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 기술기업·스타트업 종사자 사이에서 초과 근무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사진은 중국 베이징에 있는 중관춘(中關村) 거리. 이곳은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스타트업 밀집 지역이다.
최근 중국 기술기업·스타트업 종사자 사이에서 초과 근무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사진은 중국 베이징에 있는 중관춘(中關村) 거리. 이곳은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스타트업 밀집 지역이다.

“‘996 근무제’를 따르다가는 중환자실에 갈 판이다.”

최근 중국 스타트업계에서 ‘반(反)996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중국 주요 기술 기업과 스타트업에는 996 근무제가 있다.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주 6일간 일하는 것을 말한다. 주당 72시간에 달한다. 대다수 기업들이 암묵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근무제다. 반996 운동은 여기에 반발하는 움직임이다.

중국의 법정 근로 시간은 하루 8시간, 주당 44시간이다. 노사 합의에 따라 하루 최대 3시간씩, 한 달 36시간 이내로 초과 근무를 할 수 있다. 주당으로 환산하면 53시간으로 한국(52시간)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이는 중국의 노동법 규제가 느슨한 탓에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996 근무제를 따르면 일주일에 19시간을 초과 근무하게 된다.

실제로 2017년 종샨(中山)대가 중국 전역 2만108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주당 50시간 이상 일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40% 이상이었다. 또 중국의 취업 포털 자오핀이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는 사무직 응답자의 85% 이상이 야근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주당 10시간 이상 초과 근무를 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은 45%가 넘었다.

최근 젊은층을 중심으로 반발감이 점차 커지고 있다. 개발자 플랫폼인 ‘깃허브’에서 시작된 ‘996.ICU’ 캠페인은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위챗, 웨이보 등지로 퍼지며 중국 안팎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996.ICU는 ‘996 근무제를 따르면 중환자실(ICU)로 가게 된다’는 의미로 지어졌다.

현직자들은 웹사이트에 초과 근무 현황을 공개하며 ‘블랙리스트’까지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엔 앤트파이낸셜, 바이트댄스, 징둥닷컴 등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들은 ‘897(매일 오전 8시 출근, 오후 9시 퇴근)’ ‘716(하루 16시간씩 주 7일)’ 등의 글을 올리며 초과 근무 실태를 폭로하고 있다.


매주 유니콘 배출하던 스타트업의 위기

중국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는 반996 운동은 흔들리는 중국 스타트업 업계가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996 근무제는 중국 스타트업 역사와 함께 시작됐다. 중국은 2013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돈이 모이면서 시장이 급성장했다.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 1세대 스타트업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업계 관계자들은 초과 근무를 자청했다. 중고 거래 업체 58닷컴, 이커머스 회사 징둥닷컴 등이 996 근무제를 처음 도입한 이후 샤오미, 알리바바 등으로 확산됐다.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알리바바다. 알리바바는 창업 초기 장시간 의자에 앉아 초과 근무를 하는 직원들에게 복대 착용을 홍보할 정도로 ‘열심히’ 일하는 것을 장려했다. 이런 문화는 마윈 전 회장이 창업 초기 투자자들에게 “아침 8시에 출근해 5시에 퇴근하는 사람들은 미국 실리콘밸리에 대적할 수 없다”고 한 것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가 2016년 투자자들에게 “우리는 직원 3명이 5명분의 일을 마치도록 한다. 대신 이들에게 4명분의 보상을 제공한다”고 말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통신 장비 기업 화웨이도 마찬가지다. 화웨이 직원들은 입사 후 1년 이내에 회사와 ‘헌신 직원 계약’을 한다. 자발적으로 유급 휴가를 포기하고 초과 근무에 동의하는 내용이 담긴 계약서다. 또 직원들은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 나와서 일을 하기도 한다. 1년 동안 총 12일간 추가로 근무하는 셈이다.

화웨이의 한 중간 관리자는 2017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하루 최소 12시간씩 일한다”며 “이 분야 최고가 되고 싶기도 하거니와 성과가 좋으면 보상도 좋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시 화웨이 대변인은 이에 대해 “화웨이는 ‘헌신’이라는 콘셉트를 기반으로 세워진 회사”라며 “직원들은 해야 하는 일을 마치는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중국 경제 구조의 변화도 996 근무제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제조업을 중심으로 저임금 장시간 노동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유럽권에서 주말 없이 일하는 것을 말할 때 ‘중국인처럼 일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제프리 크로설 중국 노동 문제 전문가는 쿼츠에 “중국 경제 구조의 축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이동하면서 제조업 노동자들의 근로 시간은 감소하고 사무직군 근로 시간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초과 근무는 중국 스타트업 업계가 미국 실리콘밸리에 견줄 정도로 성장한 원동력이 됐다. 중국판 ‘포브스’로 불리는 후룬연구소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중국에서는 총 97개의 유니콘 기업이 탄생했다. 유니콘 기업은 기업 가치가 1조원을 넘는 비상장 회사다. 약 나흘에 한 곳꼴로 기업 가치 1조원짜리 공룡이 탄생한 셈이다. 세계 유니콘 기업 326개 중 ‘중국산’ 비중이 57%가 넘는다.

하지만 최근 중국의 스타트업 업계에는 칼바람이 불고 있다. 중국 경제 둔화와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 중산층의 소비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위축이 가속화하고 있다. 시장 조사 업체인 프레퀸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중국 스타트업에 대한 벤처캐피털(VC) 투자는 713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25%, 규모는 183억달러로 12% 감소했다. 또 중국의 리서치 회사인 제로2IPO에 따르면 3월 중국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규모는 294억위안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68% 감소했다. 전달보다는 32% 감소했다. 투자 집행 건수도 전년 같은 기간보다 64% 감소했다.

이런 가운데 어려움에 처한 기업들은 인력 감축 등 구조조정 카드를 꺼내기 시작했다. 미국 ‘포천’에 따르면 징둥닷컴은 1만2000명의 직원을 해고할 예정이다. 전체 직원의 8%에 달하는 수준이다. 앞서 3월에 텐센트가 중간급 관리자 직원 10%에 대한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2월에는 디디추싱이 15% 인력 감축을 선언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투자 감소와 인력 감축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기업들이 직원들을 압박한 것도 반996 운동에 불을 붙였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지난 1월 전자상거래 스타트업 유짠(有贊)의 주닝(朱寧) 최고경영자(CEO)는 직원에게 보내는 새해 메시지로 ‘996 근무제를 지켜달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가 큰 반발에 맞닥뜨리기도 했다.


Plus Point

韓 스타트업 동력 ‘초과 근무’ 최근엔 시간과 장소 자유롭게

한국에서 스타트업 업체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996 근무제’ 이상의 ‘초과 근무’가 큰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집에 가지 않고 간이 침대에서 쪽잠을 자면서 일했다(핀테크 업체 대표)” “주당 100시간씩 일하는 바람에 직원들도 덩달아 퇴근하지 못했다(유통 스타트업 대표)”는 회상들이 ‘무용담’처럼 전해지기도 한다.

실제로 간편 송금 앱 ‘토스’를 운영하는 유니콘 기업 비바리퍼블리카의 이승건 대표는 지난 2월 문재인 대통령과 면담에서 “(주 52시간제) 취지는 알겠지만, 급격히 성장하는 기업에는 그것이 또 하나의 규제로 작용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생 기업이 기존 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다만 최근에는 이런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있다고 현장 직원들은 전한다. 회사별로 문화가 다르기는 하지만, 자유로운 출퇴근을 강조하거나 근무 장소를 강제하지 않는 등의 문화도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화장품 앱 화해를 운영하는 버드뷰는 직원들의 근무 장소에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는다.

핀테크 회사 센트비의 이규식 이사도 “사내 문화를 자유롭게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면서도 “대신 성과 관리 등을 철저히 하는 편”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