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 미국 예일대 경제학 석·박사,전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사진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 미국 예일대 경제학 석·박사,전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사진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불붙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미국의 공격적인 긴축 행보가 글로벌 경기를 흔들고,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한국의 수출 경쟁력도 휘청이게 했다. 이런 상황에 국내에서는 강원도 레고랜드발(發) 자금 시장 경색 사태마저 터졌다. 전문가들은 가파른 금리 인상과 경기 둔화 흐름이 키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레고랜드 사태 이후 걷잡을 수 없는 공포로 확산했다고 진단했다.

최근 서울 장충동 동국대 사회과학관에서 만난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반적인 경제 위기보다 주택 시장 붕괴가 야기한 경제 위기의 고통이 훨씬 심각하고 회복에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경고했다. 박 교수는 현재 거시경제 여건이 부동산 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으로 얽힌 건설사·금융사의 연쇄 붕괴를 초래할 정도로 불확실한 만큼 정책 당국은 국내 모든 부동산 PF를 전수조사한다는 각오로 시장을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2004년 서울대 경제학부를 수석 졸업한 박 교수는 미국 예일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한국으로 돌아와 29세의 젊은 나이에 카이스트(KAIST) 교수로 부임해 화제가 됐다. 2020년 9월부터 동국대에서 근무 중이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 은행은 무한책임대출 제도를 토대로 신용 위험을 거의 짊어지지 않으면서도 그 대가인 이자를 많이 받아 간다. 공공 성격이 강한 은행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 정부 기조에 어느 정도 맞춰가야 한다”며 은행권의 적극적인 정책 협조도 당부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레고랜드발 자금 시장 경색 이슈가 금융 시장의 불안감을 키웠다.
“정부가 10월 ‘돈맥경화’를 해소하고자 50조원 플러스 알파(+α) 규모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문제는 지금의 어두운 경기 여건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란 점이다. 자금 시장 경색의 시작점이 부동산 PF 부실인데, 경기 둔화와 함께 부동산 시장 하락세에 속도가 붙고 있다. 여기에 고(高)금리까지 이어진다. 이러면 중소형 건설사와 ABCP가 줄줄이 부도를 내고, 그걸 떠안은 증권사마저 무너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대출금 상환 실패로 삼부토건·동양건설 등 20개 이상의 건설사와 30여 개 저축은행이 잇따라 쓰러진 2011년의 악몽이 되살아나지 말란 법이 없다.”

정책 당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시장에 나온 모든 부동산 PF를 전수조사하는 수준으로 강도 높게 점검해야 건설사·금융사의 연쇄 붕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각 상품을 일일이 까서 그 안에 어떤 물건이 어떤 구조로 담겼는지 직접 확인하고 부실 여부를 따져야 한다. 2020~2021년 부동산 가격 상승 폭이 너무 컸다. 그런데 지금은 하락 사이클이다. 이런 흐름에선 얼마나 많은 부동산 PF가 사업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겉만 봐선 모른다.”

부동산 시장 침체가 전체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그 정도로 큰가.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지난 5월 내놓은 신간 ‘21세기 통화 정책’에서 주택 버블이 야기한 경기 침체는 일반적인 경기 침체보다 훨씬 더 그 고통이 오래간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했다. 실제로 많은 가계에 주택은 가장 중요한 자산이고, 은행의 핵심 자산도 주택담보대출이다. 이 둘이 무너지면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경기 전방위적으로도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도 일본처럼 장기 불황에 빠질 수 있다는 의미인가.
“미래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경제 대국인 미국조차도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에 따른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후 수년간 엄청난 규모의 재정을 풀어야 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부동산 시장 붕괴가 촉발하는 경기 침체는 위험하다. 요즘 정부가 부동산 시장 연착륙에 사활을 거는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자금 시장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이 긴축 기조와 충돌하지 않을까.
“유동성 재배분을 위한 조치니까 긴축 노력에 역행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현재 시중 자금이 은행권으로 쏠리는 경향이 나타난다. 반면 비은행 금융기관은 돈이 제대로 돌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 이런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니 통화 긴축 기조와 상반된다고 볼 순 없다. 경제 정책에서 여전히 1순위는 긴축을 통한 인플레이션 통제다.”

금융 당국이 은행 자금 쏠림을 막고자 예금금리 인상 자제를 당부해 은행권에서 불만이 많다.
“은행 라이선스가 엄청 귀하지 않나. 아무나 받을 수 없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는 은행이 정부 기조에 어느 정도 협조해주는 게 맞는다고 본다. 은행은 그냥 기업이 아니다. 공적인 성격이 강한 특수 기관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은행은 평소 신용 위험이 낮은데도 불구하고 이자를 많이 받아 가는 편이다. 그렇다면 요즘 같은 어려운 시기에는 공적인 역할을 일부 해줘야 하지 않을까.”

무슨 의미인가.
“주택담보대출을 보자. 우리나라는 대부분 ‘무한책임대출’이다. 가령 내가 10억원짜리 집을 사기 위해 은행에서 8억원을 빌렸는데 이후 집값이 7억원으로 떨어졌다고 치자. 한국에선 그래도 빌린 돈 8억원을 다 갚아야 한다. 집 담보 가치가 대출 가치보다 떨어져도 예전 담보 가치를 다 갚아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50% 정도이지 않나. 일단 담보 가치가 50% 이상 떨어지는 것도 굉장히 드문 일인데, 떨어지더라도 우리 국민은 대출을 100% 갚아야 한다. 이자는 은행이 신용 위험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은행은 신용 리스크를 거의 짊어지지 않는다.”

외국 은행은 다른가.
“미국의 경우 집값 하락에 대한 리스크를 은행과 내가 나눠 갖는다. 그러니까 집값이 담보 가치보다 떨어지면 나는 집을 은행에 넘기고 그냥 파산 절차를 거치면 된다. 반면 한국에서는 집값이 내려가도 나는 집을 떠안고, 대출도 다 갚아야 한다. 무한책임대출이기 때문에 액수 자체를 벗어날 수 없는 구조다.”

가계부채에 대해서도 대화해보자. 많은 전문가가 우리나라 가계부채 수준에 우려를 표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로 100%를 넘고, 가처분 소득 대비로는 200%를 웃돈다. 이런 나라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 한국의 가계부채는 분명 심각하다. 금리가 급격하게 오르는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가계부채 이슈는 추후 소비 둔화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뒤 주요 선진국 대다수는 디레버리징(deleveraging·부채 축소)을 경험했다. 반면 한국은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여 년간 부채가 쭉 증가하기만 했다. 이제 한국도 디레버리징 시점에 도달했다고 본다. 문제는 경기 둔화와 고금리 상황에서는 디레버리징이 저소득층 파산과 한계기업 부도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당국의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당국이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최근 발표된 가계동향 조사 결과를 봤다. 올해 3분기 기준 소득 하위 20% 가구는 처분 가능 소득의 절반을 식비에 썼다고 한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정책은 반드시 이들 취약계층에 집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물가·고금리의 타격을 가장 크게 받는 국민이니까 말이다. ‘경제 성장률 00%’ ‘원·달러 환율 00원’ 등 우리가 쉽게 숫자로 표현하는 경제지표 이면에 깔린 힘없는 사람의 스토리를 정책 당국이 더 진지하게 들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