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경영자는 독선에 빠지지 말고 자제심 가져야



 창업으로 성공한 사람들에겐 신화 같은 이야기들이 따라다닌다. 아니 맨손으로 출발, 당대에 조 단위의 기업을 일군 사람이라면 그 자체가 신화일 수 있다. 팬택의 박병엽(43) 부회장도 숱한 신화를 남기며 샐러리맨들의 우상이 된 인물이다.

  1991년 자본금 5000만원이 없어 처가의 도움까지 받아 가며 회사를 창업했던 박 부회장은, 15년이 흐른 현재 매출액 3조원에 3800명의 직원을 거느린 휴대폰 업계 세계 6위의 기업체를 이끌고 있고, 개인적으로는 주식 가치로만 따져 국내에서 30위권 안에 드는 부자가 됐다.

 한국도 이제 주류 커뮤니티가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다. 그만큼 주류 사회에 비집고 들어간다는 게 어렵게 됐다는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보면 박 부회장은 여러모로 흥미 있는 사례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철저한 아웃사이더이다. 15년 전만 해도 그를 한정하는 단어는 호서대 출신의 샐러리맨이었다. 번듯한 간판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후 그의 행보다. 아웃사이더만이 보여줄 수 있는 기질이랄까. 오너가 되겠다고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온 것도 그렇지만 사업 분야로 택한 것은 남들이 기피하는 제조업 분야였다. 사업을 하면서도 대기업 밑에 있지 않고 독자 브랜드를 내세우고 거대 기업과의 전투를 선택했다. 그를 탐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은 이런 연유에서였다.

  박 부회장과는 한 모임을 통해 인연을 맺었는데 처음에 놀란 것은 그의 친화력 때문이었다. 대면 후 5분이면 누구나 “형님” 아니면 “동생”이 되어 있다. 그런 연으로 인터뷰를 밀어붙였다.

  인터뷰 약속 시간은 2004년 12월16일 오전 9시. 그의 얼굴엔 피곤함이 묻어 있었다. 전날 술자리 세 군데를 돌며 폭탄주만 열네 잔을 마셨단다. 하지만 빡빡한 일정이 뒤에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사정을 봐줄 여유가 없었다. 수인사만 나눈 후 곧바로 취재에 들어갔다.

 최근 박 부회장의 이름이 또 한 번 일간지 지면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팬택 노조가 2005년 임금 동결을 결의하자 박 부회장이 긴급 경영위원회를 열어 임금 인상과 격려금을 지급했다는 내용이었다.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팬택만이 ‘아름다운’ 상생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저희 회사의 독특한 시스템 중 하나가 주요 보직자들이 대리점을 하나씩 맡아서 도와주는 거예요. 노조에서 현장을 경험해 보고 싶다고 해 대리점 순례를 맡겼던 것인데 막상 나가 보니까 경기가 안 좋다는 걸 체감한 겁니다. 그런 경험을 통해 2005년도 경영 상황이 힘들 것이라며 동결을 결의한 거죠. 그 이야기를 듣는데 가슴이 저미어 오더라고요. 저도 월급쟁이 생활을 해 봐서 알잖아요. 샐러리맨의 유일한 희망이 월급 오르는 것인데…. 도대체 경영을 어떻게 하였기에 구성원들이(박 부회장은 직원이란 통상적인 호칭 대신 꼭 구성원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그런 결단을 내리게 했냐고 경영위원회를 열어서 질타를 했죠. 그러면서 줄 것은 주고 하자고 이야기했습니다. 무턱대고 줄 수는 없고, 2005년도 경영 환경을 다섯 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를 하며 점검했습니다. 그 결과 조금만 더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올릴 수 있겠다는 내부 합의가 나와서 임금 인상을 결정한 겁니다.”

  기존의 자료를 살펴보면 박 부회장의 경영 스타일 중 하나가 바로 ‘감동 경영’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현대 큐리텔을 인수할 때 구조 조정 없이 1100명 전원을 인수했고 급여 또한 30%를 인상했다. 명절 때 노조 간부의 고향집에 전화해 “고향이 어디라는데 잘 내려갔습니까”라며 안부를 물었다. 해마다 겨울이면 직원 자녀들을 250만원짜리 영어캠프에 보내 가장 큰 고민 중 하나인 영어 교육을 도와주고 있다. 이번 노조의 임금 동결 결의의 저변에는 이렇게 하나하나 쌓여 형성된 신뢰가 있었다. 이직률 0.05%의 신화도 이런 박 부회장의 ‘감동 경영’에 기인한 것이다.



  프로필을 보니까 존경하는 경영인으로 마쓰시타 고노스케를 들었는데, 그 분의 어록 중에 무슨 일을 하십니까란 질문에 ‘사람 만드는 회사입니다. 부수적으로 전기제품을 만들고요 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박 부회장의 사람 중심 경영도 마쓰시타의 그런 것입니까?

 
마쓰시타 고노스케, 혼다 고이치로, 동양기전의 조병호 사장님 등 경영을 오래하신 분들이 내린 공통적인 결론은 결국 ‘기업은 사람이다’더군요. 사람을 위해 줘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박 부회장은 사람 욕심이 많은 것으로 소문났는데, 예를 들어 팬택의 이성규 사장 같은 경우 십고초려를 했다고 하고…. 어떤 인재들을 원합니까?

 
 사람 욕심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기업이란 게 저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아, 참. 기능과 지식만 강조하는 것 같아서 저희는 인재란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인재에 인성을 더한 ‘사람’이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제가 원하는 사람들은 먼저 저와 호흡이 맞는 사람들입니다. 대기업과 붙어서 회사를 키워 가는, 팬택의 역사성을 만들어 보겠다는 가치관의 공유랄까요. 여기에 해당 분야의 전문성은 기본이죠.



  “1등으로 대우할 테니 1등이 되어 달라” 1등을 하면 1등 대우를 해 주겠다는 게 오너들의 생각일 텐데 박 부회장은 1등으로 대우할 테니까 1등이 되어 달라고 한다면서요?

 
네, 맞습니다. 그러면서 다는 조건이 있죠. 1등 대우를 해 주고 시간을 주겠다, 그 안에 1등이 되라 아니면 아웃이다. 구성원을 배려하고 아껴 주고 그럽니다. 그렇다고 무능하고 나태한 사람까지 보호하지는 않습니다. 매년 1~2%는 정리하는 것 같군요. 하지만 철저한 인사 평가로 공정하게 하기 때문에 한 번도 문제된 적은 없었어요.



  팬택 게시판에는 팬택과 관련된 각종 매체의 기사들이 가지런하게 게시돼 있었다. 그 한쪽에는 이번 임금 인상과 관련해 임원들에게 질책하는 내용의 글이 붙어 있었다. 실적을 내고 책임 경영을 하라는 내용이었다.

  화제를 돌려 2004년 경영 성과에 대해 물었다.

  “목표였던 매출액 3조원은 달성했습니다. 순익은 1200억원이 목표였는데 700억원 정도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순익 부분에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서인지 요즘 사장단이 절 피해 다니느라 애쓰고 계십니다(웃음). 그 이유는 수출은 계획대로 되었지만 내수에서 SKT, KTF, LGT 등이 한 달씩 영업 정지를 맞았기 때문이죠. 이를 만회하기 위해 300~400억원의 장려금이 집행됐습니다. 또 기업이 이익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속성을 가지는 것도 주요한 요소거든요. 저희와 경쟁하는 업체들이 모토로라, 노키아, 삼성, LG 등 무시무시한 상대입니다. 파트너가 워낙 막강하니까 사업 영속성을 위해서 내부 경쟁력을 다지는 데 진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위해 3분기에 추가 연구를 더 시켰습니다. 해외와 국내에 용역 개발을 준 거죠. 또 브랜드 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광고비 집행도 늘렸고요. 이런 것은 재무제표에 이익으로 나타나지 않아도 내부적으로는 경쟁력으로 축적되는 거니까 괜찮습니다.” 



  연구 개발에 투자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2004년에만 R&D에 3200억원을 투자했습니다. 매출액 대비 11%대죠. 퍼센티지는 높지만 대기업에 비하면 액수는 작은 편이죠. 그래도 투자 대비 효율이 높아 경쟁에서 뒤지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1000억원 정도는 안 써도 1~2년 경쟁에는 문제가 없어요. 그 이후를 보는 투자인 거죠.



  부회장실로 올라오면서 보니까 연구소가 많더군요.

 
네. 저희 구성원이 3800명인데 그 중에 연구원이 1700명입니다. 석·박사도 있고 지방 학교 출신도 있습니다. 지방 학교 졸업자는 의도적으로 채용했어요. 사회적인 책무도 있지만 그 친구들이 근성이 있어요. ‘너, 서울대 나왔어? 그래 한 번 붙어 보자’ 하고 눈에 불을 켜면 3년 안에 더 뛰어난 사람으로 거듭나요.



  사업에 뛰어든 지 15년이 돼 가는데, 오너·최고경영자에게 필요한 덕목을 무엇이라고 판단하십니까.

 
자제심이죠. 시간이 지나면서 성과가 생기면 자기도 모르게 환상이 생겨요. 어렵고 힘든 기억이 안 나요. 내가 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된다, 왜 못해 하는 독선에 빠집니다. 합리와 논리를 잃어버리지 않고, ‘기업은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란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해요. 독선을 깨지 않았으면 지금쯤 밥도 못 먹고 있을 겁니다.



  2004년 가을에 대우종합기계 인수에 실패했는데, 그때도 입찰가를 높이지 않은 것은 자제심이 작용한 것인가요?

 
아직도 골프 치러 갈 때 포크레인(대우종기의 생산품 중 하나가 포크레인이다)만 보이면 평정심을 잃어 타수가 현저하게 늘어납니다(웃음). 욕심이 났었죠. 대우종기를 인수해 저희의 강점인 소프트웨어와 결합시키면 메카트로닉스 시대를 여는 거니까요. 외형적으로도 저희와 대우종기 매출을 합치면 7조5000억원, 2년 안에 10조원… 꿈이 그려졌죠. 사실 그때 축적해 놓은 자금도 있었어요. 하지만 인수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는가와 그 정도 가치가 되는가를 따져봐야 됐던 것이죠.



  팬택도 이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돕니다. 미래를 위한 준비와 전략이 궁금한데, 팬택은 5년 후, 10년 후에 무엇으로 먹고 살지 말해 주시죠.

 
노키아 매출이 연 40조원입니다. 앞으로 사회는 노마드(유목민)의 시대라고 합니다. 이동성을 가진 제품은 결국 휴대전화잖아요. 여기에 멀티미디어를 접합시키면 앞으로 30년은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분간은 휴대폰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팬택이 고속 성장을 할 수 있었던 요인을 분석하며 많은 애널리스트들이 의사 결정에서의 기동성을 들고 있다. 벤처에서 출발한 단일 기업답게 팬택은 말단 직원에서 최고경영자까지의 의사 결정이 단 하루 만에 이뤄진다고 한다. 100만 화소급 카메라폰을 삼성이나 LG가 아닌 팬택에서 내놓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기동력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조직이 규모가 커지면 자신의 강점을 잃어버리곤 한다. 팬택 또한 그렇지 않은지 박 부회장에게 물어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그 문제 때문에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일전에 중간간부 45명과 미팅을 하면서 팬택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보고서로 작성해 보내달라고 말했는데, 충격적이었던 게 ‘경화’(硬化) 조짐이 보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수직적 조직은 여전히 의사 결정이 빠르지만 문제는 수평적인 협업 체제에서 나타났습니다. 마케팅, 디자인, 품질 검사, 생산부서 사이에 벽이 생겨서 협의는 하는데 결정은 못하고 있는 거예요. 우선은 그 해결책으로 각 단계별로 리더 부서를 만들어서 의사 결정을 하라고 했습니다. 기획 단계에서는 마케팅팀이, 연구 단계에서는 연구실이, 생산 단계에서는 영업팀이 리더 부서가 되고, 또 별도로 사업전략팀을 만들어 전반적인 점검을 하게 했습니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들라면 언제라고 말하겠습니까?

 
지금입니다. 선택의 순간이란 뜻인데, 편하게 살 것인가 제대로 살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란 질문을 던지진 않았다. 그의 대답이 어떻게 나오리란 걸 쉽게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업무 집중력 높이기 위해 점심 약속은 사절



중소기업에서 업계 3위의 중견기업으로 커나가는 과정에서 느꼈던 고통, 비애가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습니까?

 
사회의 벽이죠. 눈에 보이지 않는 벽. IT산업에 수십조원을 쏟아 부었지만 그것으로 먹고 사는 사람은 열 명 남짓입니다. 혼맥으로 맺어진 스무 개 가문이 모든 것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들과 연줄이 닿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나라입니다. 성공으로 가는 길이 봉쇄돼 있어요.



  열변을 토하는 그의 눈에서 불이 났고, 재떨이에 담뱃재가 늘어만 갔다. 가벼운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철인삼종경기협회 부회장으로 있던데.

 
하하. 아는 형님이 회장으로 계서서…. 아침에 일어나서 앉았다 일어서기를 50번 하고 주말에 골프를 치는 것으로 건강관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귀가 시간이 늦죠?

 
술자리 서너 군데를 돌다 보면 평균 새벽 1시입니다.



  “가족들 불만이 많겠다”는 질문에 “토요일에 아내와 골프를 즐기고, 일요일에는 가족과 함께 보낸다”고 답했다. 집무실 벽에 걸려 있는 보드에 서투른 글씨로 ‘엄마 아빠 사랑해요. 고마워요’라고 쓴 종이가 붙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인 둘째 아들이 몇 년 전에 전해 준 선물이란다. 박 부회장은 점심 약속은 웬만하면 잡지 않는다. 낮 시간 동안 업무 집중력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점심도 시켜 먹을 정도라고. 대부분의 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내며 직원들의 보고서를 꼼꼼히 챙긴다고 한다. 서체와 포인트까지 신경 쓰며 만들었을 보고서를 정독하지 않는 경영자는 문제가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성공한 사람의 후일담은 미화되는 부분이 분명 있다. 또 질시도 많다. 머니게임을 통해 회사를 키웠다는 비난도 있고, IMF란 특수 상황이 없었으면 지금 같은 위상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란 질투도 있다. 그래도 필자는 그를 둘러싼 신화에 박수를 보낸다. 한국 사회는 신화를 잃어버린 슬픈 사회이기 때문이다. 재계의 신화적인 존재들도, 학계의 신화적인 존재들도, 문화계의 신화적인 존재들도 어느 순간이 지나면 태양에 가까이 가다 밀랍이 녹은 그리스 신화의 이카루스처럼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신화는 롤 모델이다. 롤 모델을 가지고 있는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는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롤 모델은 희망이며 꿈이다. 그리고 꿈과 희망이 있는 사회란 미래가 있는 사회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 부회장 같은 사람이 한 명 정도 있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아웃사이더 박 부회장의 건투와 건승을 빈다.

/ 정리 : 최범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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