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정보통신(IT) 벤처기업인 백일승(61) 더하기북스 대표가 또다시 책을 냈다. 제목은 <소프트웨어 전쟁>이다. <엔지니어 인생에는 NG가 없다>(2000년), <바보야, 이제는 이공계야>(2014년)에 이어 세 번째 책이다. 백 대표는 앞서 두 권의 책에서 이공계와 엔지니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번 책에서 백 대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4월30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에 위치한 더하기북스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바싹 세운 머리, 뿔테안경 그리고 청바지에 깔끔한 파란색 재킷을 입은 백 대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젊고 세련된 느낌을 받았다. 한 중년이 패션에 던진 도전이라고 할까. 그러나 백 대표에게 ‘도전’은 외모에서 풍기는 게 전부가 아니다.

백 대표의 삶은 도전과 변화의 연속으로 정리된다. 백 대표는 1981년 대우조선해양에 입사했다. 회사에서 일하면서 컴퓨터를 접했고, “컴퓨터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렇게 백 대표는 컴퓨터에 빠졌고 다국적 IT기업인 IBM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17년 동안 한국IBM에 근무하며 다양한 업무를 맡았다. 백 대표는 “88서울올림픽 당시 IBM이 주관하는 올림픽 전산시스템 개발 프로젝트의 한국측 대표 설계자로 참여했다”며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등 국내 제조업체의 공장자동화, 3D 모델링 프로젝트를 통해 IT현장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백 대표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벤처 창업이었다. 백 대표의 인생동반자인 아내 김양신(61)씨가 먼저 행동에 옮겼다. “아내가 결혼 전 일본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고 관련 회사에 다녔습니다. 저와 결혼하고 집안일을 했는데 아이들이 크고 시간이 생기자 1997년 컴퓨터 그래픽 학원을 운영했어요.”

이후 백 대표는 아내와 함께 사업 아이템을 고민했고 1년 만에 게임으로 방향을 틀었다. 백 대표는 “어떤 IT 콘텐츠를 기획할지 아내와 늘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먼저 정보를 담아 팔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은행의 역사를 담은 CD를 제작해 판매했고 어린이 교육용 콘텐츠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뭔가 부족했어요.”

한 사건이 그들을 게임개발로 이끌었다. 백 대표의 설명이다. “우리가 제작한 CD 유통을 용산상가에 맡겼는데, 제작사인 우리는 판매 이익의 40%를 가지고, 유통사가 60%를 챙겼습니다. 사실 유통업체가 몇 장의 CD를 찍어서 파는지도 알 수 없었어요. 그들 마음대로였습니다.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접 유통할 수 있는 콘텐츠를 찾았습니다. 게임이었어요. 우리가 개발한 콘텐츠를 온라인상에 직접 뿌릴 수 있었습니다. 특히 당시 게임산업은 시작 단계로, 성장성이 엿보였습니다.”

그렇게 ‘조이시티(옛 제이씨엔터테인먼트)’가 탄생했다. 하지만 성공은 쉽지 않았다. 게임을 개발했지만 계속해서 실패했다. 그러다 2004년 3대3 농구게임 ‘프리스타일’이 대박을 쳤다. 백 대표는 ‘기획’을 성공요인으로 꼽았다. “당시 엔씨소프트의 롤플레잉게임(role playing game) ‘리니지’가 큰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다른 스타일의 게임을 개발해 차별화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온라인 스포츠게임이라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그게 바로 프리스타일입니다.”

백 대표는 전략적인 실수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게임은 영화와 비슷합니다. 콘텐츠 비즈니스죠. 첫 게임도 중요하지만 이후 연속적으로 다른 게임을 만들 수 있느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온라인 롤플레잉게임 ‘레드문’(1999년)을 개발했고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게임개발을 위해 레드문의 주력 팀을 다른 프로젝트에 투입했어요. 개발 인력이 둘로 나눠진 것이죠. 전략적 미스였습니다.”

- 백일승 대표가 조이시티를 경영할 때 개발한 온라인 스포츠게임 ‘프리스타일’(2004년). (사진 : 조선일보 DB)
- 백일승 대표가 조이시티를 경영할 때 개발한 온라인 스포츠게임 ‘프리스타일’(2004년).
(사진 : 조선일보 DB)

‘도전하는 삶’ 벤처기업인에서 출판사 대표
조이시티는 성공가도를 달렸다. 2008년에는 코스닥에 상장했다. 또한 2011년 ‘룰 더 스카이(rule the sky)’라는 소셜게임을 만들어 모바일로 재편되는 게임시장에 빠르게 적응했다. 백 대표는 “조이시티의 강점은 빠르게 시장을 읽는 눈과 기획력이다”고 말했다.

2011년 백 대표는 넥슨에 조이시티 지분을 매각하고, 게임사업을 정리했다. 이만하면 성공한 벤처기업인의 표상(表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또다시 도전에 나섰다. 이번에 선택한 것은 출판업이다. 백 대표는 2012년 5월 ‘더하기북스’를 설립했다. 백 대표는 출판사도 기획의 연결선상에 있다고 말한다. “기획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았어요. 책이었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해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백 대표는 출판은 ‘사회적 기획(social design)’이라고 설명했다.

더하기북스는 백 대표가 직접 쓴 책을 출간하고 있다. 성적도 양호하다. 2014년에 선보인 <바보야, 이제는 이공계야>는 1만권이 팔렸다. 출판시장이 어려운 상황이고, 신생업체라는 점을 감안하면 괜찮은 실적이다. 사실 백 대표는 출판사를 통해 큰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출판은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돈을 벌려고 뛰어든 사업이 아닙니다.”

백 대표가 <소프트웨어 전쟁>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백 대표는 “현재 세계 시장에선 치열한 소프트웨어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며 “이 상황을 전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한 한국의 위기는 현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개인과 기업,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역량에 따라 미래 운명이 결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 대표에 따르면, 이 소프트웨어 전쟁에서 패권을 쥐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은 실리콘밸리를 기반으로 새로운 제국주의 전략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강력한 소프트웨어 역량을 지닌 기술기업을 앞세워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시대를 새롭게 구현하고 있어요. ‘TGIF(트위터·구글·아이폰·페이스북)’군단이 전 세계를 손 안에 쥐고 있습니다.”

백 대표는 미국 다음으로 중국을 소프트웨어 제국으로 꼽았다. 중국은 원천적인 소프트웨어 기술의 열세를 ‘산자이(山寨·짝퉁)’ 전략으로 극복하고 있다. 13억 자국시장도 강력한 무기다. 백 대표의 설명이다.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제국이 만든 서비스나 제품을 중국이 그대로 복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중국어 기능을 넣고, 중국 소비자가 원하는 고유 기능도 추가합니다. 또 첨단 기술 분야에서 기술축적이 국가경쟁력이라는 명분으로 구글·페이스북 등의 자국 내 서비스도 제한했어요. 중국 로컬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것입니다.” 그렇게 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 등이 탄생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중국 기업은 자국시장에서의 성장을 바탕으로 미국 나스닥 등 자본시장에 기업공개를 통해 거대 자본을 축적하고 세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 백일승 대표는 “이제는 소프트웨어 전쟁 시대”라며 “한국이 소프트웨어 제국인 미국,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선 소프트웨어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 백일승 대표는 “이제는 소프트웨어 전쟁 시대”라며 “한국이 소프트웨어 제국인 미국,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선 소프트웨어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 전쟁, 프로그래밍 역량 키워야
백 대표는 한국이 미국,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선 소프트웨어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프트웨어 전쟁의 전력(戰力)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양과 질”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전력은 중국의 20분의 1, 미국의 5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며 “앞으로 5년 동안 소프트웨어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백 대표는 소프트웨어 역량을 키우기 위해선 프로그래밍 조기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은 이미 초등학교부터 프로그래밍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소프트웨어가 중심이 되는 사회를 대비하는 것이죠. 이런 분위기는 미국도 마찬가집니다. 한국은 올해부터 중학교에서 프로그래밍 수업을 시작하지만 너무 늦어요. 초등학교로 당겨야 합니다.”

신(新)10만양병설도 주장했다. 군을 활용해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육성하자는 게 백 대표의 생각이다. 백 대표는 “1년에 2만 명의 병력을 프로그래밍 능력을 보고 선발하자”라며 “5년이면 10만 명의 프로그래머를 길러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10만 명 중 1000명은 군에서 사이버 부대로 키우고 나머지는 기업으로 보내 프로그래머의 능력을 길러주는 게 핵심 내용”이라며 “이들은 군 복무 후 사회에 나와 IT 벤처를 만들 수 있는 엘리트로 성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범한 직장인에서 벤처기업인으로,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세상에 전달하기 위해 작가이자 출판사 대표로 변신한 백일승 대표. 그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 백일승 대표는…
백일승 대표의 삶은 도전과 변화의 연속으로 정리된다. 그는 대우조선해양, 한국IBM을 거친 후 1998년 게임벤처 ‘조이시티’를 창업했다. 2011년 조이시티를 넥슨에 매각했고, 현재 직접 글을 쓰며 출판업을 하고 있다.

 

[김양신 前 조이시티 대표 ]

“엔터테인먼트 강조한 호텔 기획 중”

“디자인은 어떻게? 스파, 골프장, 헬스클럽 외에 새로운 콘텐츠는 없을까?” 더하기북스 회의실 칠판에 적혀 있는 호텔 기획내용이다. 백일승 대표의 아내 김양신 디자인통 대표가 적어놓은 것이다. 현재 김양신 대표는 고향인 경남 통영에 호텔을 짓고 있다. 법인도 설립했다. 사명은 디자인통이다. 백 대표는 “기획을 영어로 하면 디자인(Design)”이라며 “디자인에 통영의 통을 더해 만든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백 대표와 김 대표는 과거 조이시티를 함께 운영했다. 이제는 각자 다른 사업을 하고 있다. 백 대표가 출판 기획이라면 아내 김 대표는 건축이다. 백 대표는 “아내가 조이시티 시절부터 창의적인 기획을 워낙 좋아했다”며 “지금 지으려고 하는 호텔도 기존과 다른 호텔”이라고 말했다. 백 대표는 “우선 엔터테인먼트 호텔로 방향을 잡았다”며 “수영, 골프, 스파 등 기존 호텔과는 다른 호텔을 짓기 위해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박용선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

사진 이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