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질레트가 발표한 ‘We believe: The Best Men Can Be’ 광고 속 한 장면. 남자 아이들의 싸움을 성인 남성이 말리고 있다. 유해한 남성성을 남자들이 스스로 바꿔나가자는 내용이다. 사진 질레트
지난 1월 질레트가 발표한 ‘We Believe: The Best Men Can Be’ 광고 속 한 장면. 남자 아이들의 싸움을 성인 남성이 말리고 있다. 유해한 남성성을 남자들이 스스로 바꿔나가자는 내용이다. 사진 질레트

지난 1월 질레트가 발표한 1분 48초 광고 영상은 미투운동을 보도하는 뉴스 소리로 시작된다. 이어 성추행하는 남성, 이를 방관하는 남성, 남자 아이들의 싸움을 귀엽게 넘기는 남성의 모습이 담긴다. 남성들은 “사내 애가 그렇지 뭐(boys will be boys)”라며 넘긴다. 영상 속 남성들의 반응에 “이것이 한 남자가 얻을 수 있는 최선일까.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숨을 수 없다. 그것은 너무 오랫동안 계속됐다. 똑같은 변명을 늘어놓고 웃으며 넘겨버려서는 안 된다”는 내레이션이 나온다. “남성성의 유해한 부분을 고쳐나가자”는 것이 이 광고의 주요 메시지다.

질레트 광고와 같이 페미니즘 메시지를 담은 광고를 ‘펨버타이징'이라 부른다. ‘페미니즘(Feminism)’과 ‘광고(Advertising)’의 합성어로 영미권 기업들은 펨버타이징을 오래전부터 광고 전략으로 차용했다. 샴푸 브랜드 도브는 2013년 외모지상주의에 위축된 여성의 자존감을 북돋는 ‘리얼 뷰티 스케치(Real Beauty Sketch)’ 광고를 제작했고, P&G의 여성용품 브랜드 올웨이즈도 2014년 소녀의 주체성을 보여주는 ‘소녀처럼(Like A Girl)’ 캠페인을 진행했다.

하지만 남성 브랜드로 인식된 면도기 업체가 펨버타이징을 적극 전면에 내세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질레트는 그간 ‘남성성’을 강조한 광고를 만들었다. 상의를 탈의한 근육질 남성이 면도하는 영상이 대표적이다. 질레트는 ‘남자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물건(The Best a Man Can Get)’이라는 캐치프레이즈도 전면에 내세웠다.

오히려 남성 소비자를 의식하다 보니 선정성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지난 2013년 가상현실 게임 콘셉트의 광고가 문제였는데, 시청자가 영상 속 가상 여자친구 가수 강민경의 집에 놀러가는데 면도를 해야 키스를 받는 내용이었다. 당시 “카메라가 강민경의 몸매를 대놓고 훑는다” “키스하는 과정이 AV(성인 비디오) 같다”는 비판이 있었다.

남성 브랜드가 여성 소비자를 공략하는 펨버타이징 전략을 취하기는 쉽지 않다. 탄탄한 구매층인 남성 소비자들이 돌아설 가능성을 무시하지 못한다. 실제 지난달 질레트 광고 이후 미국 남성 소비자들은 “질레트가 남성을 유해한 집단으로 일반화한다” “질레트가 소비자에게 훈계하는 오만함을 보인다”면서 거부감을 표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질레트 보이콧’ 선언이 이어지기도 했다. 언론에서는 질레트의 펨버타이징 전략이 실패했다는 비판을 이어갔다.

질레트는 논란 이후에도 입장을 굽히지 않고, 글로벌 마케팅 담당자가 포브스와 인터뷰하는 여유도 보였다. 모두가 실패했다고 말했지만, 질레트는 사실 남몰래 성공을 거뒀다. 단순히 노이즈 마케팅을 노린 것이 아니다. 기업의 낡은 이미지를 세탁하고 고객층을 다변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효과를 봤다.


밀레니얼 세대와 젊은 소비자 사로잡아

150년 역사를 지닌 질레트는 미국에서 도태되고 있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일례로 고객 연령층이 높다. 애드위크에 따르면 질레트 고객의 64%는 35세 이상에 해당한다. 반대로 말하면 젊은 세대 고객이 유입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는 사이 젊은 이미지의 면도기 업체들이 급부상했다. 지난 2011년 “요즘 면도기는 너무 비싸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면도날 배달 업체들이 등장했다. ‘달러 셰이브 클럽’과 ‘해리스’는 질레트보다 60% 저렴한 가격에 면도기를 판매하고, 면도날 정기 구독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기업들이 설립된 이후 질레트의 시장 점유율은 6년 연속 하락해 50%까지 추락했다.

펨버타이징 전략은 위기에 몰린 질레트에 이미지 쇄신의 기회를 제공했다. 질레트는 젊은 세대의 관심사인 ‘페미니즘’을 화두로 던지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젊은 세대의 관심 밖이던 질레트가 이들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것이다.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젊은 세대들은 질레트 광고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전 연령대에선 질레트 광고를 보고 분노한 남성 소비자가 많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젊은 세대에 국한시키면 결과는 달라진다. 퍼시(Perksey)가 18~34세 미국인 3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여성 응답자의 84%와 남성 응답자의 77%가 질레트 광고를 “긍정적으로 봤으며 공격적이라고 느끼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 중 여성 응답자 33%와 남성 응답자 20%는 심지어 “이 광고가 너무 좋았다(loved)”고 답했다.

여성 소비자를 공략하는 효과도 있다. 미디어에 남성의 면도 장면이 흔히 등장하지만 사실 여성도 제모에 관심이 많다. 애드위크에 따르면 온라인 상에서 면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비중은 여성이 62%로 남성(38%)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실제 질레트는 남성 브랜드라는 이미지와 달리 여성 소비자가 44%를 차지한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매출 실적도 좋다. 지난해 여성 전용 면도기 ‘질레트 비너스’의 미국 매출액은 2900만달러(327억2070만원)였다. 미국 소비 시장에서 두번째로 가장 많이 팔린 제품이었다. 이번 광고는 여성 소비자들의 충성도를 높이는 기회로 작용할 전망이다.


Keyword

펨버타이징(Femvertising) ‘페미니즘 (Feminism)’과 ‘광고(Advertising)’의 합성어. 2014년 미국 광고업계에서 등장한 용어로 성 차별적이거나 성적 매력을 부각시키는 광고와 달리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소비자의 이목을 쉽게 끌면서 이윤 추구에도 도움되는 새로운 광고 형식으로 각광받는다.

plus point

진짜 리스크는 ‘남성 소비자’ 아닌 ‘이중성’

핑크 택스로 논란이 된 질레트의 면도기. 사진 더스트리트
핑크 택스로 논란이 된 질레트의 면도기. 사진 더스트리트

펨버타이징의 리스크 요인으로 ‘남성 소비자’가 꼽힌다. 광고의 내용이 남성성의 부정적인 면을 지적하면 이들의 반감을 사서 매출 감소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리스크 요인은 바로 기업의 ‘이중성’이다. 기업이 실제 사업 과정에서 여성 차별적인 모습을 보이면 펨버타이징의 내용도 아무 쓸모 없기 때문이다. 기업의 광고가 진정성을 의심받으면 남성 소비자는 물론 여성 소비자들도 지지를 거두기 마련이다.

실제 질레트는 광고 논란 이후 ‘핑크 택스’ 지적을 받았다. 핑크 택스란 동일한 기능의 상품인데도 여성용 제품이 남성용보다 높은 가격에 책정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질레트는 여성용 면도기 제품을 남성용보다 개당 33센트씩 더 비싸게 팔았다. 한 여성 트위터 이용자는 “나는 질레트 광고를 좋아한다. 남자들이 당연히 들어야 할 메시지를 담았다. 하지만 이 기업이 핑크 택스로 돈을 번다는 사실을 듣고 광고 메시지가 공허하게 느껴진다”고 반응했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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