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핀테크(Fintech) 산업이 날개 돋친 듯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각종 규제에 얽매여 핀테크가 맥을 못 추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이를 증명하듯 지난 2월 서울 삼성동에서 있었던 세계적인 벤처 캐피털리스트 피터 틸(Peter Thiel)의 강연에서도 국내 스타트업 환경에 대한 질문이 속출했다. 그의 답변은 낙관적이었다. 스타트업 업계 종사자들을 통해 지금 스타트업의 바람직한 성장을 위해 필요한 점이 무엇인지 들여다봤다.
- 페이팔(Paypal) 마피아의 수장 피터 틸(Peter Thiel)이 강연 차 내한했다. 그는 한국 스타트업 전망을 낙관적으로 내다봤다. (사진 : 조선일보 DB)
- 페이팔(Paypal) 마피아의 수장 피터 틸(Peter Thiel)이 강연 차 내한했다. 그는 한국 스타트업 전망을 낙관적으로 내다봤다.
(사진 : 조선일보 DB)

실리콘밸리의 신화, 페이팔 마피아(Paypal Mafia)의 수장, 페이스북의 초기투자자…. 화려한 수식어를 가진 벤처 캐피털리스트 피터 틸이 강연 차 내한했다. 혁신을 위해선 경쟁하지 말고 독점하라는 메시지로 화제가 된 그의 저서 <제로투원(Zero to One)>은 단번에 베스트셀러가 됐고 우리나라에서만 2만5000부가 팔려 나갔다. 한국 사회 내의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는 방증이다.

지난 2월25일 서울 삼성동 한국도심공항 서울컨벤션에서 있었던 피터 틸 강연 말미의 질의응답 시간에는 역시나 한국 스타트업의 전망에 대한 질문이 주를 이뤘다. 피터 틸은 “한국의 창업에 대한 에너지가 대단한 것 같다”며 “좋은 선례들을 따라간다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혁신적인 기업들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한국 스타트업 환경에 대한 그의 전망은 낙관적이었다.

과연 그가 말한 대로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는 희망적일까? 스타트업 업계 종사자들은 대부분 ‘그렇다’라는 의견이다. 일단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 긍정적인 신호다. 투자자들의 관심은 펀드 사이즈에 비례하는데, 현재 펀드 사이즈가 증가 추세에 있다. 중소기업청의 기술창업지원 프로그램인 팁스(TIPS)와 같은 정부 지원이 늘고 있는 것도 희소식이다. 사실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해 그동안 비관적인 시각이 많았다. 정부지원의 비효율성, 지나친 규제 그리고 엑시트(exit·투자금회수)의 어려움 등이 그것이다.

국내 스타트업 성장시키고 외국기업 난립 막는 적절한 규제 필요
정부지원 심사과정에서 스타트업의 실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심사에 개입해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스타트업 전문 미디어이자 액셀러레이터인 ‘벤처스퀘어’ 명승은 대표는 “심사위원들이 심사를 받는 창업 아이템에 대한 완벽한 전문가일 수는 없지만, 제3자가 바라보는 시각도 존중해줄 수 있어야 한다. 따지고 보면 국가도 하나의 고객인 만큼 스타트업은 국가를 설득시킬 수 있을 만한 설득력을 지니는 것이 기본이다. 그래도 요즘에는 민간과 협업을 많이 해서 필드에 있는 사람들도 심사에 많이 참여하고 있는 추세다”라고 말했다.

핀테크 창업이 우리나라에서는 엄격한 규제 때문에 녹록지 않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스타트업 생태계를 보다 활성화하기 위해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명 대표는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규제가 강해 사업을 시작하는 데 제약이 많다. 하지만 모든 규제에는 이유가 있다. 규제가 완화된다면 미국의 핀테크 기업들이 국내에 들어와 난립할 가능성도 커진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와 법체계가 다른 미국의 스타트업을 벤치마킹하는 것보다는 유사한 체계를 가진 독일이나 일본의 예를 참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 벤처스퀘어(Venture Square) 명승은 대표
- 벤처스퀘어(Venture Square) 명승은 대표

인재 우수하고 도시 밀집도 높아 국내시장 잠재력 커
기술 중심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퓨처플레이’ 류중희 대표도 “사업을 하다보면 규제에 대한 아쉬움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지만 주어진 환경 내에서 하나하나 실적을 쌓아올리는 것이 사업가의 기본자세”라며 비슷한 입장을 취했다. 피터 틸 또한 “한국의 규제환경이 어려울 수 있으나 기업은 규제환경을 바꿀 수 없다. 그 점을 유념하고 현실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스타트업의 엑시트(exit)가 힘들다는 것에는 공감했다. 류 대표는 “한국을 비롯한 스타트업의 역사가 짧은 곳에서 보이는 고질적인 문제가 엑시트다. 미국의 경우 어떤 스타트업이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이 기업을 제값을 주고 사서 기술을 흡수하는데, 국내에서는 기술만 빼오려고 한다. 이는 기업결합이 여러 가지 규제로 막혀 있는 탓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잠재력은 크다. 명 대표는 “우리나라만큼 창업 아이템이 다양한 나라가 없다. 또한 창업자들이 가지는 사명감과 사회적인 역할에 대한 자부심은 세계 최고수준이다”라고 말했다. 류 대표 역시 “우리나라는 인재가 우수하고 삼성이라는 글로벌 기업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평했다. 높은 도시 밀집도를 활용한 빠른 비즈니스나 O2O(Online to Offline) 비즈니스에 대해서는 우리나라만한 테스트베드가 없다는 점도 국내 시장의 강점이다.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냉혹한 스타트업 업계에서 살아남으려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는 긍정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으며, 장애물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극복하는 것은 사업가의 몫이라는 것이다. 피터 틸의 말이다. “항상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이다. 어느 환경에 있든 성공적인 스타트업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