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도 하나의 산업입니다. 모든 산업에 패션이 다 연관돼 있습니다. 사람하고 가장 가까운 것이 옷 아니겠어요. 비단 옷뿐만 아니라 피부에 접하는 액세서리, 화장품 같은 것도 모두 패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패션업계의 ‘거장’ 반열에 올라 있는 이상봉 디자이너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패션학’에 대해 이러한 단상을 내놓았다. 그 어느 분야보다 경쟁이 치열한 패션업계에 몸담은 지 30여년. 1985년 자신의 이름을 딴 ‘㈜Lie Sang Bong’을 설립하고 지금까지 묵묵히 달려온 그에 대해 남들은 성공이라 말하지만, 이상봉 디자이너는 “나는 그저 운이 좋은 사람이었을 뿐”이라며 몸을 낮췄다.

그가 건넨 명함의 이름 아래에는 ‘점자’가 찍혀 있었다. “시각장애 학생들을 만나면서 작은 것이지만 무언가 교감을 나누고 싶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 점자 말고도 명함에서 눈에 띈 것은 또 있었다. 영문 성이 ‘LEE’가 아닌 ‘LIE’라고 쓰여 있었다. 여기엔 ‘거짓말을 하지 말자’는 생각이 담겨 있다고 한다. “제가 20년 전 인터뷰에서 그런 얘길 했더라고요. 대통령 앞에서나 거지 앞에서나 똑같은 진실만을 이야기하고 싶다고요.”

이 디자이너는 패션업계뿐 아니라 이미 대중적으로도 유명인사가 됐다. 김연아 선수가 2011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입었던 ‘오마쥬 투 코리아’ 의상을 디자인해 화제가 됐고, MBC ‘무한도전’ 패션쇼에 출연해 ‘무도’ 멤버들의 의상을 만들기도 했다. 김연아 선수와의 만남에 대해 그는 기분 좋은 기억을 갖고 있다고 했다.

1. 아들 이청청씨(오른쪽) 또한 디자이너다. 이상봉 디자이너는 “아들이면서 소중한 업무적 동반자”라고 말했다. 2, 3. 다양한 콜라보레이션을 선보인 이상봉 디자이너는 김연아 선수 피겨 의상과 행남자기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1. 아들 이청청씨(오른쪽) 또한 디자이너다. 이상봉 디자이너는 “아들이면서 소중한 업무적 동반자”라고 말했다. 2, 3. 다양한 콜라보레이션을 선보인 이상봉 디자이너는 김연아 선수 피겨 의상과 행남자기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김연아 선수, 모델로서도 훌륭”
“의외로 공개돼 있는 사람들이 일반 사회인보다 더 순수한 경우가 있어요. 김연아 선수도 그런 느낌이 있었어요. 또 전문 패션쇼 모델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상당히 이상적인 몸을 갖고 있어요. 동양적 이미지와 서구적 마스크를 다 가지고 있다는 점도 묘한 매력이 있죠. 제 옷만이 아니라 어떤 옷을 입어도 소화해낼 수 있을 거예요.”

그는 김연아 선수가 당차고 분명한 자기 주관을 갖고 있는 점도 높게 평가했다. “어릴 때부터 어디든 어머니랑 함께 다녔을 텐데 처음에 여기 올 때 어머니 없이 혼자 왔더라고요. 그러면서 저한테 어머니가 같이 오면 선생님이 좀 피곤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 혼자 왔다고 하는데 어린 친구가 배려심이 많구나란 생각이 들었죠.”

이상봉 디자이너하면 떠오르는 것은 다름 아닌 ‘한글’이다. 의상 외에도 한글을 디자인에 접목한 작품을 주로 선보여 왔던 그는 패션업계에서는 ‘한글전도사’로 통하기도 한다. LG전자의 ‘샤인 디자이너스 에디션’ 휴대폰에 한글 디자인을 넣었고, 행남자기와도 한글 디자인이 담긴 작품들을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협업)하고 있다. 제작된 이 자기들은 영국 빅토리아&앨버트 박물관에 영구 전시되고 있다.

한글 디자인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지만 한땐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부담감도 컸다고 한다. “처음엔 사명감을 갖고 한번 한 건데 똑같은 것을 또 해야 한다 생각하니 너무 스트레스가 되더라고요. 전 계속 새로운 것을 해야 하는 디자이너인데, 같은 것을 또 해야 하나 하는 고민도 있었죠. 지금은 영광스럽게도 만나는 분들마다 저를 알아봐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한때는 한글 디자이너, 그 이후엔 무한도전 디자이너, 이렇게 불리다가 이젠 ‘이상봉’이라고 정확히 이름을 알아봐 주세요.”

“한글디자인 처음엔 부담스러웠다”
한번 패션쇼를 열 때마다 수백명 이상의 모델들 중 쇼에 설 모델을 선정하다 보니 직업적 스트레스도 크다고 한다. 외국모델들은 인종이 다양해 머리색, 피부색은 물론 눈동자 색까지 의상 콘셉트에 맞춰 선별해야 한다고. 그는 “외국모델들은 프로필에 키, 몸무게 등 신체 사이즈는 물론 눈과 머리색도 꼭 기재한다”고 설명했다.

“일반 남자분들은 부러워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한텐 직업이기 때문에 모델들을 수도 없이 봐야 하는 게 힘이 들 때도 있어요. 미의 기준이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말하는 모델 같은 몸매를 싫어하는 나라도 있어요. 저도 매일 모델들만 보다 보니 일반인들이 모델보다 더 예뻐 보일 때가 있어요. 저의 미의 기준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웃음).”

이상봉 디자이너의 어린 시절에는 아픈 기억도 담겨 있다고 한다. 내성적 성격인 그는 몇몇 친구들과만 마음을 터놓고 어울렸는데, 그들 중 몇명이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도 마음의 문을 더욱 닫게 되었다는 것. 한동안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던 그는 서울예대에 진학한 이후 처음으로 열정과 꿈에 대해 생각했다고 한다. 연극 무대에서 연기든 연출이든 하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된 것. “20대에는 연극이 제 인생의 전부였어요. 그러다가 경제적 어려움도 겪게 되고 연극을 사랑한 만큼 두려움도 커지더라고요. 그저 도피처로 패션을 택했는데 하다 보니 점점 매력을 느끼면서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그는 공식적으로 나이를 밝히지 않는다. 누가 나이를 물을 때면 그는 ‘서른일곱’이라고 답한다. 디자이너로서 영원히 서른일곱에 멈춰 있겠다는 바람과 의지가 담긴 것이라고 했다. “이 직업을 갖고 있는 한 서른일곱 살로 살겠다는 다짐이에요. 저보다 나이가 많든 적든 전 소통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면 누구하고든 친구하자고 해요. 그런 친구들만 실제 제 나이를 알고 있어요(웃음).”

▒ 이상봉 디자이너는…
서울예대 방송연예과 졸업. 1999년 ‘올해의 디자이너’ 서울시장상. 2006년 프랑스 파리 ‘Who’s Next’ 한글 패션 전시. 2009년 ‘올해의 디자이너’ 대통령 표창. 2010년 청와대 초청 한글작품 전시. 2010년 행남자기 이상봉 에디션 론칭(영국 런던 V&A 박물관 영구전시). 2011년 ISU 세계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 김연아 선수 프리의상 디자인. 2012년 아시아모델시상식·국제문화교류공로상(문화부장관상). 2012년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CFDK) 초대회장 선임. 1994~현재 서울컬렉션. 2002~현재 프랑스파리 프레타포르테 컬렉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