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스 홍(Dennis Hong·한국명 홍원서)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교수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로봇 과학자다. 대학 재학 중 미국으로 건너가, 퍼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홍 교수는 지난 2003년 미국 공과대학 중 최상위권인 버지니아공대에 최연소 교수로 임용됐다. 올해 UCLA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그의 열정적인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세계 과학계가 그를 대스타로 인정하는 이유는 그가 휴먼테크(Human Tech) 분야에서 가장 탁월한 업적을 쌓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가 로봇 기술에 담고자 한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다. 세상을 이롭게 하는 로봇, 조어(造語)를 붙이자면 ‘홍익인간형 로봇’이라고 할까. 시각장애인을 위한 무인자동차나 인간을 대신해 극한의 환경에서 일하는 휴머노이드(인간의 신체와 유사한 모습을 갖춘 로봇)는 홍 교수의 꿈인 동시에 그가 인류에게 선사할 ‘선물’이다.

체코 극작가 요세츠 차페크가 1920년 처음 사용한 단어 로봇(Robot)은 ‘노예’, ‘고된 일’을 뜻하는 슬로바키아어 로보타(Robota)에서 유래됐다. ‘일’을 뜻하는 아르바이트(Arbeit)도 같은 어원이다. 문학작품에 쓰인 로봇이 산업현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60년대부터다. 그로부터 20여년 뒤인 1980년대부터는 일반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인간을 대신해 일하는 휴머노이드는 지난 1973년 일본 와세다대 가토 이치로(加藤一郞) 교수팀이 개발한 ‘와보트(WABOT)-1’이 첫 스타트를 끊었다.

"로봇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극찬
최근 세계 각국은 차세대 산업인 로봇 기술 확보에 혈안이 돼 있다.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미래 기술 전쟁에서 승리하려는 이들의 노력은 시간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모습이다.

데니스 홍 미국 UCLA대 교수는 세계 최고 로봇과학자로 불린다. 미국 종합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2011년 기사에서 그를 가리켜 ‘로봇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The Leonardo da Vinci of robots)’라고 평가했다. 버지니아 공대 재직 시 로봇기술 연구소 로멜라(RoMeLa)연구소를 세운 그는 지난 2009년 과학전문지 <파퓰러사이언스>가 꼽은 ‘젊은 천재과학자 10인’에 선정됐을 뿐만 아니라 2011년에는 세상을 이롭게 하는 기술(Technology),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디자인(Design) 분야 유명인사가 참여하는 테드(TED)에 초대받아 강연했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세계로봇월드컵 3연패를 이뤄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한국인 최초다.

때문에 국내에서 홍 교수의 인기는 웬만한 연예인급 이상이다. 가르치랴, 연구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의 일상은 요즘과 같은 방학(미국 학기 기준) 때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국내 모 공중파 토크쇼에 출연한 이후부터는 더하다. “나는 결코 천재가 아니다. 나는 내 꿈을 설계했을 뿐이다”고 외치는 그는 현대를 살아가는 1020세대들의 새로운 롤 모델이 되고 있다.

홍 교수가 선보인 로봇 기술의 장점은 ‘독창성’에 있다. 박현섭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로봇PD는 “발표되는 상당수 로봇기술이 이미 나온 것들을 응용해 내놓는 것과 달리 홍 교수 로봇은 ‘이런 기술도 나올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독창적”이라고 평가했다. 수많은 로봇 과학자들이 홍 교수와 로멜라연구소를 세계 최고의 로봇과학 산실로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혁신기술을 만들어내는 비결에 대해 홍 교수는 생물학, 의학, 철학 등 다양한 학문과의 교류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발이 세 개인 스트라이더만 해도 어디서 걸음걸이를 착안했느냐면,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딸 아이 머리를 딸 때 세 가닥을 번갈아가며 매듭을 묶지 않습니까. 거기서 힌트를 얻었어요. 전 신기한 걸 보면 메모하는 습관이 있거든요. 스트라이더는 그래서 세 갈래로 매듭을 매는 것처럼 걷습니다.”

미국 최초 휴머노이드 로봇인 ‘찰리’의 발목뼈는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선사시대 사슴 뼈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중(二重) 도르래 구조로 된 사슴 발목뼈는 충격을 흡수하는 데 이상적이다.

홍 교수가 개발하는 로봇은 인간을 이롭게 하는 공학 기술의 집합체다. 지금까지 그가 개발한 주요 로봇들은 하나같이 이러한 생각에서 출발했다. 지난해 말 미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주최한 재난구조로봇대회(DRC)에서 9위에 오른 휴머노이드 ‘토르’도 위기 때 인간을 구하는 재난구조용으로 만들어졌다. 비록 상위권에 들지는 못했지만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일본 정부는 얼마 전 후쿠시마 원전 피해 지역에 홍 교수를 초청했다. 그의 눈에 비친 후쿠시마 다이치 원전 주변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폐허의 도시였다.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현장에 가봤는데, 사람만 없을 뿐 일반 도시의 모습 그대로더라고요. 심지어 편의점에 물건도 그대로 진열돼 있었어요. 꼭 유령도시 같았죠. 현재 다들 쉬쉬 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가 원전을 어떻게 해체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지금도 방사능에 오염된 물이 지하로 스며들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현장에서 누가 이걸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현실적으로 로봇밖에는 대안이 없다고 봅니다.”

홍 교수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현장에 투입해 명령을 수행하는 휴머노이드를 개발하는 것은 인간을 화성에 보내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라면서도 “인류의 번영을 위해서 반드시 누군가는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데니스 홍 교수는 세계로봇월드컵을 3연패(連覇)하고 한국인 최초로 TED에 초청받아 강연한 로봇 과학자다.
-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데니스 홍 교수는 세계로봇월드컵을 3연패(連覇)하고 한국인 최초로 TED에 초청받아 강연한 로봇 과학자다.
“로봇은 응용력 높은 ‘자석’ 같은 산업”
글로벌 기업들은 앞다퉈 로봇산업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기업 구글은 지난 1년간 10여개 로봇 관련 기업을 인수했다. 또 앞으로 300억달러를 투입해 관련 기술을 대거 사들일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 온라인 유통 기업 아마존은 무인 배송 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해 무인비행로봇과 관련된 기술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구글이 왜 로봇기술 기업들을 인수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학계 시각도 제각각인데, 저는 개인적으로 구글이 로봇을 만들 것 같지는 않고, 그보다는 운영체제(OS) 개발에 뛰어들 것으로 봅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윈도라는 OS로 PC시장을 석권했듯, 구글은 로봇 플랫폼 석권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죠. 충분히 가능한 일이에요.”

반면 국내 대기업들의 로봇기술 개발은 여전히 걸음마 수준이다. 현대중공업, 동부로봇 등이 산업용 로봇 분야에서 선전(善戰)하고 있고,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에서 삼성전자가 개발한 로봇레이(Robot Ray) 정도가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로봇산업은 ‘자석’ 같은 특성을 갖고 있어요. 항공산업에 접목시키면 무인기가 되고, 자동차산업에 갖다 붙이면 무인자동차가 되죠. 심지어 농산물 산업에도 접목시킬 수 있죠. 다시 말해 로봇기술은 어떤 산업과 연결시켜도 즉시 응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요사이 세계적인 로봇 연구기관들이 주목하는 로봇기술 중 하나가 클라우드(Cloud)인데, ICT(정보통신기술) 분야에서 우리가 굉장한 장점이 있지 않습니까. 창조경제가 현 정부의 최고 국정과제 중 하나인데, 로봇이 바로 창조경제의 가장 적합한 산물이죠.”

그가 최근 로봇올림픽으로 불리는 재난구조용 로봇 챌린지(DRC)대회를 국내에서 열려고 노력하는 것도 한국을 로봇 강국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얼마 전 홍 교수는 미 국방고등연구계획국 관계자와 함께 정부 관계자를 만났다. 홍 교수는 “미 국방부를 설득해 내년 DRC 대회가 끝나면 이를 민간 주도의 로봇올림픽 형태로 발전시키기로 했다”며 “당초 첫 대회 주최국으로 일본이 물망에 올랐으나 최근 한국이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내년 6월에 열리는 ‘DRC’대회에 국내 여러 로봇 기업을 참여시키는 것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저보고 많은 사람들이 ‘로봇 천재’라고 부르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로봇 엔지니어는 모든 분야를 알 수 없어요. 제가 맡은 분야는 로봇을 디자인하고 설계하는 것에 불과하죠. 결국 로봇공학은 다양한 기술들이 접목되도록 함께 협력(Co-op)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홍 교수는 국내 로봇산업 현실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쏟아냈다. 그가 말한 가장 큰 문제는 장기적인 비전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기술육성 자금 자체가 부족한 것은 아닙니다. 미국 동료 교수들에게 한국 정부가 지원하는 시스템을 설명하면 깜짝 놀랍니다. 금액이 결코 적지 않아서죠. 그런데도 한국은 여전히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예요. 로봇산업은 전형적인 하이리스크 하이 페이오프(High Risk High Pay-Off·고위험 고수익)구조거든요. 한국경제의 미래 먹거리가 없다고 난리인데, 저는 로봇산업에서 ‘대박’이 나올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 데니스 홍 교수가 개발한 다족(多足) 보행 로봇.
- 데니스 홍 교수가 개발한 다족(多足) 보행 로봇.


자신의 이름 딴 비영리재단 준비 중
로봇 기술 발달이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홍 교수는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전혀 다른 산업군(群)이 생겨난 것처럼 로봇은 인간의 일자리를 뺏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는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직업군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어떤 이들은 로봇기술이 발달하면 로봇이 인류를 지배하는 시대가 오는 거 아니냐고 걱정하는데, 그건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에요. 사람들이 SF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큰일이에요. 확실히 말하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로봇 기술은 우리 후대, 그리고 그 후대에 가도 나올까 말까 하는 기술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살아가는 현 시대에는 실현 불가능한 일이라는 겁니다. 그보다는 인간이 하지 못하는 극한의 일들을 로봇이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번 세월호 사태 때 잠수 로봇이 투입된 것 보셨죠? 결과는 좋지 못했지만, 로봇기술이 쓰일 곳은 바로 그런 분야입니다.”

아울러 홍 교수는 우수한 인재들이 이공계로 유입되도록 하는 일도 중요하게 여긴다. 외부 강연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면서 그가 강조하는 말은 “트렌드가 아닌 꿈을 쫓으라(Follow your dreams, not the trends)”, “실패를 두려워한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If you fear failure, you can never succeed)”다. 이를 위해 홍 교수는 인재 양성을 위한 비영리재단 설립을 준비 중이다.

“인기가 높아졌는지, 이제는 길거리를 걸으면 사람들이 먼저 말을 걸어와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자거나, 사인을 요청해오곤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인기가 거품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아요. 언제까지 그러겠습니까. 다만 이때 한국에 제가 가진 꿈을 한번 펼쳐보고 싶습니다. 젊은이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것, 우수한 인재들이 끊임없이 과학기술 개발에 매진하는 것, 그게 바로 제가 생각하는 ‘선한 일’이죠.”

홍 교수 관련 동영상을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TED 강연과 함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있다. 지난 2011년 1월29일 미국 플로리다주 데이토나 자동차 경기장에서 검은색 포드 이스케이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자동차 한 대가 시속 40~50㎞로 달리고 있었다. (유튜브 : Blind Driver Challenge: Daytona International Speedway, Rolex24 참고) 검은색 안대를 쓴 시각장애인이 운전하는 차량 앞에는 수많은 장애물이 놓여 있었다. 앞서 달리는 차량이 화물이 도로 위로 떨어지는가 하면, 일부 구간에서는 앞선 차량을 추월했다. 숱한 난관을 뚫고 차량이 결승선을 통과하자 관중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세계 최초로 시각장애인용 자동차가 첫선을 보이는 순간이었다. 광경을 지켜본 <워싱턴포스트> 기자는 이날 기사에서 ‘달 착륙에 버금가는 성과’라고 극찬했다. 홍 교수는 지난해 펴낸 자서전 <로봇 다빈치, 꿈을 설계하다>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마크는 그를 향해 달려오는 아내 멜리사를 부둥켜안으며 눈물을 글썽인다. 멜리사 역시 시각장애인이다. 그 광경을 보는 내 가슴이 미어지면서 쿵쾅거린다. 멀찌감치 그들의 모습을 글썽이며 쳐다보고 있는데 마크가 소리친다.

“데니스! 어디 있어?”

소매로 눈을 훔치자 왼쪽 팔이 눈물에 미끄덩거린다. 나는 눈물을 닦으며 차 앞으로 달려간다. 마크가 나를 부둥켜안으며 말한다.

“생큐! 데니스, 생큐…”>>  

▒ 데니스 홍 교수는…
1971년생, 고려대 기계공학과 중퇴, 미국 위스콘신대(메디슨) 기계공학과 졸업, 퍼듀대 기계공학 박사, 미국 버지니아공대 교수 역임, 현 미국 UCLA 기계항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