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운 소장은 “우리가 급격히 고령화 사회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통일이 우리한테 또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김정운 소장은 “우리가 급격히 고령화 사회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통일이 우리한테 또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창조적으로 재미있게’ 사는 방법을 늘 고민하는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소장(53). 그는 개인 연구소인 ‘여러가지문제연구소’를 통해 말 그대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연구소 이름조차도 참 그다운 발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물은 방송이나 강연으로, 때로 책으로 쏟아낸다. 활발한 방송활동을 해오던 김 소장은 언제쯤부터인가 뜸하게 얼굴을 비쳤다. 지난 3년여간 그가 몰두했던 것은 다름 아닌 그림이다. 그것도 ‘일본화’다. 교토(京都) 부근 시가(滋賀)현 예술전문 단기대학에 다니고 있는 그는 일본화(日本畵) 공부에 푹 빠져 있다. 얼마 전엔 <에디톨로지(Editology)>라는 새 책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 5월15일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바쁘게 지내고 있는 그가 강연 차 한국에 잠시 귀국한 틈을 타 만나봤다. 

김정운 소장은 생각보다 키가 훤칠했다. 의외였다. “키가 의외로 크시네요”라는 말에 그는 “방송이 얼굴은 더 크게 나오고 키는 작게 나오고 그래서 불만”이라며 웃는다. “내가 잘난 체를 워낙 많이 해요. 미안해요”라며 그는 본격 인터뷰가 시작되기에 앞서 양해(?)를 구했다. 몇 마디 주고받은 대화 속에서 김 소장의 ‘캐릭터’를 얼추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재수 없다고 쓰진 말아 달라”며 살짝 애교 섞인 부탁(?)도 내놓는다. 

사표 내고 일본 건너가 그림 공부에 몰두
김 소장의 일본 생활은 벌써 4년차에 접어든다. 방송에서 자주 보아오던 얼굴이었기에 그리 오래된 지 느끼지 못했다.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로 몸담고 있던 그는 일본에 안식년으로 갔다가 팩스로 사표를 제출하고 그냥 눌러앉았다. 갑자기 사표를 던진 것은 다름 아닌 조선일보에 연재됐던 ‘101 파워 클래식’을 통해 다시 읽게 된 <그리스인 조르바>가 계기가 됐다. 이 기획은 문화·예술·학계·종교계 인사들이 엄선한 우리 시대의 고전(古典)을 매주 한 권씩 함께 읽는 기획이었다.

“그 책 주인공이 나처럼 비겁한 지식인이에요. 자기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조르바 스스로도 욕을 한다고. 나 역시도 내 인생을 스스로 결정 못한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어서 무모한 결정을 한번 해보자 싶었던 거지.”

자신을 ‘비겁한 지식인’이라고 표현한 이유를 물었더니 솔직한 답변이 이어졌다. “나는 애들 가르치는 게 싫더라고. 그냥 강의하는 것 자체는 좋은데 학생들이 발전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게 좋은 선생인데, 나는 성미가 급해서 만날 신경질만 내고 못 기다려요. 그런 내가 교수직을 계속 한다는 건 나를 속이는 일이라 생각했지. 나는 혼자 일해야 돼요. 나는 되게 이기적이고 나만 아는 사람인데, 누군가와 같이 일 하면 같이 한 사람들이 다 상처를 받아요. 그러니까 뭐든 혼자 하는 게 낫지. 그림 그리고 글 쓰고 이런 게 맞아요, 나한텐.(웃음)”

그가 새롭게 도전한 것은 그림이었다. 처음엔 일본화가 아닌 만화를 배울 작정이었다. “나중에 노인용 성인만화를 그리면 재밌겠다 싶었다. 만화를 그리려고 들어갔다가 일본화를 배우고 있지만, 만화는 또 언제든 하면 되니까…”라며 그는 인생의 큰 변환점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툭’하고 내뱉었다.

“일본화 물감이 참 특이해요. 조개가루, 돌가루 그런 것 분말로 만들어서 아교물에 녹여서 붙이는 거야, 우리나라 단청이 그렇게 조개가루를 바르는 거예요. 아교하고 돌가루를 섞다보면 참 느낌이 묘해요. 물감을 직접 만지면서 하는데 아주 마음이 편안해져요.”

김 소장은 최근에 낸 책 <에디톨로지(Editology)>에서 “2015년도의 크리에이티브 화두는 ‘편집’”이라고 말했다. 책 제목이 의미하는 ‘편집학’은 직접 만들어낸 말이다. 그가 “2006년 와세다대 객원연구원으로 지낼 때부터 생각한 주제였다. 창조 방법론을 쓰고 싶었다. ‘일본 문화는 편집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마쓰오카 세이고(松岡正剛) 두 명의 일본 학자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난 오래 전부터 ‘창조는 편집’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21세기의 가장 창조적 인물로 손꼽히는 스티브 잡스의 탁월한 능력은 따지고 보면 ‘편집 능력’입니다. 옛날에는 편집 소스가 어딘지 안 밝히니까 그 사람이 다한 것 같지만, 예를 들면 다빈치나 뉴턴이나 다윈이나 다 이전에 있던 걸 어떤 식으로 섞어서 새로운 걸 편집해 냈던 거거든요. 지식재산권 같은 문제도 편집의 시대가 되니까 얘기가 되는 겁니다. 저작권과 같은 개념이 나온 것은 바로 ‘편집의 시대’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하지만 어떻게 창조적이 될 수 있는지, 즉 이 편집의 과정, 방법론을 알려주지 않고 그냥 창조적 인물이 돼야 한다고 말하면 방법을 모르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요. 난 창조 방법론에 대해 ‘편집’보다 더 훌륭한 개념이 있으면 갖고 나와 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는 박근혜 정부의 ‘미래창조과학부’에 대해서도 아리송한 명칭이라고 지적했다. “권력도 지식입니다. 대통령이 선출되면 자신이 아는 방식으로 권력을 재편합니다. 자신의 지식에 따라 조직을 ‘편집’한다는 이야기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생긴 ‘국토해양부’나 노무현 정부 때의 ‘정보통신부’ 모두 각 대통령의 지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추상적이고 모호하다고 지적한 것 역시 그 때문이에요. ‘미래’나 ‘창조’라는 추상적 개념 자체가 정부 조직의 이름으로는 참으로 애매합니다. 지금까지도 국민들이 미래창조과학부가 무슨 활동을 하는지 별로 아는 바가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식과는 전혀 상관없는 정부 부처가 만들어졌다고 밖엔 설명할 도리가 없습니다. 헤매는 것은 당연합니다.”

“고령화 사회, 우리의 마지막 카드는 통일”
김 소장은 유학(베를린자유대 대학원 발달심리학 석사, 문화심리학 박사) 시절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순간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사람이기도 하다. 통일을 대비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상황은 그에게도 남다르게 와 닿을 수밖에 없을 터. 그는 “통일이 우리한테 또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급격히 고령화 사회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라며 “통일에 대한 논의를 보다 진지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내가 볼 때 앞으로 잘 될 수가 없는 나라입니다. 노인 사회이기 때문이죠. 인위적으로 엔저 정책을 편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동력 중 제일 기본적인 것이 인구이고, 그래서 중국하고 인도가 발전하는 겁니다. 이걸 해결하려면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적극적인 이민정책을 펴야 하는데 우리는 일본보다는 덜하지만 상당히 배타적이라 이것도 쉽진 않습니다. 우리에겐 마지막 카드가 바로 통일이거든요. 통일이라는 엄청난 변수가 있기 때문에 잘 준비하면 일본하고는 전혀 다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거죠. 통일에 대해 좀 다른 각도에서 논의해야 하는데, 지금 통일 담론에 대한 주체가 다 노인들입니다. 통일 시대를 살아갈 사람은 젊은이들입니다. 이들이 통일 담론의 주체가 되도록 해야 하는데 아무도 그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독일 통일은 너무나 황당한 사건이었다”며 말을 이어갔다. 당시 일화에 대해 ‘주변부 지식인으로서의 설움’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동구권과 소비에트의 몰락이라는 그 엄청난 사건은 사실 아주 우습게 시작됐어요. 귄터 샤보브스키라는 동독 공산당 대변인이 여행자유화에 관한 임시 법안을 발표할 때였습니다. 독일어에 서툴렀던 외국 기자가 언제부터 그 법안이 유효하냐고 묻자, 샤보브스키는 아무 생각 없이 ‘바로(sofort)’, ‘즉시(unverzuglich)’라고 답했습니다. 아주 사소한 말실수였어요. 그러나 기자회견장에 있던 기자들은 ‘지금부터, 즉시 서독 여행이 가능하다!’라는 기사를 송고했고 이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동베를린 주민들은 서베를린으로 통하는 관문인 ‘체크포인트 찰리’로 물려나왔습니다.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하던 경비병들은 결국 주민들의 요구에 굳게 닫힌 철문을 열어주게 됩니다. 베를린 장벽은 이렇게 황당한 말실수로 무너진 거예요. 물론 언젠가는 무너질 장벽이었지만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없었더라면 훨씬 격렬하고 잔혹하게 무너졌을 겁니다.”

- 김정운 소장은 ‘절친’ 조영남에 대해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다. 한국의 모더니티(modernity)에 엄청난 기여를 한 인물이다. 내가 어렸을 때 조영남이 우상이었다”고 말했다.
- 김정운 소장은 ‘절친’ 조영남에 대해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다. 한국의 모더니티(modernity)에 엄청난 기여를 한 인물이다. 내가 어렸을 때 조영남이 우상이었다”고 말했다.

베를린 장벽 사소한 말실수로 무너져
김 소장은 “독일 통일 후 20년 가까이 나는 가는 곳마다 이 이야기를 하고 다녔지만 다들 그저 농담으로만 여겼다”며 억울해(?)했다. 그런데 2009년 10월,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에서 ‘베를린 장벽은 기자들의 질문으로 무너졌다’는 제목의 기사가 독일 통일 20주년 특집으로 나오게 된다. “그러니까 한국 신문에서도 바로 그 기사를 받아 보도하기 시작했고, 한 TV에서는 특집으로 다루기도 했어요. 20년이 지나도록 내 이야기는 아무도 진지하게 안 듣더니 미국의 권위 있는 신문이 한번 보도하니 바로 ‘역사적 사실’이 돼버렸죠. 내 입장에선 정말 환장할 노릇입니다.(웃음)”

김정운 소장 주변엔 ‘천재’들도 많이 모인다. 가까운 후배 중에는 넥슨 김정주 대표가 있다. 김 소장은 “김정주에게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함께 대화하다 보면 자주 황당해진다. 이야기가 막 건너뛰기 때문이다. 천재의 생각은 날아다닌다. 하지만 그 날아다니는 생각을 현실에서 구체화하는 이는 많지 않다. 김정주는 자신의 날아다니는 생각을 잡아내 구체화했고 바로 그것이 특별함”이라고 말했다.

이어령 선생과 자신에 대해선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의 관계’와 같다고 표현했다. 이어령 선생에 대해 그는 ‘진정한 천재’라며 혀를 내둘렀다. 여든이 넘은 이어령 선생은 지금도 여섯 대의 컴퓨터를 두고 연구를 하고 있다. “솔직히 나는 누군가에게 지적 열등감을 느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아무리 유명한 학자를 만나도 속으로 ‘그 정도 생각은 나도 한다’면서 항상 건방을 떨었죠. 하지만 이어령 선생만 만나고 나면 열등감에 풀이 죽어요. 팔십 노인에게 당할 재간이 없죠. 매번 좌절입니다. 그 양반은 도무지 내가 따라갈 수 없는 분입니다.”

그런가 하면 KBS ‘명작스캔들’을 통해 함께 방송활동을 하기도 했던 조영남은 그와 비슷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유쾌하고, 말 잘하고, 글을 쓰고, 이제 그림을 그린다는 공통점까지 생겼다. 미워할 수 없는 잘난 척도 마찬가지다. 그는 조영남에 대해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의 세련된 목소리가 부러웠고, 한국의 모더니티(modernity)에 엄청난 기여를 한 인물이다. 내가 어렸을 때 조영남이 우상이었다”고 말했다.

모두들 조영남이 여자를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그의 생각은 좀 다르다. “조영남 형 전시회에 가서 내가 도록(圖錄)에 ‘조영남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썼어요. 창조적인 사람들의 특징인데, 늘 뭔가 허전해요. 영남 형도 기본적으로 허전함을 느끼고 있고 그런 사람들이 창조적 행위를 합니다. 다 갖춰져 있는 것 같지만 뭔가 비어 있다고. 조영남도 여자들을 얘기하면서 극복하는 것 같지만, 그건 대중을 위해 서비스해주는 것 같아요. 인기인의 역할이 뭐냐면 대중에게 늘 화젯거리가 돼주는 거거든. 그런 의미에서 조영남은 머리가 참 잘 굴러가는 사람이지.(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