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9월 12일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환자복을 입은 채 휠체어를 타고 재판정에 들어가고 있다.
- 2014년 9월 12일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환자복을 입은 채 휠체어를 타고 재판정에 들어가고 있다.

횡령·배임·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돼 2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이재현 CJ그룹 회장 사건이 9월 10일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됐다. 대법원 1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이재현 회장의 상고심에서 “배임 혐의에 대해 법률 적용을 잘못했으니 다시 심리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이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이유는 배임액 부분에 대해 “다시 판단을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전부 무죄 취지는 아니다. 재판부는 “배임 행위로 취득한 이득액을 구체적으로 산정할 수 없을 때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회장은 2013년 7월 1657억원의 탈세·횡령·배임을 저지른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이 중 배임 혐의는 이 회장이 개인회사인 ‘팬재팬’이 일본 도쿄의 빌딩을 사는 과정에서 CJ 일본 법인인 ‘CJ재팬’이 연대보증을 섰다는 내용이었다. 이 회장의 연대보증 지시에 따라 팬재팬은 연대보증 전액인 39억5000만엔과 이자 등 이익을 얻었고, 반대로 CJ재팬은 손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2월 1심 재판부는 모든 혐의에 대해 유죄로 보면서도 검찰이 주장한 범죄액수보다 낮은 1342억원을 유죄로 인정하고, 이 회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건강상 이유로 법정구속이 되진 않았다. 반면 항소심은 회사 자금으로 부외자금 604억원을 조성한 혐의에 대해서 구체적인 사용처가 밝혀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로 판단했다. 비자금 조성 행위만으로는 횡령으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유죄 인정 금액은 675억원으로 낮아졌고 형량도 징역 3년으로 감형됐다.

하지만 대법원은 “배임 부분에 대한 법 적용과 판단이 잘못됐다”고 밝혔다. CJ재팬이 팬재팬의 대출에 연대보증할 당시, 팬재팬이 변제능력을 상실한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없고, 일부 갚은 등의 사정이라면 대출금 채무 전액을 팬재팬의 이득액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출금 채무 전액을 팬재팬의 이득액으로 인정해 특경법을 적용한 원심은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팬재팬이 대출금을 전혀 상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연대보증 액수 전체가 배임 금액이 되겠지만, 당시 임대료 수입 등으로 돈을 갚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정확히 얼마의 이득을 얻었는지 산정할 수가 없다”며 “이득액이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대출금 전액을 기준으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특경법)’을 적용한 것은 잘못”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형법상 배임죄는 재산상 이익이 얼마인지와 상관없이 성립하며, 이번 판결이 형법상 배임죄 성립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법조항을 특경법이 아닌 일반 형법의 배임 조항으로 바꿔 다시 재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시 심리를 받게 되면 이 회장은 매우 유리해진다. 특경법보다 법정형이 훨씬 낮은 형법이 적용되면 항소심에서 선고된 징역 3년보다 낮은 형이 선고될 수 있고 집행유예도 기대할 수 있다. 특경법에 따르면 배임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일 경우 법정형이 최고 무기징역에서 3년 이상의 징역형이 가능하다. 반면 형법의 단순 배임죄(355조)는 5년 이하의 징역, 업무상 배임죄(356조)는 10년 이하의 징역으로 법정형이 특경법 배임보다 훨씬 낮다.

전례도 있다. 지난 2012년 8월 1심에서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돼 징역 4년을 선고받았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2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대법원이 일부 배임 혐의에 대해 무죄 판단을 내려 서울고법에서 파기환송심이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배임 액수는 1심 2883억원, 2심 1797억원, 파기환송심 1585억원으로 줄었고, 김 회장은 지난해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경영상 판단도 명문화해야
이재현 회장 외에도 적지 않은 대기업 회장들이 ‘고의로 회사에 큰 손해를 끼쳤다’는 횡령과 배임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이들은 법정에서 “경영상의 판단에 의한 것이었을 뿐 일부러 회사에 손해를 끼치려는 의도는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한다.

지난 2004년 대법원은 한보그룹에 보증을 해준 대한보증보험 경영진의 배임죄에 대한 판결에서 ‘기업가 정신’을 처음 언급했다. 당시 재판부는 “기업의 경영은 원천적으로 위험을 내재하고 있다. 경영자가 선의를 갖고 신중하게 결정을 내려도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까지 업무상 배임죄를 묻고자 하면 이는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켜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다”며 대한보증보험 경영진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배임죄는 기업 오너나 경영진이 기업을 사유물로 여겨 멋대로 투자했다가 회사에 손실을 끼치는 전횡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재계 일각에선 배임죄 처벌 규정이 지나치게 포괄적이라고 지적한다.

형법에서는 배임을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해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로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고의성에 대한 규정이 없고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는 점에 대해 그동안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돼 왔다.

이에 최근 발의된 ‘배임죄 완화’를 골자로 한 형법 개정안은 배임죄 처벌 요건을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하거나 본인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를 한 때’로 규정했다. 행위의 목적성을 명시한 것이다.

경영판단 원칙도 모호한 만큼 명문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김승열 법무법인 양헌 대표변호사는 “경영판단은 위법과 합법의 구분이 쉽지 않기 때문에 어느 범위까지 처벌 범위를 확대해야 하는지 신중히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는 “가급적 기업의 자율성이 보장돼야 하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기업의 경영판단은 최대한 존중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