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 불법 수출된 한국발 플라스틱 쓰레기. 사진 연합뉴스
필리핀에 불법 수출된 한국발 플라스틱 쓰레기. 사진 연합뉴스

“우리는 한국의 쓰레기통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15일(현지시각) 주필리핀 한국대사관 앞에서 진풍경이 펼쳐졌다. 필리핀 환경단체 ‘친환경 쓰레기 연합’ 회원들이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방치된 한국산 불법 쓰레기를 되가져가라”며 시위를 벌인 것이다.

지난해 7월 필리핀 관세청이 ‘합성 플라스틱 폐기물’로 신고된 한국산 폐기물 컨테이너에서 기저귀, 폐배터리, 전구 등이 섞인 쓰레기더미를 발견한 데 따른 사태다. 앞서 경기 평택시의 한 폐기물 수출업체가 온갖 쓰레기가 섞인 컨테이너를 재활용이 가능한 폐플라스틱이라고 속여 필리핀으로 수출했다. 필리핀 관세청은 1200t의 쓰레기가 담긴 컨테이너 51개를 압류 조치해 한국으로 반송했고, 이 컨테이너 51개를 실은 선박이 2월 3일 평택항에 도착했다. 이른바 ‘필리핀 불법 쓰레기 U턴 사건’이다.

이 사건은 필리핀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한국이 필리핀을 ‘쓰레기통’ 삼았다는 오명을 쓰게 했다. 현재 돌아온 폐기물은 처리 책임을 놓고 환경부와 평택시가 맞서고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평택항에 남아있는 상황이다. 국내 업체로부터 쓰레기를 수입한 필리핀 현지 업체가 소유한 부지에서는 5100t의 한국산 쓰레기가 추가로 발견됐다.

이번 사건에 대해 폐기물 처리 업계는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1년 전 중국이 폐플라스틱 수입을 전면 금지하자 판로를 찾지 못한 폐기물 처리 업체들이 필리핀·태국·베트남 등 동남아에 쓰레기를 불법 수출하는 일을 공공연히 해왔다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과거 중국으로 가던 물량이 90% 이상 급감하면서 동남아로 폐기물이 몰렸다. 국내 소각업체는 줄어들고 있는데 폐기물은 더 많이 쏟아지니 국내 여기저기에 폐기물을 불법 방치해놓는 현상도 발생했다. 실제로 국내 소각업체가 하루 동안 처리하는 폐기물량은 2010년 2만8457t에서 2017년 3만2083t으로 13% 증가한 반면 소각업체 수는 같은 기간 672개에서 395개로 41% 급감했다. 폐기물 처리 비상이 걸린 업계에선 제2, 제3의 필리핀 쓰레기 U턴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대응으로 환경부가 2월 21일 소각시설 규제 완화 등을 골자로 한 ‘불법 폐기물 관리 강화 대책’을 발표했지만, 업계에선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폐기물 처리에 대한 대책은 있지만 생산 단계에서의 해결방안이 없다는 것이다. 환경단체 그린피스 관계자는 “폐기물 소각 처리는 한 번 쓰고 쉽게 버리는 대량 생산 방식을 아무런 반성 없이 뒷받침하는 정책”이라며 “기업이 제품 포장에 사용하는 일회용 플라스틱 소비량을 조사하고 소비 감축 목표, 로드맵을 제시하는 등 생산자 책임을 강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필리핀 환경단체 ‘친환경 쓰레기 연합’ 회원들이 주필리핀 한국대사관 앞에서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방치된 한국산 불법 쓰레기를 되가져가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필리핀 환경단체 ‘친환경 쓰레기 연합’ 회원들이 주필리핀 한국대사관 앞에서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방치된 한국산 불법 쓰레기를 되가져가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英, 2042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 완전 제거

일례로 영국은 지난해 1월 발표한 ‘25개년 환경 계획’을 통해 생산자 책임을 확대하는 제도를 강화하고 있다. 이 계획은 2042년 말까지 불필요한 플라스틱 폐기물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생산자에게 제품의 환경적 영향에 대한 책임을 확대시키고, 플라스틱을 더 쉽게 재활용하고 재활용된 플라스틱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업계와 협력한다. 또 영국은 바이오 기반의 친환경적인 플라스틱을 개발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특히 비닐봉지 사용 시 요금 5펜스(약 75원)를 부과하는 대상을 소규모 소매점으로까지 확대해 유통되는 플라스틱 양까지 줄이고 있다.

플라스틱 폐기물로 몸살을 앓기 시작한 일본도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 2월 일본 정부는 정부 기관에서 플라스틱 빨대와 식기류 사용을 금지하고, 회의 등 행사 시 플라스틱 물병을 나눠주지 말라는 지침을 발표해 오는 4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환경성은 현재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을 25% 줄이는 안을 준비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움직임에 발맞춰 일본 기업들도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겠다고 속속 선언하고 있다. 일본 외식업체 스카이락홀딩스는 지난해 말 자사 레스토랑에 플라스틱 빨대 등을 공급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스타벅스 재팬과 호텔 체인을 운영하는 로열홀딩스 등은 2020년까지 플라스틱 빨대를 쓰지 않겠다고 했다.

한편 기존 소각시설의 폐기물 처리 용량을 최대 25%까지 확대하고 고형폐기물연료(SRF) 처리시설에 반입하는 폐기물의 품질검사를 완화하겠다는 환경부의 정책도 우려를 낳고 있다. SRF는 재활용이 어려워 단순 소각·매립되던 가연성 생활폐기물이나 산업폐기물을 고형 연료로 만든 것이다. SRF 열병합발전소는 이 고형 연료를 소각해 전기를 생산하고 남은 열을 난방이나 온수 생산에 활용한다.

폐기물에 남아있는 유해물질이 소각될 때 1급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을 비롯해 각종 중금속과 미세먼지가 발생할 확률이 높은데도 소각시설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국민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SRF 처리시설에 반입하는 폐기물의 품질검사를 완화하면 자동차 파쇄 잔재물, 폐타이어 등 부적합 연료가 사용돼 비소, 카드뮴 등 중금속이 다량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단순히 업체 부담을 낮춰 폐기물 재활용 비율을 높이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얘기다.

이정현 환경운동연합 부총장은 “소각시설 규제 완화가 단기간 내에 불법 폐기물을 처리할 최선의 방법처럼 보이지만 결국 폐기물 처리시설에 대한 불신을 키워 주민 갈등을 부추길 것”이라며 “오히려 품질검사 기준을 강화해 소각시설 설치에 대한 지역주민의 수용성을 높이고 ‘폐기물 처리시설 설치 촉진 및 주변 지역 지원 등에 관한 법률(폐촉법)’ 지원 대상을 확대해 환경 피해를 겪는 주민을 보상하는 것이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폐기물 관리 점검 인원 확대, 환경사법경찰 권한 강화, 지자체 환경담당 공무원의 전문성 확보 등 인프라 지원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plus point

폐기물 대란으로 주목받는 클린테크 스타트업

폐기물 문제를 해결할 클린테크(녹색기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클린테크란 물질과 에너지를 절약하고 오염을 원천적으로 없애거나 줄이는 기술이다. 최근 다양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클린테크 스타트업이 주목받고 있다.

2014년에 설립된 국내 친환경 스타트업 리페이퍼는 썩는 종이컵을 개발했다. 리페이퍼가 개발한 친환경 코팅제 ‘RP-시리즈(RP-series)’는 100% 재원료화가 가능한 제품이다. 리페이퍼는 이 기술로 식품 안전성 적합 인증, 친환경 인증 등을 받아 유럽 제지사 렉타그룹에 코팅제를 독점 공급하고 있다. 렉타그룹은 2021년까지 350억원 규모의 코팅제를 리페이퍼로부터 구매하기로 했다.

이큐브랩은 2011년 설립된 국내 쓰레기 수거 관리 솔루션 기업이다. 태양광 에너지로 작동하는 쓰레기통 ‘클린큐브’를 개발해 유럽, 중동, 남미, 미국 등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클린큐브는 태양광 전력으로 쓰레기통 내부에 쌓인 쓰레기를 최대 5분의 1로 압축할 수 있다. 스웨덴 스타트업 판타포는 스웨덴 내 재활용 스테이션에 재활용품을 버리면 돈으로 보상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물병 등 재활용 제품에 찍힌 바코드를 앱으로 스캔하고 재활용 스테이션에 버리면 돈을 준다. 이 보상금은 현금으로 바꾸거나 기부할 수도 있다. 판타포는 전 세계 플라스틱 폐기물의 재활용 비율이 9%밖에 안 된다는 점에 착안해 재활용 제품을 한데 모으기 위해 이 서비스를 개발했다.

백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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