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인민대표회의서 물권법 통과 후 ‘재산권’ 싸움 곳곳에서 불거져

베이징(北京)의 외곽순환도로인 4환(環) 동북쪽 외곽에 자리한 주셴차오(酒仙橋)마을. 베이징의 코리안타운인 왕징(望京)을 비롯해, 4환 변을 따라 죽 늘어선 번쩍번쩍하는 고급 아파트 단지들과 차로 불과 5분 거리. 그러나 이곳은 월수입 1000~2000위안(12만원~24만원)인 서민들이 주로 모여 사는 전형적인 서민촌이다. 주변 곳곳에 들어서고 있는 고층건물에 포위된, 베이징 시내의 섬 같은 곳이다.

요즘 이 마을이 중국의 신문 지상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베이징 시내 중심 지역에 몇 곳 남지 않은 ‘노른자위 땅.’ ‘중국판 수서’ 쯤으로 꼽히는 이곳에서 추진되고 있는 대규모 재개발 계획 때문이다. 뎬콩양광(電控陽光)이라는 부동산 개발업체가 추진하고 있는 이 재개발 계획은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추진되는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재개발 계획이다.

모두 5473가구가 이주 대상. 재개발이 실시되면 이곳은 ‘서민 주거지’에서 ‘중산층 주거지’로 탈바꿈하게 된다. 인근 4환 변 아파트들이 1㎡당 2만위안(240만원)을 호가하고 왕징 지역 역시 웬만한 곳은 집값이 1㎡당 1만 5000~2만위안 선이다. 때문에 부동산업자들은 이 지역 역시 그 못지않게 높은 아파트 가격을 형성할 것이란 전망들을 하고 있다. 벌써부터 이 지역에 투자하기 위해 부동산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서민들은 평생 엄두도 내기 힘든, 그런 가격의 집들이다. 

충칭시 딩쯔후 2년 만에 400만위안 보상금 받아내

주셴차오마을이 요즘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이 때문만은 아니다. 이곳에서는 6월9일 재개발에 동의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주민투표’가 실시됐다. 이런 이유로 주민투표가 실시된 것은 중국 역사상 처음이라고 한다. 일반 주민들의 투표 행위 자체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곳이 바로 사회주의 나라 중국이다. 하지만 재개발 사업의 돌파구를 뚫어보겠다면서 개발상이 아이디어를 냈고, 당국과 주민 대표들을 설득시켰다. 이곳에서 보상 문제를 둘러싼 주민들과 개발업자간의 줄다리기는 2년 넘게 지속돼 왔다.

개발업체는 2005년 ‘주민들을 동시에 이주시킨다’는 원칙을 정한 이후, 각종 보상 대책을 제시하며 주민들을 끌어들이려 애썼다. 2006년 11월 뽑힌 14명의 주민 대표들과 보상 협상을 벌였고, 몇 차례 보상 기준도 올렸다. 처음엔 1㎡당 2000위안 정도였던 것이 4차례 재조정 끝에 7000~9000위안으로 올랐다.

개발업체는 주민 여론조사도 실시했다. 하지만 간단하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 카드’로 나온 게 주민투표다. 과거 같으면 재개발에 주민 의사를 묻는 주민투표까지 실시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힘센 개발업체들은 지방 정부와 결탁해 주민들을 삶의 터전에서 쫓아내기 일쑤였다. 베이징 토박이인 조선족 김모씨는 “지금 베이징 시내 중심가인 2환이나 3환 안쪽에 있는 고급 아파트들 역시 과거엔 전부 판잣집 수준의 서민 주택가였다”면서 “이런 곳 주민들은 쥐꼬리만한 보상밖에 못 받고 5환이나 6환 쪽 변두리로 내쫓겨나면서도 항의 한마디 하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중국 사회와 중국인들의 의식도 크게 바뀌었다. 특히 지난 3월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가 물권법(物權法)을 통과시키면서 변화의 바람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물권법은 사유재산과 공유재산을 동등하게 보호한다는 원칙을 담았다. 중국 곳곳의 재개발 지역에서 딩쯔후(釘子戶)들이 출현하고 있다.

딩쯔후란 개발업자들에 맞서 끝까지 집을 비워주지 않고 버티는 ‘중국판 알박기’를 말한다. 충칭(重慶)시에서 주위 280여 가구가 모두 철거된 이후에도 2년 가까이 철거를 거부하며 버티다 지난 4월 400만위안(약 4억8000만원)의 보상금을 받기로 하고 집을 비워 준 사례가 최근 가장 유명했던 딩쯔후다.

최근엔 한 홍콩 출신 딩쯔후 때문에 선전(深?)시의 최고층 건물 건설 계획이 지장을 받는 일도 생겼다. 이번 주셴차오 마을의 주민투표 역시 ‘딩쯔후’가 출현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신경보(新京報)> 등 중국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이렇게 대규모 재개발 지역의 경우엔 단 한 사람의 딩쯔후가 아니라 10명, 100명의 딩쯔후가 집단으로 항거할 수도 있다. 과거 같으면 개발업자들이 철거반원을 동원해 ‘해치워 버리면’ 그만이었겠지만, 이젠 그럴 수도 없다. 물권법 통과로 일반 주민들의 ‘내 재산, 내 권리’에 대한 의식 수준도 높아지고 법률적으로도 지위가 단단해졌기 때문이다.          

이번 투표 결과는 개발업자 입장에선 만족스럽지 않은 것 같다. 6월9일 밤 11시40분에 발표된 투표 결과에 따르면 5473가구 중 3711가구가 투표에 참가했으며, 이중 66%인 2451가구만이 찬성을 하고, 33%인 1228가구는 반대표를 던졌다. 전체 가구로 따지면 절반도 안 되는 44.8% 만이 재개발업체의 보상안과 재개발 추진 계획에 동의한 것이다.

중국 달동네 서민들도 화났다

중국 언론은 이런 상황을, ‘베이징 최대의 재개발 사업에 다시 냉각기가 도래했다’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개발업체는 “이미 보상 기준을 3~4배나 높여줬고 할 만큼 했다”면서 “주민투표도 끝난 만큼 계획대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주민들의 생각은 그게 아니다. 무엇보다 지금 사는 곳에서 밀려나면 이주할 곳이 마땅치 않다. 베이징 집값이 너무 올랐다. 시 외곽의 변두리로 간다면 몰라도, 웬만한 지역에서는 살 집을 찾기 어렵다. 서민 아파트들도 1㎡당 7000~8000위안은 보통이고, 1만위안 넘는 곳이 수두룩하다. 주셴차오마을 11가8호에 사는 청리스(成立世)씨는 “1970년대부터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한 달 봉급이 2000위안을 넘지 못한다. 개발상이 충분한 보상을 한다고 하지만 그 보상금을 받는다고 해도 지금 어디 가서 방 한 칸 제대로 얻기 힘들다”고 했다. 다른 주민 왕(王)모씨는 “만약 투표가 압도적으로 통과되고 철거가 시작된다고 해도 딩쯔후는 나타나게 될 것”이라며 “개발업체가 처음부터 보상 기준을 정확하게 제시하지 않았던 것 때문에 신뢰를 잃었다”고 했다.

재산권의 행사 문제를 주민투표로 다루는 게 과연 옳은 것이냐 하는 논란도 일고 있다. <북경신보(北京晨報)>는 법학자인 추펑(秋風)의 말을 인용, “이번 문제는 법이 정한대로 할 문제지, 민주주의식 투표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전했다. “대다수가 동의한다고 해서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상당수의 이곳 주민들도 “내 집이 철거되고 안 되고의 문제를 왜 내 이웃들이 결정하게 한다는 말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중국 언론은 전했다.

‘사유재산권’에 대한 인식이 갈수록 높아져 가는 중국에서 주센차오 주민들과 개발업체의 이번 줄다리기가 어떤 식으로 결론을 맺게 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