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킹덤(사진1~4)’에 등장한 ‘갓’이 해외에서 뜻밖의 한류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킹덤에는 갓, 정자관, 사모 등 다양한 모자가 등장한다. 1부가 공개되자마자 해외 시청자들은 한국의 전통 모자에 많은 관심을 드러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디자이너들은 이미 전통문화의 가능성을 간파하고 갓과 한복 등에서 영감을 받은 패션(사진5~7)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 넷플릭스·선데스쿨 페이스북·최지원
드라마 ‘킹덤(사진1~4)’에 등장한 ‘갓’이 해외에서 뜻밖의 한류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킹덤에는 갓, 정자관, 사모 등 다양한 모자가 등장한다. 1부가 공개되자마자 해외 시청자들은 한국의 전통 모자에 많은 관심을 드러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디자이너들은 이미 전통문화의 가능성을 간파하고 갓과 한복 등에서 영감을 받은 패션(사진5~7)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 넷플릭스·선데스쿨 페이스북·최지원

“킹덤은 좀비와 멋진 모자에 관한 드라마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이 전 세계 시청자로부터 이런 반응을 얻으며 뜻밖의 한류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주인공은 바로 조선 시대 모자 ‘갓’이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좀비 드라마인 ‘킹덤’에는 갓, 정자관, 사모, 전립 등 다양한 모자가 등장한다. 1부가 공개되자마자 해외 시청자들은 한국의 전통 모자에 많은 관심을 드러냈다.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 넷플릭스의 첫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인 ‘킹덤’은 27개 언어로 번역돼 1월 25일 전 세계 1억4000만 명의 넷플릭스 시청자에게 동시 공개됐다.


미국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에 갓을 판매하는 게시물이 등장했다. 사진 아마존
미국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에 갓을 판매하는 게시물이 등장했다. 사진 아마존

좀비보다 인기 끈 ‘갓’

트위터에서 ‘Kingdom Hat’을 치면, 한국인이 미처 예상치 못한 외국인 반응이 뜬다. 이들은 “킹덤은 좀비와 멋진 모자에 관한 드라마”라고 정의하는가 하면, “이 좀비 쇼는 모든 캐릭터가 어떻게 멋진 모자를 쓰는지 초점을 맞춘다”고 평했다. 영화 ‘19곰 테드’를 제작한 존 제이콥스는 “모두가 모자를 쓰고 있다. 이것을 설명해 줄 전문가가 필요하다”라고 썼다. 미국 인터넷 쇼핑몰 이베이와 아마존에는 ‘한국 전통 모자(넷플릭스 킹덤) 갓(gat, god)’이라는 제목으로 갓을 판매하는 게시물이 등장했다.

외국인이 한국 전통 모자에 관심을 가진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개항기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각양각색의 모자를 쓴 조선인의 모습을 보고 많은 기록을 남겼다. 프랑스 학자 샤를 바라는 ‘투르 드 몽드’에서 “조선은 모자의 왕국”이라고 표현했고, 미국인 로웰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1885년)’에 “집 안에서 신발은 벗어도 모자는 썼다. 밥을 먹을 때도 겉옷은 벗어도 모자는 쓰고 먹었다”라고 기록했다. 현대 외국인들의 호들갑(?)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반응이 흥미롭다.

현대에도 조선 모자에 대한 관심은 이어졌다. 미국 패션 디자이너 캐롤리나 헤레라는 뉴욕에서 열린 2011년 봄·여름 패션쇼에서 여성 모델들에게 갓을 연상시키는 모자를 씌웠다.

외국인들은 왜 갓에 매료된 걸까?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의상 감독이자, 저서 ‘조선복식미술’을 쓴 금기숙 전 홍익대학교 교수는 “서양에는 없는 새로운 형태”를 이유로 꼽았다. 그는 “양반들이 쓰는 흑립(黑笠·검은 갓)은 말총을 총총히 엮어서 만드는데, 머리에 쓰면 상투가 투명하게 비친다. 이는 소재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형태”라면서, “조선 시대 양반은 주로 흰색이나 옥색 같은 밝은색 두루마기를 입었는데, 여기에 까만 갓을 쓰면 얼굴이 또렷하고 위엄 있어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조선 시대에는 ‘의관정제(衣冠整齊)’가 기본예절이었다. 선비들은 날씨에 상관없이 옷매무시를 단정히 하고 갓을 써서 예를 갖췄다. 매일 쓰다 보니 모자가 발달할 수밖에. 신분과 장소, 상황에 따라 쓰는 모자 종류도 다양했다. 실제로 김홍도나 신윤복의 풍속화를 보면 밥 먹는 양반, 춤추는 무동, 훈장, 악공, 돗자리공, 대장장이, 혼례식 신랑, 포졸, 기생까지 각기 다른 모자를 쓴 것을 볼 수 있다. 모자마다 관(冠), 건(巾), 모(帽), 립(笠) 등 뒷말이 붙는다.


‘킹덤’ 해외 팬들이 그린 팬아트. 사진 트위터
‘킹덤’ 해외 팬들이 그린 팬아트. 사진 트위터

집에서도 밖에서도 모자 쓴 조선인

외출할 때는 물론 실내에서도 모자를 썼다. 사대부의 경우 밖에서는 갓, 집 안에서는 정자관으로 멋을 냈다. 남의 집을 방문했을 때도 갓을 벗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프랑스인 앙리 갈리는 책 ‘극동전쟁(1905)’에서 “조선의 모자 종류를 모두 늘어놓는 건 불가능하다. 4000종은 넘을 것”이라 기록했고, 스코틀랜드 출신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는 “조선인은 대체로 소박하고 단순하지만, 모자만큼은 예외적으로 다양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라고 말했다.

선비들은 모자가 품위를 드러내는 수단이라 여겼다. 그래서 비싼 말총으로 갓을 만들고, 갓 꼭대기에 옥으로 만든 옥로로 장식했다. 또 비가 오면 갓 위에 방수용 모자인 갈모를 써 갓을 보호하고, 갓을 쓰지 않을 땐 전용 갓집에 넣어 보관했다. 갓에 대한 애착은 크기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져, 조선 후기에는 어깨너비만 한 갓이 나왔다. 결국,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은 갓의 크기를 규제했다. 구한 말 찍힌 사진들을 보면 낭패(챙)가 좁은 갓이 등장한다. 고종황제도 작은 갓을 썼다.

100여 년이 흐른 후 ‘갓’은 다시 서양인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했다. 숱하게 보면서도 그냥 지나쳤던 우리의 전통문화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것을 보니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라는 말이 실감 난다. 금기숙 교수는 “인터넷과 SNS의 영향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서구 문화가 세계적이라고 인식됐지만, 이제는 동양과 동양 문화에 관심 갖고 존경하는 태도가 강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전통문화의 가능성을 간파한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들은 이를 무기로 해외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국 디자이너 듀오 선데스쿨(Sundae School)은 지난해 갓과 한복에서 영감받은 스트리트 패션을 선보여 미국 고급 백화점 체인 바니스에 입점했고, 파슨스디자인스쿨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최지원(Jiwon Choi) 디자이너는 갓을 응용한 모자를 씌운 패션쇼를 선보인 후 세계적인 스포츠 업체 아디다스의 눈에 띄어 협업 컬렉션을 출시했다.

김은영 조선비즈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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