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루카리는 쓸모없어진 물건인 ‘불용품’ 시장을 활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 젊은이들의 소비 양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사진 블룸버그
메루카리는 쓸모없어진 물건인 ‘불용품’ 시장을 활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 젊은이들의 소비 양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사진 블룸버그

‘2001년 83회 고시엔(甲子園·고교 야구대회) 출전자로부터 받은 구장의 흙(1000엔)’

‘공원에서 주워 모은 도토리 30알(300엔)’

‘5캐럿 다이아몬드(315만엔)’

일본의 개인 간 중고 물품 판매 애플리케이션 ‘메루카리’에 올라와 판매가 완료된 상품들이다. 메루카리는 일본 중고품 열기의 중심에 있다. 2013년 온라인 벼룩시장으로 출발한 메루카리는 지난 6월 상장, 지금은 시가총액 4500억엔대 기업이 됐다. 삼성중공업 시총(4조5600억원)과 맞먹는 규모다. 메루카리라는 이름은 라틴어로 ‘장사하다’란 메르카리(mercari)에 유래했다. 마켓(시장)이라는 단어도 이 라틴어가 기원이다.

메루카리의 인기는 페이스북·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 비견될 정도다. 닐슨디지털콘텐츠에 따르면 1인당 월간 이용 시간은 메루카리가 3시간 30분으로 페이스북(2시간 39분)을 넘어섰다. 같은 기간 아마존은 1시간 26분에 그쳤다.

‘중고 거래’라는 새롭지 않은 아이템으로 일본 유일의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기업으로 성장한 메루카리를 통해 일본 소비자의 최근 특징을 살펴봤다.


포인트 1│잠자는 ‘불용품’ 시장 활성화

두루마리 휴지를 다 쓰면 나오는 휴지심은 보통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그런데 메루카리에서는 이런 ‘쓰레기’가 ‘팔리는 상품’이 된다. 시세는 개당 약 20~36엔(200~400원) 정도다.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의 만들기 준비물이 급히 필요한 부모들의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10월 11일 기준으로 앱에서 상품을 검색했더니 40건이 넘는 휴지심 판매 게시글이 화면에 떴다.

메루카리는 일본의 불용품(不用品) 시장을 활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쓸모없는 물건의 추정 가치가 7조6254억엔(약 78조원)에 달했다. 국내총생산(GDP·537조엔)의 1.5%에 달하는 물품이 집 안에 잠들어 있는 셈이다. 이런 물품들을 시장으로 끌어낸 것이 메루카리를 비롯한 야후오크, 라쿠마, 후릴 등 중고 업체다. 메루카리는 이 업계에서 점유율 60%를 차지하고 있다.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그 자체로는 가치가 없는 물품을 발굴, 활용해 거대한 시장으로 키운 것이다.

이 시장을 활성화한 것은 1200만 명에 가까운 이용자들이다. 메루카리 회원은 창업 5년 만에 1000만 명을 돌파했다. 덕분에 물품을 올리면 보통 24시간 안에 거래가 체결된다. 사람이 많이 모이다 보니 온갖 상품이 올라오고 수요자와 바로 매치되는 식이다.

고령사회도 불용품 시장과 메루카리를 키우고 있다. 장·노년층의 ‘생전(生前) 정리’ ‘유품 정리’ 움직임 덕분이다. 경제 주간지 ‘주간다이아몬드’는 “노년층을 중심으로 불단을 비롯해 족자, 오래된 수집품 등 각종 골동품을 상품으로 내놓는 사례가 많다”면서 “쓰레기나 다름없던 물품도 메루카리 앱에서는 가치 있는 상품으로 변한다”고 전했다.


포인트 2│되팔 것 감안 ‘新쇼핑 풍속도’

일본인 A씨는 메루카리 앱을 이용하면서 쇼핑 패턴이 달라졌다. 선호하는 브랜드의 신제품 가격은 4만엔 선. 종전엔 한 벌만 사도 부담스러웠지만, 최근에는 잘 팔릴 법한 옷을 골라 한 벌 더 산다고 한다. A씨는 “전체적으로 지출은 늘었지만 중고 가격을 감안해서 산다”며 “벌당 1만8000엔 정도는 남길 수 있다”고 했다.

메루카리는 소비 양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A씨처럼 ‘메루카리 시세’를 염두에 두고 물건을 사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처음부터 팔 생각을 하고 옷을 사는 것이다.

중고 물건에 대한 거부감도 줄었다. 지난 4월 메루카리가 게이오대 경영대 연구진과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대 응답자의 53.5%가 ‘중고 물건에 거부감이 없다’고 답했다. 이들은 새 상품을 고집하지 않고 되팔 것을 감안해서 물건을 사들인다. ‘주간다이아몬드’는 이를 두고 “‘영리하게’ 쇼핑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고 분석했다.

야마모토 히카루(山本晶) 게이오대 교수는 “중고 여부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물품을 사들여 쓰고 난 후 다시 파는 소비 양식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며 “‘소비자가 구매하는 제품=새 상품’이라는 지금까지의 상식을 뒤엎는 것”이라고 말했다.


포인트 3│생방송 사고파는 ‘경험’ 선호

니혼게이자이신문 산하의 생활 정보지 ‘닛케이 트렌디’는 올 초 올해의 히트 상품 중 하나로 ‘라이브 커머스(Live Commerce)’를 꼽았다. 전자상거래와 동영상을 결합한 콘텐츠로 모델이나 영향력 있는 인물, 일반인이 생방송으로 소통하며 물건을 파는 신개념 쇼핑 방식이다.

메루카리는 지난해 7월부터 ‘메루카리 채널’을 시작했다. 판매자가 직접 생방송으로 구매자와 소통하며 물건을 판다. 사진 게시물에는 상품 정보가 충분치 않다는 점에 착안했다. 구매자는 영상을 보다가 궁금한 점을 질문하고 구매까지 마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 소비자들이 메루카리 이용으로 얻을 수 있는 색다른 쇼핑 경험을 선호한다고 말한다. 메루카리 앱에는 하루 평균 100만 개가 넘는 물품이 새로 올라온다. 소비자들은 이 중 마음에 드는 제품을 골라 구매를 결정하는 ‘과정’과 동영상 등 새로운 방법으로 물건을 사고파는 ‘경험’에 재미를 느낀다. 메루카리의 조사에서 ‘거래를 찾는 설렘이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 응답자 비율이 51.8%로 가장 많았다.


포인트 4│‘간편성’으로 귀차니즘 잡아라

최근 일본에서 새로 떠오른 소비자층은 ‘귀차니즘(복잡하거나 오래 걸리는 일을 싫어하는 것)’족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들 특징을 △물건도 기술도 갖기 귀찮아하는 ‘셰어러(Sharer)’ △오래 걸리는 일을 싫어하는 ‘러셔(Rusher)’ △인간관계를 피하는 ‘솔리스트(Solist)’ 세 가지로 분류했다.

메루카리는 ‘간편성’으로 승부를 본다. 판매자는 스마트폰으로 물건을 찍어 가격과 특징을 적어 앱에 올린다. 구매자는 ‘구매’ 버튼 하나로 미리 등록해둔 신용카드로 결제를 끝낸다. 품이 많이 드는 상품 발송 절차도 앱에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인기 비결은 간편함”이라며 “개인 간 거래라 소비세가 들지 않는다”고 전했다.


포인트 5│중고 시세가 ‘진짜 시장 가치’

일본 대표 가전 브랜드는 샤프와 도시바, 소니 등이다. 그런데 메루카리에서 팔리는 LG전자의 중고 가전제품은 타 브랜드보다 가격대가 높고 큰 폭으로 출렁였다. 6월 기준 LG의 평균 거래 가격은 2만2202엔으로 소니(1만9358엔), 도시바(1만6801엔)보다 높았다.

아이폰 중 ‘보급형’으로 나온 SE 모델은 다른 기종에 비해 가격이 싸다. 실제로 애플 온라인 스토어에서 SE(3만9800엔)는 앞서 출시됐던 6s(5만800엔)보다 저렴하다. 그런데 메루카리에서는 SE가 6s보다 비싼 값에 거래된다. 7월 기준 2만2374엔으로 6s보다 약 2260엔 비싸다. SE가 소형 단말기를 선호하는 사용자들로부터 ‘더 높은 가치’를 부여받은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메루카리에서 거래되는 가격 데이터를 통해 제품의 ‘진짜 가치’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주간다이아몬드’는 “메루카리 시세에 소비자의 잠재 요구가 반영돼 있다”면서 “메루카리 시세는 기업의 ‘진짜 인기’와 흥망성쇠를 알 수 있는 지표”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