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7일부터 19일까지 제주 디아넥스 호텔에서 열린 ‘2018 CEO세미나’에서 말하고 있다. 사진 SK그룹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7일부터 19일까지 제주 디아넥스 호텔에서 열린 ‘2018 CEO세미나’에서 말하고 있다. 사진 SK그룹

“이제는 딥 체인지(deep change·근본적 변화)를 할 수 있는 방법론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동안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거나, 지속 가능하고 경쟁력이 있다고 스스로 믿는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고 혁신하는 게 딥 체인지의 출발점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17일부터 19일까지 제주 디아넥스 호텔에서 열린 ‘2018 CEO 세미나’에서 이같이 말했다. SK그룹은 매년 10월 그룹 최고 경영진이 모여 한해 성과를 평가하고 내년을 준비하는 세미나를 개최하는데, 올해는 ‘딥 체인지 실행력 강화’를 주제로 열었다.

최태원 회장은 2016년 그룹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 ‘딥 체인지’가 필요하다고 처음 언급한 이후 매년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변화하지 않는 기업은 서든데스(sudden death·급사)할 수 있다”는 급사론을 꺼내 들며 위기감도 고조시켰다. 지금은 SK하이닉스 등이 기록적인 실적을 내고 있으나 언제든 환경이 바뀌면 위기를 맞을 수 있기 때문에 각 기업의 체질을 아예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포스트 반도체’ 고민도 커져

SK그룹이 2012년에 인수한 SK하이닉스는 2000년대 들어 SK가 진행한 인수·합병(M&A) 중에서 가장 성공한 M&A라는 평가를 받는다. SK그룹은 SK하이닉스 인수 이후 그룹의 색깔도 달라졌다. 기존에는 SK텔레콤 등 내수 위주의 안정적인 사업이 주력이었으나 SK하이닉스 인수로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비중이 확 커졌다.

SK그룹은 지난해 총 75조4000억원을 수출해 전체 매출(139조원) 대비 비율이 54.2%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SK는 2014년에 매출액 대비 수출 비율이 처음으로 50%를 넘겼는데, SK하이닉스의 기여도가 컸다. 그룹 내 정보통신기술(ICT) 수출 규모는 SK하이닉스가 편입된 2012년 9조5000억원에서 2014년 16조2000억원으로 늘었고 작년엔 30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SK가 3조4000억원에 인수한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시황 호황과 맞물려 매년 기록적인 실적을 내고 있다. 2016년 17조1979억원이던 매출액은 작년에 30조1094억원으로 늘었고, 올해는 40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2016년 3조2767억원에서 작년 13조7213억원으로 급증한 영업이익도 올해는 22조원을 웃돌 것으로 증권사들은 예측했다.

SK하이닉스가 매년 실적을 경신하자 그룹 내에서는 ‘포스트 반도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실제 그룹 내에서 ‘하이닉스 쏠림’ 현상은 매년 심해지고 있다. 최태원 회장이 맡고 있는 SK그룹 상장 계열사 중에서 증권사가 올해 실적 추정치를 내놓은 기업은 SK㈜,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SK머티리얼즈 등 8개다.

이 중 지주회사인 SK㈜를 뺀 나머지 7개 회사의 올해 총매출 예상액은 117조3820억원, 총영업이익 추정치는 27조1660억원이다. 7개 회사의 전체 예상 매출액 중에서 SK하이닉스가 차지하는 비율은 36.2%, 예상 총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81.9%에 달한다. 작년에 SK하이닉스의 매출 비율은 30.7%, 영업이익 비율은 72.8%였는데 올해 더 늘어난 것이다.

일각에서는 반도체 호황이 곧 꺾일 것이라는 목소리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중국 업체들의 반도체 공장이 완공되면 공급부족이 공급과잉으로 전환되고 2019~2020년에는 우리 기업의 생산확대가 공급과잉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예상했다.

SK그룹의 고위 관계자는 “하이닉스가 작년부터 기록적인 실적을 내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동시에 걱정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며 “지금 실적은 좋지만, 반도체 경기가 언제 꺾일지 모르기 때문에 위기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바이오·모빌리티에서 승부수

요즘 SK그룹의 최대 고민은 반도체 호황이 끝날 때를 대비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것이다. 최태원 회장은 올해 3월 향후 3년간 8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히면서 반도체·소재, 에너지 신산업, 헬스케어, 차세대 ICT, 미래 모빌리티 등을 5대 중점 사업으로 꼽았다. SK는 최근 이 분야와 관련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SK는 올해 7월 미국 바이오·제약 업체인 암팩(AMPAC) 지분 100%를 약 5100억원에 인수했고, 작년엔 다국적 제약사 BMS의 아일랜드 생산 시설을 1800억원에 사들였다. 바이오 위탁개발 생산(CDMO·Contract Development Manufacturing Organization)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자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모빌리티 분야에서도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작년 9월엔 미국의 차량 공유서비스 회사 투로(TURO)에 약 400억원을 투자했고, 올해 3월엔 ‘동남아의 우버’로 불리는 차량 공유서비스 회사 그랩(Grab)에 약 800억원을 투자했다. 모빌리티 분야는 SK하이닉스(반도체), SK텔레콤(자율주행), SK이노베이션(전기차 배터리) 등 그룹의 주력 계열사들과도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다.

최근 M&A 시장에서는 매물이 나오면 인수 후보자로 SK그룹이 가장 먼저 거론된다. 주요 그룹 중에서 오너십이 가장 안정된 상태이고 SK하이닉스 덕분에 막대한 현금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12월에는 금호타이어, 올해 7월엔 아시아나항공을 SK가 인수할 것이란 소문이 돌기도 했다.

SK그룹은 기존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SK하이닉스 인수 이후 지금까지 M&A 및 투자에 약 10조원을 썼다. SK 관계자는 “M&A를 활발하게 하니 여러 추측이 나오는 것 같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한 투자는 앞으로도 계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