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7월 4일 서울 금호아시아나 광화문 사옥에서 기내식 대란과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조선일보 DB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7월 4일 서울 금호아시아나 광화문 사옥에서 기내식 대란과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조선일보 DB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대란’에는 한국 대기업이 지닌 고질적인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시아나항공은 7월 1일 기내식 공급업체를 변경한 후, 운송 과정에서 혼선을 겪으며 여객기에 기내식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 문제로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 협력업체를 동등한 비즈니스 파트너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자신의 요구, 말을 잘 듣는 존재로만 바라본다는 점이다. 때문에 대기업-중소 협력업체 간 거래 관계, 구조에 문제가 생기고 장기적인 시너지를 발휘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둘째, 최고경영진 혹은 고위 간부들이 공급사슬관리(SCM·Supply Chain Management)를 잘 모르거나 중요도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아시아나항공은 변경한 기내식 공급업체의 생산 능력과 물류 시스템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업체만 바꾸면 된다고 안이하게 생각했고, 여기에 ‘하면 된다’는 과거 밀어붙이기식 경영도 더해졌다. 셋째, 위기 발생 시의 초기대응 훈련이나 매뉴얼이 부족했다. 문제가 발생한 후, 대응에 한발 늦었을 뿐만 아니라 고객 중심에서 위기관리가 이뤄져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문제점 1│대기업-협력업체 간 거래 관계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대란의 원인은 기내식 공급업체 교체에서 비롯됐다. 그렇다면 아시아나항공은 왜 기내식 공급업체를 변경했을까.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문제가 커지자 7월 4일 기자회견을 열고 “기존 기내식 공급업체인 LSG스카이셰프코리아(이하 LSG)가 원가 공개와 관련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품질을 비교해도 새로운 업체(중국 하이난그룹 계열사인 게이트고메코리아)와 거래하는 것이 이득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체 변경 과정에서 다른 요인이 작용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LSG는 계약 연장이 무산되자 “아시아나항공이 계약 연장 조건으로 1500억~2000억원 투자를 요구했는데, 받아들이지 않자 계약을 끝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했다. 

공교롭게도 아시아나항공의 지주회사 금호홀딩스(현 금호고속)는 2016년 2월 중국 하이난그룹과의 합작회사 게이트고메코리아와 30년짜리 기내식 서비스 계약을 체결하고, 하이난그룹으로부터 16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투자 유치를 위해 기내식 공급업체를 바꿨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아시아나항공이 협력업체에 투자를 요구한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아시아나항공이 LSG와 기내식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부분에서 협력하고 힘을 모아야 하는데, 비즈니스와는 관계없는 지주사 투자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고 그 요구를 듣지 않자 가차 없이 거래 관계를 끊었다는 것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아시아나항공이 협력업체를 비즈니스 파트너가 아니라 자신의 요구, 말을 잘 듣는 존재로 바라보기 때문에 발생한 사태”라고 말했다. 

특히 이런 대기업-중소 협력업체 간 거래 관계, 구조에는 큰 리스크가 있다. 협력업체가 대기업의 눈치를 보고, 언제 거래가 끊길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해하고, 이런 불안은 시설 확장, 제품 개발에 대한 투자를 결정하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한다. 그 결과 협력업체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협력업체로부터 제품을 공급받는 대기업의 서비스 질이 나빠진다. 이런 구조는 항공업뿐만 아니라 국내 다른 산업 곳곳에 뿌리 박혀 있어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문제점 2│SCM의 중요도·전문성 무시

김수천 아시아나항공 사장은 “기내식 공급업체 변경 첫날(7월 1일) 생산된 기내식을 포장하고 운반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혼선이 발생했고, 그 결과 일부 편은 지연되고 일부 편은 기내식 없이 운항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은 게이트고메코리아의 생산시설에 화재가 발생해 3개월 동안 임시로 샤프도앤코로부터 기내식을 공급받기로 했는데, 샤프도앤코는 중소기업으로 하루 물량이 약 3000개에 불과하다. 아시아나항공이 필요한 하루 기내식 물량은 3만 개에 달한다. 이처럼 샤프도앤코의 생산 능력과 시스템이 부족한데, 아시아나항공의 경영진은 ‘생산 시설과 배송 인력을 풀가동하면 된다’고 안이하게 생각했다.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이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아시아나항공 노밀(no meal) 사태 책임 경영진 규탄 문화제’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이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아시아나항공 노밀(no meal) 사태 책임 경영진 규탄 문화제’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하지만 물류 시스템은 작은 것 하나가 잘못돼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특히 기내식을 만들고 포장해 정시에 항공기에 탑재할 수 있도록 배송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경영진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업체만 바꾸면 된다고 판단했다. 권오경 인하대 물류전문대학원 교수는 “아시아나항공이 기내식 공급업체를 변경했는데, 이럴 때일수록 보다 철저하게 물류 시스템을 점검했어야 했다”면서 “특히 생산·포장·배송이 이뤄지는 주요 지점의 상황을 체크할 수 있는 트래킹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밤을 새워 제품을 만들고 공급하면 된다는 식으로 무리하게 밀어붙인 것도 문제였다. 실무진에서 공급 불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경영진은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더구나 지주사 투자 유치라는 사안이 걸려 있어 기내식 공급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니라 재무 부문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문제점 3│고객 중심의 위기 관리 부족

아시아나항공은 기내식 대란이 발생한 이틀 후인 7월 3일 회사 홈페이지에 김수천 사장 명의로 사과문을 게재했고, 4일에는 박삼구 회장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대응이 한발 늦었고, 적극적이지 못했다고 말한다. 기내식 대란이 터진 7월 1일 내부적으로 충분히 그 문제를 알고 있었을 텐데, 의사 결정자들이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빠르게 대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일 상황을 파악하는 데 급급했고, 현장에선 컨트롤타워가 없어 직원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경영진은 사건 발생 2일이 돼서야 대응 방향을 잡고, 노밀(no meal) 운항을 하더라도 지연을 줄이는 정시 출발에 초점을 맞췄다.

고객 중심의 사고도 부족했다. 보상 차원에서 항공권을 예매하고 면세품을 구입할 수 있는 30∼50달러(약 3만3000~5만6000원) 상당의 쿠폰을 지급했지만, 유효기간이 1년으로 짧고 쿠폰으로 기내 면세품을 사려는 승객이 늘어 안전 운항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정찬권 한국위기관리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기업에 문제가 터졌을 때 그 중요성을 파악하고 기업 내부에서만 알고 있는 게 아니라 고객에게 즉각 밝혀 원인은 무엇이고 충분한 보상과 앞으로 어떻게 개선해나갈 것인지를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위기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 위기로 인한 기업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막고 소비자 신뢰를 잃지 않을 수 있다. 

조직 내 신뢰도 부족했다. 소비자에게 신뢰를 주는 것은 물론 조직 내 신뢰가 있고 없고는 기업 운영에 있어 상당히 중요하다. 이는 위기 상황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7월 6일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은 가면을 쓰고 거리로 나와 기내식 정상화와 경영진 교체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정희 교수는 “조직 내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에 직원들이 하나로 뭉치지 못한다”며 “그런 조직은 위기 극복은 물론 지속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박용선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