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커버리 ‘부클 테크 후리스’ 재킷을 입은 배우 공유. 사진 디스커버리
디스커버리 ‘부클 테크 후리스’ 재킷을 입은 배우 공유. 사진 디스커버리

“롱패딩 빠진 빈자리, ‘뽀글이’가 채웠습니다.”

롱패딩에 이어 플리스 재킷이 올가을·겨울 패션 시장을 견인하고 있다. 플리스(fleece)는 폴리에스터 원단 표면을 양털처럼 가공해 만든 보온 소재다. 기존에는 실내용 방한복이나 겉옷 안에 받쳐 입는 내피 정도로 활용됐지만, 올해는 겉옷 수요가 많아지면서 롱패딩, 경량패딩 등과 함께 겨울철 외투 상품군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아웃도어 브랜드 디스커버리가 9월 초 출시한 ‘부클 테크 후리스’는 3주 만에 8만 장이 완판됐다. 10월 23일부터 4차 재생산(리오더)을 하고 있는데, 예약 판매된 물량도 1만 장이 넘는다. 서모라이트(thermolite·가운데가 빈 기능성 섬유) 원사를 사용해 가벼우면서도 단열 효과가 높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디스커버리를 운영하는 에프앤에프의 김익태 기획 부문 상무는 “롱패딩 매출이 떨어진 틈을 플리스 재킷이 메우고도 남았다. 지난해 플리스 재킷의 매출은 10억원이 좀 넘는 수준이었지만, 올해는 30만 장을 팔아 500억원 이상의 매출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블랙야크는 플리스 상품을 지난해 12종에서 22종으로 늘렸다. 올해 총 10만 장을 준비했는데, 이 중 ‘쉐르파 재킷’은 40% 이상이 팔렸다. K2와 아이더도 올해 플리스 재킷 물량을 작년보다 각각 4.5배, 3배 늘렸다.

캐주얼 시장도 플리스가 강세다. 이랜드의 SPA(제조·유통 일괄) 브랜드 스파오도 플리스 상품의 매출이 작년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양면으로 착용할 수 있는 플리스 재킷의 반응이 좋았고, 일부 제품은 완판돼 재생산에 들어갔다. 신성통상의 탑텐도 플리스 재킷을 15만 장 이상 팔았다. 지난해와 비교해 900% 이상 늘어난 수치다. 이 회사는 올해 플리스 상품 물량을 지난해보다 5배 이상 늘린 40만 장을 준비했다.

플리스 소재를 변형한 외투도 등장했다. 네파는 가수 피오와 함께 패딩과 플리스를 합친 ‘피오 패리스(패딩+플리스)’ 재킷을 내놨다. 한쪽은 플리스 소재, 반대쪽은 패딩 겉감을 적용해 양면으로 입을 수 있다. K2는 플리스 원단 안에 거위 털 충전재를 넣은 ‘비숑 플리스 재킷’을 선보였다. 바람이 불면 보온성이 약해지는 플리스의 단점을 보완해 충전재를 넣어 한겨울에도 외투로 입도록 했다. 김익태 상무는 “이전에 없던 플리스 상품군이 간절기 외투로 등장해 10~11월 매출을 견인하고 있다”며 “올해 국내 패션 시장에서 총 150만 장 이상의 플리스 재킷이 팔릴 것”으로 전망했다.


왼쪽부터 폐페트병으로 만든 ‘씽크 그린 플리스 재킷’을 착용한 배우 신민아, 길거리 감성을 담은 밀레 ‘데인 재킷’을 착용한 시니어 모델 김칠두, 큼직한 로고가 들어간 플리스 후드 셔츠를 입은 배우 김유정. 사진 노스페이스·밀레·휠라
왼쪽부터 폐페트병으로 만든 ‘씽크 그린 플리스 재킷’을 착용한 배우 신민아, 길거리 감성을 담은 밀레 ‘데인 재킷’을 착용한 시니어 모델 김칠두, 큼직한 로고가 들어간 플리스 후드 셔츠를 입은 배우 김유정. 사진 노스페이스·밀레·휠라

명품 시장에선 2~3년 전부터 유행

플리스 재킷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뉴트로(새로운 복고)와 실용성을 추구하는 밀레니얼 세대(1981~96년 출생)의 요구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플리스 원단은 폴리에스터 원단을 양털처럼 가공해 가볍고 보온성이 뛰어나다. 가격도 다른 외투보다 저렴해 가성비 ‘갑’ 외투로 취급받는다. 외관이 보송보송하고 투박해 어글리 슈즈, 와이드 팬츠 등 요즘 유행하는 패션과도 잘 어울린다. ‘뽀글이 패션’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명품 시장에선 이미 2~3년 전부터 뽀글이 패션이 유행했다. 대표적으로는 이탈리아 명품 막스마라의 테디베어 코트를 들 수 있다. 이름처럼 곰 인형을 만들어야 할 것 같은 복슬복슬한 외피로 만든 코트로 2017년부터 파리, 뉴욕 등 패션 도시를 장악했다. 가격이 400만~500만원에 육박하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 이 코트는 2017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막스마라 전시에도 소개됐다.

1980년대 처음 출시된 테디베어 코트는 독일 완구 공장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곰 인형 소재로 만들었다. 당시엔 미국 TV 드라마 ‘내 친구 바야바’ 속 털북숭이를 빗대 ‘바야바 코트’로 불리기도 했지만, 다시 돌아온 지금은 세련된 여성의 로망이 됐다. 흔치 않은 소재가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는 평이다.

오리털과 양털을 채취해 만드는 동물성 외투의 대안으로 뽀글이 패션이 부상했다는 시각도 있다. 최근 패션계엔 탈(脫)모피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구찌, 아르마니, 베르사체 등이 모피 제품 생산을 중단했고 영국 셀프리지 백화점, 육스네타포르테 그룹 등 유통 기업도 모피 제품을 팔지 않는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은 “20·30세대는 천연 모피나 가죽보다 ‘멋진 가짜’를 선호한다”며 “동물 복지와 환경 문제 등 윤리적 사회적 소비를 고려한다”고 했다.

실제로 올해 출시된 플리스 재킷 중엔 친환경 제품이 제법 눈에 띈다. 노스페이스는 친환경 트렌드를 반영해 페트병에서 추출한 원사로 만든 ‘에코 플리스 재킷’을 주력 상품으로 내세웠다. 이번 시즌에만 약 370만 개의 폐페트병을 사용했다. 파타고니아도 재생 폴리에스터, 나일론, 모 등으로 만든 플리스 재킷을 선보였다.

김은영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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