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 포장에 부착된 NFC 태그를 통해 추천 조리법 정보를 읽어들이는 모습. 사진 막스앤드스펜서
식재료 포장에 부착된 NFC 태그를 통해 추천 조리법 정보를 읽어들이는 모습. 사진 막스앤드스펜서

“저를 발라주세요.”

햇볕 따가운 주말 오후.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서는데 핸드백 속 선크림이 말을 건다. 집에 돌아와 냉장고를 여니 참치 통조림이 “유통기한이 얼마 안 남았다”며 먹어달라고 재촉한다.

황당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현실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사물인터넷(IoT)과 스마트 센서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인텔리전트 패키징(포장)’ 혁명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시장조사 업체 얼라이드마켓리서치는 세계 스마트센서 관련 시장 규모가 2022년에 지금보다 네 배 가까이 성장해 317억달러(약 36조16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참고로 세계 패키징 산업은 연간 1000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2014년 38조원이었던 국내 패키징 산업은 2020년엔 56조원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센서는 압력과 온도, 가속도, 생체 신호 등 각종 정보를 감지해 전기적인 신호로 변환시키는 장치로 IoT의 핵심 요소 중 하나다. 스마트 센서는 여기에 데이터 처리와 통신 기능 등을 결합해 스스로 의사 결정과 정보 처리가 가능한 센서를 말한다.


워터.io가 개발한 ‘스마트 뚜껑’. 사진 워터.io
워터.io가 개발한 ‘스마트 뚜껑’. 사진 워터.io

아마존도 인텔리전트 패키징 적극 도입

스마트 센서와 IoT 기술 접목은 최근 몇 년간 가전 분야에서 두드러졌다. 냉장고에 남은 음식을 파악해 구매가 필요한 아이템 목록을 스마트폰 앱을 통해 표시해 주는 식이다. 최근에는 적용 범위가 제품 포장 영역으로 넓어졌다. 미국의 ‘낙타 우유’ 전문 기업 데저트 팜스(Desert Farms)는 온라인과 모바일 매장을 통해 판매하는 자사 제품 포장에 배송 과정과 포장된 제품 온도를 파악할 수 있는 스마트 센서를 적용해 서비스 중이다.

이스라엘 스타트업 워터.io(Water.io)는 스마트 센서가 부착된 플라스틱 뚜껑 연구·개발에서 앞선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스마트 뚜껑’은 세제와 샴푸·음료수·화장품 등 다양한 제품에 적용할 수 있다. 이 경우 남은 양이나 신선도 등을 파악, 블루투스나 원터치 근거리 무선통신(NFC) 전자태그(RFID)를 통해 사용자의 스마트폰 앱으로 관련 정보를 전송해 준다. 사용이 끝났거나 유통기간이 지났을 경우 자동으로 새 제품을 주문하도록 설정할 수도 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도 인텔리전트 패키징 도입에 적극적이다. 아마존은 IoT 기반 ‘대시 보충 서비스(DRS)’를 통해 고객 설정에 따라 프린터 토너나 세제, 커피 원두 등 소모품과 생필품이 소진되기 전에 자동 주문과 배송해주는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아마존 대시 서비스는 ‘대시 버튼’을 눌러 필요한 물건을 아마존닷컴을 통해 공급받는 서비스다. 대시 버튼은 작은 직사각형 기기에 붙은 동그란 버튼이다. 각각의 버튼에는 주문하고자 하는 생필품 브랜드의 로고가 붙어 있다. 소비자들이 필요한 물건의 버튼을 누르면 집 안의 와이파이망을 통해 아마존 앱이 깔린 스마트폰과 연동돼 필요한 물품을 자동으로 주문하게 된다. DRS 서비스에 가입하면 버튼을 누르는 수고 없이 사용량에 따라 자동으로 새 제품 구매를 결정해 주문한다.

무선 통신을 접목한 인텔리전트 패키징의 단점은 비용이다. 아마존의 경우 DRS 서비스를 위해 제품 포장에 NFC 태그를 적용하는 데 개당 15센트(약 170원)가 추가된다. 아마존에 DRS 서비스 솔루션을 제공하는 스마트 패키징 전문 기업 자빌패키징솔루션의 어맨다 윌리엄스 수석연구원은 관련 보고서에서 “고가의 화장품이나 향수라면 몰라도 개당 2달러(약 2200원)짜리 제품에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분석했다.

혁신적인 기능을 장착한 만큼 관련 제품의 가격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기업들이 인텔리전트 패키징에 큰 기대를 거는 이유는 따로 있다. 구매와 사용, 재구매 과정을 통해 축적되는 엄청난 양의 고객 데이터가 그것이다. 특정 기업의 인텔리전트 패키징 제품 소비가 늘면 데이터 수집에 사용되는 표본 집단도 증가한다. 이 경우 제품 사용 주기와 취향 변화 등에 관한 의미 있는 정보 수집이 가능해진다. 이를 신제품 개발이나 프로모션 등에 활용해 판매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

NFC를 적용한 인텔리전트 패키징은 고객과의 소통 채널로도 요긴하게 쓰인다. 온라인 소비자 조사 개발 업체인 플레이버위키(FlavorWiki)는 NFC 기술을 이용해 고객이 제품에 직접 피드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동명의 테킬라 제조사로 유명한 엘히마도르(El Jimador)는 2018년 멕시코 축구팀의 미국 투어 스폰서로 나서면서 테킬라 병에 부착된 NFC 태그를 스캔해 경품 응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인텔리전트 패키징은 온도 변화에 민감한 백신 등 의약품의 유통 분야에서도 각광받고 있다. 사용 범위가 넓어지면서 앞으로 정보통신기술(ICT) 기업과 포장·배송 기업 간 협력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모든 인텔리전트 패키징에 스마트 센서가 사용되는 건 아니다. 제품의 상태 변화를 색상 변화를 통해 알려주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 인텔리전트 패키징에 포함된다. 음식이 상했을 때 포장지나 용기의 색 변화로 알려주는 포장 기술이 대표적이다. 이와는 좀 다르지만 식품 포장재 내부를 특수 코팅해 유통기한을 연장하는 ‘액티브 패키징’도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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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C(Near Field Communication) 13.56MHz 주파수 대역을 사용해 단말기 간 데이터를 전송하는 근거리 무선통신 기술이다. 통신 거리가 10㎝ 이내로 제한된다는 단점이 있지만, 아주 짧은 거리에서 통신 신호를 주고받기 때문에 무선 정보가 다른 곳으로 새나가기 어렵다는 장점도 있다. 이 때문에 모바일 결제 서비스에 널리 사용된다. 결제 서비스 외에 수퍼마켓이나 일반 상점의 물품 정보나 방문객을 위한 여행 정보 전송, 교통, 출입통제 잠금장치 등에도 폭넓게 적용된다.

RFID(Radio-Frequency Identification) 무선 주파수를 이용해 대상을 식별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기술. 안테나와 칩으로 구성된 RFID 태그에 정보를 저장해 적용 대상에 부착한 후, RFID 리더로 정보를 인식한다. 바코드와는 달리 물체에 직접 접촉하거나 어떤 조준선을 사용하지 않고도 데이터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여러 개의 정보를 동시에 인식하거나 수정하는 것도 가능하며, 태그와 리더 사이에 장애물이 있어도 정보를 인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