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의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는 미국 시장조사업체 JD파워가 6월 20일 발표한 ‘2018 신차품질조사’에서 일반 브랜드를 포함한 전체 31개 브랜드 중 1위, 13개 프리미엄 브랜드 가운데 1위를 기록했다. 어윈 라파엘(왼쪽) 제네시스 미국 총괄매니저와 제이디파워 관계자가 제네시스 모델들을 배경으로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 현대차
현대차의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는 미국 시장조사업체 JD파워가 6월 20일 발표한 ‘2018 신차품질조사’에서 일반 브랜드를 포함한 전체 31개 브랜드 중 1위, 13개 프리미엄 브랜드 가운데 1위를 기록했다. 어윈 라파엘(왼쪽) 제네시스 미국 총괄매니저와 제이디파워 관계자가 제네시스 모델들을 배경으로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 현대차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고집해온 ‘품질경영’이 자동차 본고장 미국에서 빛을 발했다. 제네시스·기아자동차·현대자동차 등 현대차그룹 삼형제가 미국의 시장조사 업체 제이디(JD)파워의 ‘2018 신차품질조사(IQS·Initial Quality Study)’에서 1~3위를 휩쓸며 우수한 품질 기술력을 입증했다. 현대차그룹 브랜드가 1~3위를 휩쓴 건 이번이 처음이다. 4위는 포르쉐, 5위와 6위는 포드와 GM의 쉐보레가 차지했다. 31년 역사의 JD파워 신차품질조사에서 한국 브랜드가 종합순위 1위부터 3위까지 독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사이에 미국 시장에서 신차를 구매한 운전자 7만5000여 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구매 초기 3개월간의 품질 만족도를 조사하고, 100대당 불만 건수를 점수로 매겼다. 평가 대상은 성능과 디자인은 물론 내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등 차량 전 부문이다. 점수가 낮을수록 품질만족도가 높다.

제네시스는 미국 시장 진출 2년 만에 최고 성적(68점)을 받아 포르쉐와 렉서스 등을 제치고 프리미엄 브랜드(13개) 부문에서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제네시스의 불만 점수는 68점으로 31개 브랜드 평균 점수인 93점과 25점이나 차이가 났다. 특히 제네시스 EQ900(현지명 G90)은 BMW 7시리즈와 벤츠 S클래스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제네시스 G90은 대형 프리미엄 차급에서 최우수 품질상(Segment Winner)을, G80은 중형 프리미엄 차급에서 우수 품질상을 차지했다. 현대차그룹의 다른 브랜드도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 72점을 받은 기아차는 일반 브랜드(18개) 부문에서 사상 최초로 4년 연속 1위를 달성했다. 전체 31개 브랜드 중에선 제네시스에 이은 2위다. 또 쏘렌토와 프라이드(현지명 리오)는 각각 해당 차급에서 최우수 품질상을 받았다.

현대차는 역대 최고 점수인 74점을 획득하며 기아차에 이은 일반 브랜드 2위에 올랐다. 전체 브랜드 순위는 3위다.

특히 현대·기아차가 일본과 독일 차 등 경쟁 업체를 큰 점수차로 제쳤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미국 대중차 부문에서 현대·기아차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닛산(10위)·도요타(17위)·혼다(23위), BMW(11위)·벤츠(14위)가 한국 차 브랜드에 비해 품질 순위가 크게 낮았다.

무엇보다 제네시스의 종합 1위 성적이 고무적이다. 프리미엄 브랜드로 2년 전 미국 시장에 진출했지만 판매 실적이 BMW·벤츠 등 경쟁 브랜드에 많이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고급차 시장의 격전지인 미국에서 우수한 품질을 인정받은 것은 제네시스가 프리미엄 자동차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의 입장에선 이번 평가 결과가 향후 판매에 상당한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JD파워 평가가 미국 소비자들의 신차 구매에 영향을 크게 미치기 때문이다. 실제 2000년대 초반 중형차 부문에서 쏘나타가 품질 1위를 차지했다는 JD파워의 평가가 나오자 해당 모델의 현지 판매량이 한 달 만에 10% 이상 늘어나기도 했다.


WSJ·USA투데이 등도 잇따라 호평

‘사람이 개를 물었다.’ 이번 결과를 두고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보인 반응이다. 이처럼 현대차그룹이 상위권을 휩쓸자 해외 매체의 호평도 잇따랐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이들 3개 브랜드가 톱 3에 올랐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한국 자동차 브랜드가 미국인 운전자들이 원하는 바를 알고 있다”고 평가했다. USA투데이는 “JD파워 신차품질조사의 우승자는 벤츠, BMW가 아니라 놀랍게도 한국 자동차 브랜드였다”라고 보도했다.

한때 현대차가 미국에서 ‘저품질 차’ 이미지를 갖고 있던 적도 있었다. 2000년 조사에서 현대차는 34위, 기아차는 꼴찌인 37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조사에선 항상 상위권을 기록하며 반전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렇게 제네시스와 현대·기아차가 소비자 만족도에서 최고 수준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품질제일주의’ 경영철학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정몽구 회장이 품질경영에 나선 것은 2000년대 초부터다. 1986년 미국 시장에 진출할 때만 해도 현대차는 미국 유명 토크쇼의 놀림거리였다.

이에 충격받은 정 회장은 2002년 품질총괄본부를 발족하고, “브랜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믿고 탈 수 있는 자동차의 품질”이라며 임직원들에게 품질 향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 회장은 품질 문제만큼은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겠다고 천명했고, 세계 200여 개국에 현대차의 품질문제를 실시간 체크하는 글로벌 품질상황실을 품질경영의 전초기지로 두고 하루 24시간, 1년 365일 가동했다.

2011년에는 ‘품질 안정화’를 넘어 ‘품질 고급화’를 새로운 전략으로 내세우면서 미국 내 현대차그룹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꿨고, 결국엔 최고의 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특히 정몽구 회장의 숙원 사업이자 정의선 부회장이 공을 들이고 있는 제네시스도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를 탄탄히 다질 것으로 보인다. 제네시스는 2015년 말 EQ900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시장 공략에 나섰다. 당시 제네시스 론칭은 ‘현대’라는 단일 브랜드로 시장에서 약진한 현대차가 제네시스를 통해 고급차 시장에 본격적으로 도전한다는 데 큰 의미를 지닌 행보였다. 현대차는 출범 초부터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 루크 동커볼케 등 글로벌 인재 영입에도 과감하게 나섰으며, 별도의 디자인·마케팅 조직도 만들었다. 이러한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의 관심과 열정이 소비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기반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조사 결과가 현대·기아차의 미래가 탄탄대로를 걷게 될 것이라는 것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짝퉁차’라고 무시하는 중국 차가 언제 현대·기아차를 앞지를지 모르기 때문이다. 중국 자동차 제조사들은 막강한 자본력과 탄탄한 내수 시장,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 인수 등을 통해 폭풍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대·기아차의 품질경쟁력은 이제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다”며 “현대차그룹이 이번에 거둔 성과를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는 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 픽업트럭 등으로 옮겨가는 소비자 트렌드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함께 이에 맞는 연구·개발 투자, 브랜드 파워 제고를 위한 전략 수립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용선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