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사카에 있는 유니클로 매장에서 한 점원이 옷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일본 오사카에 있는 유니클로 매장에서 한 점원이 옷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주 52시간 근무제가 7월부터 금융사, 버스 회사, 방송국 등 21개 업종으로 확대 적용됐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1년 전인 2018년 7월부터 시행됐지만 특수성이 인정된 21개 업종에 대해서는 1년간 특례제외업종으로 지정해 유예 기간을 줬다. 또 2020년 1월부터는 50인 이상 노동자가 있는 모든 기업이 주 52시간 근무제를 지켜야 한다. 사실상 주 52시간 근무제가 전면 시행되는 것이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근로시간 단축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이런 시대적 흐름에 따라 근로시간을 줄여 노동자의 만족도와 생산성을 높여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다.

근로시간을 줄이면서 생산성도 높여야 하는 것은 우리 기업들만의 과제가 아니다. 일본도 같은 과제를 놓고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아베 내각은 2017년 11월 4차 내각 출범과 함께 일본 경제의 성장 전략 중 하나로 ‘생산성 혁명’을 내세웠다. 주 52시간 시대를 본격적으로 맞고 있는 한국이 일본에 배울 수 있는 지혜는 어떤 것들인지 알아봤다.


1│전문직 노동자에게는 예외 조항 둬

일본의 법정 근로시간은 주 40시간(일 8시간)이다. 하지만 일본은 이를 일률적으로 모든 직종에 적용하지 않고 유연하게 운영하고 있다. 연봉 1075만엔(약 1억1500만원) 이상을 받는 IT 전문가나 컨설턴트, 금융업 종사자에게는 ‘예외 조항’을 둬서 근로시간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것이다. 예외 조항을 적용하기 위해선 노동자 본인의 동의를 받도록 해서 기업이 이 제도를 노동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악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일본이 이렇게 예외 조항을 두는 이유는 일을 대하는 태도가 노동자의 직군이나 업무 성격에 따라 많이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고 이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서다. 근로시간을 줄여서라도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고 싶어 하는 노동자가 대다수인 단순 생산·사무직 노동자의 근로시간은 줄이되 더 많은 시간을 일해서라도 성과를 내서 많은 보수를 가져가고 싶어 하는 전문직 노동자가 일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환경이 되는 것은 막겠다는 것이다.

노동관계법 전문가인 아베 지로 변호사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시간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는 프로페셔널(전문직 종사자)의 비율이 아직 일본에는 적다”면서 “예외 조항이 일본에 어떻게 정착될지는 향후 정부의 개혁 방안에 달려 있다”고 했다.


2│겸업 허용하는 기업 늘어

주 52시간 근무제로 근로시간이 줄면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근로시간 축소에 따른 소득 감소다. 국내에서도 빠듯하게 생계비를 벌고 있는 많은 노동자가 이런 문제 때문에 주 52시간 근무제를 비판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에서 채택한 방식은 겸업 허용이다. 근로시간이 줄면서 감소한 소득을 다른 일을 해서 벌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한국의 30대 기업을 포함한 대다수의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들이 근로계약을 할 때 ‘겸업 금지’ 조항을 포함시키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겸업을 허용하는 대표적인 곳은 미즈호 파이낸셜그룹(FG)이다. 일본 3대 메가뱅크 중 하나인 미즈호 FG는 은행과 신탁은행 직원만 6만 명에 달하는데 올해 하반기 중에 겸업을 허용할 계획이다.

사카이 다쓰후미 미즈호 FG 사장은 “노동자가 일하는 의식이 크게 변하고 있다”며 “(다른 일을 할 때) 미즈호에서 일한 경험을 살리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은행 직원이 민간 기업의 재무 담당 임원으로 일하는 등의 방식으로 경력을 다각도로 활용하고 추가 소득을 얻는 길을 터주겠다는 것이다.

로토제약(제약 회사), 코니카(디지털카메라·필름 제조사), DeNA(모바일 게임 회사) 등도 겸업을 허용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지난 4월 도쿄증권거래소 1부 시장에 상장된 기업과 산토리홀딩스 등 비상장 대기업을 조사한 결과, 49.6%가 겸업 허용을 제도화했거나 노동자가 신청할 경우 허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정밀한 성과 측정, 합당한 보상

일본이 전문직 예외 조항과 겸업 허용으로 노동자의 선택권은 최대한 보장하고 있지만 노동자의 성과를 측정하고 평가하는 것에는 치밀하고 철저한 과정을 거친다. 근로시간을 줄여도 좋고 다른 일을 해도 좋지만 업무시간 중에는 업무에만 매진해야 합당한 성과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놓은 것이다.

가와사키중공업은 보통 월별이나 연간으로 평가하는 노동자의 매출액을 시간당으로 산출해서 인사평가제도에 반영하고 있다. 노동자가 1시간당 달성해야 하는 매출 목표액을 정해주고 이를 달성했는지를 확인하는 식으로 평가를 진행하는 것이다.

의류 업체 유니클로도 노동자의 근로시간을 철저하게 반영하는 기업이다. 유니클로는 정규 근로시간을 초과한 연장 근로에 대해서는 1분 단위로 시간을 측정해 수당을 지급한다. 모든 노동자의 근로시간을 데이터로 분석해 1분이라도 더 일한 사람에게 더 많은 돈을 주는 것이다.

생활 잡화점인 무인양품은 노동자 개인이 해야 할 업무를 극도로 표준화하는 방식으로 업무 효율을 극대화하는 곳이다. 이 회사는 ‘업무표준화위원회’를 만들고 모든 노동자에게 “하는 일을 써서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업무를 문장과 도표로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도록 한 ‘업무 기준표’를 만들었다. 업무 기준표를 만든 후에는 업무에 익숙하지 않은 신입사원에게 이를 읽어 보도록 한 후 수정과 보충 작업을 거쳐 신입사원을 포함한 누구라도 한 번 읽어 보면 업무를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매년 분기별로 변경된 업무 내용을 업무 기준표에 반영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업무표준화위원회는 업무 기준표를 보고 노동자의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수시로 확인한다.

근로시간과 업무를 철저히 확인·평가하는 대신 성과를 내는 노동자에게는 충분한 보상을 해주는 일본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유니클로는 2020년부터 입사 3년 차 이상 우수사원에게 최대 3000만엔(약 3억2000만원)의 연봉을 지급하고 원할 경우 해외 근무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3000만엔은 이 회사의 평균연봉인 880만엔의 3.4배에 달하는 돈이다. 미쓰이스미토모은행도 2020년부터 성과가 좋을 경우 입사 15년 차도 지점장이 될 수 있도록 했다. 기존에는 25년 차에야 지점장이 될 수 있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일본은 잇쇼켄메이, 즉 ‘일생현명(一生懸命·살아 있는 동안 목숨을 걸고 일하라는 뜻)’의 태도로 자신이 담당한 업무에 임하는 노동자가 많다”며 “우리 기업과 노동자도 이런 장인정신을 갖고 좀 더 업무에 집중해야만 근로시간 단축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과제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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