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일 기아자동차의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셀토스’ 구매 계약을 한 직장인 오동수(32)씨는 3주를 기다려 차를 받았다. 그는 흰색 몸체에 검은색 지붕을 조합하는 ‘투톤 루프’ 디자인을 선택하고 싶었지만, 이 디자인은 인기가 많아 한 달 넘게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에 다른 색을 골랐다. 오씨가 셀토스를 사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랜드로버의 레인지로버를 연상시키는 차체 디자인’ 때문이었다. 오씨는 “입체적인 앞모습이 수입 차 느낌을 준다. ‘조선 이보크(레인지로버 이보크를 닮았다는 의미)’라는 별명이 괜히 붙었겠나”라고 말했다.

올해 7월 출시된 기아차의 ‘괴물 신인’ 셀토스가 세련된 디자인을 무기로 국내 소형 SUV 시장을 점령했다. 전면부를 보면 기아차가 2006년부터 신차에 적용했던 ‘호랑이 코’ 모양의 라디에이터 그릴이 입체적으로 솟아 있다. 차량의 전체적인 선은 둥글다기보다는 각졌다. 기아차에서 출시한 한 체급 위의 준중형 SUV 스포티지, 한 체급 아래인 스토닉의 유선형 몸체와 구분된다.

셀토스의 라디에이터 그릴 윗부분으로 연결된 LED 전조등은 ‘매서운 호랑이 눈매’를 연상시킨다. 전조등 아래의 방향지시등을 켜면 노란 불빛 사이로 검은 줄이 3개 보이는데, 이 모습이 호랑이 느낌을 더한다. 동글동글하게 귀여운 느낌을 주는 디자인이 많았던 SUV 시장의 파격이다.

셀토스는 8·9월 각각 6109대씩 팔려 두 달 연속 소형 SUV 판매 1위 자리를 거머쥐었다. 8월 소형 SUV 판매량 2위(현대차 베뉴·3701대)와 3위(현대차 코나·2474대)를 합친 것과 비슷했다. 소형 SUV 판매량이 월 6000대를 넘긴 것은 셀토스가 처음이다. 오랫동안 소형 SUV 시장의 강자였던 쌍용자동차의 티볼리는 이 기간 월 2000대 정도 팔리는 데 그쳤다.

기아차도 셀토스가 이 정도로 인기를 얻을지는 예상 못 했다. 애초 기아차는 셀토스 판매 목표치를 올해 연말까지 누적 1만8000대, 월평균 3000대로 잡았다. 하지만 7~9월에 이미 판매 목표치의 86%인 1만5553대가 판매됐다. 10월 1일 기준 누적 계약 대수는 2만7000여 대다.

자동차 내수 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나온 성과라 더욱 눈에 띈다. 지난달 기아차의 내수 판매량은 4만2005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3% 늘었다. 같은 기간 현대차(-4.5%)와 한국GM(-30.5%), 쌍용차(-5.4%)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자동차 회사들은 찻값을 깎아주면서 소비자를 사로잡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지프는 3990만원부터 시작하는 컴패스를 1000만원, 현대차도 주력 차종인 그렌저를 10%, 아반떼와 소나타를 최대 7% 깎아준다.


기아차 디자인 경영의 ‘숨은 공로자’ 윤선호 전 부사장

셀토스의 인기는 디자인에 승부수를 건 기아차 ‘디자인 경영’의 산물이다. 디자인 경영이란, 디자인을 회사의 핵심 가치로 삼고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이다. 기아차는 2006년 9월 파리 모터쇼에서 디자인 경영 출사표를 던졌다. 현대차와 정체성을 차별화하면서 기아차 브랜드를 세계 시장에 알릴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 디자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역사가 길게는 제2차 세계대전부터 시작하는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과 한 무대에서 경쟁하려면, 트렌디한 브랜드 이미지를 소비자에게 각인시켜야 한다는 전략이었다.

2004년부터 올해 1월까지 기아디자인센터장으로 일했던 윤선호 전 부사장은 15년간 기아차 디자인 경영을 이끌어온 핵심 인물이다. 그는 피터 슈라이어 현대차그룹 디자인경영담당 사장이 2006년 7월 기아차 최고디자인책임자(CDO)로 부임했을 때, 기아차에서 내놓는 차량의 전면부 호랑이 코 상징을 확립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회사 내 순혈주의 분위기로 외국인 임원 영입 사례가 거의 없던 시절, 슈라이어 당시 CDO가 마음껏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적극 보좌했다.

기아차의 전면부 라디에이터 그릴은 이빨을 드러낸 호랑이 코와 입 모양처럼, 가로 선이 안쪽으로 움푹하게 들어간 모양이다. 이 호랑이 코는 2007년 프랑크푸르트에서 공개된 콘셉트카 키(Kee)에 최초로 적용됐다. 이후 포르테와 쏘울, 세단인 K시리즈 등 출시된 모든 제품이 호랑이 코 모양을 하고 있다.

황욱익 자동차 칼럼니스트는 “BMW는 1950년대부터 ‘키드니 그릴(콩팥처럼 양옆으로 나뉘어 대칭을 이루는 모양)’을 채택했고 30년쯤 지나서 회사의 상징으로 각인됐는데, 기아차의 호랑이 코 그릴은 13년쯤 걸린 것이니 이에 비하면 꽤 빠르게 정착한 편”이라면서 “자동차에 대한 개념이 점차 소유보다는 공유·대여로 가는 상황에서 자동차 브랜드의 정체성 확립은 중요한 숙제다. 셀토스 인기는 기아차의 지속적인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설명했다.

마치 지프가 1940년대부터 ‘정통 SUV’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사다리꼴 형태의 휠 하우스 모양을 변경하지 않고 모든 모델에 채택해, 어떤 차를 봐도 한눈에 ‘지프에서 나온 차’임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셀토스뿐 아니라 올해 9월 출시된 대형 SUV ‘모하비 더 마스터’도 최신 형태의 호랑이 코 라디에이터 그릴을 적용해 인기를 얻고 있다. 모하비 더 마스터는 이전 모델의 페이스 리프트(부분 변경) 모델인데, 9월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39% 늘어난 1754대였다.

기아차 경영의 중심은 앞으로도 디자인에 무게가 실릴 것으로 보인다. 기아차는 디자인 경영의 방향을 잡았던 윤 전 부사장이 물러난 후 9개월간 공석이었던 디자인센터장(전무)에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 카림 하비브를 10월 1일 자로 선임했다. 하비브 센터장은 최근까지 닛산자동차의 고급 브랜드 인피니티에서 디자인 총괄을 지냈다. 1970년생의 레바논계 캐나다인인 하비브 센터장은 1998년 당시 BMW 디자인 총괄이었던 크리스 뱅글의 눈에 들어 BMW에 합류했고 이후 디자인 총괄까지 맡았다. 2009년에는 벤츠로 스카우트되는 등 업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자동차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이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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