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 시절의 민희경 CJ그룹 부사장(CSV경영실장)은 피아노를 전공하는 음대생이었다. 하지만 세상과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 뜨거웠던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경영학을 공부한 뒤에 미국, 영국, 일본 등지의 금융회사에서 엘리트 전문직 여성의 인생을 살았다. 그런 그가 ‘문화를 만드는 일을 가장 잘한다’고 자부하는 CJ그룹과 인연을 맺은 것을 보면 역시 운명 같은 게 있나 보다. 지난해 ‘공유가치창출(Creating Shared Value·CSV)’을 새로운 경영 이정표로 내세운 CJ그룹의 초대 CSV경영실장을 맡고 있는 민희경 부사장을 만나봤다.

CJ그룹의 모기업이자 핵심 계열사인 CJ제일제당은 지난 2011년부터 ‘즐거운 동행’이라는 이름의 동반성장 프로그램을 펼쳐나가고 있다. 즐거운 동행은 진정성을 바탕으로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파트너에게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동행의 파트너는 농업, 중소 식품업체, 협력사, 환경 등 4가지다.

일례로 농업 분야의 즐거운 동행은 농가와의 계약재배를 통해 농민들에게 안정적 수익을 보장하고 CJ제일제당은 더 좋은 품질의 국산 원료를 구매하는 것이 골자다. 계약재배로 수확한 농산물은 CJ제일제당의 ‘하선정’, ‘해찬들’ 등의 제품 원료로 쓰일 뿐 아니라 나아가 CJ푸드빌의 식재료로 사용된다.

중소 식품업체와의 즐거운 동행도 주목할 만하다. CJ제일제당은 전국 각지의 우수 전통식품을 발굴해 자사의 기술, 마케팅, 디자인, 유통망을 더함으로써 전국적인 식품 브랜드로 도약시키는 상생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렇게 탄생한 즐거운 동행 브랜드의 제품은 강원 백두대간 두부, 옛맛 생막걸리, 여수 돌산갓 갓김치 등 19가지에 이른다. 중소기업은 판로 확대와 성장기반 확보, CJ제일제당은 제품 포트폴리오 다양화와 매출 증대 기회를 얻는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동반성장 모델인 셈이다.

CJ제일제당의 즐거운 동행은 ‘공유가치창출(Creating Shared Value·CSV)’을 지향하는 CJ그룹 특유의 상생활동 사례라고 할 수 있다. CJ그룹은 지난해 11월 창립 60주년(CJ그룹 모기업인 CJ제일제당은 1953년 설립됐다)을 맞아 ‘CSV 경영’을 대내외에 선포했다. 국내 재계에서 CSV를 경영 전면에 내세운 기업으로는 CJ그룹이 사실상 최초다.

CJ그룹, 창립 60주년 맞아 ‘CSV 경영’ 선언
CSV는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가 2011년 처음 제시한 개념으로, 기업이 경영활동을 통해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창출하는 것을 뜻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CSR)’이 투명경영, 윤리경영, 사회공헌 등을 포함하는 의무의 성격이 짙다면, CSV는 기업 본연의 경영활동을 사회적 가치 창출과 연계하는 전략의 의미가 크다. 말하자면 CSR이 한 차원 높게 진화한 형태가 CSV라고 할 수 있다.

민희경 부사장의 말이다. “CJ그룹은 예전부터 CSR을 실천하는 데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어요. 그러다 2012년 봄 무렵부터는 이재현 회장이 CSV를 임직원들에게 화두로 던졌습니다. 계열사 최고경영자 및 임원들이 CJ인재원에 모여 여러 차례 CSV 전문가 특강을 듣기도 했죠. 그 후 1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CSV를 공식적인 경영방침으로 선포한 겁니다.”

민희경 부사장은 2011년 CJ인재원장으로 영입되면서 처음 CJ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서울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음악도 출신이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유학을 떠나 경영학을 배운 뒤 국제 금융계에서 오랫동안 활약한 이채로운 경력의 소유자다.

CJ그룹은 식품,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유통 등 주력사업의 특성상 여성 직원 비율이 절반에 달한다. 여성 인력 개발이 그룹 전체의 경쟁력과 직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 점에서 남다른 도전과 성취의 삶을 살아온 ‘커리어우먼’인 민희경 부사장은 CJ그룹의 인적자원개발 부문을 총괄하는 CJ인재원장 감으로 꽤 매력적인 인물이었던 셈이다.

민 부사장은 CJ인재원장으로 부임한 뒤 가장 먼저 그룹의 경영철학을 살펴봤다고 했다. 일명 ‘CJ웨이(CJ Way)’로 불리는 CJ그룹의 경영철학에는 ‘온리원(Only One)적인 제품과 서비스로 고객을 위한 최고의 가치를 창출하고 국가와 사회에 기여한다’는 미션이 담겨 있다. 그는 창업주인 고(故) 호암 이병철 회장의 경영철학도 곱씹어봤다. 호암은 기업가로서 살아생전 ‘사업보국’과 ‘공존공영’을 절대적인 가치이자 신조로 삼았다.

“호암의 경영철학과 CJ웨이는 기업활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한다는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요컨대 호암의 사업보국, 공존공영의 정신이 CJ에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거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두 가지 정신이 바로 CSV의 철학과 맞닿아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민희경 CJ그룹 부사장은 “우리나라가 수출로 경제발전을 이룬 만큼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CSV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 민희경 CJ그룹 부사장은 “우리나라가 수출로 경제발전을 이룬 만큼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CSV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문화와 전통에 CSV가 부합
CJ그룹은 지난해 CSV 경영을 선포하면서 새롭게 직제를 개편했다. 그룹 차원의 CSV 총괄조직인 CSV경영위원회와 CSV경영실, 그리고 각 계열사에 신설된 CSV경영팀이 그것이다. CSV경영위원회는 전체 계열사 대표들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상설기구다. CJ그룹의 CSV 경영에 관한 최고의사결정기구라고 할 수 있다. CSV경영실은 CSV경영위원회를 보좌하면서 CSV 경영의 각종 정책과 실무를 수행하는 최고집행기구 역할을 한다. CSV경영팀은 각 계열사별로 사업 특성에 맞는 CSV 전략을 수립·실행하는 최일선 부서다.

민 부사장은 CJ인재원장을 맡고 있다가 CSV경영실이 신설되면서 초대 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두 직책은 임직원들에게 CJ 고유의 ‘DNA’를 심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업무의 유사성이 많다는 설명이다. 그가 CSV라는 새로운 경영방침을 전파하고 착근하는 중책을 맡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CJ는 유난히 교육과 인재양성을 중시하는 기업문화를 갖고 있어요. 서울시 중심가에 인재원(혹은 연수원)을 두고 있는 대기업은 아마 CJ가 유일할 겁니다. 이재현 회장은 자신의 생가터에다 CJ인재원을 세웠을 만큼 인재에 대한 애착이 무척 강합니다. 사실 CJ그룹이 CSV 경영에 나서게 된 것도 이 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결정적이었습니다.”

민 부사장은 얼마 전 미국 출장을 다녀왔다. CSV의 창안자인 마이클 포터 교수가 마크 크레이머 공동대표와 함께 운영하는 컨설팅업체 FSG가 주최한 CSV 관련 국제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마이클 포터 교수를 직접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는 한국 기업들이 CSV에 유독 적극적이라면서 신기해하더군요. 저는 내년에 올 때는 더 멋진 CSV 모델을 가져오겠다고 말해줬죠(웃음). 제 생각에 CSV는 우리나라 풍토와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예로부터 한국인에게는 나눔이나 공생 같은 가치를 중시하는 문화가 DNA로 내재화돼 있잖아요. 근래 들어 기업의 나눔과 상생 활동에 대한 사회적 기대치도 많이 높아졌고요. 그런 면에서 CSV는 한국 기업에게 매우 큰 시사점을 준다고 봅니다.”

CJ그룹은 지난해 CSV 경영 선포 이후 다채로운 CSV 모델을 개발, 실행해나가고 있다. 각 계열사별로 사업 내용과 특성에 맞는 차별화된 CSV 프로그램도 여럿 눈에 띈다.

예를 들면 CJ오쇼핑은 CJ IMC라는 자회사를 설립해 국내 중소기업의 해외시장 진출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기존의 글로벌 유통 채널을 활용해 우량 중소기업 제품을 외국 소비자에게 소개하는 플랫폼 구실을 하는 것이다. CJ오쇼핑은 다양한 제품군을 확보할 수 있고, 중소기업들은 해외시장 개척 기회를 얻는 ‘윈윈(Win-Win) 모델’이다. 인도, 베트남, 터키, 일본 등지서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가는 ‘홈파워 빨래 건조대’가 CJ IMC가 발굴한 대표 히트상품으로 꼽힌다.

CJ푸드빌이 추진 중인 ‘CJ푸드빌 상생아카데미’도 눈길을 끈다. 이 사업은 50대 이상의 중장년층 은퇴 예정자, 퇴직자 등을 대상으로 하는 외식창업 전문 프로그램으로, 고용노동부가 함께 참여한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은퇴자들에게 맞춤형 창업교육을 제공함으로써 경제적인 안전판을 마련해준다는 의의가 있다.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하는 CSV 프로그램도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CJ대한통운과 CJ CGV는 각각 고령자를 대상으로 아파트 택배 배송원과 영화관 안내원을 채용함으로써 시니어 일자리 창출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또 CJ그룹이 국내 대기업 최초로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을 지원하는 ‘CJ 리턴십 프로그램’도 호평 받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CJ그룹 입장에서도 이익이 된다. 식품, 쇼핑, 문화콘텐츠 사업 분야에서 재능 있는 여성 인력에 대한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민 부사장의 말이다. “경영학자들은 CSV에 대한 관점이나 정의가 조금씩 다릅니다. 게다가 사회적 가치(Social Value)를 어느 범위까지 인정하고, 또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도 주요 이슈가 되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기업이 신사업을 기획·추진할 때 ‘사회적 책임감’을 수반한다면, 그게 곧 CSV가 될 수 있다고 봐요. 어떤 사회적 니즈(요구)가 있는 분야에서 창조적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면 기업과 사회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거죠.”

베트남 등지서 ‘글로벌 CSV’도 추진 중
CJ그룹은 해외 각지에서 글로벌 CSV 활동도 적극 펼쳐나간다는 계획이다. CJ가 진출한 지역에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섬으로써 진정한 현지화를 달성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올해 글로벌 CSV 활동의 최대 역점 국가는 베트남이다. CJ그룹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공동으로 베트남 닌투언성(省)에서 농업소득 증대와 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신 새마을운동’을 펼치고 있다. 닌투언성은 베트남에서 가장 낙후된 빈촌(貧村) 지역으로 꼽힌다. CJ는 닌투언성 농가에 선진 농업기술을 전파하는 한편 지역 주민이 재배한 농산물을 사들여 원료로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베트남의 농촌경제 개발과 CJ그룹의 안정적 농산물 수급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CSV 모델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피(被)원조국에서 원조국으로 바뀐 세계 유일의 나라잖아요. 한국 경제는 수출로 컸기 때문에 전 세계의 도움을 받은 셈입니다. 어떤 국가든 국제사회에서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구촌에 보답을 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CJ그룹은 글로벌화를 추진하면서 해외 현지 시장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한편 CSV 활동도 적극 펼쳐나가고자 합니다. 사실 세계 시장에서 잘나가는 글로벌 기업들은 대부분 사회적 책임 활동을 열심히 하는 기업들이에요.”

민희경 부사장은 “CSV가 기업의 혁신(Innovation)과도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고 덧붙였다. 기업은 사회와 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사회적 가치 창출을 중시하는 시대적 요구에 맞게끔 스스로 비즈니스 전략을 바꿔나가야 한다. 그런 혁신의 최전선에 CSV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를 이롭게 하면서 돈도 버는’ CSV를 지향하는 CJ그룹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행보가 어떤 결실을 낳을지 주목된다.  


▒ 민희경 부사장은…
1958년생. 1982 서울대 음대 졸업, 84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학 석사(MBA). 84 미국 딜로이트&투쉬 회계법인, 86 미국 뉴욕은행, 90 일본 미쓰비시UFJ은행, 93 영국 포커스 인코퍼레이티드, 2004 푸르덴셜투자증권 부사장, 2007 인천경제자유구역청 투자유치본부장, 2011 CJ그룹 CJ인재원장, 2013 CJ그룹 CSV경영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