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터넷업계의 승부사로 통하는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초대형 이벤트’를 선보였다.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을 운영하는 카카오와 국내 2위 포털 사업자인 다음커뮤니케이션을 합병하는 깜짝 카드를 던진 것이다. 자신이 처음 창업했던 한게임을 네이버와 합쳤던 과거 행보와 흡사한 모습의 과감하고 전격적인 승부수다. 다만 그때는 ‘친구’와 손잡았고 이번에는 ‘친구의 적’과 어깨동무를 한 것이 차이점이다. 인터넷업계에 또 한번의 파란을 예고한 김범수 의장의 진짜 노림수는 과연 무엇일까.

“불확실하지 않은 곳에는 기회가 없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다음커뮤니케이션(이하 다음)과의 합병 즈음에 카카오 임직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은 확실하고 분명한 것을 선호한다.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것에는 두려움이나 불편함을 느끼는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김범수 의장은 오히려 불확실성을 즐기는 듯하다. 정확하게 말하면 불확실성 속에서 범인(凡人)들이 보지 못하는 큰 기회를 노린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는 다음과의 합병을 결단하면서 내일의 무엇을 봤던 것일까.

물론 아직은 김 의장이 머릿속에 그리고 있을 구상이 알려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석우 카카오 공동대표가 지난 5월26일 다음과의 합병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청사진의 일단을 밝히기는 했다.

“이번 합병은 다음과 카카오의 차별적인 핵심 경쟁력을 통합해 양사의 당면과제를 신속히 해결하고 강점을 강화하는 시너지를 통해 글로벌 IT·모바일 플랫폼으로 거듭나기 위한 고도의 전략적 선택이다.”

이석우 대표의 말은 양사 합병이 지향하는 목표를 담기는 했다. 하지만 다소 두루뭉실한 느낌이다. 합병 이후 추진할 사업전략이나 사업계획에 대해서는 콕 집어낼 수 있는 알맹이가 부족하다. 실제 누구도 거의 예상하지 못한 전격적인 합병 계약을 맺은 터라 일단 큰 그림만 그려놓았을 수도 있다.

두 회사는 기준 주가에 따라 산출된 약 1 대 1.556 (다음 대 카카오)의 비율로 합병법인인 다음이 신주를 발행해 피합병법인인 카카오의 주식과 교환하는 방식으로 합병한다. 외견상 합병 주체는 다음이지만 내용상으로는 카카오가 합병 주체다. 비상장기업인 카카오가 상장기업인 다음과의 합병을 통해 우회상장을 하는 결과를 낳는다. 양사 합병으로 시가총액 3조4000억원이 넘는 거대 인터넷기업이 탄생한다. 

양사가 합병해 새로 출범하는 법인의 명칭은 다음카카오로 결정됐다. 오는 8월 양사 주주총회에서 합병이 정식으로 승인되면 연내에 다음카카오가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

카카오의 한 매니저 직급 관계자의 말이다. “다음 측에서 먼저 찾아와 합병을 제안했다. 다음은 1위 포털 사업자인 네이버에 여러 모로 많이 뒤지지만 갖출 것은 다 갖춘 회사다. 무엇보다 재무적으로 봤을 때 ‘가격’이 좋았다. 모바일 분야가 워낙 빨리 변화하는 곳이라서 당장은 새로운 사업모델 계획을 갖고 있지는 않다.”

-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다음과의 합병을 통해 구상하는 큰 그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다음과의 합병을 통해 구상하는 큰 그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1등 외에 의미 없다”
이 관계자의 말로 미뤄볼 때 김범수 의장은 ‘싼 가격에 나온 좋은 물건을 절호의 타이밍에 사들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일단 매력적인 자산을 호조건에 확보해놓고 그 다음에 구체적인 사업 방안을 찾아보려고 했다는 풀이다. 하지만 다음의 제안을 접했을 때 김 의장은 자신의 승부사적 본능을 자극하는 무언가를 직감했을 것으로 보인다. 세간에서 궁금해하는 것이 바로 그 대목이다.

김 의장은 평소 “인터넷에서는 1등 외에 아무 의미가 없다”는 철학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 2000년 자신이 창업한 한게임커뮤니케이션(이하 한게임)을 네이버컴(현 네이버)에 합병시켰다. 자기 손으로 세우고 키운 회사를 선뜻 넘기는 것은 여간 대범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면 어려운 일이다.

당시 네이버컴은 다음, 야후 등에 뒤처져 있는 포털업계 후발주자였다. 한게임은 회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었지만 서버 구축 비용을 감당하기가 벅찬 상황이었다. 김 의장은 서울대 동기이자 첫 직장인 삼성SDS 동기였던 이해진 당시 네이버컴 대표를 찾아가 깜짝 제안을 던졌다. 한게임은 자금과 인력이 필요했고, 네이버컴은 트래픽이 절실했다. 양사의 고민거리를 한꺼번에 풀 수 있는 묘수가 바로 합병이었다. 네이버컴은 한게임과의 합병을 통해 NHN으로 거듭났고, 그 후 NHN은 강력한 성장세에 돌입했다. 2004년 즈음에는 마침내 국내 1위 포털로 도약하는 데 성공했다.

김 의장은 2007년 NHN 미국법인(NHN USA) 대표를 끝으로 NHN 경영에서 물러났다. 밀려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 김 의장이 NHN을 떠나면서 남긴 말이다. 그는 거대기업으로 훌쩍 성장한 NHN에서 성취감과 안락감을 누리기를 거부했다. 또 다시 불확실성의 바다로 나아가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가 홀연히 NHN을 떠나던 해, 미국에서는 스티브 잡스가 모바일 혁명의 방아쇠를 당겼다.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본격적인 스마트폰 시대를 열어젖힌 것이다. 김 의장은 NHN USA 대표를 역임했던 만큼 세계 정보기술(IT) 산업의 중심지인 미국 업계의 도도한 변화를 일찌감치 간파할 수 있었다. 바야흐로 모바일로 승부를 걸어야 하는 시대가 성큼 다가온 것이다.

큰 기회가 왔음을 직감한 김 의장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비장의 카드를 내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2010년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을 앞세워 국내 인터넷업계에 화려한 복귀를 알렸다. 카카오톡은 스마트폰 사용자들의 필수 애플리케이션으로 각광받더니 그야말로 눈깜짝할 사이에 국민 메신저로 등극했다. 김 의장은 PC 인터넷 시대에 NHN으로 1등에 오른 데 이어, 모바일 인터넷 시대에도 카카오톡으로 1등에 오른 것이다. 그는 다시 스포트라이트의 한가운데 서게 됐다.

-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은 여전히 김범수 의장과 돈독한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은 여전히 김범수 의장과 돈독한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족한 콘텐츠·노하우·인력 채우는 소득
카카오톡은 국내 시장에서 확고한 1등 모바일 메신저로 자리를 잡았다. 경쟁자도, 적수도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김 의장은 여전히 배가 고팠다. 현재에 만족하는 것은 그의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비좁은 국내 시장에서 1등을 해봐야 머지 않아 성장의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카카오톡은 1등 메신저이지만 콘텐츠나 수익모델 면에서 부족한 면도 적지 않았다.

그는 다시 한번 승부수를 던져야 했다. 절묘한 타이밍에 다음이 손을 내밀었다. 김 의장의 기질상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가 마음에 걸리기는 했을 터이다. 그건 바로 친구이자 사업동지였던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이다.

다음은 네이버에 많이 뒤처져 있지만 어쨌든 국내 포털업계에서 경쟁관계다. 따라서 다음과의 합병은 곧 친구와 한판 대결을 벌일 수밖에 없는 구도로 가게 된다. 자연히 세간에서는 김범수 의장과 이해진 의장이 친구에서 적수로 바뀌었다는 평을 내놓았다. 언론매체들은 두 사람의 관계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자 맞짱, 격돌, 심지어는 복수라는 표현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외견상으로는 분명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두 사람을 잘 아는 업계 사람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네이버 출신의 한 인터넷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김범수 의장과 이해진 의장이 적수라는 것은 세인들이 보는 시각일 뿐이다. 인터넷업계에서 두 사람만큼 성공한 사람은 드물지 않나. 그런 사람끼리는 통하는 법이다. 두 사람은 여전히 친하게 지낸다. 골프나 식사도 함께 하러 다닌다.”

두 사람을 잘 아는 또 다른 지인은 이렇게 말한다. “김범수 의장과 이해진 의장은 참 멋있는 관계다. 둘 다 새롭고 혁신적인 인터넷 서비스를 만들어가면서 서로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는 사이라고 할 수 있다. 네이버가 모바일 메신저 ‘라인’으로 해외시장에서 잘 나가는 것도 카카오톡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덕분이다.”

지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판세를 보는 시각이 달라져야 할 듯하다. 요컨대 한국 인터넷업계는 김범수 의장과 이해진 의장이 사이 좋게 분점하는 형국이 됐다는 것이다. 달리 본다면 인터넷 포털과 모바일 메신저라는 양대 시장에서 ‘두 친구’가 손잡고 천하통일을 이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 5월26일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 발표 기자회견에서 최세훈 다음커뮤니케이션 대표(왼쪽)와 이석우 카카오 대표가 악수하고 있다.
- 5월26일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 발표 기자회견에서 최세훈 다음커뮤니케이션 대표(왼쪽)와 이석우 카카오 대표가 악수하고 있다.


‘트래픽+콘텐츠’가 일으킬 시너지 기대
어쨌든 김 의장의 승부수는 상당히 흥미로운 이벤트가 되고 있다. 인터넷업계에서는 혁신과 도전의 아이콘인 그가 뭔가 놀라운 것을 내놓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큰 듯하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다음과 카카오가 합병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정도의 예상만 나오는 상황이다.

황승택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카카오는 사용자 접속 빈도수가 세계 최고 수준인 메신저를 갖고 있지만 수익모델이 게임 외에는 마땅치 않았다”며 “하지만 다음과의 합병으로 광고나 콘텐츠 등 사업 노하우와 우수 인력을 단숨에 확보함으로써 높은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고 말했다.

흔히 인터넷 비즈니스의 핵심은 ‘트래픽’이라고 한다. 사용자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수익이 창출된다는 뜻이다. 다음은 콘텐츠가 네이버에 뒤질 게 없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정작 트래픽에서 크게 밀리다 보니 만년 2인자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카카오톡의 막대한 트래픽을 다음 포털로 흡수할 수 있으면 다음의 사업 경쟁력도 크게 향상될 수 있다. 반면 카카오는 다음의 풍부한 콘텐츠와 노하우를 활용함으로써 현재 보유하고 있는 트래픽의 수익창출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을 “두 회사 모두에게 최선의 딜”이라는 평을 내놓는 이유다.

공영규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의 말이다. “인터넷 사용자가 PC에서 모바일로 대이동하는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모바일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사업이 얼마나 많겠는가. 다음과 카카오의 시너지 창출은 장기적으로 더욱 크게 나타날 것이다. 단기적으로 볼 때도 모바일과 포털을 결합한 다음카카오가 국내 인터넷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