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릭 블라스버그(오른쪽) 유튜브 패션·뷰티 파트너십 총괄과 유튜브가 지난 9월 신설한 패션 코너. 사진 유튜브 캡처
데릭 블라스버그(오른쪽) 유튜브 패션·뷰티 파트너십 총괄과 유튜브가 지난 9월 신설한 패션 코너. 사진 유튜브 캡처

1990년대 수퍼모델 전성기를 주도한 ‘모델계의 흑진주’ 나오미 캠벨이 지난해 11월부터 개인 유튜브 계정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올린 25개 영상 가운데 가장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한 영상은 ‘나오미 캠벨의 공항 루틴(185만 회)’이었다. 영상에서 비행기 1등석에 탑승한 그는 “장갑을 찾고 있다. 모든 (여행) 일정 중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면서 루이뷔통 가방에서 비닐장갑을 꺼낸다. 장갑을 낀 그는 위생을 위해 항균 물수건으로 좌석 주변을 구석구석 닦기 시작한다.

평범한 비행기 탑승기였지만 캠벨이 부산스럽게 주변을 청소하는 모습에 사람들이 반응했다. “항균 물수건을 꺼내는 순간 웃겨 죽을 뻔했다” “장갑을 꺼내는 모습을 보고 우리 엄마가 떠올랐다”는 등 600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런웨이 위 차가운 표정의 수퍼모델이 아닌 엄마 같은 친근한 모습에 시청자들이 열광한 것이다.

캠벨이 이런 영상을 올리게 된 것은 유튜브 측이 먼저 그에게 적극적으로 제안했기 때문이다. 유튜브는 지난해 6월 데릭 블라스버그(Derek Blasberg)를 패션·뷰티 파트너십 총괄로 영입했는데, 이후 블라스버그는 캠벨과 같은 모델뿐만 아니라 럭셔리 브랜드, 디자이너들에게 “유튜브 계정을 만들라”고 설득하고 다녔다. 그는 패션 전문 기자 출신으로 합류 전까지 미국의 스타일링 TV 프로그램 CNN 스타일(CNN Style) 진행자와 패션 잡지 ‘배니티 페어’ 기고자로 활동했다.

콘텐츠 플랫폼들이 ‘패션’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패션 콘텐츠가 시청자를 모으는 보증수표이기 때문이다. 유튜브가 콘텐츠 트렌드를 분석한 결과, 2014년부터 2018년까지 패션·뷰티 채널은 6배 늘어났다. 패션·뷰티 콘텐츠의 조회 수는 월평균 19억 명에 달한다. 시청자가 구매력 높은 18~49세에 집중돼 있다는 것도 큰 특징이다.

이 때문에 유튜브는 패션 업계 유명인들을 유튜버로 영입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지난 9월 신설한 ‘패션 코너’가 그 시작이었다. 유튜브 홈페이지에서 메뉴를 누르면 ‘실시간 게임’ 코너 밑에 ‘패션’ 코너가 생겼다. 이 코너에는 유튜브에 익숙하지 않았던 패션 업계 인사들의 콘텐츠가 마련돼 있다. △구찌 등 럭셔리 브랜드의 런웨이 패션쇼 △패션모델과 디자이너의 개인 영상 △명품 브랜드의 개인 계정 △레드카펫 패션 영상이 한데 모여 있다.

유튜브는 기존의 크리에이터(1인 콘텐츠 생산자)들과 럭셔리 브랜드나 패션모델·디자이너 간 협업도 장려한다. 구독자 848만 명의 패션 인플루언서 엠마 챔벌레인(Emma Chamberlain)과 루이뷔통이 함께 만든 영상은 조회 수 200만 회를 기록했다. 챔벌레인의 나이는 겨우 열여덟이다.

블라스버그는 “유튜브의 크리에이터 커뮤니티와 패션·뷰티 업계를 연결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전통의 패션 브랜드와 10대 인플루언서가 함께 만들어낸 콘텐츠를 통해 유튜브라는 플랫폼의 매력을 더 높여보겠다는 것이다. 패션 코너의 영상 조회 수가 많아지면 유튜브의 광고 수익도 함께 높아질 수 있다. 패션 코너는 한 달 만에 구독자 98만명을 모았다. 이는 세계적 패션 잡지 ‘보그’의 온라인 구독자(167만 명)의 절반에 해당한다. 또 많은 광고비를 집행하는 럭셔리 브랜드를 유튜브 플랫폼에 끌어들임으로써, 이들이 유튜브 광고에 더 관심을 쏟게 유도하는 효과도 있다.


패션 활용 더 빨랐던 인스타, 유튜브 행보에 긴장

패션을 활용하는 것은 유튜브보다 인스타그램이 더 빨랐다. 인스타그램은 2015년 패션 잡지 ‘럭키 매거진’의 편집장 출신인 에바 첸을 영입했다. 그는 최근 유튜브의 블라스버그가 하는 역할과 비슷한 일을 했다.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패션·뷰티 브랜드, 디자이너, 스타일리스트, 메이크업 아티스트, 인플루언서, 패션 잡지 에디터들과 협업하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은 유튜브에 비해 전통 패션 업계의 활동 빈도가 높았다. 유명 브랜드나 모델들이 잠깐 틈을 내 사진을 올리고 몇 마디 다는 것만으로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들에게 영상을 직접 만들어 올린다는 것은 너무 번거로운 일이었다. 패션 디자이너 알렉사 청(Alexa Chung)은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340만 명에 이르지만, 지난봄부터 시작한 유튜브 팔로어는 19만5000명에 불과하다. 뷰티 브랜드 휴다 뷰티(Huda Beauty)는 인스타그램 구독자 수가 3900만 명에 이른다. 유튜브 팔로어수 355만 명의 10배가 넘는다.

이는 인스타그램이 패션·뷰티 업계 관계자를 정성 들여 관리한 결과이기도 하다. 첸은 프랑스, 브라질 등 각지를 돌며 패션 관계자들을 만났다. 인스타그램에 어떤 기능을 추가하면 패션 인사들이 더 많이 사용하게 될지 의견을 구했다. ‘다이렉트 메시지(DM·1 대 1 메시지 기능)’와 ‘스토리(짧은 영상을 올리는 기능)’의 계정 태그 기능은 그가 만난 인플루언서와 모델들의 요청으로 탄생했다. 덕분에 코디 사진을 올릴 때 패션 브랜드를 함께 태그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유튜브가 패션·뷰티를 집중 지원하면서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독자는 인스타그램이 많더라도 영상 조회 수는 유튜브가 더 높은 경우도 많다. 지난해 샤넬은 ‘블루 드 샤넬 오드 퍼퓸(BLEU DE CHANEL EAU DE PARFUM)’ 광고 영상을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동시에 올렸다. 샤넬의 유튜브 구독자는 110만 명으로 인스타그램 구독자(285만 명)의 절반에 불과하다. 하지만 해당 영상의 유튜브 조회수는 380만 회로 인스타그램 조회 수(25만 회)의 15배에 달했다.

대신 인스타그램은 전자상거래 기능 개발로 패션·뷰티 업계를 공략하고 있다. 지난해 이용자들이 사진을 보고 마음에 드는 제품을 바로 구매하도록 연결하는 서비스를 도입했다. 사진에 태그를 걸어 상품 상세 이미지나 설명, 가격을 보여주는 기능이다. 또 사진을 클릭하면 바로 상품 구매 사이트로 넘어간다.


Plus Point

‘패션 업계 위대한 개츠비’ 데릭 블라스버그 유튜브 패션·뷰티 총괄

데릭 블라스버그 유튜브 패션·뷰티 파트너십 총괄은 그 자신이 SNS 인플루언서다. 그는 패션 모델 칼리 클로스(Karlie Kloss), 배우 기네스 팰트로(Gwyneth Paltrow), 가수 케이티 페리(Katy Perry), 데이비드 게펜(David Geffen) 드림웍스 회장 같은 유명인사들과 파티에서 만나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자주 올린다. 파티를 즐기기 때문에 ‘패션 업계의 위대한 개츠비’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92만5000명에 달한다.

블라스버그도 패션 브랜드와 협업해 직접 유튜브 콘텐츠를 만든다. 지난 3월 타미 힐피거와 협업해 올린 영상이 대표적이다. 이 영상에서 그는 패션 디자이너 타미 힐피거, 배우 젠다야(Zendaya), 스타일리스트 로 로치(Law Roach)와 봄 신상품에 대해 얘기한다.

현재까지 60개의 영상을 올렸는데 구독자 수는 비공개다. 그는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다른 플랫폼에선 예쁜 여성이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걸어가면 성공하겠지만 유튜브에선 아니다”라면서 “내가 유튜브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충고는 ‘너라면 이거 보겠니?’다”라고 했다. 그는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 때의 세 가지 주의 사항을 내부 메모로 만들기도 했다. 다음과 같다.

1. TV 프로그램처럼 만들지 말라. 시청자들은 이 채널이 당신 것이길 바란다. ‘진짜’ 당신과 소통하기를 원한다.

2. 상업적으로 만들지 말라.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한 편당 한 번(많아야 두 번)만 등장시키라. 브랜드, 장소, 행사 이름이 반복된다면 콘텐츠가 상업적으로 비친다(만약 당신이 업체로부터 돈을 받는다면 이 팁을 무시해도 된다).

3. 품격을 유지하라. 영상에 욕, 저속한 행동, 저작권을 침해하는 내용을 넣으면 홍보에 불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