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감독, 제작자, 외화수입업자, 화가…. 이준익은 여러가지 역할로 살았다. “남들에 비해서 막 산 편이다. 무질서하고 과감하게 살았다”고 스스로에 대해 얘기해 왔다. 이준익 감독은 법대생들이 육법전서를 볼 때, ‘선데이서울’을 들이 판 사람이다. 그는 노는 즐거움을 알고 실패의 노하우도 안다. 그의 아이큐는 97이다.

이준익은 1990년대 초 외화수입업자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비즈니스의 쓴 맛을 다 보았다. 영화인 이준익의 절박한 ‘배포’는 전 세계 영화인들 사이에도 유명했다. “가령 미국 영국 프랑스 사람들과 고스톱을 치면서 100억원을 잃고 20억원을 땄다고 치자. 그런데 난 돈 잃으면 안 일어난다. 끝까지 쳐서 막판에 손 털고 일어날 때, 누가 땄나 보자 이거지.” 염세적 무정부주의자 기질이 다분했던 그의 유일한 권력은 무대책, 대안 없음이었다.

심지어 그는 모든 영화를 도망가다 만들었다고도 했다. “도망자는 절박하고 초인적이다. 쫓는 사람보다 더 힘이 세다.” ‘키드캅’이라는 어린이 영화 감독으로 데뷔했지만, 본격적인 상업 영화로는 2003년 계백과 김유신의 전투를 다룬 ‘황산벌’이 처음이다. 그리고 2005년, 마침내 ‘왕의 남자’로 1230만 관객을 불러모았다. 당시 이준익은 드레스셔츠를 입고 성공 신화의 주인공으로 증권회사의  CF를 찍었다.

그 이후 10년간, 이준익은 과오와 실패를 거듭했다. ‘어제로부터 도망쳐서 오늘에 있고, 오늘로부터 도망쳐 내일에 이른다’는 도망자의 마인드로 그동안 그가 만든 영화가 무려 열 편이다. 통렬한 자기반성의 시간이 지나고, 2013년 영화 ‘소원’으로 절치부심한 후 이준익은 깊어지고 넓어졌다. 드디어 사방에 불을 지르고 다니던 점화의 시대에서, 불을 끄러 다니는 소화의 시대를 맞았다.

왕과 아들이 회오리처럼 맞붙은 영화 ‘사도(9월 16일 개봉)’는 도망자 이준익이 정면으로 역사와 삶을 응시한 영화다. 스스로를 조롱하고 부정하며 갈지자로 걷던 한 영화 한량이, 좌정하고 붓을 들어 진정한 영화예술가로서 스크린에 한 획을 긋는다.

자신을 일컬어 불 지르고 도망 다니는 사람이라 했다.
“맞다. 하지만 지금은 불을 끄러 다니고 있다. 오늘에 대한 불만 때문에 불을 지르고 다녔는데, 내일에 대한 불안 때문에 불을 끄러 다니기 시작했다.”

예전엔 철이 드는 걸 가장 경계하지 않았나?
“그렇다. 하지만 앎과 삶이 분리되면서, 그 방향의 이격이 주는 불안이 생겼다. 앎이 삶을 앞서 가던 모습이 철이 덜 들었던 거라고 반성하고 있다.”

역사적인 사실이긴 하지만 사도도 아버지로부터 도망가려다 뒤주 안에 갇힌 것 아닌가?
“사도는 아버지로부터 도망가려던 비겁한 인간은 아니다. 아버지와 만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 인간이다. 아버지와는 다른 기질을 타고났을 뿐.”

왜 그 아버지와 아들은 만나지 못했을까?
“출생 신분이 달라서다. 아버지 영조는 평생 정통성 논란에 시달린 서자 출신이지만, 사도는 태어날 때부터 왕을 아버지로 둔 적자다. 영조는 끝없이 아들을 판단한다. ‘잘하자! 자식이 잘해야 애비가 산다’. 부자의 애정의 동기가 너무 달랐다.”

부자지간임에도 불구하고 피의 인력보다 권력의 척력이 강하다는 게 놀라웠다.
“대왕대비가 죽고 나서 영조와 사도가 같이 산소에서 사배하면서 그런다. ‘그냥 가만있으면 너 왕 되는 거 아니냐. 괜히 니가 곤조부려 대왕대비 죽게 했다’고. 이때 사도가 “네. 제 잘못입니다”하고 딱 일어나서 튕겨져나간다. “이 새끼… 내 니 오기를 모를 줄 아느냐?” 하면서 영조도 날이 서는 거다.”

그러고 나서 사도는 영조의 표현대로 존재 자체가 역모가 된다.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그 아들의 반항도 실로 엄청나다.
“전부 역사적 사실이다. 사도가 후원에 가서 아예 토굴을 파고, 관 짜서 들어가 있거나, 기생, 비구니, 박수 무당 데려다 놓고 문란하게 놀고…. 그게 아무리 다가가려 해도 닿지 않는 아버지로부터 튕겨져나온 울분의 반작용이다.”


- 감독으로서 이준익은 그가 만든 영화보다 그의 ‘구라’가 더 재미있는 사람이었으나, 영화 ‘사도’에 이르러 비로소 그 재미와 의미의 크기가 같아진다. 그가 바라던 앎과 삶의 일치다.

뒤주 안과 뒤주 밖의 세계처럼 권력과 서열이 개입할 때 아버지와 아들은 사실 만날 수 없는 관계다. 한쪽이 튕겨 나갈 수밖에 없다. 당신은 늘 그 이탈, 도망자의 끝에 관계의 유토피아를 설정해놓는 것 같다. ‘왕의 남자’의 엔딩에서 장생과 공길이 한 줄 위에서 만나듯, 영조와 사도가 뒤주를 사이에 두고 대화하는 나레이션 장면은 극한의 판타지다.
“관계의 이상향은 정반합으로 귀결된다. 그게 변증법이다. 사도의 반 없이 정조의 합은 나오지 않았다.”

10년 전 ‘왕의 남자’는 새로운 사극의 출현이었다. 당시 이준익은 감정이라는 화학에너지를 일종의 운동에너지로 변환시킨 파워맨이었다. 이준익이 성공 신화처럼 회자됐고 ‘인생이 한방인가? 구력인가?’라는 질문이 화두가 됐다.
“구력도 한방도 아닌 것 같다… 뭔가를 지속적으로 반복행위를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어떤 지점에서 ‘저스트 매칭’이 된다. 수많은 ‘미스 매칭’의 운동성이 모여, 엇박자가 반복되다가 정박으로 한번 맞을 때가 있는 것이다.”

‘암살’의 최동훈과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은 그 ‘저스트 매칭’의 명수들이다.
“부럽다. 사정없이 달려가는 그들의 에너지가 너무 부럽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드리블해가는 호날두와 메시를 보는 것 같다. 그 화려한 개인기와 드리블! 나는 패스를 하지 않으면 미드필드를 건너가지 못한다. 그들은 솔리스트 단독드리블로 미드필드를 건너가는 스프린터다.”

최동훈의 ‘암살’과 류승완의 ‘베테랑’은 삶에서 어떤 입장을 취했다는 점에서 정치적이었다. 이준익의 ‘사도’에 내재한 정치성은 무엇인가?
“내 영화는 탈정치적이라는 점에서 정치적이다.”

왜 영화를 만드나?
“영조의 입을 빌려 얘기하겠다. ‘37년간 왕을 했는데도 왕이 무엇인지 신하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왜 만드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모르는 게 맞다. 안다고 하는 순간 모순이 만들어진다.”

안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 않았나?
“그 순간 오만이 생긴다. ‘왕의 남자’가 통했을 때, 이기려는 마음, 호승심이 통했을 때, 세상이 만만치 않아서 그때 매를 많이 맞았다. 매를 맞아본 사람은 안다. 그게 얼마나 아픈지….”

언제 그렇게 아프던가?
“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평양성’.... 상업적 실패도 아픈 일이지만, 그보다 영화를 찍을 때 나 스스로 구축해온 논리를 오기처럼 밀고 나가다, 영화가 세상에 나와 수많은 결함을 지적받았을 때다. 그런데 그걸 정당화시키려는 수많은 변명을 늘어놓는 그런 오기를 또 부려야 할 때.”

왜 당시에 틀렸다고 인정하지 못했나?
“인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감독이라는 직능상 그러면 나만 창피당하는 게 아니라, 수많은 배우와 투자자와 스태프와 나를 믿고 따랐던 동료들에게 수치를 안기는 일이었다. 한 번 호랑이 등에 탔기 때문에 떨어져서 잡혀먹힐 줄 알면서도 오기로 계속 달리는 거다. 영조가 사도에게 그러지 않았나? ‘내 니 오기를 모를 줄 아느냐?’(웃음)”

그 오기로 은퇴 선언까지 한 것인가?
“오기라기보다 호기였다. 이번만큼은 자신 있다는 마음에서 나온 일종의 역설의 수사법이었다.  그런데 이준익이 이번에도 흥행 못 하면 은퇴한다는 말이 9시 뉴스에까지 나왔다.”

영화계의 거물이었으니까.
“한 번도 거물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과거에도 지금도 여전히 미물이다. 불균질한 미물일 뿐이다(웃음). 어쨌든 그 망언은 나에게 큰 반성을 요구하는 신호였다.”

복귀작인 ‘소원’은 이준익의 영화 소재로는 너무 의외였다. 성폭력 피해 아동과 그 가족의 이야기를 만들면서 치유를 받았나?
“일상이 깨졌을 때,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희망은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보다 더 큰 희망은 없다. 그래서 나는 일상을 소중한 가치로 보살피지 못했던 과거의 오기, 그 염치 없던 순간들을 통렬하게 반성했다.”

그렇게 과거를 엎고 도망 다니는 영화를 만들다, 이번에는 도망가지 않고 ‘뒤주’에서 직면을 한 거로 보인다.
“그렇다. 결자해지다. 나 자신의 결핍을 정면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그런 의지만이 앎과 삶이 일치할 수 있게 한다.”

여전히 이상주의자인가?
“아니다. 이제 깨달았다. 나는 허상주의자였다.”

영화는 결국 ‘내가 어떤 인간인가’ 깨닫게 하는 도구인가?
“모두 그렇지 않나? 기자도 기사를 통해 자신을 깨닫지 않나?”

그렇긴 하지만, 영화만큼 깨달음에 큰 비용을 지불하진 않는다(웃음). 어쨌든 10년 전 ‘왕의 남자’가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한국 대표 작품으로 출품됐을 때, 세상의 모든 상을 경멸한다고 했다. ‘사도’도 2015년 한국 대표작으로 아카데미에 간다. 지금은 그 상을 받고 싶은가?
“세상의 모든 상을 경멸한다는 말도 허상이고 오기였다(웃음).”

받고 싶은가?
“……(침묵) 기뻐할 것 같다. 할아버지가. ‘사도’에 나오는 대사다. 사도 세자가 어린 아들 정조에게 ‘넌 공부가 왜 좋으니?’ 물으니까 답한다. ‘할아버지가 기뻐하실 것 같아서요. 저도 그런 제가 싫습니다’. 내 마음도 그렇다. 아카데미란 그런 거다(웃음).”

영화 ‘사도’에서 어떤 대사에 애착을 느끼나?
“‘허공으로 날아간 화살이 얼마나 떳떳하냐?’ 사도가 하늘로 화살을 쏘아올리며 아들 정조에게 한 말이다. 사실, 이 대사는 작가가 좋아한다. 나는 혜경궁이 허연 머리를 이고 사도 세자의 산소에 와서 ‘환갑이 지나서야 지아비 앞에 왔사옵니다’ 하는데, 그 대사를 들으면 눈물이 난다. 기나긴 세월 지나 화해를 하는 장면이라…. 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잘 죽는 것이다. 나이가 들었나 보다.”

56살이면 아직 젊다.
“항상 죽음을 가정하고, 미리 설계하는 것처럼 지혜로워지는 방법도 없다.”

죽음 앞에 어떤 자세를 취하나?
“영화를 찍다 보면 알게 모르게 많은 살인을 저지른다. 극 중에서지만 목을 자르고, 목을 매고. 그런 장면을 찍을 때마다 저 인물이 세상을 왜 떠나야 하는가를 생각한다.”

살인 면허를 지닌 자로서 감독은 어떤 정당성을 갖는가?
“감독이라는 직업이 결국 타인의 죽음을 설계하는 일이다. 영조가 참수를 시키든, 저놈의 입을 찢으라든, 사도를 뒤주에 가둬놓고 죽인 뒤에 마지막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목젖에 손을 갖다 댈 때, 나는 그 죽어가는 장면을 찍는 순간에 몰입한다.
나는 이미 ‘황산벌’에서 수천명 수만명을 죽이고, ‘왕의 남자’에서 무참히 죽이고,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가차 없이 죽이고. ‘평양성’에서도 죽이고 또 죽였다. 영화 속에서 수천수만명을 죽이면서, 그 안에서 나는 내가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렇게 의식과 무의식이 맞닿은 ‘죽음’에 ‘오케이 사인’을 내린다.”

영화는 삶보다는 죽음을 보는 창이라는 게 의미심장하다. 죽음을 결정하는 감독으로서 당신은 현장에서 어떤 아버지인가?
“영화 찍을 때마다 너무 무섭다. 내 결정으로 부끄러운 결과를 반복할 때 그건 공포다. 무서움을 줄이기 위해 나는 배우와 스태프 각자의 욕망이 충돌하지 않게 교통정리를 한다. 각자의 욕망이 서로 사이좋게 지나가도록.”

송강호는 어떤 존재인가?
“송강호는 내가 알 수 없는 배우다. 내가 송강호를 단어로 규정짓는 것 자체가 오류다. 영조를 연기하면서 그는 연기적 성취 이상의 것을 보여주었다.”

유아인은 어떤 존재인가?
“유아인은 현재를 사는 인간이다. 오늘 나의 본성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즉자적으로 표출해내는 배우다. 장르적 기술을 다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에서는 그 기술이 나오는 것을 스스로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매 순간 기술이 나오지 않기 위해서 조심하는 그에게 내 할 일은 ‘오케이’를 외치는 것뿐이었다.”

어떤 성취를 이뤘나?
“가져도 봤고 누려도 봤고 이뤄도 봤다. 봉우리도 높고 골짜기도 깊었던 굴곡 많은 인생을 갈지자로 걸어왔다. 여전히 이루고 싶은 욕망은 남아서, 아직도 이루려고 노력하는 과정에 있다.”

‘사도’에서는 무엇을 그렇게 이루고 싶었나?
“정조 소지섭이 부채춤을 추는 장면을 이루고 싶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일어난 역대 최고의 비극을 마무리하는 춤을!”

사도를 죽이고 정조를 통해 화해를 이룬 소감이 어떤가?
“inner peace.(웃음) 내면의 평화다.”

김지수 조선비즈 대중문화전문기자 / 사진 : 조선일보 남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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