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팩트(사실)는 전달되지만, 스토리(이야기)는 팔린다’는 말이 있다. 상품 판매 과정에서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의 잠재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유명 시나리오 작가, 만화 스토리 기획자 출신인 김희재 올댓스토리 대표(45)는 여기다 산업적 가치를 더한다. 그는 “한국 드라마, 영화, K팝, 게임 등에 전 세계인이 열광하는 것은 우리 스토리텔링산업의 무한 경쟁력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성공한 글로벌 브랜드의 스토리텔링 공통점은 무엇일까. 국내 스토리텔링 분야 전문가로 평가받는 김 대표로부터 성공 방정식을 들어봤다.

‘상대방에게 알리고자 하는 바를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행위’

스토리텔링의 사전적 의미다. 문학이나 영화, 교육학 등에서 폭넓게 사용돼오던 스토리텔링이 최근 마케팅에도 적극 도입되고 있다. 인문학에서 스토리텔링이 화자(話者·Teller), 청자(聽者·Hearer) 사이를 잇는 이야기(Story)에 불과하다면, 경영학에서 바라보는 스토리텔링 관점은 자신이 써본 뒤, 만족한 제품을 또 다른 대중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바이럴(Viral) 마케팅 개념이다. 결국, 입소문이 나는 관건은 ‘어떻게 이야기적 요소를 만드느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유명 조향사(調香師)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향수가 있다고 치자. 마케터 입장에서는 ‘이 향수에는 어떤 성분들이 얼마나 들어가 있다’고 홍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유명 스타 A씨가 이 제품을 어떻게 쓴다고 하더라’는 식으로 홍보하는 게 소비자에게는 훨씬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샤넬의 최고 히트 향수인 ‘샤넬 넘버5(파이브)’는 마릴린 먼로가 잠자리에 들기 전, 뿌리고 잤다는 일화가 전해지면서, 출시 90년이 지난 지금도 30초당 한 개씩 팔릴 정도로 인기가 있다. 

현대 스토리텔링 마케팅은 입소문을 내는 것
올댓스토리는 스토리텔링 분야에서 국내 최고 기업으로 꼽힌다. 마케팅 컨설팅이 아니라 스토리텔링만을 연구·기획하기 위해 설립된 회사로는 국내 최초다. 올댓스토리가 기존 마케팅 컨설팅 기업과 다른 점은 판매 전략 수립, 제품 브랜드 개발, 주요 콘텐츠 제작 등과 관련, 철저하게 이야기(스토리텔링)를 토대로 준비한다는 데 있다.

그런 면에서 혹자는 올댓스토리를 ‘도깨비 기업’이라고 말한다. 외교통상부 의뢰를 받아 김치 역사를 여러 이야기들로 풀어낸 영문 소개 책자를 출간했고, 법무 연수원 요청으로 초임 검사 대상 교육용 만화인 <의혹>도 펴냈다. 이밖에도 올댓스토리는 우리 역사에서 개항지(開港地) 역할을 한 인천의 다양한 근대 역사 문화 유산에 얽힌 이야기들을 발굴해, 책으로도 펴냈다. 출판과 콘텐츠 기획만 따져보면 영락없이 ‘이야기’를 파는 회사다.

상품 개발 초기부터 참여한 제품도 다양하다. 제주산 프리미엄 화산 암반수 ‘제주 한라수’와 ‘팔도 꼬꼬면’이 대표적이다. 페스트가 창궐한 중세 유럽, 온몸에 식초를 바르고 도둑질을 일삼은 악당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식초의 우수성을 간접적으로 설명했다. 올댓스토리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만 있다면 모두 찾아내, 일관된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데 탁월한 역량과 성과를 보여 왔다.

유아, 초등학생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만화 <마법천자문>도 올댓스토리가 콘텐츠를 만들어가고 있다. 중국 고전 소설 <서유기>를 각색해 만든, <마법천자문>은 한자(漢子) 한 글자에 담긴 뜻이 줄거리로 이어지는 구조다. 올댓스토리가 스토리 제작에 참여한 것은 22권부터다. 김희재 올댓스토리 대표는 <마법천자문>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유가 “오락게임처럼 하나의 미션에 성공하면 다음으로 넘어가는 스테이지 클리어(Stage clear) 방식인데다 약간의 로맨스, 우정, 배신 그리고 개그적 요소가 절묘하게 결합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학부모들에게 한자 공부용으로 적합한 교육용 콘텐츠라고 공인(公認) 받은 것도 선풍적인 인기로 이어졌다. 그가 처음이 아니라 중간에 콘텐츠 제작에 참여한 이유는 무엇일까.

“솔직히 처음부터 우리가 기획하고 만든 게 아니기 때문에, 저희 작품이라고 말하기는 좀 부끄러워요. 다만 이것(마법천자문)을 통해 세계관을 확장시키고 싶은 욕심은 있었죠. 사실 제가 알기로는 출판사에서 처음 이 작품을 기획할 때는 이렇게 오랫동안 진행될 줄 몰랐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해외에서 오랫동안 연재되는 작품들을 보면 전체 세계관이 있거든요. 안타깝게도 우리 만화 작가들이 판타지(비현실적 세계를 다룬 작품)나 사이파이(공상과학을 다룬 작품) 분야에 약한 것도, 이런 작품들은 완전히 다른 세계관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에요. 서구에서 만들어진 판타지 작품들이 성경적 세계관을 토대로 하는 것과는 달리, 우리는 독창적인 세계관이 없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있어 작가들의 역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서도 김 대표는 “50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전설, 설화들을 발굴할 경우 전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이야기 소재가 된다는 것 또한 우리 문화의 강점”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정의(定義)하는 이야기란, 상대방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인물, 사건, 배경을 의도적으로 배열하는 행위다. 다시 말해 ‘이야기’란 기법이 아니라, 공감(共感)을 위한 수단인 것이다.

“5000여 년 동안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겠습니까. 콘텐츠의 절대적인 양(量)은 엄청날 수밖에 없죠. 제주도에 있는 설화만 4000개가 넘는다고 하니, 엄청나지 않습니까. 문제는 우리가 이를 발굴하지 못하고, 발굴했다고 해도 어떤 방식으로 프로세스(체계)를 만들어야 하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세계 최초 ‘스토리 플랫폼’ 꿈꿔
이런 이유로 김 대표는 요즘 ‘이야기를 하나의 산업으로 키우는 데’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이야기를 산업화시켜 이를 다른 산업군의 성공을 돕는,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로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한 세기만 돌이켜봐도, 우리나라는 엄청난 격동기를 보내지 않았습니까. 식민 지배를 받았지만 이를 이겨냈고, 또 안타깝게 전쟁이 터져, 나라 전체가 엄청난 고통도 겪어봤죠. 그런데도 역경을 이겨내고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뤄, 이제는 ‘IT(정보기술) 강국이네, 세계 10위 경제 대국이네’라는 소리를 듣고 있지 않습니까. 보세요. 전 세계 어느 나라와도 문화적 공감대를 만들 수 있는 게 바로 우리 문화입니다. 이런 나라가 흔치 않아요. 최근 중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K-팝, 한류 드라마 열풍이 부는 것도 다 이러한 복합적인 문화 코드를 담고 있기 때문이죠.”

김 대표는 영화 시나리오 스타 작가 출신이다.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는 만화 스토리 작가로 활동했다. 소설가 야설록(본명 최재봉)이 글을 쓰고, 만화가 이현세가 그림을 그린 한·일 전쟁 만화 <남벌(南伐)>이 대표작이다. 영화로는 첫 1000만 관객을 기록한 ‘실미도’와 ‘공공의 적 2’, ‘한반도’가 있다. 영화 실미도의 명대사 “그건 비겁한 변명입니다”도 그의 손에서 나왔다. 지난 2003년 개봉한 ‘국화꽃 향기’와 같은 멜로물에도 도전했지만, 그의 히트작은 하나같이 전쟁, 도박, 액션 등 일반 남자들이 경험하기 힘든 것을 장르로 하고 있다.

“만화 <남벌> 때였을 거예요. 북한이 스커드 미사일을 일본 영토를 향해 발사하고, 놀란 일본이 방어 미사일을 날리면서 동해안에 대형 폭발이 일어나, 일시적으로 양측 모두의 레이더와 전자 장비가 몇 시간 동안 작동을 하지 않게 된다는 부분이 있었어요. 당시 독자들이 ‘이제 전투기는 절대 뜰 수 없으니, 어떻게 할 거냐’며 과학적인 근거를 대더군요. 이렇게 되니 스토리 작가들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요. 그때 제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프로펠러 비행기에 폭탄을 실어 띄우자고 말이죠.”(웃음) 

영화 ‘공공의 적 2’의 시나리오 작업 당시에는 대검 강력부의 협조를 얻어 참고인 조사 장면까지 스케치했다. 그리고 당시 그가 본 장면은 영화 속에 그대로 담겨졌다. 그는 “<나이듦에 대한 변명>(2014년), <죽을 때까지 섹시하기>(2009년)와 같은 수필집도 내봤지만, 내 전공은 역시 남성미가 물씬 밴, 액션물”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현재 준비 중인 드라마 작품도 역외 탈세를 주제로 한 액션물이다.

영화 ‘실미도’·‘공공의 적 2’ 시나리오 작가 출신
지난 2008년 올댓스토리를 세운 김 대표가 꿈꾸는 것은 이야기를 한데 모으는 ‘스토리 플랫폼’을 만드는 일이다.

“아직도 영화사 캐비닛에 잠자고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다들 영화사가 망하는 것만 알지, 그 안에 잠긴 스토리의 가치는 잘 모르죠. 그만큼 신인 작가들이 우리나라 영화 시장에서 성공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문에 국내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은 자연스럽게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가령 일본만 해도 기본적으로 내수 시장이 어느 정도 되기 때문에, 작가가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그려내도 기본적으로 손익분기점은 넘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처음부터 우리 시장만 놓고 작품을 쓰면 안돼요. 워낙 시장이 작기 때문에 말이죠. 우리 작가들은 기본적으로 강력한 콘텐츠, 즉 응축력이 높은 내용을 만들어내는 데 훈련이 잘 돼 있어요. 엄청난 생존력이 어마어마한 힘을 만들어내는 게 바로 우리 콘텐츠 산업이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김 대표는 영화, 드라마 등으로 만들어지지 못하고, 기획 단계에서 사장(死藏)된 다양한 콘텐츠가 모일 장터(시장)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고 조언했다. 물론 이를 내다팔 곳은 중국이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중국 전역에 극장 등 문화 시설은 빠르게 늘고 있지만, 문제는 이곳에 내걸 만한 콘텐츠가 많지 않다는 게 김 대표의 진단이다. 그는 “이야기를 산업화시킨 나라는 아직까지 한 군데도 없다. 우리가 이곳을 선점한다면 분명, 엄청난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김 대표는 인터뷰 내내 이야기는 기법이 아니라 차별화된 가치를 소비자에게 심어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령 올댓스토리가 개발한 ‘엿츠’가 대표적인 사례다. 올댓스토리는 ‘엿츠’를 통해 우리 전통 음식 엿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동의보감>에는 엿의 효능에 대해 자세히 언급돼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광해군이 아침에 일어나기 전에 이불 속에서 엿의 액체 상태인 조청을 두 수저씩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김 대표는 “조선왕조 임금들에게 엿은 좋은 건강식이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독립 운동가들이 엿장수로 변장해 활약하자, 일본이 엿을 폄하하기 시작하면서, 부정적인 인식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올댓스토리는 산청한방약초연구소, 김용운 엿 장인과 손잡고 프리미엄 엿 ‘엿츠’(Yutts)를 출시, 현재 온라인 쇼핑몰을 비롯해, 롯데 드럭스토어 롭스, IFC(국제금융센터)몰 올리브영, 대구백화점 등에서 판매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김 대표는 제품에 어떤 가치를 입히고, 이를 스토리텔링으로 승화시키느냐가 중요한지를 새삼 느꼈다고 설명했다. 

“스토리텔링이 제대로 된 제품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더군요. 우선 소비자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우리 엿츠를 예로 들면, 이익을 높이기 위해 소비자 몰래, 좀 질이 떨어지는 재료를 사용해도 되거든요. 제가 제품을 만들어 보니, 실제로 그런 유혹이 생겨요. 그런데도 절대로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것은 소비자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예요. 아울러 끊임없이 연구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치를 보여주죠. 우리 회사 슬로건이 뭔지 아세요? ‘스토리 이즈 무브먼트(Story is movement.)’, 즉 이야기는 움직임을 만들어낸다는 겁니다.”

당초 김 대표와의 인터뷰는 1시간가량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스토리텔링과 관련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2시간을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새삼 이야기가 주는 매력에 흠뻑 빠진 시간이었다. 

▒ 김희재 대표는…
1969년 서울 생, 86년 한양대 연극영화과 졸업, 2004년~현재 추계예술대 영상학부 교수, 2008년 올댓스토리 설립, 2004년 대종상 각색상 수상(실미도)

만화-히든 카드, 라스트 탱고, 남벌 2부, 영화-국화꽃 향기, 실미도, 공공의 적 2, 한반도 시나리오 작성, 수필-<나이듦에 대한 변명>, <죽을 때까지 섹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