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드론 제조사 DJI가 ‘오즈모 액션’으로 고프로가 잡고 있는 액션캠 시장에 진출했다. 작은 사진은 DJI의 드론. 사진 블룸버그
세계 1위 드론 제조사 DJI가 ‘오즈모 액션’으로 고프로가 잡고 있는 액션캠 시장에 진출했다. 작은 사진은 DJI의 드론. 사진 블룸버그

세계 최대 드론(무인 항공기) 제조 업체 DJI와 세계 최대 액션캠(초소형 캠코더) 제조 업체 고프로. 2006년, 2002년 창업 이후 각자 분야에서 사업을 키워가던 두 회사가 한자리에 모인 것은 2014년의 일이다. 당시 둘은 운동선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잡는 촬영용 드론을 개발하기 위해 손을 맞잡았다. 북미 정보기술(IT) 매체 테크크런치는 “각 분야 최고 선수가 모여 완벽한 시너지를 내는 모습이었다”고 회상했다.

두 회사가 경쟁 관계로 변한 것은 2016년 고프로가 DJI ‘텃밭’ 드론 시장에 진출하면서다. 고프로는 사업 다각화를 위해 액션캠을 탑재한 드론 ‘카르마’를 출시했다. 때마침 세계적으로 드론 열풍도 불고 있었다. 하지만 고프로는 이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치명적 기술 결함으로 출시 16일 만에 제품 전량을 리콜하면서 고배를 마셨고, 드론 사업에서 서서히 손을 떼기 시작했다.

이후 두 회사의 방향은 엇갈린다. 고프로는 2년에 걸쳐 드론 사업에서 철수했고, 액션캠 사업에만 집중했다. 그사이 매각설도 나왔다. 인수자로 삼성전자와 함께 DJI가 거론되기도 했다. 반면 DJI는 드론 시장에서 승승장구했다. ‘팬텀’ ‘매빅’ 등 고성능 제품군을 잇따라 히트시키며 세계 드론 시장 점유율을 74%까지 끌어올렸다.

2019년 DJI와 고프로가 다시 한번 맞닥뜨렸다. 이번에는 고프로가 키워낸 액션캠 시장에 DJI가 도전장을 냈다. 5월 15일 DJI는 액션캠 ‘오즈모 액션’을 출시하고 판매를 시작했다. 13년간 기술 개발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드론, 짐벌(수평을 맞추고 흔들리지 않도록 카메라를 연결하는 기구)을 만든 노하우로 만든 첫 액션캠이다.

DJI의 액션캠 시장 공략 무기는 세계 1위 드론 제조 업체로 다져온 이미지 안정화 기능이다. 액션캠 성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영상 흔들림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서핑·스키·스노보드 등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을 겨냥해 만든 액션캠 제품 특성을 생각하면 기본 요소다. DJI는 기계식 짐벌로 공중에서도 떨림 없이 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기술이 강점이다. 이번 오즈모 액션에 전자식 짐벌 기술 ‘록스테디(RockSteady)’를 적용했다.

DJI가 액션캠 시장을 공략한 것은 성장성 때문이다.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고프로가 시장을 개척한 덕분에 2010년 20만 대에 불과하던 세계 액션캠 판매량은 2017년 110만 대까지 증가했다. 시장이 커지면서 광학 기업 소니와 니콘, 중국산 저가 액션캠 브랜드까지 진입했고, 경쟁은 치열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업계는 꿈틀대는 1인 콘텐츠 시장 성장세를 주목하고 있다. 액션캠 시장을 불붙이는 화력이다. 실제로 업계 전문가들은 ‘액션’의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고 말한다. 스포츠 등 아웃도어 활동용만이 아니라 가족과의 나들이 등 개인이 일상에서 쓸 수 있는 동영상 촬영 수요가 증가하는 것이다. 최근 평범한 일상을 찍어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브이로그(Vlog·비디오+블로그)까지 유행하며 일반인들도 액션캠 사용에 열을 올리고 있다.

DJI가 지난해 진행한 자체 조사에서도 액션캠 사용 목적 1, 2위로 ‘아웃도어 스포츠’와 ‘가족 활동 촬영’ 두 가지가 꼽혔다. 닛케이비즈니스 온라인판은 “각국의 드론 비행 규제가 엄격해진 데다, SNS를 중심으로 동영상 콘텐츠 인기가 높아진 것이 DJI의 액션캠 출시 배경이 됐다”고 분석했다. DJI의 오즈모 액션은 브이로그 촬영을 고려해 전면에도 화면을 달아 ‘셀카’ 기능을 강조했다.

덕분에 시장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조사기관 크리던스리서치는 지난해를 기점으로 액션캠 시장이 매년 평균 12.6%씩 성장해 2026년이 되면 시장 규모가 102억5000만달러(약 12조원) 수준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DJI 공격을 막을 고프로의 강점은 시장에서의 탄탄한 입지다. 레드오션으로 시장 경쟁이 심화했지만, 세계 액션캠 시장 점유율 80%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GfK리서치에 따르면 한국 시장 점유율(매출액 기준)도 53%로 과반이 넘는다. 특히 지난해 출시한 히트작 ‘히어로7 블랙’의 선전으로 작년 4분기 3200만달러의 순이익을 내며 다섯 분기 만에 흑자를 기록했다.

액션캠 시장에 참전해 3파전 구도를 완성한 소니는 광학식 안정화 기능을 강조한다. ‘FDR-X3000’ 가격대는 고프로·DJI보다 다소 높은 50만원대 중반이다. 최근엔 브이로그 시장을 겨냥한 제품 ‘RX0 II’도 내놨다. 오타 카즈야 디지털 이미징 사업부 부사업부장은 지난 3월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고화질 셀피(셀카), 브이로그 수요를 겨냥했다”고 말했다. 20만원대 저가 액션캠 시장은 샤오미·SJCAM이 포진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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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I 세계 민간 드론 시장의 74%를 장악한 업체다. 2006년 중국 광둥성 선전의 한 잡지사 창고에서 20대 청년 4명이 힘을 모아 시작한 DJI는 창업 13년 만에 직원 1만4000명을 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성장 비결은 ‘기술력’이다. 연구·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감행한 결과 3년 만에 공중 촬영만 가능하던 수준의 드론이 인공지능(AI) 기능을 탑재해 자체 정보 처리까지 가능해졌다. 고품질 제품으로 중국산에 대한 편견을 깨고 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Plus Point

미국이 생중계 된다? 미·중 기술 분쟁에 DJI 타깃

“권위주의적인 외국 정부 영향력 아래 있는 업체가 제조하거나 판매하는 드론을 사용하면, 사용자 개인이나 조직의 정보가 수집돼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 미 국토안보부(DHS)가 5월 20일 미국 기업들에 보낸 경고문 내용이다. ‘중국 제조 무인 항공기 시스템’이라는 제목으로 발송된 이 문서에서는 특정 기업 이름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누구라도 DJI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DJI의 북미 드론 시장 점유율이 80%에 달하기 때문이다.

중국과 기술 패권을 두고 경쟁하는 미국이 이번에 DJI를 주목한 것은 드론의 특수성 때문이다. 드론으로 촬영된 미국 현지 영상, 영상을 찍은 지점 등은 설치된 프로그램을 통해 회사 서버로 전송된다. 미국이 ‘생중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 것이다.

DJI를 향한 미국 정부의 이번 경고문은 앞선 화웨이 사태와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우려도 낳고 있다. 각국 정부, 글로벌 기업들에 화웨이가 만든 5G(5세대 이동통신) 장비 사용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던 미국 정부는 5월 15일 화웨이와 계열사 70곳을 거래 제한 기업 명단에 올렸다. 앞서 정부 부문에서 화웨이 장비 사용을 금지했던 것을 민간 부문으로 확대한 것이다. 실제로 미 육군도 2017년부터 DJI의 드론 사용을 금지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