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원정 기록 정밀 분석해 동북공정 논리적 모순 밝혀


- 남창희 교수는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공격할 때 세운 군사작전을 분석한 결과 당시 위만조선의 수도는 중국 요동이나 요서에 있었던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기원전 108〜107년 중국의 한무제(漢武帝)가 멸망시킨 위만조선의 수도인 왕험성(王險城)이 한반도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인하대 국제관계연구소 소속의 해양전략 전문가인 박성용 연구교수와 융합고고학과 박사과정 이인숙씨, 남창희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지난 2년간의 연구를 통해 왕험성이 한반도에 존재했다는 중국 측 주장에 대한 논리적 모순을 밝혀 낸 것. 이는 한반도 일부가 자신들의 영토였다는 중국 학계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한반도 북부에 대한 중국의 역사 연고권이 허위임을 증명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연구팀의 이 논문은 군사학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등재학술지인 <국방연구> 여름호에 게재됐다.

왕험성은 위만조선의 수도로 학계에서 그 위치에 대한 여러 의견이 제시돼 왔다. 왕험성의 위치에 대한 가설은 크게 평양설과 요동설로 구분된다. 평양설은 고조선이 건국해 위만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현재의 평양이 왕험성이었다는 견해다. 반면 요동설은 위만조선에 이르기까지 왕험성이 요동에 있었다는 주장이다.

특히 왕험성의 위치는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으로 인한 한국 고대사 왜곡 시도와 연계되면서 논란이 일어왔다. 동북공정은 한국 고대사를 중국의 역사에 편입하려고 중국이 2002년 시작한 대규모 연구프로젝트다.

이러한 중국의 움직임에 대해 우리 학계는 별다른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군사학적 관점에서 실증적 근거에 기초한 이번 연구결과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무력화할 논리로 평가되고 있다.

연구팀은 <사기(史記)> 등에 기술된 한나라의 작전계획과 실행과정 등을 군사학적으로 정밀 분석해 공격 목표가 한반도의 평양이었다고 보기에는 논리적인 모순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연구를 주도한 남창희 교수는 “사마천의 <사기> 등 중국 사서에 나오는 ‘한나라 원정군의 수군이 산둥(山東)성 북쪽에서 보하이(渤海·발해)를 관통해 한반도 평양에 상륙해 위만조선의 수도 왕험성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기술적·논리적으로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에서 보하이가 아닌 중국의 동해(한반도의 서해)를 건너야 도달할 수 있는 현재의 북한 평양과 한나라 군대의 이동 경로가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 측은 당시 한나라의 수군이 갑판에 3층 누각이 있는 배를 이용해 한반도로 원정을 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배는 연안과 강에서의 전투용으로 개발된 누선으로 중국학자들도 이런 배로는 바다를 건너는 항해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당시 한나라 군사의 주력이었던 육군의 이동경로도 마찬가지다. “한나라 원정군 가운데 육군의 출발지와 평양과의 거리는 육로로 1300km에 달합니다. 이런 장거리를 보급부대를 제외하면 겨우 1개 사단이 원정했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워요. 700년 후 수양제가 고구려를 침략할 때도 전투병만 100만명 이상이었고, 후방보급을 맡은 지원병력은 200만명이 넘게 동원됐어요. 당시 위만조선은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신흥강국으로 중국 사서에 묘사돼 있는데, 가용 전투력이 2만~3만명 남짓인 점은 쉽게 수긍이 되지 않는 부분이죠.”

한나라 군이 평양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8개나 되는 큰 강을 건너야 한다. 강은 천혜의 방어거점이다. 그런데도 위만조선이 강을 도하하는 한나라 군대와 맞붙은 것은 한 번뿐이다. 또 수심이 얕은 상류에서 충돌했다는 것은 한나라 군대가 애초에 수많은 강을 도하할 장비와 계획이 없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는 한나라 육군·수군의 합동작전, 보급 문제, 출발지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이들의 원정 목표였던 위만조선의 수도 왕험성은 한반도 평양이 아닌 랴오둥(遼東)반도 또는 허베이(河北)성에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봤다. 이러한 군사작전의 논리적 결함은 육군사관학교, 육·해군본부 등에서 검증을 받았다.

중국, 역사적 연고권 주장하며 북한 개입 우려
한나라 원정군의 공략목표였던 왕험성이 현 한반도의 평양이었는지가 왜 중요할까. 이는 한반도의 통일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 남 교수의 주장이다.

“왕험성이 평양이었는지 여부가 역사가들의 논쟁에 머물러선 안 됩니다. 만약 북한에 급변 사태가 발생한다면 중국이 개입해 북한 북부에 완충점령지역을 만들 가능성이 큽니다.

한만 국경에 주둔하고 있는 중국군의 병력 규모와 장비면 북한 북부에 친중정권을 충분히 세울 수 있어요. 이들이 북한에 진입하면서 내세울 논리가 바로 역사적 연고권입니다.”

한 국가가 인접국의 급변사태에 개입할 때 국제사회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자국민 보호나 고토 회복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은 흔한 일이다. 

남 교수는 “중국이 지난 2000년간의 상식을 깨고 고구려사를 갑자기 중국사에 편입시켰다”며 “이를 북한 개입의 명분으로 삼을 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서에 기록된 한나라의 군사작전을 분석한 결과 왕험성이 평양이라는 논리에 여러 가지 결함이 발견됐어요. 이러한 결과는 향후 중국군이 압록강을 넘어 북한에 친중정권을 세울 경우 우리나라와 국제사회가 그 정당성을 반박할 수 있는 역사자료로 쓰일 수 있을 겁니다.”

장시형 기자 / 사진 : C영상미디어 염동우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