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왼쪽) 삼성 부회장과 이재현(오른쪽) CJ 회장은 사촌 간이자 고교(경복고) 동문이다.
이재용(왼쪽) 삼성 부회장과 이재현(오른쪽) CJ 회장은 사촌 간이자 고교(경복고) 동문이다.

3년 전 삼성사회공헌위원회 부회장을 끝으로 38년간의 삼성맨 생활을 마무리했던 ‘샐러리맨 신화’ 박근희 전 삼성생명 부회장이 ‘CJ맨’이 돼 돌아왔다.

CJ는 박 전 삼성생명 부회장을 CJ대한통운 부회장으로 영입했다고 8월 10일 밝혔다. 박 부회장은 앞으로 대한통운 경영 전반에 대한 자문과 CJ그룹의 대외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그간 CJ그룹의 대외활동은 이채욱 부회장과 이재현 회장의 외삼촌인 손경식 회장이 총괄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올해 초 건강상의 이유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고, 손 회장도 지난 2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그룹 업무에서 한발 물러섰다.

삼성과 CJ는 신세계, 한솔그룹과 함께 범(汎)삼성가를 이루는 형제 기업이다. 고(故) 이맹희 명예회장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이자 이건희 회장의 형이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과 이재현 CJ 회장은 사촌 간이다. 이재현 회장은 이재용 부회장의 경복고 8년 선배이기도 하다.

하지만 삼성이나 CJ 고위직이 상대편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2012년 이 명예회장이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4조원대 상속 재산 분할소송을 제기하는 등 ‘남보다 못한’ 사이로 지내왔기 때문이다. 이 소송은 1·2심에서 연이어 패소한 이 명예회장이 2015년 타계하면서 마무리됐다.

소송이 한창 진행 중이던 2012년 2월에는 삼성물산 직원이 이재현 회장을 미행하던 중 적발돼 CJ 측으로부터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당하는 일도 있었다. 이보다 한참 앞선 1994년에는 삼성과 제일제당 간 계열 분리 당시 서울 한남동 이건희 회장 자택 3층 옥상에 바로 옆집인 이재현 회장 자택 정문 쪽이 보이도록 CCTV를 설치, 출입자를 감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갈등을 키우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구조조정본부 경영진단팀(부사장)과 중국 본사 사장, 삼성생명 부회장 등 그룹 요직을 두루 거친 박 전 부회장이 CJ로 ‘이적’한 배경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1978년 공채 19기로 삼성전관(현 삼성SDI)에 입사한 박 부회장은 상고(청주상고)·지방대(청주대) 출신으로 부회장 자리에 올라 ‘삼성맨의 신화’로 꼽힌다. 삼성그룹 비서실, 그룹 경영진단팀장을 거쳐 2004년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삼성캐피탈, 삼성카드 대표를 맡았고, 2005년 삼성 중국 본사 사장에 임명돼 6년간 삼성의 중국 사업을 이끌며 ‘중국 내 제2 삼성 건설’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삼성생명 사장·부회장, 삼성사회봉사단 부회장을 거쳐 2015년 연말 상담역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경영권 승계에서 두 그룹 갈등 시작

CJ그룹 관계자는 ‘이코노미조선’ 인터뷰에서 “박 전 부회장 영입은 CJ대한통운에서 직접 추진했고 두 회사 최고 수뇌부에서 이야기가 된 사안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두 그룹 간 화해 무드 조성이 본격화한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더군다나 CJ대한통운은 삼성과 CJ가 2011년 (당시 대한통운) 인수 경쟁에 나서며 비난전을 벌인 아픔이 남아 있는 곳이다. CJ의 박 부회장 영입이 두 그룹 간 화해의 신호탄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삼성과 CJ의 갈등은 2014년 이재현 회장의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이재용 부회장,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등 범삼성가 구성원들이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풀릴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이맹희 회장이 타계했을 때 이재용 부회장이 상주인 이재현 회장을 찾아 위로하면서 이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두 그룹 간 갈등의 뿌리는 경영권 승계였다. 이 선대 회장의 3남 5녀 중 장남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경영권을 이어받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졌으나 장남의 경영 능력을 믿지 못한 이 선대 회장은 3남인 이건희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겼다.

이재현 회장은 1997년 부회장 취임 당시 매출 2조원에 불과했던 CJ(당시 제일제당)를 엔터테인먼트, 홈쇼핑, 물류 등을 아우르는 매출 30조원, 재계 서열 15위의 종합생활문화 그룹으로 키우면서 ‘리틀 이병철’로 불릴 자격이 있음을 입증했다. 이 회장은 조부와 외모는 물론 경영 스타일까지 빼닮아 ‘리틀 이병철’로 불린다.

CJ와 삼성의 화해 무드가 본격화할 경우 문화와 테크 분야를 선도하는 두 그룹의 협력을 통해 상당한 시너지가 발생할 수도 있다. CJ그룹 관계자는 “두 그룹 간 본격적인 협력 계획은 아직 없다”면서 “2016년 CJ E&M이 삼성 에버랜드의 상징인 판다를 소재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Plus Point

염색으로 전한 변화의 메시지

박근희 CJ대한통운 부회장. 사진 조선일보 DB
박근희 CJ대한통운 부회장. 사진 조선일보 DB

2008년 12월,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고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전 세계로 확산되던 무렵 박근희 CJ대한통운 부회장은 당시 삼성그룹 중국 본사 사장으로 베이징에 머물고 있었다. 새치가 많아 30대부터 트레이드마크가 돼버린 백발을 ‘휘날리며’ 종업원 6만5000명의 거대조직을 이끌던 그였지만 눈앞에 놓인 경영환경은 답이 보이지 않았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경영진단팀장(부사장), 삼성카드 사장 등을 거치며 여러 차례 경영 체질 개선과 경쟁력 제고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중국에서도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할지 모른다는 사실에 누구보다 마음이 괴로웠다.

결국 자기 최면을 걸듯 중국 기자들 앞에서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다’고 선언한 그는 그해 12월 30일 종무식을 마친 후 머리를 검게 염색했다.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기 암시이자 이런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의지였다.

박 부회장은 2012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염색하러 왔다니까 단골 미장원 주인이 ‘무슨 소리냐’며 세 번이나 확인했다”며 “(염색 투혼) 덕분에 어려운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재계에서 손꼽히는 중국 전문가인 박 부회장은 중국이 1978년 개혁·개방 이후 2010년까지 무려 33년간 연평균 10% 고도성장을 했는데 불과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우리나라가 그 성장의 과실을 충분히 따 먹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당시 중국 사업 노하우를 묻자 “6년간 주재원으로 있었지만, 국가 체제가 복잡해 갈수록 더 모르겠더라”며 “‘선무당보다는 무식한 게 낫다’고 이야기하는데 중국이 정말 그렇다. 모르면 겸손하기라도 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