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기 서울대 농화학과, 디아지오코리아 부사장, 영남대 교수 / 사진 오미나라 이종기 대표
이종기
서울대 농화학과, 디아지오코리아 부사장, 영남대 교수 / 사진 오미나라 이종기 대표

경북 문경의 우리 술 업체인 오미나라 이종기 대표가 2011년 내놓은 ‘오미로제’는 유기농·무농약 오미자를 정통 샴페인 공법으로 제조한 세계 최초 오미자 스파클링와인이다. 오미로제는 포도로 만든 로제와인보다 더 장밋빛에 가깝고, 풍부한 과일향에 로즈메리 같은 허브향도 은은히 풍긴다.

이듬해인 2012년 서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 특별만찬주로 선정될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았다. 경북 문경의 오미나라 양조장 입구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과 오미로제로 건배하는 사진이 걸려 있다. 연간 생산되는 3만 병이 다 팔릴 정도로 대중적 인기까지 얻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오미로제가 더 널리 퍼지기엔 몇 가지 걸림돌이 있었다. 원료인 국산 오미자 가격이 워낙 비싼 탓에 병당 10만원에 달한다는 점, 정통 샴페인 공법을 쓰는 탓에 생산 기간이 3년이나 걸린다는 점이었다. 프랑스 유명 샴페인도 저렴한 제품은 4만~5만원이면 살 수 있는 것을 감안하면, 오미로제 가격은 결코 ‘착하지’ 않았다.

이종기 대표도 오래전부터 이 고민을 해왔다. “가격을 지금의 절반보다 더 싼 4만원대로 낮출 수 있으면 훨씬 많은 사람이 오미로제를 편하게 즐길 수 있을 텐데.”

5년 전부터 시작된 이종기 대표의 고민이 드디어 결실을 맺을 것으로 보인다. 올 연말쯤에는 가격을 4만원대로 크게 내린 오미로제를 내놓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9만원대 제품과 비교해도 오미자 원료는 똑같이 들어가 맛은 비슷하지만, 발효와 숙성기간을 기존의 3년에서 1년으로 단축해 생산원가를 크게 낮췄다. 정통 샴페인 공법으로 만든 기존 제품은 ‘오미로제 결’로 새 이름을 붙였고, 연말에 나올 신제품은 ‘오미로제 연’이라 했다.

중부내륙고속도로 문경새재IC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오미나라 양조장을 오랜만에 찾아갔다. 이곳은 오미자 양조장, 숙성고, 시음장 등을 갖춘 오미자 테마파크다. 외국으로 치면 ‘오미자 와이너리’다.


오미나라 숙성고. ‘오미로제 천하제일’ 문구가 인상적이다. 사진 오미나라
오미나라 숙성고. ‘오미로제 천하제일’ 문구가 인상적이다. 사진 오미나라

신제품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드나.
“샴페인은 1차 탱크발효에 이어 2차 발효는 750㎖ 병에 넣은 뒤 이뤄진다. 2011년에 출시된 오미로제(올해부터 ‘오미로제 결’) 역시 같은 공법으로 만든다. 정통 샴페인 공법은 발효와 숙성, 효모 찌꺼기 제거 등 3년이 지나야 완성된다. 올 연말에 나올 신제품 ‘오미로제 연’은 1, 2차 발효를 모두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한다. 프랑스에서도 값비싼 샴페인은 2차 병발효를 하지만, 저렴한 스파클링와인은 1, 2차 모두 탱크발효를 한다. 2차 탱크발효 공법을 개발자의 이름을 따서 ‘샤르마공법’이라고 한다. 발효기간이 크게 단축돼 1년 만에 제품을 완성할 수 있다. 그만큼 제조원가를 낮출 수 있다. 9만원대인 지금 제품과 비교해 신제품은 4만원대로 가격을 절반 이상 낮췄다.”

맛의 차이는 없나.
“원료 차이는 없다. 똑같이 국산 오미자가 병당 1㎏ 이상 들어간다. 다만 발효기간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신제품 ‘오미로제 연’은 기존 제품 ‘오미로제 결’보다 깊은 맛은 덜하지만 더 상큼하다. 공식적인 행사에는 ‘결’이 더 어울리고, 친구들끼리 파티하는 경우에는 가격부담이 적은 ‘연’을 추천한다.”

오미로제 병 라벨을 새로 바꾼 이유는.
“한국 술인 만큼 한국 옷을 입혀야겠다고 생각했다. 올 초에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백자 철화끈무늬 병’을 본떠 라벨 모양을 새로 디자인했다. 보물 제1060호인 이 백자 병은 조선 중기 작품으로, 철화안료를 사용해 병의 목을 한바퀴 돌고 밑으로 늘어뜨렸다가 끝에서 둥글게 돌린 모양의 끈 무늬가 특징인데, ‘오미로제 결’ 새 라벨에도 밑으로 늘어뜨린 끈 모양을 부각했다.”

종량세 전환이 맥주, 막걸리 등 부분적으로만 이뤄진 게 아쉽지는 않은가.
“많이 아쉽다. 정부는 내년부터 맥주와 막걸리만 현행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바꾸겠다고 발표했지만, 현행 종가세 제도하에서도 국산과 외국산 술 과세 기준이 다르다. 국산 제조 술은 역차별당하고 있다. 국내서 생산되는 술 제품에 대해서는 제조원가에다 유통비, 마케팅비 다 합산해서 과세 표준을 삼고 있다. 외국에서 들여오는 제품은 수입원가에만 과세하고 있다. 그 뒤에 이뤄지는 광고, 마케팅, 유통비 등에는 전혀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있다. 굉장히 심한 역차별이다. 현행 종가세 제도는 한국을 수입 주류 천국으로 만들고 있다. 자국산이 역차별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전통주는 생산원가가 높은 국산 농산물로 만들기 때문에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증류소주를 비롯한 전통주도 종량세를 적용해야 한다.”

한국은 왜 세계적 명주가 없다고 생각하나.
“최근 100년여 동안 한국이 처한 시대적 상황 탓이 크다. 전통술 발전의 싹을 잘라버리는 여러 규제가 잇따라 시행됐다. 일제 치하인 1938년에 국가총동원령이 발령돼,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전쟁을 위해 쓸 수 있도록 못을 박고, 우리 농산물로는 술을 아예 못 빚게 했다. 술은 모름지기 그 지역의 농산물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제 그런 개념이 없어지게 된 것이다. 대신 어디에서 난 건지도 모르는 외국산 원료로 만든 술, 희석식소주가 대세를 장악했다. 1965년에는 양곡령이 나왔다. 쌀 등 곡식으로는 술을 못 빚게 했는데, 이 양곡령은 11년 후인 1976년에야 풀렸다. 이런 상황에서 1991년 우리나라 술 시장이 개방됐다. 이때 모든 외국산 주류가 물밀 듯이 들어왔다. 전통주진흥법이 제정된 것은 수입 개방 후 18년이 지난 2009년이다. 우리 술이 사실상 없는 상태에서 술 수입개방을 먼저 하고, 수입 술이 충분히 자리 잡은 연후인 2009년에야 전통술에 대한 규제를 풀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가 국산 술은 묶어두고 외국 술 시장을 먼저 풀어준 것이다. 이런 여건에서 세계 술 시장에 당당히 우리 술 제품을 내놓기는 정말 어렵다. 현행 종가세 체제 아래서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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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세, 종량세 정부는 내년부터 술에 매기는 세금을 맥주, 막걸리에 한해 현행 종가세(제조원가 기준 과세)에서 종량세(용량-알코올 함량 기준 과세)로 바꾸기로 했다. 종량세를 적용하면 제조원가가 비싼 술일수록 가격인하 효과가 크다.

이 술은

오미로제 결

오미자 스파클링와인이다. 한 병에 오미자 1㎏ 이상이 들어간다. 생산 기간이 3년 이상인데, 덕분에 깊은 맛을 낸다. 750㎖ 한 병당 9만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