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1 사태 후 조국과 가족을 지키겠다며 자원입대한 카일이라는 실존인물이 소재
⊙ “영웅이란 타인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

-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
-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

이라크전 실화를 다룬 〈아메리칸 스나이퍼(American Sniper)〉를 감독한 클린트 이스트우드(84)와의 인터뷰가 LA 다운타운에 있는 애슬레틱클럽에서 있었다.
  
총을 휘두르는 ‘황야의 무법자’요 ‘더티 해리’로 거칠고 사나운 남성의 대표상처럼 여겨졌던 그도 나이는 못 속이는지 잿빛 머리에 고목의 등걸처럼 주름진 목을 한 모습이 다소 쇠약해 보였다. 그의 상표와도 같은 째려보는 듯한 눈매는 여전했다.
  
이스트우드는 질문에 위트와 유머를 섞어 여유만만하게 대답했는데 기분이 좋은 듯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가며 상냥하게 말했다. 자기 여자 문제에 관해 얘기할 때는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히기까지 했다.
  
이스트우드는 한국전 때 군에 징집됐으나 미국에서 근무했는데 인터뷰 후 기념사진을 찍을 때 필자가 “나는 한국인”이라고 소개하자 그는 “이젠 한국에 가야지. 그러나 1951년에는 안 간 것이 나았지”라고 말했다. 이에 필자가 “한국에 가 보라. 아름다운 나라”라고 소개하자 그는 큰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9·11 사태 후 조국과 가족을 지키겠다며 해군특공대(SEAL)에 자원입대해 이라크전에서 저격수로 활약한 카일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이라크전에서 160여 명의 적을 사살한 카일은 텍사스 태생이다. 카일 역은 브래들리 쿠퍼가 맡았다. 카일은 이라크전에 4차례 참전한 뒤 제대, 2013년 2월 고향의 사격장에서 전투경험 후유증을 앓던 제대 해병의 총에 맞아 38세로 사망했다.

 

“한국전 때 징집돼”
  
—브래들리 쿠퍼와 일한 경험은 어땠습니까.
  
“그가 카일 역을 맡은 뒤로는 세트를 떠나서도 카일과 같이 살다시피 했습니다. 저녁을 먹을 때도 텍사스 악센트를 써 가며 말을 했는데 영화를 다 찍을 때까지 카일을 떠나지 않았지요. 매우 부지런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이 영화를 만들게 됐습니까.

  
“신문에 난 카일의 얘기와 그의 전투경험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데 워너 브러더스에서 전화가 걸려 와 영화를 감독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각본을 받아 읽고 있는데 이번에는 브래들리 쿠퍼가 전화를 걸어 연출을 맡아 달라고 해서 오케이를 했습니다. 그리고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쿠퍼와 함께 텍사스로 내려가 카일의 미망인을 비롯한 가족을 만났지요.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카일은 실제로 어떤 일을 했는지요.
  
“그는 전투가 있는 곳마다 찾아다니면서 교전하는 군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저격수 일을 했는데 사람을 골라서 죽인다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공식 사살 숫자가 160명이니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죽였을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옳은 일을 한다고 믿었지만 때론 자신의 일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도 했지요. 굉장히 흥미 있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성조기 앞에 섰을 때 어떤 기분이며 당신의 군대경험에 대해서도 말해 주세요.
  
“난 1930년대와 40년대에 자랐습니다. 11살 때 2차대전이 일어났는데 그 땐 모두가 열렬한 애국자였지요. 따라서 나도 애국주의 세대입니다. 그리고 2차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돼 한국전이 일어났고 나도 1951년에 군에 징집됐습니다. 그러나 이땐 2차대전과 달리 도대체 우리가 거기서 무얼 하고 있는 것인가 하고 회의를 했지요. 베트남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왜 우린 이렇게 계속해 싸우는 것이며 전쟁은 도대체 언제나 끝날 것인가 하고 크게 우려를 하게끔 됐습니다. 제 생각에 역사는 평화의 편이 아닌 것 같군요. 그러나 전쟁에는 창의적인 면도 있습니다. 전쟁 중에는 인간성과 함께 기술이 크게 발전한다는 사실이지요. 그러나 그렇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내 군대 경험을 말하자면 난 M1 같은 장총을 쏠 줄 압니다. 여러 분의 눈알을 겨냥해서 맞힐 수도 있어요.”

- 필자와 클린트 이스트우드.
- 필자와 클린트 이스트우드.

 

요즘 전쟁영화 많은 것은 영화계의 정기적인 사이클

—이라크전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처음에 우리나라가 이라크에 들어갔을 때 난 그것에 반대했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한국전을 비롯해 모든 다른 전쟁에 반대한 이유와 같습니다. 전쟁은 많은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라크전 참전 군인들이 자살을 하는 이유는 전쟁 후유증 때문인가요, 아니면 국내에서 그들에 대한 치료가 부실해서인가요.

  
“재향군인들에 대한 치료 및 대책이 부실하다는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많이 나아지고 있는 줄 압니다. 나도 그들을 위한 기관에 많은 기부금을 냅니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 쉽게 그들을 잊는다는 것이지요. 지금도 전쟁에서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는데도 우린 그것에 대해 별 신경을 안 쓰고 있습니다.”
  
—당신은 배우로서 또 감독으로서 매우 과감한 사람인 줄 아는데 실제로도 그렇게 겁이 없나요.

  
“겁 없이 살 수야 없겠지요. 공포가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그 삶이 행복할 수는 없으니 긍정적인 것을 찾아 나아가야겠지요. 그러나 난 가만히 앉아서 그런 것들을 분석하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난 그런 것 잘 못해요.”
  
—영웅이란 무엇입니까.
  
“영웅이란 전쟁에서 자기 동료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며 불 타는 집 안의 사람을 구하기 위해 그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요즘은 전쟁에 나가는 사람을 다 영웅이라고 하지만 옛날에는 달랐습니다. 웬만해선 영웅이라고 안 했어요. 얼마 전에 나는 뭔가 목에 걸려 숨이 막혀 하는 사람을 구해 준 적이 있는데 그때 날 보고 사람들이 영웅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그것은 결코 영웅적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특수효과가 큰 구실을 하는 가상현실을 다룬, 아이들과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 생각은 없는지요.
  
“나도 여러 분야의 영화를 좋아하고 또 영화는 장르마다 특색이 있지만 난 만화 속의 인물을 다루거나 미래를 그린 아이들의 영화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난 이오지마 전투와 같은 옛 역사에 더 관심이 많지요. 그래서 이 전투를 일본군의 눈으로 본 영화도 만든 것입니다.”
  
—왜 인간은 성서시대 이후로 지금까지 끊임없이 서로 싸우고 죽인다고 생각합니까.
  
“거 참 훌륭한 질문입니다. 나도 그 문제를 어렸을 때부터 궁금하게 여겼는데 그것은 우리의 유전인자 탓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원치도 않는 다른 나라에 민주주의를 심어 놓으려고 하는데도 문제가 있습니다. 과연 전쟁은 언제 어디서 끝날 것이며 그것은 과연 실제로 끝날 수 있는 문제인가라는 명제는 참으로 좋은 질문입니다. 철학자들은 언제나 인간은 이성을 찾을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해 왔는데 어쩌면 우리는 그것을 결코 찾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삶의 하나의 사실이라고 하겠습니다.”
  
—요즘처럼 미국이 전쟁을 하고 있는 때에 이런 전쟁영화들이 사람들에게 무엇을 얘기하며 또 가르쳐 준다고 생각합니까.
  
“전쟁이란 극적이요 삶과 죽음이며 또 고난으로, 결국 충돌과 갈등입니다. 따라서 이런 것은 좋은 극적 소재이지요. 드라마로서 그것은 매우 재미 있는 얘깃거리입니다. 내 영화로 말할 것 같으면 전쟁에 가족 드라마가 포함됐습니다. 요즘 전쟁영화가 여러 편 나온 것은 영화계의 정기적인 사이클입니다. 그리고 어느 한 영화가 잘 만들어져 성공하면 너도 나도 만들려고 하지요. 결국 스토리에 달렸습니다. 어느 한 장르의 영화가 특정기간에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가치가 있고 흥미 있는 얘기가 있다면 만들라는 것이지요.”

 

“배우는 너무 많이 생각하면 안돼”
  
—당신의 여성관계와 사랑·결혼관이 과거와 달라졌습니까. 아직도 사랑을 추구하나요.
  
“그것들은 내게 매우 중요하며 그래서 이 영화도 만든 것입니다. 이 영화는 카일과 그의 아내와의 관계, 그것의 유지에 관한 것이기도 합니다. 내 자신으로 말할 것 같으면 사랑과 결혼에 성공한 편이 못되네요. 두어 번 시도를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순간순간으론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사랑이 매우 위대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성취하는 사람들을 존경합니다. 그러나 특히 요즘엔 그러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이 너무 많고 또 각자의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고 많아서 그렇습니다. 내 나이에 다신 사랑을 안 한다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결코 그것을 장담을 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어떤 위대한 철학자도 ‘결코 아니다라는 말을 결코 하지 말라’고 했거든요.”
  
—당신은 16살짜리 막내를 비롯해 자손들이 많은데 그들과 어떻게 관계를 유지합니까.
  
“난 내 아이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아이들에게도 깊은 정을 느낍니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특히 교육을 비롯해 여러 문제에 있어서 도움과 조언을 주면서 그들이 가능한 최고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한동안 내 유전인자가 맹활동을 해 아이들을 많이 보았지만 이젠 다 끝난 것 같군요. 그러나 또 모르는 일이지요.”
  
—이 영화를 만들면서 무엇을 배웠습니까.
  
“자신에 관해서 무언가를 배웠고 아울러 작품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배웠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전쟁에 관해 생각하게 됐고 또 그것에 대한 자신의 느낌과 함께 조국의 정치에 대한 감정도 배우게 됐습니다. 늘 무언가를 배우게 마련이지요. 특히 나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는 브래들리 쿠퍼가 얼마나 훌륭한 배우인가를 배웠습니다. 그는 한 번도 연기를 안 했어요. 그보다 더한 칭찬은 없을 것입니다.”
  
—당신이 이타적인 일을 한 적은 언제입니까.
  
“가끔 했지만 적어 놓질 않아서 언제인지는 모르겠네요. 자선행위를 이타행위로 볼 수 있지만 그것은 어떻게 보면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것이어서 그렇지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또 그것은 남을 도와준다는 의미에서 이타적이기도 합니다.”
  
—배우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충고는 무엇인지요.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망쳐요. 배우로서 최고의 것은 본능을 따르라는 것인데 본능이 옳다고 느끼지 않을 땐 안 하면 됩니다. 난 배우들이 자기가 낫다고 느끼는 연기를 할 때면 그것이 얘기의 방향과 반대로 가지만 않는다면 허락하는 유연성이 있습니다.” 

 

- 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일본의 국민배우 와타나베 겐이 주연한 이 영화는 이오지마전투 당시 일본군 지휘관 구리바야시 다다미치가 가족에게 남긴 편지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 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일본의 국민배우 와타나베 겐이 주연한 이 영화는 이오지마전투 당시 일본군 지휘관 구리바야시 다다미치가 가족에게 남긴 편지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당신은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에서 그 전투를 일본군의 관점으로 얘기했는데 이 전쟁 얘기도 그렇게 만들 생각이라도 있는지요.
  
“장래 다른 감독에 의해 만들어질지 모르겠지만 쉬운 일은 아닙니다. 흥미 있고 또 상대편 사람에 관해 무언가 할 얘기, 그리고 사람들이 알아야 할 얘깃거리가 있다면 만들어질 수도 있겠지요.”
  
—만약에 크리스가 당신에게 찾아와 내 할 일 다 했는데 이제 무얼 해야 하겠느냐고 물으면 당신은 어떤 조언을 해 줄 생각입니까.
  
“가족과 함께 있으라고 말해 주겠습니다.”
  
—미국의 애국주의를 강조한 이 영화의 해외 반응에 대해선 어떻게 예상하고 있습니까.
  
“난 내 영화가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 영화는 모든 사람들의 감정을 다루고자 하기에 국제적으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난 아주 단순해요. 영화를 만들 때의 느낌이 반드시 내일의 감정과 같을 수가 없기에 영화가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이냐 하는 문제도 쉽게 얘기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젊었다면 어떤 충고를 해 주고 싶습니까.
  
“난 똑똑한 아이는 아니었습니다. 배우는 것이 아주 느렸지요. 따라서 ‘속도 좀 내라’고 조언하겠습니다. ‘좀 더 많이 연습하라’고요.”
  
—당신은 카일이 전쟁의 도덕성에 관해 의문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그가 비록 대놓고 전쟁의 도덕성에 대해 회의를 표시하진 않았지만 그의 뇌리에는 늘 그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고 봅니다.”
  
—당신의 다음 영화는 과거 몇 차례 영화로 만들어진 〈스타 탄생〉인데 그 영화들에 나온 주디 갈랜드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를 만난 적이 있습니까.
  
“주디 갈랜드는 만났을지도 모르지만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스트라이샌드는 잘 알지요. 아직 그 영화에 대해선 만든다는 것 외엔 아무 것도 구체화한 것이 없습니다.”

 

朴興津
⊙ 71세. 서울대 사범대 독어교육과 졸업.
⊙ 《한국일보》 기자, 인천과 이천서 교직. 《미주한국일보》 부장·편집국장 역임.
    現 《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LA영화 비평가협회(LAFCA)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