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파괴자’라는 용어가 한동안 회자(膾炙)된 적이 있었다. 이라크계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에게 이처럼 잘 어울리는 수식어가 또 있을까. 공간(空間)을 재해석하는 그의 건축세계는 ‘창조’와 ‘파괴’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질적인 요소가 혼재되면서 묘한 마력(魔力)을 만들어낸다. 세계 건축학계가 그에게 여성으로는 처음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Pritzker Prize)을 수여한 것도 이 점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자하 하디드는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건축가로 유명하다. 그의 장점은 시공간을 넘나드는 유기적인 공간 창출에 있다. 개관 1주년을 맞이하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는 그만의 묘한 건축미가 담겨 있다. ‘혁신의 아이콘’답게 그가 <이코노미조선>과 가진 이메일 인터뷰에서 강조한 것은 “혁신하고, 창조하라, 그래야 한국이 산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가 예로 든 한국적 혁신의 대명사는 바로 ‘한옥’이었다.

한국 미래·전통에 기반 둔 혁신공간 ‘DDP’ 
한국 전통정원에서 옥상정원 모티브 얻어


- 사진 : Brigitte Lacombe

세계 건축계에서 자하 하디드(Zaha Hadid)는 건축사의 한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 받는다. 프리츠커상(賞)을 최초로 수상한 여성건축가라는 호칭은 이제 식상할 정도가 됐다. 그의 건축세계는 오묘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난해하다. 시쳇말로 ‘건물인 듯, 건물 아닌 듯, 건물같은 너’라고 표현할 수 있는 독특한 건축세계를 갖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가 지금까지 선보인 건축물은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정신으로 가득하다. 건축과 도시, 디자인의 경계 자체가 모호하다. 

여성 최초로 건축 노벨상 ‘프리츠커상’ 수상
출발부터가 실험적이고 독특했다. 1982년 홍콩 피크클럽 설계공모에 당선되면서 세계 건축계에 처음 이름을 알린 그는 워낙 독특한 건축물을 설계해 ‘건축물 없는 건축가’라는 비야냥을 들어야 했다. 지을 수 있는 건물이 아니거나, 건축에 따른 예산 등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종이 위에서만 가능한, 어찌 보면 전혀 현실적이지 못한 건축물을 설계한다는 고정관념은 그를 옴짝달싹 못하게 했다. 하지만 지난 1993년 선보인 비트라 소방서에서 그는 자신을 가둔 ‘고정관념’이라는 세상의 틀을 ‘창조적으로 파괴’했다. 독일 남서부 바덴 뷔르템베르크주(州)의 도시 바일 암 라인에 있는 비트라 소방서는 보는 각도에 따라 건물의 수평과 수직이 난무하는 독특한 건물이다. 심지어 과연 무엇이 바닥인지도 가늠할 수 없게 만든 ‘형이상학적 요소’로 가득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작은 콘트리트 벽돌로 쌓은 건축물이 아닌 건축조각 같은 느낌이다.

그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설계자로 선정된 것에 대해 국내외 건축계가 비상한 관심을 보인 것은 동대문운동장이라는 복잡한 공간에 어떻게 공공디자인적인 요소를 집어넣을지 궁금해서였다.

그의 야심작(野心作)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비정형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국내 공공건물 최초로 3D 첨단기법을 이용해 설계됐다. 얼핏 보면 거대한 은빛 우주선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측 불가능한 곡선의 향연(饗宴)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그러나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첫선을 보였을 때 서울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이상한 우주선 같다’, ‘동대문운동장이라는 역사적 공간과 전혀 맞지 않는다’ 등 비판의견이 만만치 않았다. 개관 1년이 지난 지금도 이러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대한 이러한 세간의 평가에 대해서 그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무엇보다 이 건물(DDP)에 한 해 동안 수많은 전시회와 이벤트로 800만명이 넘는 방문객이 다녀갔다는 게 기쁩니다. 제가 이 건물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고대 도시벽(서울 성곽)을 둘러싸는 건축적 풍경이었어요. 도시, 공원, 플라자(Plaza)를 하나로 연결하는 풍경을 만들고 싶었죠.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사전분석 단계에서 서울 특히 동대문 지역은 녹색공간이 부족하다는 판단을 해서였어요. 도시 한가운데는 사람들로 너무 북적거리죠. 만약 동대문에 네모반듯한 건물을 지었다고 생각해보세요. 더 번잡했겠죠. 그런 면에서 제가 DDP에서 강조하고 싶은 디자인은 사람들로 하여금 정해진 범위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었어요.”

자하 하디드는 공간 배치에 남다른 감각을 지닌 건축가다. 특히 공공디자인에서 그가 선보인 건축물들은 하나같이 불균형이 만든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궁극적으로 그가 생각하는 건축물의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궁극적으로 건축은 모든 요소가 웰빙(Well-being)과 관련돼 있습니다(Ultimately, architecture is all about well-being). 그러나 저는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흥분을 시키는, 그래서 행복한 경험을 선사하는 건축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제가 설계하는 모든 건물을 더 새롭고 좋은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합니다. 가령 DDP는 모든 연령층의 사람들을 위한 장소와 새로운 기술과 미디어를 탐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죠.”


-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사진 : Hufton and Crow) / 중국 베이징 갤럭시소호 (사진 : Virgile Simon Bertrand)

건물과 환경이라는 이분법 깨고 옥상정원으로 공간 재해석
그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 설계한 대목은 공원이다. DDP 옥상에는 푸른 공원이 펼쳐져 있다. 삭막한 도시 공간에 자연을 더해 ‘건물’과 ‘환경’이라는 이분법을 깨기 위함이다. 그 스스로도 DDP는 건축과 자연의 경계를 허물어 공원과 플라자를 마치 하나의 풍경으로 연출했다고 자부할 정도다. 놀라운 것은 그가 이러한 유기적인 공간 재배치의 모티브를 한국 전통정원에서 얻었다는 점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DDP에 들어선 공원은 한 개의 요소가 시야를 독차지하지 않는 한국의 정원 디자인의 전통을 재해석했다”고 말했다.

DDP는 건물 전체가 거대한 곡선의 집합체다. 개장 초기 DDP는 ‘지나치게 곡선을 많이 배치했다’는 세간의 비판을 한 몸에 받았다. 그는 이러한 비판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사람들은 우리에게 ‘왜 직선이 없냐, 왜 90도 직각(直角)이 없냐’고 물어요. 이에 대한 저의 대답은 ‘삶은 격자무늬 안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자연경관을 생각해보시면 금세 이해가 될 겁니다. 어느 곳 하나 평평하거나 균일한가요. 그러나 사람들은 이 장소들에 가서 매우 자연스럽고 편안하다고 느껴요. 저는 건축에서도 이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I think that one can do that in architecture). 지금 우리 세대에게 가장 중요한 건 훨씬 더 강력해진 복잡성과 연관성에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런 면에서 현대 도시성과 건축은 20세기의 반복적인 네모반듯함에서 벗어나 21세기의 복잡성을 향해 나가야 합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자하 하디드의 창조 결과물이다. 그는 창조적 사고가 만들어내는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혁신가(Innovator)다. 그는 “디자인, 패션, 건축, 광고, 영화 등 모든 창조적 산업은 성공적이고 활기찬 경제를 만드는 데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하 하디드에 따르면, 유럽의 창조적 산업이 전체 유럽 GDP(국내총생산)에서 3%를 차지하고 있다. 금액으로 치면 한해 5000억유로(약 559조원)에 해당하며, 역내 600만 인구의 일자리를 책임지고 있다.

“미국에서도 창조산업은 미국경제에 어느 때보다 높은 기여를 하고 있어요. 중국, 인도 등 개발도상국들도 혁신적 기술과 과정에 집중 투자해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죠. 그런 면에서 한국이 글로벌 창조산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건 한국 경제에 반드시 큰 기여를 할 겁니다. 한옥을 예로 들어보죠. 한옥은 당대 시공 기술과 능력을 보여주는 훌륭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전통 건축물로 분류되지만, 몇천년 전에는 가장 혁신적인 디자인과 건축기술로 만들어졌을 겁니다. 마치 지금의 DDP가 가장 혁신적인 디자인기법과 건축기술을 사용한 것처럼 말이죠. 한마디로 설명하면 DDP는 맥락, 지역문화, 프로그램 요구사항, 혁신 엔지니어링 기술을 한데 모은 구체적인 혁신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외로 그의 입에서 나온 혁신 건축물은 ‘한옥(韓屋)’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DDP 곳곳에 한국적 요소를 많이 가미했다. 여백(餘白)의 미(美)를 강조한 한국화에 대해 그는 “시시각각 변하는 광활한 자연을 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훈민정음 해례(Hunminjeongeum Haerye)와 같은 아름다운 한글 글씨도 한국화와 미학적 가치가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DDP의 4만2000여개에 달하는 각기 다른 패널이 빚어내는 리듬은 훈민정음 서체(해례본)의 미학을 모방했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그가 말하는 DDP는 한국의 미래세대에 영감을 주면서 동시에 한국 전통문화에 기반을 둔 공간이다. 

공공건축에 대한 그의 철학은 해당 지역의 역사와 사회, 문화가 총망라돼 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역시 공공성을 지닌 건축물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공공디자인의 대가(大家)다. 평소 그는 모든 도시가 공적디자인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꿈꾸는 공공건물은 모두에게 개방되는 가장 수평적인 공간이다. 실제로 최근 그는 다양한 공공건축물 설계에 매진하고 있다. 최근에 설계된 중국 광저우(廣州) 오페라하우스(2011년), 런던올림픽 수영경기장(2012) 등은 하나같이 공공건축물이다. 그의 눈에 비친 도시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


- 사진 : Steve Double

여백의 미 가진 한국화에서 건축미를 보다
“DDP를 기점으로, 현재 서울은 핵심 도시공간과 문화적 건축물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모든 도시가 이러한 공공건물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믿습니다. 그것들이 풍족한 도시생활과 아름다운 도시경관을 가능케 하는 핵심요소이기 때문이죠. 그런 면에서 저는 도시가 더 이상 한 종류의 거주민만을 위해 계획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도시는 그곳에 사는 가장 다양한 사람들을 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이 활기차고 다양한 공공건물에 머무는 것을 즐긴다고 봅니다. 그들에게 공공건물은 서로 교류하는 만남의 장(場)인 것이죠.”

개발도상국에서는 하나같이 도시화 물결이 거세다. 그 과정에서 초고층 마천루(摩天樓)와 빈민촌(貧民村)으로 대표되는 계층간 양극화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도시는 더 이상 한 종류의 거주민만을 위한 공간이 돼서는 안 된다’는 그의 눈에 비친 서울의 모습은 어떨지 자못 궁금했다. 재차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그가 보여준 건축세계가 이를 잘 말해주는 듯하다.

흔히 디자인이라고 하면 기능, 아름다움을 돕는 수단으로 여기는데, 그렇게 보면 자하 하디드의 건축은 ‘빵점’에 가까울지 모른다. 그러나 건축을 비롯해 세계 디자인업계가 그에게 찬사를 보내는 이유는 새로운 조형관(造形觀)과 이미지를 디자인으로 표출해 내기 때문이다. 다소 추상적일 수 있지만 조형관, 이미지가 앞서고 그 뒤에 디자인이라는 미적 개념이 뒤따르는 방식이다. 이러한 선구자적 건축철학이 바탕이 됐기에 DDP와 같은 비정형성과 예측 불가능함이 나왔을지 모른다. 이를 통해 그가 도시 내지는 공공건축에 말하고 싶은 것은 ‘천편일률적인 공간 배치는 더 이상 안 된다’는 점이다. ‘그처럼 괴짜인 사람도 어울려 사는 도시’를 공공건축물로 형상화시킨 것이 바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아닐까.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두고 너무 튄다고 타박하는 사람들을 향해 그가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안 봐도 알 것 같다.

 

▒ 자하 하디드는…
자하 하디드는 2004년 여성건축가로는 최초로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Pritzker Prize)’을 수상했다. 1950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자하 하디드는 이후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명문 건축학교인 AA(Architectural Association)를 졸업하고, 세계적인 건축가 렘 쿨하스가 있던 메트로폴리탄 건축사무소에서 근무했다. 1980년 독립한 이래 미국 하버드대 디자인대학원에서 석좌교수로 근무한 자하 하디드는 현재 빈 응용예술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작품은 독일의 비트라 소방서(1993년), 파에노 과학센터(2005년), 오스트리아의 베르크이젤 스키점프대(2002년), 미국의 로젠탈 현대미술센터(2003년) 등.

정은지 인턴기자·성균관대 글로벌경제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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