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에서 세계를 제패한 업체의 사장으로 인생 역전 드라마를 일군
의지의 사나이가 화제다. 주인공은 바퀴 두 개 달린 스케이트보드인
일명 ‘에스보드’ 제조회사 (주)데코리의 강신기 사장이다.
 남 부여의 어려운 집에서 태어난 강신기(45) 사장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1984년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 봉천동의 한 의류회사에 들어갔지만 열악한 여건 속에서 오래 버티지 못했다. 그래서 자격증을 따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수자원공사라는 안정된 직장을 가지게 됐다.

  하지만 삶이 안정된 것을 빼고는 아무런 비전이 없었다. 입사한 지 5년째가 되던 날, 그는 퇴사를 결정했다. 가족과 주위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혔지만 안정된 삶보다는 모험을 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백화점에서 건강침대를 보게 됐다. 그는 매장에서 카탈로그를 얻은 뒤 거기 적힌 주소로 무작정 찾아갔다. 영업사원으로 밑바닥부터 시작해 전국에 12개의 매장을 가진 사장으로 성공했다. 승승장구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좋은 시절도 잠시, IMF 외환 위기 탓에 앞뒤로 자금 압박에 시달리며 사업을 접어야 했다.



  서울역에서 노숙

 
2000년 그는 서울역 노숙자 신세로 전락했다. 그야말로 빈털터리가 돼 타의반 자의반으로 서울역 노숙 대열에 합류했다. 처음에는 차가운 맨바닥에 쉽게 몸을 뉘일 수가 없었다. 구석진 좋은 자리를 두고 다른 노숙자들과 티격태격하며 싸우기도 했다.

  노숙자에게 서울역은 인생의 막장 같은 곳이었지만 그에게는 힘차게 비상해야 할 마지막 바닥이었다. 그는 절대 구걸을 하지 않았고 인력시장에서 일거리를 찾았다. 막노동을 해 번 돈이 한 달 150만원에 이르기도 했다. 그는 그 돈을 가족에게 부쳤다. 포기하지 않았고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강 사장은 “꿈을 키우기 위해 노숙 생활을 감내했으며,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어느 날 갑자기 사장이 된 게 아니다”고 말했다. 일거리를 찾지 못한 날에는 7~8개에 이르는 신문을 모두 정독했고, 남대문시장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았다.

  그러다 서울역 지하도에서 우연히 만난 돌침대 제조업체 사장의 손에 이끌려 그는 노숙자 신세를 탈피하고 돌침대 판매로 생계를 꾸려갈 수 있었다. 서울역을 벗어난 이후 생활은 조금씩 궤도를 찾아갔다. 하지만 회사가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기울면서 이마저도 그만둬야 했다. 어렵게 시작한 일을 그만두고 그는 다시 백수가 됐다.



  에스보드 탄생

 
2001년, 길에서 아이들이 타고 노는 킥보드를 보면서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저걸로 뭔가를 할 수 없을까. 손잡이를 잘라낸 킥보드와 스케이트보드를 갖다놓고 매일같이 새로운 것을 연구했다. 호기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스케이트보드에 바퀴를 두 개만 다는 것에 까지 이어졌다.

  그러다 우연히 한 대학생이 스케이트보드를 둘로 나눠 바퀴를 단 ‘뜻밖의 물건’을 만나게 된다. “그래, 바로 이거야.” 그는 이 합판으로 만든 약간 조잡스런 물건이 획기적인 제품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대학생에게 디자인을 바꾸고 속도를 낼 수 있는 원리를 더 연구해 제품으로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 대학생은 특허까지 내놓았지만 이후 확신이 서지 않아 포기했다고 그의 제안에 고개를 갸웃했다고 한다.

  그는 며칠간 바퀴 달린 합판과 동고동락했다. 여러 가지 보완점과 실용적인 테스트를 마친 후 그 대학생으로부터 아이디어 일체를 샀다. 바퀴가 굴러간 흔적을 보고 이름을 ‘에스보드’로 지었다. 그는 특허를 내고 디자인도 새롭게 개발했다.

  2003년 봄, 그는 지금의 데코리를 설립했다.



  2005년 1500억원 매출 기대

 그는 주변의 친구와 현재 제조를 맡기고 있는 명강기업의 도움을 받아 테스트를 완료하고 2003년 9월 첫 제품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제품 판매는 그리 쉽지 않았다. 제품 판매에 어려움을 겪던 가운데 2003년 겨울 ‘대한민국 특허대전’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고 난 후 제품에 대한 문의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2004년 5월에는 이 상품으로 전 세계를 주름잡는 업체를 일궈냈다. 에스보드는 2004년 5월 중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열린 미국 최대 발명·신제품 전시회(2004 INPEX)에서 그랑프리 대상 등 5개 부문을 휩쓸었다. 5관왕의 여파는 컸다. 이 전시회에서 바이어들과의 상담을 통해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연간 125만달러의 로열티 수입을 얻게 됐다.

  강 사장은 여러 외국 업체들이 계약하기를 원했다면서 폭발적인 관심 덕분에 큰소리를 치고 로열티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주저하던 외국 기업도 끝내 강 사장의 요구에 맞춰줄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는 일본·오스트레일리아 등과도 계약을 끝내 2005년에는 150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강 사장은 그의 성공이 실패와 포기하지 않은 용기에 있었다고 자부한다.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면서 실패도 했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의 성공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는 힘들 때마다 서울역 노숙 시절을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제법 돈을 벌고 있지만 함부로 쓰지 않는다.



 복지재단 설립이 꿈

 그는 “노숙을 하는 중에도 이런저런 사업을 구상하면서 자포자기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며 “육체가 힘들 때마다 멋지게 재기하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희망을 키웠다”고 말했다.

  자기를 위해서 쓰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보답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족들과도 아직까지 떨어져 지낸다. 일에 열중하기 위해서다. 지금은 에스보드 외에도 실생활과 밀접한 3가지 제품을 개발 중이다. 건강의자와 유아용품, 생활용품이다. 강 사장은 사업이 제 궤도에 오르면 이익을 사회에 환원할 계획이다.

  수익의 10%를 따로 떼어내 복지재단을 만들거나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 기부를 할 것이라고 한다. 그는 “내가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거리의 노숙자를 도울 생각은 없다. 생색내는 것 같아 싫기도 하지만 노숙자 중 대부분이 일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강 사장은 지금 실패로 인해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말한다.

  “할 수 있어. 그래, 다시 시작하는 거야.”

장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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