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권에서는 ‘신상품 개발’이 가장 중요한 업무로 부상하고 있다. 금융겸업화와 고령화 등 금융환경 변화로 신상품 개발이 시장경쟁력의 척도가 된 것이다. 이에 따라 금융기관들은 저마다 역량 있는 상품개발자를 모시기에 분주하다. 억대 몸값을 받는 금융상품개발자도 이제 일반화된 상태. <이코노미플러스>는 은행·증권·보험 등 금융권 대표 히트상품 개발자를 만나 히트상품 제조법과 향후 상품 트렌드를 알아봤다.

김홍직  KTB자산운용 부동산본부 팀장

“부동산펀드 인기 폭발 하루 25시라도 모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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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8일 오전 7시25분, 국내 최대 규모의 오피스타운이라 불리는 서울 강남 테헤란로는 출근을 서두르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길가에는 이른 아침 출근하는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새벽장사를 하는 샌드위치 카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길가에선 고소한 버터 향이 바삐 지나가는 직장인들을 불러 세운다. 김홍직(36) 팀장도 빼곡히 서 있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노릇노릇 버터가 발라진 샌드위치를 우유와 곁들여 먹고 있었다.

“웬만하면 아침은 꼭 먹고 출근하려고 하는데 업무 때문에 좀처럼 쉽지 않네요. 특히 현장에 곧바로 출근하는 날은 거의 길가에서 때우는 편이예요. 따뜻한 밥 한 끼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끼니를 때우는 데는 샌드위치가 최고죠.(웃음)”

 김 팀장은 KTB자산운용 부동산본부에서 일한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부동산펀드를 개발하는 것이 그의 주 업무. 부동산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부동산펀드에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최근 금융상품을 판매하는데 있어 ‘초 싸움’이 벌어지는 것은 부동산펀드뿐이다. 현재 비공식 최단기 판매기록은 15초. 김 팀장이 이른 아침 샌드위치 카 앞에서 끼니를  때우는 것도 모두 이 같은 국민적 열기 때문이다.

 “국민 대다수가 부동산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부동산’자가 들어가는 펀드는 모두 다 인기 절정이에요. 사실 저금리 영향이 크지만요. 상품에 대한 고객 수요가 많다 보니 무지 바빠요. 오늘도 투자대상 오피스 빌딩에 대해 선행 조사차 현장으로 바로 출근했죠.”



 #2○○빌딩 앞에 선 김 팀장은 건물 관리인과 함께 건물 노후성 검사에 들어갔다. ‘꼼꼼이’라는 별칭을 가진 그는 매사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단다. 건물 외벽은 물론 엘리베이터, 계단, 주차장 등 곳곳을 살폈다. 10년 이상 된 건물인 만큼 서류보다는 실제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어 건물 관리인을 통해 임대료 및 임차인 구성, 공실률 등을 조사했다. 건물이 좋아도 공실이 많거나 임대료가 낮으면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 강남 불패라곤 하지만 그중에서도 옥석은 있게 마련이다.

 “부동산펀드는 특히 상품성이 중요하죠. 성격도 성격이지만 상품개발 전에 현장검사를 꼭 하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서류로는 나타나지 않는 것들이 많죠.”

 매각 대리인과의 미팅으로 현장조사를 마친 김 팀장은 서둘러 여의도로 향했다. 오전 9시30분 팀원들과의 미팅에 늦지 않기 위해서다. 현재 4건의 프로젝트를 추진중인 그는 하루 24시가 빠듯하다며 하소연했다. “부동산펀드라는 특성상 현장과 사무실을 오가면서 상품개발이 이루어지죠. 때에 따라선 사무실과 현장을 오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예요.”

 MBA 출신인 그는 부동산펀드 분야에서 ‘미다스’로 불린다. 그가 손댄 부동산은 펀드로 재탄생, 개인은 물론 기관투자가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업력도 화려하다. 업계 최초로 교보메리츠CR리츠(REIT’s)를 만들었고 오피스 빌딩을 매입, 임대수익을 투자자에게 나눠주는 실물형 부동산펀드도 내놨다. 또 최근에는 중국 내 아파트 건설에 투자하는 해외부동산펀드도 처음으로 선보였다.



 #3팀원과의 미팅이 예상보다 길어졌다. 진행중인 프로젝트의 상품성과 시장성을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 프로젝트 담당자는 절대 수익률 측면에서 투자 메리트가 높다는 의견이었지만 김 팀장은 정부의 부동산 억제책을 감안하면 과열 양상을 보이는 지역의 투자는 조금 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추가 조사 및 리스크 헤지 방안을 보강해 상품을 개발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장장 2시간에 걸친 회의 결과였다.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니 회의가 많아요. 의견 충돌도 잦을 수밖에 없죠. 프로젝트 담당자는 오랜 시간 열정을 갖고 일을 추진하기 때문에 투자대상 물건에 애착을 갖게 되죠. 그래서 때에 따라선 객관성을 잃을 때도 있어요. 회의는 자칫 발생할 수 있는 프로젝트의 오류를 막아주는 것은 물론 새로운 아이디어도 만들어주죠.”

 회의가 끝나자마자 그는 기관투자가와의 점심 미팅을 위해 서둘러 광화문으로 이동했다. 여타 펀드들과 달리 부동산펀드는 투자대상 발굴은 물론 투자자 모집도 상품개발자의 몫이다. 부동산펀드에는 일반적으로 기관투자가나 법인투자자들이 초기 투자에 나선다. 기관이나 법인들이 부동산펀드에 선투자하고 남은 몫을 공모를 통해 개인들에게 판매하는 것이다. 계약을 통해 부동산이라는 실물이 오가는 일이라 펀드 설정에 차질이 생길 경우 계약파기 등 불상사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동산펀드 개발자들에겐 인간관계와 상호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날 만난 00생명 관계자는 “‘꼼꼼이’라는 별명답게 기관이나 법인들은 대부분 김 팀장이나 그가 만든 부동산펀드를 믿고 투자한다”고 귀뜸했다.

 #4오후 2시20분 여의도 사무실로 돌아온 김 팀장은 직원들이 준비한 오전 팀원 미팅 자료를 토대로 업무(프로젝트) 추진 보고에 들어갔다. 일과 중에도 외부 미팅이나 현장조사가 많기 때문에 사내 업무는 직원들의 도움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발품을 팔아야 하는 업무 특성상 팀원들의 도움 없이는 일을 할 수가 없어요. 그 어느 팀들보다 팀워크가 중요시되는 것도 이 때문이죠.”

 KTB자산운용 부동산본부는 총 6명으로 구성돼 있다. 일반 사무를 담당하는 직원을 제외하면 5명이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프로젝트마다 담당자가 있지만 모든 일을 팀원이 동시에 한다. 팀원 대부분이 수년간 같이 일해온 사이라 손발이 척척 맞는다고 김 팀장은 말했다. 실제로 부동산본부 사령탑인 안홍빈 본부장과 김홍직 팀장, 오종면 차장, 강현수 대리 등은 5년간 수십 개의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해온 업계 1세대 부동산팀이다.

 오후 4시가 다 돼서야 업무 보고를 마친 김 팀장은 바로 시행사와의 부동산펀드 개발 면담에 들어갔다. 부동산펀드가 큰 인기를 끌면서 건설사 등으로부터 하루에도 4~5건의 제안서가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면담을 마치고 나온 시행사 관계자들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면담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한 모양이었다.

 “리스크가 큰 반면 사업성이 떨어지는 프로젝트였어요.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했죠. 펀드를 통해 자금을 쉽게 조달하려고 하지만 은행 빚보다 어려운 게 펀드라는 걸 알아야죠.”



 #5계속된 마라톤 미팅과 면담이 끝나고 김 팀장이 자리에 앉은 시각은 오후 5시30분. 상품 출시를 위한 금감원 보고 자료 등을 만드는 일로 하루 일과가 끝났다. 오후 7시가 다 됐다. “요즘처럼 바쁠 땐 정해진 퇴근 시간이 없어요. 그나마 오늘은 저녁 미팅이 없어 좀 일찍 자리에서 일어난 편이죠.”

 그는 팀원들과 저녁 회식 자리를 만들었다. 오전 미팅때 있었던 직원과의 의견충돌이 맘에 걸린 듯했다. 저녁식사 메뉴는 으레 그렇듯 삼겹살과 소주였다.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는 전혀 오가지 않았다. 주말여행 계획이나 우스갯소리가 전부였다. 그의 테이블 앞엔 소주잔이 넘실거렸다. 직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김 팀장의 주량은 ‘밑 빠진 독’이다. 알 수가 없단다. 그의 알 수 없는 체력이 바쁜 하루를 지탱하는 버팀목인 것 같았다.

 술이 얼큰히 들어갔다. 자리를 뜬 직원들은 약속이나 한 듯 어디론가 이동했다. 피아노 바(Bar)였다. 진한 커피 향과 잔잔한 조명이 켜진 조그만 바에선 손님이 앉는 테이블보다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피아노가 더 커 보였다. 김 팀장은 팀원 회식 자리 때나 스트레스를 풀러 자주 이곳에 들른다고 한다. 외모와는 달리 피아노를 치는 것이 그의 스트레스 해소법 또는 팀원들과의 대화법이라고.

 저녁 9시37분 큼지막한 그의 손가락은 빌리 조엘의 ‘New York State Of Mind’를 울리고 있었다.



김기섭  기업은행 개인금융부 상품개발팀장

은행권 컨셉트의 달인 공익상품으로 나눔 철학 실천



 2005년 3월16일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독도 문제가 국가적 이슈로 떠올랐다. 온 국민이 독도 문제에 뜨거운 관심을 보였고 “독도를 지켜야 한다”는 한 목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독도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시장에는 독도를 주제로 한 다양한 상품들이 쏟아졌다. 티셔츠, 가방 등 일상 생필품은 물론 ‘독도 떡’ ‘독도사랑여행’ 등 먹을거리에 여행상품까지 등장했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띈 것은 기업은행이 업계 최초로 지난 3월21일 출시한 ‘독도는우리땅통장’이다. 여타 상품들이 독도 이슈를 단순히 상술에 이용한 데 반해 ‘독도는우리땅통장’은  ‘독도 여행’‘독도 성금 모금’ 등 고객이 실제로 독도 발전에 동참할 수 있도록 했다.

 독도에 대한 국민의 뜨거운 관심은 ‘독도는우리땅통장’을 단숨에 히트상품 반열에 올려놓았다. 출시 보름 만에 1조원이라는 자금이 몰렸고 3개월여 만에 2조7000억원이라는 놀라운 판매(예금)실적을 기록했다. 기업은행의 예금 자산이 총 40조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대박이 터진 것. 여타 은행들도 독도 관련 상품을 잇따라 출시했지만 선점 효과를 톡톡히 본 이 상품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다. 국민적 관심을 등에 업은 ‘독도는우리땅 통장’은 올 상반기 은행권 최고 히트상품으로 꼽히고 있다.

 ‘독도는우리땅통장’을 탄생시킨 주인공은 바로 김기섭(44) 기업은행 개인금융부 상품개발팀장이다. 김 팀장은 은행권에서 ‘컨셉트(Concept)의 달인’으로 불린다. 사회적·문화적 이슈를 상품화하는 데 누구보다 뛰어난 센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구려지킴이통장’, ‘효지킴이통장’, ‘탄생기쁨통장’, ‘마라톤통장’ 등 그가 만든 상품 이름만 들어도 최근 사회적·문화적 이슈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정도다. ‘고구려지킴이통장’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이라는 이슈를, ‘효지킴이통장’과 ‘탄생기쁨통장’은 가족붕괴와 저출산 문제를, ‘마라톤통장’은 웰빙 트렌드를 상품화한 것이다.

 이슈를 상품화한다고 해서 무엇이나 다 히트상품이 되는 건 아니다. 김 팀장은 누구나 공감하고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공익성이 첨가돼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적·문화적 이슈를 단순히 상술화해 상품을 만든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특히 금융상품은 더욱 그렇죠. 누구나 공감하고 인정할 수 있는 공익성이 꼭 필요하죠.”

 김 팀장은 주로 언론이나 TV 등을 통해 상품개발 아이디어를 얻는다. 트렌드와 이슈를 꼼꼼히 챙겨 적기에 상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상품개발 과정에서 가장 주안점을 두는 것은 브랜드 네이밍과 부가서비스 요소다. “예금 상품은 특성상 여타 상품들과는 달리 경쟁사들과 큰 차별성을 지니기 힘들죠. 상품개발 아이디어를 얻으면 상품 이름과 부가서비스에 주력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이해할 수 있고 누구나 가입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부가서비스만 갖춘다면 일단 성공했다고 봐도 됩니다.”

 히트상품 개발은 개인 혼자만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상품 아이디어를 개발한 뒤에도 마케팅·홍보 등 이를 뒷받침해줄 조직간의 유연한 지원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김 팀장 역시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팀원들과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히트상품 개발 자체가 불가능했을 거라고 지적했다.

 “은행의 핵심 상품인 예금은 금리가 경쟁력이죠. 따라서 조직이 장기적 관점에서 적극적인 가격정책을 지원해준다면 그만큼 상품도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 부서간 이익보다는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적극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히트상품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에너자이저’란 별명을 가진 김 팀장은 항상 활력이 넘친다. 상품개발로 바쁜 와중에도 자기계발을 위해 MBA 과정을 밝고 있는 것은 물론 자격증 취득에도 게으르지 않다. 웬만한 투자전문 자격증은 모두 가지고 있다는 김 팀장은 앞으로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공익상품 개발에 주력할 예정이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정이 있는 상품’ 개발이 상품개발팀장으로서의 목표다. “하나의 금융상품으로 재산도 늘리고 어려운 이웃도 도울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목표가 있다면 바로 이 같은 나눔 철학이 담겨 있는 공익상품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이동석  대한생명 상품개발팀 차장

금융상품 디자이너 꿈꾸는 14년 차 상품개발 베테랑



 "상품개발이란 계란을 세우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일종의 발상의 전환이죠. 고정된 시각으로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기는 힘들어요.”

이동석(40) 대한생명 상품개발팀 차장은 상품개발업무를 한 마디로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상품개발업무만 14년간 해온 업계 최고 베테랑 중 한 사람이다.

 이 차장은 지난해 8월 ‘대한변액CI보험’을 개발해 대한생명의 상품 경쟁력을 높이고 자사 보험설계사의 자산컨설팅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주인공이다. ‘대한변액CI보험’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보장과 수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변액보험’과 암과 같은 치명적 질병도 보장하는 ‘CI(Critical Illness)보험’의 장점만을 결합한 상품. 업계 최초로 출시된 이 상품은 출시 11개월 만에 초회 보험료(보험 가입 후 첫 납입 보험료) 248억원이라는 놀라운 실적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대한변액CI보험’을 두고 일각에서는 “인기상품의 장점만을 결합한 상품은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것 아닌가?”, “인기상품의 장점만 본뜬 상품이 어떻게 업계 최초인가?”라는 지적도 있다. 누구나 만들 수 있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처음으로 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바로 이런 발상의 전환이다. 고객들의 큰 호응에도 여타 보험사들이 유사상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변액CI보험은 아직까지 대한생명에서만 팔고 있다.   

 “상품개발업무에 있어 최초란 것은 사실 없다고 봅니다. 어떤 명확한 근거를 두지 않고서는 상품이라는 것이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니까요. 겸업화 등 금융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요즘엔 최초라는 타이틀을 따는 것이 더욱 힘들죠. 발상의 전환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 차장은 1993년 입사 2년 차에 첫 상품을 개발했고 1994년 입사 3년 차에 첫 히트상품인 ‘레이디암보험’을 출시했다. ‘레이디암보험’ 역시 ‘발상의 전환’에서 나온 작품이다. 당시 암보험 시장의 주요 타깃은 직장인 남성이었다. 남성 위주 사회의 남성 위주 보험이었던 것. 그는 당시 직장인 여성은 물론 가사노동을 하는 여성의 암 발생률이 남성 못지않게 높다는 것을 깨닫고 업계 최초로 여성을 위한 암보험 상품을 개발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이 상품 출시로 남성 위주 암보험 시장은 여성으로까지 확대됐고 시장도 크게 성장했다.

 이후에도 이 차장은 ‘매일아침굿모닝건강보험’, ‘대한종신보험’ 등 굵직굵직한 상품을 잇따라 개발했다. 특히 그는 IMF 이후 대한생명이 매각되기 전까지 회사의 경영개선 및 실적향상 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그는 베테랑답게 박학다식하기로 유명하다. 보험뿐만 아니라 의학·교통 등 보험 연계 분야는 모든 채널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 “어떤 한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도 중요하지만 보험 상품 특성상 여러 분야에 대한 지식이 많을수록 상품개발에 유리하죠. 아이디어도 주로 보험 연계 분야의 정보를 통해 얻습니다.”

 이 차장은 ‘롤링스톤즈(Rolling Stones)’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노래를 잘 불러서라기보다는 ‘움직일 동(動), 돌 석(石)’이라는 이름 때문에 얻은 별명이다. 하지만 그는 ‘구르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는다’, 즉 계속해서 배우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주변에서 붙여준 별명이라고 여긴다.

 14년 베테랑인 이 차장은 상품개발자는 고객의 자산과 생명을 설계해준다는 면에서 디자이너와 같다고 말한다. 그의 목표도 최고의 금융상품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다.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산과 생명을 디자인해준다는 생각으로 상품개발업무에 임하고 있죠. 고객과 함께할 수 있는 최고의 금융상품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임종복  도이치투신운용 마케팅부 상품개발부장

펀드의 연금술사 100세 장수펀드 개발이 목표



 임종복(40) 도이치투신운용 마케팅부 상품개발부장의 인생 목표는 ‘100세 장수펀드’를 만드는 것이다. 100년간 지속될 수 있는 펀드를 만들어 온 국민이 유아 시절부터 투자해 고령화를 걱정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는 것. 하지만 현재 국내 펀드 현황을 감안하면 이 목표가 얼마나 당돌한가를 알 수 있다. 국내 펀드의 평균 나이는 6살. 불과 3개월 만에 사라지는 단명 펀드도 부지기수다. 현재 국내 최장수 펀드는 대한투신운용의 ‘안정성장1월호주식펀드.’ 지난 1970년 5월20일에 탄생한 이 펀드의 나이는 35살에 불과하다.

 “목표가 쉽기만 하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그리고 ‘무언가 간절히 원할 때 자신 주변의 세상은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고 합니다.” 임 부장은 요즘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를 즐겨 읽는다. ‘펀드의 연금술사’라는 별칭을 가진 그는 ‘투자자를 위해 더 나은 상품을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상품개발자의 ‘연금술’이라는 지론을 갖고 있다. “투자자의 인생설계를 위한 장수펀드를 개발하는 것이 모든 상품개발자의 의무라고 생각해요.”

 ‘연금술사’란 임 부장의 별칭은 소설을 좋아해서라기보다 사실 그의 실력에서 나왔다. 펀드개발 경력은 5년여에 불과하지만 그가 만든 상품은 대부분 ‘최초’ 또는 ‘최고’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특히 변별력이 없는 주식·채권 등 일반 유가증권펀드보다는 해외투자펀드 부문에서 그의 능력은 높게 평가받고 있다. 펀드수익률도 꾸준하다.

 실제로 임 부장이 개발한 ‘글로벌토탈리턴 펀드오브펀드(Global Total Return fund of funds)’에는 출시 2개월 만에 3300억원의 자금이 몰렸다. 이는 올해 출시된 펀드오브펀드 전체 설정액의 50% 가량을 차지하는 규모다. 펀드오브펀드 중에서 최고의 히트를 친 것이다. 이 펀드 하나로 도이치투신운용은 매달 1억2000만원을 벌어들이고 있다. 연간으로 환산할 경우 납입자본금의 10%가 넘는 12억원 가량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또 그는 업계에서는 최초로 신흥시장인 브릭스(BRIC’s)에 투자하는 펀드오브펀드인 ‘글로벌셀렉트(Global Select)’를 선보였으며 마찬가지로 펀드오브펀드로는 최초인 ‘글로벌배당주펀드’를 개발했다. 이밖에도 유가증권과 실물에 동시 투자하는 펀드인 ‘글로벌올에셋(Global All Asset) 펀드오브펀드’와 ‘원금보전(ELS펀드) 커머더티(Commodity)펀드’를 업계 처음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정작 임 부장은 자신의 상품에 붙는 ‘최초’라는 타이틀에 대해서는 고개를 젓는다. “최초라는 타이틀을 많이 가졌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여러 가지 조합의 결과일 뿐입니다. 펀드오브펀드는 국내에 소개된 지 얼마 안 됐을 뿐 외국에선 이미 정형화된 상품이죠. 이를 고객의 니즈와 버무려 어떻게 조합하느냐가 관건인 셈입니다. 정형화된 펀드보다는 보다 넓은 시각에서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더욱 재미있고 보람 있죠.”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임 부장은 상품개발 아이디어도 ‘짜내기’보다는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얻는다.

 주변 지인들과의 대화나 언론을 통해, 또 때로는 마라톤을 하거나 가족과 주말농장에서 일하면서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이를 구체화할 때까지 몇 날 며칠씩 온 정신을 집중하는 스타일이다.

 “자연스럽게 얻은 아이디어가 생명력도 긴 것 같아요. 그렇게 얻은 소재에 시장성과 상품성, 리스크 분석을 가미하면 새로운 상품이 나오는 거죠. 아이디어가 생기면 상품화할 때까지 집중하는 편이라 귀가를 놓치는 경우도 많아요.”



정정욱  대우증권 IB영업본부 PF부 과장

프로젝트 펀드의 대가 블루오션 상품으로 시장 주도



 최근 기업 경영의 최대 화두는 블루오션(Blue Ocean, 비경쟁 시장)입니다. 금융상품도 예외가 아닙니다. 막대한 비용과 노력이 수반되는 레드오션(Red Ocean, 경쟁 시장)보다는 틈새 또는 초기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블루 오션형 금융상품을 만드는 것이 성공 비결이죠.”

 정정욱(34) 대우증권 PF(프로젝트파이내싱)부 과장은 증권업계에서 프로젝트 펀드의 대가로 불린다. 30대 중반인 그가 일명 ‘짬밥(업력)’이 생명인 PF부문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로 불리는 것은 블루오션형 상품으로 시장을 주도해왔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상품이 선박펀드다.

 정 과장은 지난해 3월 금융권에서는 최초로 유조선·벌크선 등에 투자해 임대수익을 얻는 선박펀드를 개발해 시장의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금은 부동산·선박펀드 등 실물펀드가 하루가 멀다 하고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지만 당시에는 실물펀드에 대한 기본 지침서도 부족한 실정이었다. 그가 만든 선박펀드들이 잇따라 대박을 터뜨리면서 일종의 실물펀드 바이블이 된 것이다.

 “첫 상품이라는 점 때문에 부담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죠. 선박전문가와 해외 상품들을 찾아 저뿐만 아니라 팀원들 전부가 정말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본격적인 설계에 들어가 상품 출시 전까지는 거의 매일 철야를 했죠.”

 첫 출시된 선박펀드는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기존의 상품과 크게 다른 신상품임에도 선박펀드 1호는 이틀 동안 8대1이라는 높은 청약 경쟁률을 보였다. 160억원 공모에 1300억원 가량의 자금이 몰린 것이다. 이어 출시된 선박펀드들도 지점에서 “없어서 못 판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는 지금까지 무려 13개 대형 선박을 증시에 띄웠다. 여기에 몰린 자금만 2조원에 육박한다. 선박펀드로 대우증권은 수익은 물론 PF부문의 강자로 급부상했다.

 “프로젝트 펀드(선박펀드)는 그 특성상 도처에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죠. 이를 해결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상품이 잇따라 히트를 칠 수 있었던 것도 첫 상품인 데다 낮은 리스크에 비과세,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까지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블루오션형 금융상품으로 대박을 터뜨린 그는 지난해 12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최우수 금융신상품 개발자로 뽑히기도 했다.

 특별한 별명은 없지만 사내에서 그는 ‘불도저’로 불린다. 상품개발 과정에서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후퇴’하거나 ‘우회’하기보다는 ‘정면돌파’부터 하고 보는 성격 때문이다. 단순하지만 어떤 분야건 프런티어가 되기 위해선 필수적인 요소가 바로 ‘돌격정신’이다.

 “불도저라구요? 그렇게 거칠진 않아요(웃음). 상품개발자라면 누구나 겪는 거겠지만 막힐 때가 많아요. 그럴 땐 일단 공부터 차고 달리는 거죠. 불필요한 시간낭비나 어려운 점이 생길 수도 있지만 해답은 진행과정에 있다고 믿어요. 매번 포기하거나 딴 방법만 모색한다면 좋은 상품이 나오기 힘들죠.”

 정 과장은 상품개발 과정에서는 일단 하고 보는 성격이지만 아이디어나 시장성을 검토하는 초기단계에서는 치밀하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프로젝트 펀드는 한 번의 잘못된 구조가 투자자들은 물론 회사에도 막대한 손실을 입힐 수 있기 때문에 상품개발 전단계부터 많은 시간이 드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아이디어도 혼자 구상하기보다는 팀원 전원이 수많은 회의를 통해 얻는다고 한다.

 정 과장은 앞으로도 블루오션에서 헤엄치는 것이 꿈이자 목표다. 또 블루오션 상품이 고객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과열경쟁을 하다 보면 상품에 하자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전략적으로 기획된 블루오션형 금융상품은 투자자는 물론 회사나 개인에게도 많은 이익을 준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불루오션에서만 살고 싶습니다(웃음).”



히트상품 개발자들의 예비 히트작 미리 보기

다기능 복합금융상품 개발 주력



 컨셉트 상품, 블루오션형 상품으로 시장을 주도해온 히트상품 개발자들은 금융겸업화와 저금리 지속 등 시장 환경 변화에 맞춰 복합 및 교차상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해외 틈새시장을 겨냥한 해외투자 상품과 특정 고객군을 대상으로 한 타깃 상품 개발도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전망했다.

 김기섭 기업은행 개인금융부 상품개발팀장은 여성의 사회활동이 많아지고 독신 여성이 증가하고 있다는 데 착안, 예금과 카드 기능이 결합된 ‘레이디 전용 통장’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 통장은 미혼자와 기혼자를 구분해 결혼 컨설팅, 웰빙 및 다이어트센터 할인권 등 각기 다른 부가서비스가 제공되며 금융거래에 따라 우대금리도 적용받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김 팀장은 “국내 5가구 중 1가구가 여성이 생계를 책임질 정도로 여성의 경제활동이 급증하고 있는 상태”라며 “이런 사회적 현상을 반영할 수 있는 레이디 전용 통장을 개발중에 있다”고 전했다. 이밖에도 노령화사회를 대비한 ‘시니어 전용 통장’도 조만간 선보일 계획이다.

 보험업계 최초로 변액CI보험을 개발한 이동석 대한생명 상품개발팀 차장은 차기작으로 ‘유니버셜CI보험’을 개발중에 있다. 사망보장뿐만 아니라 자유납입, 추가납입, 중도인출 등이 가능한 ‘유니버셜보험’의 장점과 암과같은 중병도 보장하는 ‘CI보험’의 장점을 결합한 것이 바로 ‘유니버셜CI보험’이다.

 이 차장은 “경기침체로 보험료 납입이 부담스러운 고객들을 위해 자유롭게 보험료를 납입하면서 자산운용을 통해 수익까지 추구할 수 있는 상품을 선보일 예정”이라며 “오는 12월 퇴직연금 도입에 맞춰 다양한 연금상품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외투자펀드를 주로 개발해온 임종복 도이치투신운용 상품개발부장은 카드 기능이 결합된 ‘VISA Spend&Save 펀드(적립식ELS펀드)’ 3종을 업계 최초로 선보일 예정이다. 고객이 이 펀드에 가입해 제휴 카드사의 카드를 발급받으면 매달 카드 사용금액의 1% 가량이 펀드에 적립된다. 카드 서비스를 마일리지와 달리 현금으로 받을 수 있다는 점과 이 돈을 자산운용에 보탤 수 있다는 점이 이 펀드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 상품은 이미 특허출원까지 돼 있는 상태로 8월 중 은행을 통해 판매될 예정이다.

 임 부장은 “금융겸업화가 가속화되면서 앞으로 복합금융상품이 대세를 이룰 것”이라며 “적립식펀드에 ELS 및 카드기능이 결합돼 원금보전이 가능하고 카드 사용 혜택까지 받을 수 있는 펀드를 곧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정욱 대우증권 PF부 과장은 민간 유람선에 투자하는 선박펀드를 7월말~8월초 선보일 계획이다. 그동안 선박펀드들이 선박투자회사법에 의해 만들어진 것과 달리 이 펀드는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에 의해 개발되는 첫 상품이다. 간투법상의 펀드라 세제혜택은 없지만 7%대의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상품의 장점이다. 또 주식형 펀드로 상장도 가능해 환금성도 좋다.

 정 과장은 “선투법에 의한 선박펀드는 최근 상품개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대수익률이 떨어지고 있다”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간투법에 의한 선박펀드를 내놓을 계획”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