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과 삼성산 사이에서 발원한 도림천은 신림동, 대림동, 도림동을 굽이굽이 돌아, 한강으로 이어지면서 동네마다 아름다운 정취를 만들어냈다. 신림2동이라는 옛 지명이 더 익숙한, 서울 관악구 서림동 주민에게 도림천은 애환을 함께 해온 존재다. 그런 서림동에서 도림천 못지않게 지역민과 동고동락을 같이 해온 이가 있다. 바로 ‘신림동 슈바이처’라고 불린 김연수 김한의원 원장이다. 격동기인 1969년부터 지역 주민을 위해 무료 진료를 펼쳐온 김 원장을 향한 지역민의 존경과 사랑은 대단하다. 그가 특히 정신 질환 분야에서 명의(名醫)로 평가를 받는 것은 오랜 시간 지역 주민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난 의로운 인술(仁術)을 펼쳐왔기 때문이다.

1. 김연수 원장과 대담하고 있는 김남일(왼쪽) 경희대 한의과대 학장.
2. 한방 무료 진료실에서 봉사 활동을 벌이고 있는 김연수 원장.

A씨는 김 원장의 거듭된 사양을 뿌리칠 수 없었다. 지금도 김한의원에서 이런 일은 종종 볼 수 있다. 지역사회에서 김 원장은 ‘신림동 슈바이처’로 불린다. 지난 1969년 이곳에 터를 잡은 김 원장은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역주민과 애환을 함께 해왔다. 한강변 개발 사업으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서부이촌동 철거민들이 이주해와 생겨난 탓에 서림동은 지금도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다. 김 원장이 이곳에 한의원을 열 때도 환자들은 대부분이 영세민이었다. 생활비가 없어 치료비조차 내지 못하는 환자도 부지기수였다. 그때 그는 지역사회를 섬긴다는 생각에 무료 진료소부터 열었다. 

무료 진료로 지역사회를 섬긴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는 표현을 꺼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고향인 경북 안동으로 향했다. 그러나 고향에서는 학도병을 차출하는 군용 트럭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약상을 운영하시는 부모님께 인사조차 드리지 못하고, 포항에서 1주간 기초군사교육을 받은 김 원장은 6·25전쟁사에서 격전지로 유명한 대구 팔공산전투에 투입됐다. 전장(戰場)으로 향하던 그는 갑자기 배가 아파왔다.

“배가 아픈데, 잠깐 용변 보고 와도 될까요?”

“야, 지금 우리가 놀러가는 줄 알아? 전투하러 가는 거야. 빨리 다녀와.”

벼가 무성한 논둑에서 볼 일을 보고 있는 그 때, 머리 위로 천둥치는 굉음을 내며 비행기 한 대가 지나갔다. 그리고 비행기에서 폭탄이 떨어지자 주변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그의 소대원들이 타고 있던 군용 트럭은 폭탄에 맞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순간 김 원장은 정신을 잃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그의 몸은 피 냄새를 맡고 기어 올라온 거머리 떼로 가득했다. 그리고 주변은 폭격에 사망한 전우들의 시체로 뒤범벅이 돼 있었다. 비행기 폭격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는 김 원장이었다.  

“전우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때 제가 만약 트럭에서 내리지 않았다면, 저 역시 그들과 같은 운명이었겠지요. 그래서 그때 하늘이 제 생명을 살려주셨으니, 평생 남을 위해 살자고 결심했습니다. 한의학을 공부하게 된 것도 그래서죠.”

그때가 생각난 듯, 김 원장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전쟁이 끝난 후, 서울로 올라온 김 원장은 야간 고등학교에 이어, 경희대 한의학과를 졸업했다. 그래서일까. 김 원장은 후학 양성을 위한 장학 사업에도 남다른 애착을 보이고 있다. 특히 학창시절 그는 김정제 경희대 한의과대 교수의 동의보감 강의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김정제 교수는 동의보감 연구 분야에서 독보적인 학문적 업적을 쌓은 한의학자로 불린다. 이런 이유로 그는 임상 활동에서 동의보감을 기초로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국내 최초로 한방 무료 진료실 열어
김 원장이 무료 봉사 활동을 벌인 것은 1976년부터다. 그는 서울 관악구 한의사회 회원 82명과 함께 지역 내 한방 무료 진료실을 열었다. 우리 한의학계에서는 최초다. 그의 무료 봉사 활동은 화제를 모으면서 1979년 1월에는 대한뉴스(1220호)에까지 보도됐다. 그는 이러한 봉사 활동 공로를 인정받아 1981년에는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이 또한 한의사로는 김 원장이 국내 처음이다.

지역 사회에서 김한의원은 ‘몸과 마음을 모두 고치는 한의원’으로 유명하다. 특히 정신 질환 분야에서 김 원장은 탁월한 의술을 보여 왔다.

“인근에 서울대가 있어 지금도 그렇지만, 이 동네에 고시생이 참 많습니다. 고시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하다 보니, 많은 수험생들이 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죠. 다 잘되면 좋겠지만, 그중에서는 수년째 고시에 합격하지 못해 정신 질환으로 발전하는 사람도 일부 있어요.”

정신 질환 환자에게 김 원장은 시술과 편안한 상담을 병행해 효과를 보고 있다. 현재 개신교 장로인 김 원장은 “환자를 대할 때 많이 위로해주는 것이 그 어떤 약보다 좋다”고 말한다. 치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이다. 또 마음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하는 근본적인 처방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불안한 심리 상태를 보이는 환자들과는 1시간을 훌쩍 넘겨 상담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스트레스를 받는 환자를 진찰해보면 심장이 좋지 못한 경우가 많아요. 불면증도 심장에서부터 오는 질환이죠. 그리고 대부분의 신경 질환은 몸이 허약할 때 생기거든요. 그래서 우선 허약한 기를 보충하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안심탕(安心湯), 침, 뜸으로 간과 심장의 열을 식혀주면 심리 안정에 큰 도움이 된다. 김 원장은 “환자들에게 자주 하는 말인데, 스트레스를 받으면 냇물 소리를 들으라고 한다”며 “냇물 소리는 심리적 안정도 주지만, 냇가에서 발생하는 음이온도 몸에 굉장히 좋다”고 설명했다. 스트레스를 음주(飮酒)로 푸는 것은  오히려 열을 내, 몸에 더 해롭다는 게 김 원장의 설명이다. 이밖에 김 원장은 <신경 질환의 상식>, <고혈압의 상식>, <부인병의 상식> 등의 책도 펴냈다.

지금까지 그에게 진료 받은 고시생만 해도 어림잡아 10만 명가량 된다. 훗날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은 힘들 때 곁에서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해준 김 원장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이런 이유로 김한의원은 대를 이어 찾는 환자들이 꽤 많다.

신림동 고시생 다수, 정신 질환 치료
김 원장은 양방(洋方) 치료에 대한 이해도 높다. 그는 “무엇이든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다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보면 예전보다 한의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은 것 같은데, 이는 아직 한의학이 국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정리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그는 큰아들 용준 씨를 의대에 보냈다. 중앙대 의대를 졸업한 용준 씨는 현재 광진구 강변역 부근에서 ‘오라클 피부과’를 운영하고 있다. 차남인 성준씨는 가업(家業)을 잇기 위해 한의사의 길을 걷고 있다. 성준 씨는 경희대 한의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김 원장과 함께 김한의원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한의학 박사인 성준 씨의 말이다.

“아버님은 항상 말씀하십니다. 의료는 사람을 위한 것이지 의료인을 위해서 있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동서(東西)를 가리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죠.”

김 원장은 “한의학은 우리 몸에 비료가 아닌 퇴비를 주는 것”이라며 “한의학이 추구하는 것은 병의 치료를 넘어서 몸의 근본적 체질을 바꾸는 데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부작용도 적다는 것이다. 그의 진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예약 환자 위주로 진료하기 때문에, 환자 수만 적을 뿐, 처음 문을 연 1969년과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은퇴 시기를 묻는 질문에 김 원장은 “내 인생에 은퇴란 없다. 기력이 다하는 날까지 환자와 함께 사는 것이 ‘덤으로 사는’ 내 운명”이라고 말한다. 지역 내 무료 진료 활동은 끝났지만 몇 년 전부터는 대상 지역을 해외로 넓히고 있다. 김 원장 가족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캄보디아, 인도, 필리핀, 중국 등지의 외딴 지역을 찾아가 무료로 의료 봉사 활동을 벌이고 있다. 올 여름에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의료 봉사 활동을 다녀왔다. 부친을 보며, 한의사의 꿈을 키웠다는 차남 성준 씨의 말이다.

“아버님께서는 항상 때만 되면 의료 봉사를 가셨습니다. 당시 초등학교 시절부터 의료 봉사 하시는 모습을 뵈면서 자랐죠. 이러한 모습을 보고 저는 한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꾸게 됐어요. 아버지의 삶이 제가 오늘날 한의사의 길을 걷게 된 이유라고 보시면 됩니다.”  

▒ 김연수 원장은…
1934년 경북 안동 생, 69년 경희대 한의학과 졸업, 83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 91년 서울시의회(3대) 의원, 95년 경산대 한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