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RDS 충전재를 사용한 노스페이스 ‘1996 레트로 눕시 다운 재킷’, 나우 리사이클 다운 재킷 ‘숏미드 다운’, 리사이클 다운을 사용한 블랙야크 ‘B엣지 레이디2 다운 재킷’. 사진 노스페이스, 나우, 블랙야크
왼쪽부터 RDS 충전재를 사용한 노스페이스 ‘1996 레트로 눕시 다운 재킷’, 나우 리사이클 다운 재킷 ‘숏미드 다운’, 리사이클 다운을 사용한 블랙야크 ‘B엣지 레이디2 다운 재킷’. 사진 노스페이스, 나우, 블랙야크

올겨울엔 어떤 패딩이 유행할까. 종아리까지 감싸는 포근한 롱패딩? 아니면 복고풍 숏패딩? 뭘 좀 아는 사람은 길이보다 패딩 ‘속’부터 따진다.

직장인 한지영(여·27)씨는 지난 주말 윤리적 다운 인증(RDS·Responsible Down Standard) 재킷을 구매했다. RDS란 오리와 거위의 사육 및 도축, 가공, 봉제 등 다운(Down·새의 솜털) 제품을 생산하는 전 과정에 동물 복지 시스템을 준수했음을 인증하는 제도다.

한씨는 “유튜브에서 우연히 오리털 뽑는 영상을 봤는데 너무 잔인했다. 추위를 많이 타 코트를 입을 수도 없고, 다른 대안이 없을까 찾던 중 RDS 패딩을 알게 됐다. 생각보다 많은 브랜드가 RDS 패딩을 판매하고 있어서 구매하기 수월했다”고 했다.


트렌드 1│동물 복지 생각한 ‘RDS’ 인증 제품 늘어

윤리적 다운 인증(RDS·Responsible Down Standard) 마크.
윤리적 다운 인증(RDS·Responsible Down Standard) 마크.

올해 패션 시장에는 RDS 충전재를 사용한 패딩 제품이 부쩍 늘었다. RDS는 2014년 미국 비영리 섬유 협회인 텍스타일 익스체인지(TE·Textile Exchange)와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가 공동으로 연구해 만든 인증 제도다.

현재 코오롱스포츠, K2, 네파 등 많은 의류 업체가 이 인증을 받은 충전재로 다운 점퍼를 만든다.

노스페이스는 모든 다운 제품에 RDS와 인공 충전재를 사용하고 있으며, 2016년부터는 모자 장식도 너구리 털(라쿤)과 여우 털(폭스) 대신 인조 모피를 쓴다. 올해 유행 중인 플리스 재킷, 일명 ‘뽀글이 재킷’은 플라스틱병을 재활용해 만들었다.

노스페이스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지속가능경영이 화두인 만큼 제품과 공정 전반에 친환경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2014년부터 모든 다운 제품에 유통과정 추적 다운(Traceable Down)을 사용한다. 매 시즌 추적 조사를 해 푸아그라를 위해 강제로 사료를 먹여 키운 거위나 살아있는 거위에서 채취한 털이 들어있지 않다는 걸 확인한 후 제품을 만든다.

파타고니아가 이 제도를 도입한 계기는 2010년 한 동물보호단체로부터 살아있는 거위에서 채취한 다운을 썼다고 고소당하면서다. 조사 결과 다운을 공급하는 농장의 거위가 사료를 강제로 먹여 키워졌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이후 다운 공급망을 개선했다.


트렌드 2│이불 솜으로 만든 리사이클 패딩도 등장

못 쓰게 된 오리털을 재가공한 리사이클(재생) 충전재도 등장했다. 아웃도어 브랜드 블랙야크는 올겨울 모든 다운 점퍼에 RDS 충전재와 리사이클 충전재를 적용했다. 전체 다운제품 중 21%를 이불이나 베개 등 침구류에서 모은 오리털을 재가공해 만들었다. 이 회사의 자매 브랜드 나우도 수년째 리사이클 다운 점퍼를 선보이고 있다.

버려진 동물털을 재활용하면 털이 삭거나 보온성이 떨어지진 않을까? 블랙야크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공인된 헝가리의 재생 우모(羽毛) 공장에서 철저한 세척과 소독과정을 거쳐 재가공한 털을 사용해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솜털과 깃털이 약 75 대 25 비율로 들어갔고, 필파워(충전재가 압축됐다 복구되는 성질)도 600~650 수준으로 아웃도어 다운 제품 기준에 부합한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남윤주 블랙야크 마케팅팀장은 “아웃도어 브랜드라면 자연과 공존이 가능한 제품을 선보여야 한다고 생각해 과감한 시도를 했다”며 “세척 과정에서 온천수를 사용하고, 세척을 마친 온천수는 정수 후 농업용수로 사용하기 때문에 공정 과정도 매우 친환경적이다”라고 했다. 아웃도어 브랜드 K2와 아이더도 못 입는 다운 제품을 기증받아 새 다운 점퍼를 만드는 캠페인으로 흐름에 동참했다.


트렌드 3│‘탈(脫)모피’ 흐름 맞춰 인공 충전재도 주목

업계가 충전재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윤리적 소비를 지향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패션계에는 탈(脫)모피 운동이 확산하는 추세다. 구찌, 아르마니 등 명품 브랜드가 모피 제품 생산을 중단했고, 셀프리지 백화점 등 주요 유통사도 모피 제품 판매를 거부하고 나섰다. 오리와 거위의 털로 만드는 다운 점퍼도 시대의 흐름을 피해갈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거위 한 마리에서 나오는 털은 60g 정도로, 점퍼 한 벌을 만들기 위해서는 15~25마리의 오리, 거위가 필요하다. 한 동물단체 조사에 따르면 오리와 거위는 생후 10주부터 6주 간격으로 일생 털을 뽑힌다. 그렇게 매년 약 200만 마리의 오리와 거위가 희생된다.

이런 이유로 인공 충전재가 대안으로 떠오른다. 웰론, 프리마로프트, 신슐레이트 등이 대표적으로 섬유의 중심 부분을 빈 구조로 만들어 보온성을 높였다. 천연 다운보다 무겁고 충전성이 낮다는 단점이 있지만, 관리가 편하고 가격이 저렴한 데다 동물 학대 논란에서도 완벽히 벗어날 수 있어 꾸준히 수요가 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친환경 패딩에 대한 인식은 미비한 상황이다. 주부 이영주(38)씨는 “한 백화점 매장에서 RDS 패딩이 있냐고 문의했는데, 점원이 알아듣지 못하고 허둥댔다. 매장 한쪽에 해당 제품이 진열됐는데도 말이다. 이런 제품을 원하지만 잘 모르는 소비자를 위해 적극적으로 안내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김은영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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