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궁금했다. “어느 한 곳을 꼽기 어렵다”며 웃던 그는, 잠시 후 타히티를 떠올렸다.

아나운서에서 여행작가로 변신한 손미나. 그는 지금 새로운 도전의 시작을 앞두고 있다. 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의 서울 분교를 10월 오픈 예정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일의 시작”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그를 바라보며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의 행복은 무엇일까라는 고민과 반성도 함께였다. 손미나, 그의 인생학교에 담길 이야기들은 아직도 너무나 많은 듯 했다. 

“방송은 늘 도를 닦는 과정이었어요. 지금 하는 일은 제가 여태까지 해온 일들 중에 가장 행복한 일들입니다. 인생학교가 그 시작점이 되는 것 같아요. 매일 저 스스로도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아 너무 행복합니다.”

손미나는 아나운서 출신 여행작가로 흔히 불린다.  그는 1997년 KBS 24기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해 2007년 KBS를 퇴사했다. ‘여행’을 중심으로 하는 일을 이어가고 있는 그는 ‘손미나앤컴퍼니’라는 회사를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10월 그는 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The School of Life)’의 서울 분교를 연다. 런던, 파리, 암스테르담, 멜버른 등 전 세계 각지에 8개 분교를 두고 있는 인생학교는 알랭 드 보통이 2008년 시작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손미나는 “인생학교는 강의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단순한 수업이 아니라 심리 치료와 참여를 통해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찾아가는 체험을 하게 되는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손미나와 알랭 드 보통과의 인연은 특별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알랭 드 보통을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다.

“2008년 2월이었는데 그때 제 두 번째 책이 나왔을 때였어요. 저는 알랭 드 보통을 인터뷰 하게 될 줄 모르고 제 책에 그의 말을 인용했는데, 마침 인터뷰를 하게 돼 책을 선물로 가지고 갔어요. 알랭 드 보통의 글을 읽으면서, 여성들의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상당히 섬세하고 소심한 글쟁이일 거 같다는 선입견이 있었거든요. 근데 굉장히 활발하고 유쾌하고, 약간은 푼수 같은 느낌마저 있는 분이었어요. 호기심과 열정이 대단한 사람이었죠. 그 이후 이메일과 SNS를 통해 연락을 하면서 친해지게 되었어요. 인생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얘기도 그때 이미 들었고, 한국에도 열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에 저도 여러 가지 의견을 드렸는데 그게 인연이 됐네요.(웃음)”

‘손미나의 열혈팬’이라며 인터뷰에 동행했던 대학생 신분인 인턴기자는 손미나의 이야기를 경청하더니, 조언을 구했다. “오스트리아 빈으로 교환학생을 갔었는데, 유럽 친구들이 일상에서 행복을 논하고 ‘행복하게 사는 게 뭘까’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어요. 한국의 대학생들은 그럴 여유조차 없는데요.”

손미나는 말했다. “우리는 삶의 의미를 너무 잊고 살죠. Why(왜)나 How(어떻게)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냥 목적만 생각해요. 인생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데 하루하루 아무런 사고나 질문 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는 건 인간만이 가진 권리를 포기한 것 아닐까요. 이대로 나가다간 우리나라가 너무 불행한 나라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의미에서 인생학교가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손미나는 아나운서 시절을 잠시 떠올리기도 했다. 누구나 한두번쯤 현재의 직장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이를 실행에 옮기기란 쉽지 않다. 그는 “떠나기 위해선 나만의 무기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지금 내가 속해 있는 직장이 굉장히 좋고 단단한 울타리라고 느끼지만, 막상 나가보면 그 울타리가 없어도 생각보다는 아무렇지도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어항 속에 계속 있는 물고기는 내가 여길 나가면 바로 죽을 거 같지만, 나가서 잘 살 수도 있는 거거든요. 어항에 있어도 주인 잘못 만나 어항을 안 닦아주면 죽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남들이 선택한 조건에 답이 있다는 생각만 떨치면 생각을 다르게 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꼭 직장을 바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에요. 직장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자신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게 훨씬 좋은 거죠. 제가 강의 가서도 절대로 어느 날 갑자기 회사 그만두고 그러지 말라고 말해요. 저도 그런 게 아니었어요. 정말 준비를 많이 했고, 학원도 다니고 공부도 계속 했거든요. 때가 왔을 때 뜻을 펼칠 수 있도록 저만의 무기를 만들어 나간 거죠.”

그의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궁금했다. “어느 한 곳을 꼽기 어렵다”며 웃던 그는, 잠시 후 타히티를 떠올렸다.

“타히티에서 돌고래와 함께 수영을 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그곳이 다친 거북이 치료해주고 그러는 동물보호센터 비슷한 곳이었어요. 돌고래가 처음엔 다가와서 우리를 관찰하더라고요. 그러다가 좀 친해지니까, 가까이 다가와서는 누워서 심장을 만져보게 해줘요. 돌고래 피부가 부드러워서 심장이 손에 딱 만져지는데 콩닥콩닥 뛰는 게 생생히 느껴지더라고요. 그때 너무 감동을 받아 울컥했어요. 이런 경험은 말로 설명하기 참 힘든데, 생명이라는 건 실체가 없잖아요. 근데 그 순간 생명의 실체가 이런 거구나 하고 느껴졌던 거죠.”

“페루여행기를 막 탈고했다”는 손미나는 이미 다음 여행을 꿈꾸고 있었다. “제가 혼자 이태리에 가서 다음 여행기를 쓰겠다고 말해놨어요. 아무도 따라오지 말라고요. 그때는 어쩌면 정말 재미있는 진한 사랑 얘기를 담은 책을 쓸지도 모르겠어요.(웃음)” 

조성아 기자 / 사진 : C영상미디어 이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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