스템을 사용 중이다.”
지슨만의 고유 기술인가.
“도청·해킹·몰카 탐지 시스템은 모두 지슨만의 기술로 개발된 제품들이다. 도청과 해킹은 전파를 상시 측정해 외부 개입을 찾아내고, 몰카는 미세 열을 감지해 촬영 기기를 찾아내는 방식이다. 이런 기술들로 받은 국내 특허는 총 15건으로 ‘광대역 불법 무선 신호 탐지 방법’ ‘전파 탐지 장치를 이용한 무선 해킹 칩 위치 추정 시스템’ ‘온도 변화를 이용한 몰래카메라 탐지 방법’ 등이 있다.”
전파로 외부 개입을 찾아내는 원리가 궁금하다.
“도청기는 전파를 통해 음성 데이터를 외부로 내보낸다. 이때 전파를 측정하면 주파수가 특정 범위 안에서만 움직이는 걸 볼 수 있는데, 도청 탐지 시스템은 기계가 설치된 공간에서 나오는 주파수를 1초마다 측정하고 있다가 이 범위에 속하는 주파수가 측정되면 알려주는 방식으로 작동된다. 현장에서 알람이 즉각 울리면, 진행되던 회의가 어그러질 수 있기 때문에, 빨간 불로 조용한 신호를 보낸다.”
어떤 내용이 도청됐는지 확인도 가능한가.
“탐지 시스템에 연결된 관제용 PC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PC에는 주파수 측정을 통해 도청이 진행된 구간과 시간을 알 수 있는데, 이 구간에 있는 주파수 정보를 분석해 음성을 역으로 복원하는 작업이 가능하다. 관제실 PC는 대부분 회의실 밖에 설치돼 있다. PC로 도청 의심 신호가 올 경우 PC 담당자가 우선 회의실에 있는 회의 참여자에게 도청 시도가 있음을 알려주고, 복원 작업을 통해 어떤 정보가 새 나갔는지 파악해 후속 조처가 가능하다.”
23년간 ‘보안’ 하나에만 집중한 선견지명이 돋보인다. ‘지슨’ 창업 배경은 무엇인가.
“초연결 사회로 진입하면서 무선 보안이 갈수록 중요해질 것으로 봤다. 갈수록 많은 물건이 작아지고 무선화되는 시대다. 이어폰도 무선으로 쓰는데, 도청 기기도 예외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정보를 탈취하는 기술은 빠르게 발전 중이다. 정보를 빼내는 기계들이 성능은 좋아지는 반면, 크기는 작아지니 보안 위협도 커지는 것이다. 이런 위협을 잡아낼 수 있는 기술도 무궁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보안 산업에 집중했다.”
지슨의 장·단기 목표는.
“단기 목표는 내년 하반기 코스닥 상장이다. 지난해 매출은 95억원가량으로 전년 대비 46% 성장했다. 이런 성장세를 유지하면서 상장도 할 수 있도록 외부 인력을 들이면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후 상장을 발돋움 삼아 ‘K보안’의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하는 게 장기 목표다. 현재 지슨처럼 ‘무선 보안’ 기술을 보유한 곳은 전 세계에 6곳이 있는데, 이들과의 경쟁에서도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도록 노력 중이다. 보안 기업의 필수라고 할 수 있는 연구개발(R&D)에도 적극적으로 투자를 늘리고 있다.”
R&D 투자를 늘리는 방법이 있나.
“현재 전문 인력은 50여 명이 있다. 기존 인력은 유지하면서 새로운 엔지니어를 꾸준히 모시고 있는데, 요즘 R&D 인력 구인난이 굉장히 심하다. 그래서 회사의 성장이 곧 직원의 이익이 되도록 인센티브 제도를 설계했다.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이나 우리사주(노사 관계 등을 목적으로 제공된 회사 주식) 같은 인센티브를 제공해 직원들이 회사의 주주가 될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현재는 전년 대비 R&D 인력이 두 배 가까이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