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라철마쉬에 있는 한국타이어 공장에서 한 직원이 새로 제조된 타이어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헝가리 라철마쉬에 있는 한국타이어 공장에서 한 직원이 새로 제조된 타이어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3월 28일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는 주주총회를 열고 20년간 써오던 회사명을 한국테크놀로지그룹(Hankook Technology Group)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회사명에서 주 사업 분야인 ‘타이어’를 없애고 ‘기술(테크놀로지)’로 대체한 것이다. 이 회사명은 오는 5월 8일부터 적용된다.

한국타이어는 1941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타이어 제조회사다. 판매 기준으로 국내 1위, 세계 7위의 기업이다. 80여 년간 타이어를 주 사업으로 해온 한국타이어가 기술을 강조하며 지주회사의 회사명까지 바꾼 것은 타이어 판매만 바라봐서는 기업이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른 타이어 회사들의 실적도 좋은 편은 아니다. 세계 신차 시장은 연간 9500만 대~1억 대 수준에서 더 이상 늘지 않고 있다. 그렇다보니 타이어 물량 역시 정체되고 있다. 한정된 물량을 놓고 미쉐린(프랑스), 브리지스톤(일본), 굿이어(미국), 피렐리(중국) 등 세계 톱클래스 회사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다 보니 이익 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지난해 1~3분기까지 매 분기 1800억원대였던 한국타이어의 분기별 영업이익도 4분기에 1461억원까지 내려갔다.

일각에서는 한국타이어가 타이어뿐 아니라 다양한 자동차 부품을 아우르는 종합 자동차 부품 회사로 사업영역을 확대하거나 자동차와 전혀 관련이 없는 새로운 영역으로 진출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국타이어의 신성장 전략을 세 방향으로 분석했다.


1│독일 콘티넨털式 M&A 추진할 듯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한국타이어의 지주회사)가 5월 8일부터 한국테크놀로지그룹으로 이름을 바꾸는 것을 두고 업계에서는 독일의 종합 자동차 부품 회사인 콘티넨털(Continental)처럼 타이어 이외의 사업 분야에 다각도로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콘티넨털은 1871년 독일에서 마차바퀴 만들던 회사로 시작했다. 이후 글로벌 타이어 회사로 변신했다. 100년 이상 타이어만 생산했던 콘티넨털은 2000년대 이후 다양한 M&A를 통해 사업 다각화에 성공했다.

전자 회사 테믹(2001년), 모토롤라의 오토모티브 전장 부문(2006년), 지멘스의 전장 부문인 지멘스 VDO 오토모티브 AG(2007년) 등을 인수·합병(M&A)하며 종합 자동차 부품 회사로 성장했다. 최근에는 센서와 라이더(전자거리 측정장치) 등 자율주행차 부품 개발과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 사업에도 진출했다. 2016년 405억유로(약 55조원)에 달한 매출의 60%가 센서와 라이더 등 자동차 부품 사업 부문에서 나왔다. 콘티넨털이 자동차 부품 회사를 M&A한 것처럼 한국타이어도 2014년 자동차 부품 회사인 한온시스템(옛 한라공조)에 투자했다. 현재 한국타이어는 한온시스템 지분 19.49%를 보유한 2대 주주이지만, 업계에서는 한국타이어가 한온시스템의 지분율을 50% 이상으로 높여 자회사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한다.

한온시스템은 지난해 9월 캐나다의 자동차 부품 기업 마그나인터내셔널(세계 부품 업계 3위)의 유체압력제어(Fluid Pressure & Controls) 사업 부문을 인수했다. 유체압력제어 사업 부문은 자동차의 동력·변속기 냉각 시스템을 생산한다. 특히 전기자동차로 갈수록 배터리 냉각 시스템 등의 기술력이 더 요구된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한국타이어가 한온시스템의 지배 주주가 되면 자동차 냉각 시스템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업을 그룹에 두게 되는 셈이다.

장문수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한국타이어가 (콘티넨털처럼) 종합 자동차 부품 사업에 진출하려면 갑자기 새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기업을 M&A하는 방법 밖에 없다”며 “한국타이어는 자금력이 있기 때문에 적정한 매물이 나왔을 때 M&A에 적극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2│신사업 진출 위해 IT 기업도 인수

업계에서는 한국타이어가 타이어와 자동차 부품이라는 자동차 산업의 울타리를 벗어나려고 시도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그럴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은 영국 모델솔루션을 인수했기 때문이다. 모델솔루션은 한국타이어가 지난해 5월 영국의 전자 부품 회사 레어드에서 686억원을 주고 샀다. 정보기술(IT) 단말기와 의료기기 등의 신제품이 출시되기 전에 3D프린팅 등의 기술을 이용해 시제품을 디자인·제작하는 업체다. 모델솔루션은 실리콘밸리의 IT 기업 420개 회사를 고객사로 두고 있다. 한 증권 업계 고위 관계자는 “그룹 이름에서 타이어를 빼고 테크놀로지를 집어넣은 것은 ‘타이어나 자동차 산업 이외에 다양한 산업에 진출할 수 있다’는 뜻으로도 읽힌다”며 “전장 부문과 타이어 부문에 집중하고 있는 콘티넨털과는 약간 다른 전략인 것 같다”고 했다.


3│해외 유통망 강화로 RE 시장 공략

한편 한국타이어는 기존 타이어 판매 사업 부문에서도 거대 완성차 기업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한 독자 유통망 구축 작업을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촘촘한 유통망을 확보해야만 완성차 기업에 휘둘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타이어를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이어는 보통 완성차에 부착돼서 나오는 신차용 타이어(OE·Original Equipment)와 자동차를 타다가 교체해 사용하는 교체용 타이어(RE·Replacement Equipment)로 구분한다. OE 타이어는 타이어 회사가 완성차 회사에 최소한의 마진만을 남기고 파는 경우가 많다. 완성차 회사 쪽이 대량구매 권한을 갖고 있는 데다, 한정된 물량을 놓고 타이어 기업끼리 경쟁이 심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현대자동차 등 완성차 업체가 출시하는 신차에 타이어를 납품하기 위해서는 박리(薄利)를 각오해야 한다.

반면 어느 정도 자동차를 주행한 후 교체하는 RE 타이어의 경우 OE 타이어보다 더 마진을 남길 수 있다. 따라서 RE 타이어 유통채널을 강화하면 더 많은 이익을 내는 것이 가능하다. 한국타이어가 2017년 2월 호주 최대 타이어 유통점인 작스타이어즈(JAX TYRES), 지난해 7월 독일 타이어 유통점 라이펜-뮬러(Reifen-Müller)를 인수한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두 기업 모두 독일과 호주에서 강력한 RE 타이어 유통망을 갖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