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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오른쪽) 프랑스 대통령과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이 르노와 닛산의 합병을 놓고 충돌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유혹은 마크롱의 전문 분야다. 마크롱은 의자도 유혹할 수 있다.”

프랑스 일간지인 피가로의 편집위원 안느 풀다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이렇게 설명했다. 안느 풀다의 설명대로 마크롱은 프랑스 정·재계 인사들뿐 아니라 국민의 마음까지 사로잡으며 지난해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대통령이 된 마크롱의 ‘유혹의 화살’은 기업을 향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올해 들어서만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세 차례나 만나며 프랑스 세일즈에 나섰다. 강력한 노동 개혁과 법인세 인하를 통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고 있다며 기업의 프랑스 투자를 독려하고 있다. 

그렇다고 마크롱 대통령이 너그럽고 수더분한 사람은 아니다. 마크롱 대통령과 국립행정학교를 함께 나온 한 동창은 안느 풀다와의 인터뷰에서 “마크롱은 감정이 없는 존재”라고 말하기도 했다. 국립행정학교는 프랑스 엘리트 교육기관인 그랑제콜 중에서도 최고로 평가받는다. 마크롱 대통령은 자신을 발탁하고 아들처럼 스스럼없이 대해준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에게 가차 없이 등을 돌리기도 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자국 산업 육성 정책과 냉정한 성격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사례가 있다. 바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자동차 기업인 르노를 대할 때다. 르노는 일본의 닛산자동차, 미쓰비시자동차와 자본 제휴를 통한 얼라이언스를 맺고 있다. 1999년에 르노가 위기에 빠진 닛산자동차를 도와주며 서로의 지분을 나눠 가진 것을 시작으로 20년 가까운 동맹 관계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르노가 닛산 지분을 43.4% 가지고 있고, 닛산은 르노 지분을 15% 가지고 있다. 닛산이 미쓰비시 지분을 34% 가지면서 세 회사의 얼라이언스가 맺어졌다. 카를로스 곤 회장이 이끄는 세 회사의 얼라이언스는 지난해 세계 시장에서 1061만 대의 자동차를 판매하며 폴크스바겐(1074만 대)의 뒤를 이었다. 처음 자본 제휴를 했던 1999년의 두배가 넘는다.

카를로스 곤은 2005년부터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을 맡으며 두 회사의 성장을 이끌었다. 일본 정부가 공공 이익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훈장인 ‘남수포장(藍綬褒章)’을 외국인 경영자 최초로 받을 정도로 일본에서는 공을 인정받고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프랑스 정부는 낙후된 제조업을 되살리기 위해 닛산을 활용하고 싶어 한다. 자본 제휴를 넘어 경영까지 통합한 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생산라인을 프랑스에 유리하게 조정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곤 회장은 두 회사의 시너지를 위해서는 완전 합병보다는 얼라이언스가 유리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 문제를 가지고 몇 년 전부터 곤 회장과 설전을 이어온 인물이 바로 마크롱 대통령이다.

프랑스 정부는 2014년 플로랑주법(La loi Florange)을 도입했다. 2년 이상 주식을 보유한 주주는 의결권을 두 배로 인정해주는 내용의 법이었다. 당시 프랑스 정부는 르노 지분을 15%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였다. 여기에 더해 프랑스 정부는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지분을 더 매입하지 않고도 의결권을 높일 수 있는 플로랑주법을 도입한 것이다. 

당시 프랑스 경제산업부 장관이었던 마크롱이 이 작업을 주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마크롱은 “프랑스의 전략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르노와 닛산이 합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곤 회장에게 보냈다. 곤 회장이 이에 반발하자 마크롱은 르노 지분을 20% 가까이로 끌어올리며 압박 강도를 높였다. 그래도 곤 회장은 “비합리적인 방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섰다. 닛산이 르노 지분을 추가로 취득하게 하는 강수까지 뒀다. 당시에는 프랑스 정부가 한발 물러서면서 싸움이 일단락됐다.


자동차 산업 일자리 노리는 프랑스

앙금은 계속됐다. 2016년에는 르노의 대주주인 프랑스 정부가 곤 회장의 과잉 연봉을 문제 삼았다. 결국 곤 회장을 비롯한 르노 경영진의 성과급은 이전보다 20% 삭감됐다. 마크롱은 프랑스 하원에 출석해 “곤 회장이 과잉 성과급 문제를 시정하지 않으면 법적 조치도 불사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곤 회장과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건 지난해 초부터다. 마크롱은 2016년 8월 장관직에서 물러난 후 중도 성향의 정당인 ‘앙마르슈(프랑스어로 ‘전진’)’를 만들었다. 현직 의원이 한 명도 없었지만, 마크롱은 집권당의 무능과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에 대한 반대 여론에 힘입어 2017년 5월 대통령에 당선됐다. 

문제는 마크롱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본격화됐다. 마크롱 대통령 당선 이후 프랑스 정부는 르노로 하여금 닛산을 완전 합병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곤 회장의 임기는 2022년까지인데, 프랑스 정부가 벌써부터 곤 회장의 후임자를 낙점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르노는 최근 티에리 볼로레 최고경쟁력책임자(CCO)를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선임했는데, 프랑스 출신인 볼로레를 프랑스 정부가 곤 회장 후임자로 밀고 있다는 관측이다. 곤 회장은 프랑스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레바논계 브라질인이다.

마크롱 대통령 당선 전까지만 해도 “어떤 변화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목소리 높였던 곤 회장이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는 “모든 선택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르노와 닛산의 경영을 통합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두 회사는 지난 4월부터 신차와 신기술 개발 기능을 통합했다. 닛산은 유럽에서 판매할 신차를 프랑스에서 제조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르노와 닛산이 합병하거나 경영을 통합하게 되면 닛산의 제조 공장이 프랑스로 이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일본에서 커지고 있는 것이다. 사이카와 히로토 닛산 CEO는 니혼게이자이와 인터뷰에서 “두 회사의 합병은 부작용을 낼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 입장에서 자동차 산업 육성은 시급한 과제다. 프랑스의 자동차 산업 고용 인원은 2011년까지만 해도 14만 명에 달했지만 2015년에는 12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plus point

자동차 업계의 이합집산

자동차 업계에서는 치열하게 경쟁하던 업체들이 하루아침에 손잡는 일이 흔하다. 르노와 닛산처럼 서로의 지분을 교환하며 얼라이언스를 맺는 경우도 있고, 아예 한 회사가 다른 회사를 합병한 뒤에 브랜드만 남기는 경우도 있다.

르노와 닛산의 얼라이언스는 비용 절감을 통한 생존이 목적이었다. 르노와 얼라이언스를 맺기 전까지만 해도 닛산은 2조엔이 넘는 부채 때문에 생존 자체가 힘겨운 상황이었다. 르노는 연구·개발(R&D)·제조담당 부사장이던 카를로스 곤을 닛산 최고운영책임자(COO)로 파견했다. 곤은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자산 매각, 구매 비용 삭감 등을 통해 닛산의 경영 상황을 일신했다. 이후 르노와 닛산은 자동차 제조를 위한 플랫폼 통합, 생산설비 공유, 공동 연구·개발 등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경쟁력을 키우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두 회사는 합병까지 가지 않고 얼라이언스 단계에만 머물렀다. 르노가 닛산의 구원투수 역할을 맡았지만 닛산의 회사 규모 자체가 크기 때문에 한 회사로 합치기 어려운 구조였다. 르노와 르노의 최대주주인 프랑스 정부 입장에서는 섣부르게 합병을 추진했다가는 르노가 오히려 닛산에 먹힐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닛산의 주가가 정체된 사이 르노가 덩치를 키운 덕분에 프랑스 정부 입장에서 합병까지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느슨한 얼라이언스가 아닌 완전한 합병으로 성장한 대표 사례는 ‘FCA(FIAT-Chrysler Automobiles)’다. FCA는 이탈리아의 피아트와 미국의 크라이슬러가 합병하면서 탄생한 회사다. 2007년 다임러그룹과 결별하면서 생존이 어려워진 크라이슬러를 피아트가 인수했다.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피아트 회장은 크라이슬러 경영진을 대폭 줄인 뒤에 본인이 직접 크라이슬러 경영까지 도맡았다. 마르치오네 회장은 미국이 휴일일 때는 유럽에 가서 업무를 보고, 유럽이 휴일일 때는 미국에 가서 일할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FCA는 크라이슬러 외에도 피아트·마세라티·지프·페라리 등 9개 브랜드를 보유한 세계 10대 자동차 제조사로 거듭났다.

 

이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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