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허준’과 ‘대장금’은 전 세계 한류 확산의 첨병(尖兵) 역할을 하는 작품이다. 세계인들에게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두 작품이 끼친 공헌은 상당하다. 특히 두 드라마에 등장하는 한의학(韓醫學)에 대한 서양 의학계의 관심은 대단하다. 지난 2009년 유네스코(UNESCO) 산하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가 우리나라 의학서로는 처음으로 ‘동의보감’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한 것도 중국, 일본과는 다른 독특한 문화적 가치를 담고 있어서였다. 


- 김남일 경희대 한의과대 학장은 한의학드라마 <허준>과 <대장금> 히트가 말해주듯 한의학은 한국문화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의보감 등 한의 역사 연구 대가
김남일 경희대 한의과대 학장은 국내 한의사(韓醫史) 분야 최고 권위자다. 김 학장이 말하는 한의학은 ‘문화’다. 김 학장은 “간행 600년을 넘긴 동의보감이 세계적인 의서로 공인(公認)받은 이유는 책 안에 한·중·일 동아시아 전통의학 모두가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학장은 “동의보감을 가리켜 중국, 일본 학자들이 ‘천하 보물’이라고 치켜세우는 이유도 중국, 일본 모두 학파 간 갈등으로 정리하지 못한 동아시아인의 건강코드와 건강관리 방안을 집대성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영어판이 처음 출간된 동의보감은 최근 아시아 전통의학 관련 국제학술대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할 정도로 학계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김 학장은 “한의학이 학문적 가치가 높은 이유는 서양의학과 달리 병의 근본 원인을 찾아 치료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양의학이 패스트 힐링(Fast Healing)이라면, 한의학은 슬로 힐링(Slow Healing)이라는 게 김 학장의 주장이다.

“중국 의학은 전염병 치료를 연구하던 것이 오늘날에 이르렀고, 일본 의학은 외부에서 사기(死氣)가 몸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 것을 연구한 것이라면, 한의학은 만성질환 즉, 사람의 체질을 살피는 데 주력한 것이 차이입니다. 예부터 우리나라 한의사들은 심성(心性), 다시 말해 사람의 마음을 치료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그런 면에서 볼 때 우리 의학의 밑바탕에는 숭고한 인본주의(人本主義) 정신이 깔려 있습니다.”

우리 문화 속에 담겨진 한의학의 발자취를 담기 위한 김 학장의 노력은 수십년간 계속돼 왔다. 최근 김 학장은 한의학의 대중화를 위해 인문서 성격의 <근현대 한의학 인물실록>(2011년), <한의학에 미친 조선의 지식인들>(2011년), <한방화장품의 문화사>(2013년)를 펴냈다. 이 책들은 한의학에 문외한인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내용이 구성돼 있다. 이 중 <한의학에 미친 조선의 지식인>들은 한때 인문도서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할 정도로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잘못 알려진 유의(儒醫)의 발자취를 그려낸 책이다. 간혹 드라마 속 내의원(內醫院·조선시대 궁중 의료기관) 의원으로 등장하는 유의는 대민(對民)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의학 지식이 뛰어난 양반 출신 한의사를 가리킨다. <한의학에 미친 조선의 지식인>에서 김 학장은 유의가 잘못 알려진 것은 ‘일제 식민사관’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의술을 중인(中人) 직업으로 격하시켰기 때문에 ‘유의=무능한 양반’이라는 등식이 성립됐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한의학의 중심에는 유의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유학자이면서 의학을 공부한 사람들이었죠. 이들이 의술을 공부한 것도 순전히 주변사람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됐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다산 정약용 선생도 유의였고, 우암 송시열 선생은 의서인 <삼방촬요(三方撮要)>를 쓸 정도로 학문적 수준이 뛰어났어요. 또 김육, 최명길 등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재상들은 하나같이 도제조(都提調)라고 불리는 내의원 수장 출신이었죠. 임진왜란을 극복하는 데 일등공신이었던 서애 유성룡 선생도 <침구요결(鍼灸要訣)>, <의학변증지남(醫學辨證指南)>이라는 의서를 펴낸 유의였습니다.”

대학 강단에 서기 전부터 김 학장은 틈만 나면 대전, 대구, 부산 등 지방 고(古)서점을 찾아다니며 한의학 관련 고서적을 찾는 데 열중했다. 그에게는 숙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가 1914년부터 출간된 우리나라 최초 한의학 학술잡지 <한방의학계(韓方醫學界)>를 비롯해 <동서의학보(東西醫學報)>, <동양의학(東洋醫學)> 등 학술지를 꾸준하게 수집한 것도 우리 전통 문화의 중심에 서 있는 한의학의 학문적 고증(考證)을 위해서였다.

김 학장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한의학 말살 정책은 굉장히 집요했다. 조선을 강제 합병한 일본은 한의학 교육기관 증설을 불허한 것은 물론, 한의사를 의생(醫生)으로 낮췄으며, 인력 양성도 패망 직전인 1944년부터 중단했다. 이에 대한 한의학계의 반발 또한 조직적으로 이어졌다. 일부 한의사들은 조직적으로 독립운동에 가담하는가 하면, 독립군의 자금줄 역할도 도맡았다. 근·현대 한의학의 증인으로 불리는 청강 김영훈(1882~1974) 선생이 대표적인 인사다.

한의학의 중흥이 곧 바이오산업 성공 직결
최근 김 학장이 몸담고 있는 경희대는 한의학의 중흥을 기치로 내걸고 다양한 산학연계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김 학장은 “스토리텔링 기법을 활용해 한의학을 우리 문화 콘텐츠로 만들 경우 경제적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드라마 허준과 대장금이 좋은 본보기다. 아울러 그는 “최근 우리나라를 찾는 의료관광 사업을 한류 문화에 연결시키는 데 한의학이 가교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학장은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는 바이오기술(BT)산업과 한의학이 긴밀하게 연계되기 위해서는 정부 지원과 관련 법규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천연물로 신약을 만들어도 양약(洋藥)이 되는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또 시술(施術)과 관련해 환자 부담을 덜어주는 쪽으로 제도를 바꿔야 한의학이 발전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무병장수를 위한 건강관리와 자연 친화적 치료라는 최근 의료산업 트렌드에 부합할 수 있는 게 바로 한의학이에요. 환자의 직업, 성격, 환경 등을 총망라해 ‘맞춤형’으로 병을 치료한다는 점은 한의학이 가진 엄청난 장점입니다.”  

 

▒ 김남일 학장은…
1962년 서울 출생, 88년 경희대 한의과대 졸업, 94년 경희대 한의학 박사(의사학), 95년~현재 경희대 한의과대 교수, 2011년~현재 경희대 한의과대 학장, 현 한국의사학회 회장.

송창섭 기자 / 사진 : 한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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