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7일 충북 제천시 아세아시멘트 공장에 있는 ESS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17일 충북 제천시 아세아시멘트 공장에 있는 ESS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사진 연합뉴스

전국 ESS(에너지 저장 시스템)에서 2017년 8월부터 21번이나 화재가 발생했지만, 정부는 원인을 모르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부터 일부 ESS 가동을 중단하고 올해 1월부터 민관 합동 사고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를 꾸려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김정훈 홍익대 공대 교수가 위원장을 맡은 19명 규모의 조사위는 현재 과학적 검증을 위해 사고 현장을 재현한 ESS를 구성해 실증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ESS는 정부가 추진 중인 에너지 전환(현재 7% 수준인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30년 30%까지 높이는 것)의 기본 전제가 되는 설비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의 간헐성(발전량이 일정치 못한 현상)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ESS 설치·구동이 필수다.

ESS는 리튬배터리 본체와 BMS(Battery Management System·배터리 관리 시스템), PCS(Power Conditioning System·전력 변환 장치) 등으로 구성됐다. 리튬배터리는 삼성SDI와 LG화학 등 대기업이 시장을 양분하고 있으며, 부가 시스템은 200여 개의 국내 중소·중견기업이 제작하고 있다. 부가 시스템 일부는 중국에서 수입해서 쓴다.

화재 원인에 대해 대기업은 부가 시스템 문제라고 주장하는 반면, 중소·중견기업은 배터리 문제라는 입장이다. 국산 배터리가 해외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전자에 무게를 두기도 한다. 정부는 조사위 활동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다만 최근 분위기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문제가 아닌 복합 과실로 결론 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는 설비 자체의 문제보다 전반적인 ESS 관리·감독 체계가 미흡한 탓이 크다는 시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ESS 화재 원인을 짚어봤다.


추정 원인 1│배터리 관리 시스템 오류

‘이코노미조선’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김규환 자유한국당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에너지기술평가원의 ‘ESS 화재 안전사고 대응전략 세미나 전문가 회의록(1월 4일 개최)’ 및 대정부 질의 내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현재까지 발생한 20건의 ESS 화재 사고 원인 중 가장 많은 6건이 BMS 오류에 따른 것으로 추정됐다. 이 회의에는 한국전기연구원·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서울과학기술대학교·울산과학기술원·한빛안전기술단의 전문가가 참여했다.

BMS란 배터리를 최적 상태로 관리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수명을 연장하는 역할을 하는 설비다. 배터리의 냉각 장치를 제어해 배터리의 과도한 열을 관리하기도 한다. BMS가 주요 화재 원인으로 추정되는 이유는 사고 당시 BMS가 이상 고전압 차단, 열감지, 배터리 상태 체크 등의 사전 감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이어 부실 공사·부주의 5건, PCS 파손 1건으로 추정됐다. 나머지 8건은 조사 중인 사안으로 분류됐다. 다만 회의 참석자들은 “사고 현장의 배터리·BMS·PCS 연계 메커니즘(기계적 구조)과 설치 목적별(신재생연계용·산업용 등) 운용 데이터 부족으로 명확한 원인 파악은 아직 어렵다”는 단서를 달았다.


추정 원인 2│충전 한계 높게 설정해 과도하게 충·방전

회의 참석자들은 “국내 배터리가 해외 ESS에도 설치되고 있으나, 국내에서만 화재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원인으로 국내 ESS의 과도한 SOC(State Of Charge·충전 상태) 한계 기준을 지적했다. 리튬배터리 특성상 과방전이 되거나 과충전이 되면 수명이 급격히 줄어든다. 정부는 국내 SOC 한계 기준을 전체 용량의 5~95%로 설정해뒀다. 이에 비해 해외는 70~80% 수준으로 폭이 훨씬 좁다. 한 전문가는 “배터리별 특성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한국은 SOC 기준 폭을 넓혀 효율성을 강조한 반면, 해외는 안정적인 수명을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제품이라도 국내에서는 과충전·과방전 문제가 발생하기가 쉽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SOC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의 문제는 안전성과 연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비슷한 예로 스마트폰 배터리를 들 수 있다. LG 배터리의 경우 자사 스마트폰은 물론 애플 아이폰에도 탑재되고 있다. 그런데 아이폰의 배터리 무교체 사용 시간이 LG스마트폰에 비해 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애플 아이폰의 배터리 관리 정책에 따른 것이다. 애플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아이폰6·아이폰6S·아이폰SE 등 구형 모델의 성능을 배터리 상태에 따라 고의로 떨어뜨렸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소비자에게 미리 알리지 않아 2017년 대규모 소송전에 휘말렸다. 애플은 당시 “리튬배터리는 주변 온도가 낮거나, 충전이 덜 됐거나, 노후한 상태일 때 기기를 보호하느라 갑자기 전원이 꺼질 수도 있어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성능 저하 기능을 도입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일부러 성능을 저하시켰다는 것이다. 배터리 관리 측면에서만 본다면, 애플의 기술이 그만큼 뛰어나고 섬세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추정 원인 3│급속한 과전압

전문가들은 서지(surge·급속한 과전압)를 화재 원인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서지란 전선 또는 전기 회로를 따라서 전달되며, 짧은 시간 급속히 증가하고 서서히 감소하는 특성이 있는 전압을 뜻한다. 번개 치는 날 전기가 끊어지고 전화가 불통되거나 예민한 반도체가 파괴되는 현상의 원인이다. 한 전문가는 “국내 태양광발전 ESS 설치 장소에는 암석이 많아 접지가 쉽지 않다”면서 “도심의 경우 피뢰침이 50%를 수용하고 다른 구조물들이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으나 태양광의 경우 설치된 피뢰침이 모두를 수용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다른 전문가는 “ESS가 설치되는 환경 조건에 따라 서지 설계 기준이 적절하게 적용돼 운용되고 있는지 평가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6월 초 ‘복합 과실’로 결론 날 가능성

과거 삼성 갤럭시 노트7 발화와 BMW 차량 화재의 경우, 사고 발생 후 6개월 내에 정부 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ESS는 2017년 8월 사고 이후 1년 9개월째로 접어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조사 결과에 따라 대기업 탓(배터리 문제)이냐 중소·중견기업 탓(부가 시스템 문제)이냐의 문제가 될 수 있어 정부가 쉽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조사위에 속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분위기는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잘못이 아닌 복합 과실로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전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관리·감독 체계의 문제가 크다고 입을 모은다. ESS 성능 평가 중심의 제도 운용에 따라 안전성 부문 검증이 취약했다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설비 자체보다 운용에 대한 컨트롤타워와 제도가 미흡한 것이 더 큰 문제라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낙뢰와 서지 등 전기적 충격 차단·접지 기준이 없다는 점 △ESS 설비가 들어 있는 컨테이너 간의 거리 등 화재 방지 시설안전기준이 없다는 점 △ESS 시스템 단위의 안전 보호 설계 검증이 없다는 점 등을 꼽았다.

조사위 핵심 관계자는 ‘이코노미조선’과 통화에서 “ESS는 미래 먹을거리로 한국이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려다 보니 안전 관리 체계가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6월 초로 예정된 조사 결과 발표를 ESS 관리·감독 체계를 대폭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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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Energy Storage System·에너지 저장 시스템) 태양광·풍력발전 같은 재생에너지를 통해 생산한 전기를 모아뒀다가 필요할 때 사용하는 대규모 배터리 시스템. 날씨와 시간에 따라 들쑥날쑥한 태양광·풍력발전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필수 설비. 일부 공장에서도 ESS를 사용. 심야시간대에 공급되는 산업용 전기요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점을 노려 심야 전기를 ESS에 저장해뒀다가 낮에 씀.

김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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