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9일 롯데마트 청량리점 와인코너. 사진 송현 기자
12월 9일 롯데마트 청량리점 와인코너. 사진 송현 기자

워킹맘 김예은(34)씨는 최근 대형마트에서 오랜만에 장을 봤다. 그는 근처 롯데마트에서 병당 4800원짜리 칠레산 와인을 판다는 소식을 듣고 한동안 뜸했던 오프라인 매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김씨는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만 하면 생필품은 물론 신선식품까지 문 앞까지 배달해주는 각종 이커머스(전자상거래) 덕분에 대형마트에 발길을 끊은 지 꽤 됐다”면서도 “다만 최근 대형마트마다 오프라인에서만 살 수 있는 초저가 제품을 내놓는 통에 가끔 일부러 대형마트에 들러 장을 보곤 한다”고 말했다.

올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대형마트의 초저가 경쟁이 와인 대전(大戰)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장 소비 트렌드가 온라인 채널로 넘어가면서 위기감을 느낀 오프라인 유통사가 초(超)저가 정책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는 것이다. 비누·물티슈·생수 등 생필품과 돼지고기·소고기 등 신선식품은 물론 와인까지 전선(戰線)이 확대하고 있다.

가장 먼저 와인을 내세운 곳은 이마트다. 이마트는 지난 8월 ‘도스코파스’ 카베르네 소비뇽, 레드 블렌드를 병당 4900원에 매장에 풀었다. 가격을 맞추기 위해 스페인과 칠레 와이너리(와인 양조장)에 대규모 주문을 넣었다. 보통 와인을 수입할 때 3000병을 기본으로 주문하지만, 이마트는 가격을 떨어뜨리기 위해 100만 병을 주문했다. 칠레 현지에서 7~8달러 정도에 팔리는 레드 와인이 한국에서는 5000원도 안 되는 값에 팔릴 수 있게 된 이유다.

경쟁사도 나섰다. 롯데마트는 12월 12일부터 ‘나투아 스페셜 셀렉션’ 카베르네 소비뇽, 멜롯을 병당 4800원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마트보다 100원 낮게 가격을 책정했다. 칠레산 햇포도로 양조한 제품이다. 유럽 시장에서는 약 5달러 정도에 팔리고 있다. 롯데마트도 가격을 떨어뜨리기 위해 기존(1만~2만 병)보다 많은 10만 병을 한꺼번에 주문했다. 이에 앞서 10월부터는 매그넘(1.5ℓ) 사이즈 페트병 와인인 ‘레오 드 샹부스탱’ 카베르네 소비뇽, 멜롯도 출시했다.

대형마트가 앞다퉈 4000원대 초저가 와인을 선보이는 이유는 주류가 온라인에 대항할 수 있는 주요 제품군이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온라인에서는 막걸리 등 전통주를 제외한 주류를 판매할 수 없다. 와인이나 맥주를 사기 위해서는 마트, 편의점 등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해야 한다. 특히 소비자 입장에서는 대형마트로 가면 다양한 와인을 가격대별로 비교하고 살 수 있어 유통 채널로서의 장점이 극대화될 수 있다.

소비자 반응도 좋다. 이마트는 초기 주문 물량 100만 병을 넘어 101만 병 판매를 기록(12월 9일 기준)하고 있다. 8월 주문 이후 하루 평균 8000병씩 팔린 것으로, 이 기세에 힘입어 하반기 이마트 매출 상위권 목록에 와인이 처음 10위에 오르기도 했다. 주류 카테고리에서도 와인 매출 비중은 24.5%로 수입 맥주(20.4%)를 처음으로 제쳤다. 고급 주류 축에 들던 와인 가격을 대폭 낮춰 진입 장벽을 낮추고 고객을 끌어모은 것이다. 롯데마트 관계자도 “지난해 와인 매출 중 4분기 판매 비중이 40%에 달할 정도로 연말 와인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이게 4900원?’ 한 여성이 이마트 와인 코너에서 와인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이마트
‘이게 4900원?’ 한 여성이 이마트 와인 코너에서 와인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이마트

초저가 경쟁 몰입하는 대형마트

대형마트 가격 할인 경쟁은 2010년 초부터 시작됐다. 창고형 매장 출점 경쟁, 정부의 대형마트 의무 휴업제, 불황에 따른 대형마트 성장 한계 등에 맞서기 위해 회사 간 마케팅 경쟁이 치열했다. 신라면 가격을 경쟁적으로 7~8회 인하해 손해를 보면서까지 라면을 판매하거나 꽃게·삼겹살 가격을 경쟁사보다 100g당 10원씩 내려가며 판매하는 식으로 화제 몰이를 했다.

올해 재등장한 가격 경쟁은 더 절박해진 대형마트 업계의 현실을 반영한다. 쿠팡 등 이커머스의 공세에 오프라인 업체의 수익성이 실제로 악화하는 상황에서 내놓은 처방전이다. 특히 지난 9년간 소비자는 온라인 쇼핑에 더 익숙해졌다. 일정 기간 경쟁사보다 10원 싸게 판다고 대형마트를 찾지 않는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품목을 검색해서 당일 혹은 다음 날까지 배송받는 시스템에 익숙해졌다. 실제로 통계청의 10월 온라인 쇼핑 동향에 따르면 월 거래액은 지난해 10월보다 17.3% 증가한 11조8055억원을 기록했다.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다.

가장 먼저 움직인 곳은 2분기 사상 최악의 실적을 낸 업계 1위 이마트다. ‘상시 초저가’ ‘기존에 없던 가격’ ‘할인가보다 싼 상식 이하의 가격’을 내세우며 초저가 경쟁을 재점화했다. 100매짜리 물티슈를 700원에, 6개들이 칫솔을 2000원에 팔기 시작했다. ‘반값 삼겹살’ 행사로 100g당 1400원짜리 삼겹살을 840원까지 떨어뜨리고, 병(2ℓ)당 약 313.33원짜리 생수를 내놓자 경쟁사도 앞다퉈 초저가 대열에 합류했다.

업계에서는 초저가 전략이 일단 소비자의 발길을 오프라인 매장으로 이끄는 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한다. 이마트가 자사 구매 동향을 분석한 결과, 물티슈 구매 고객의 70%, 칫솔 구매 고객의 73%가 6개월간 이마트에서 해당 상품군을 한 번도 구매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고객뿐만 아니라 신규 고객 유입 효과까지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초저가 품목을 찾아 가격대에 맞춰 제품을 대량 수입하기 위한 대형마트 상품기획자(MD)들의 노력도 눈물겹다. 롯데마트 장세욱 MD는 4800원 와인을 들여오기 위해 칠레의 몽그라스 와이너리에 직접 방문해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마트 주류 담당 바이어도 4900원짜리 와인을 만들기로 우선 가격을 정하고, 품질과 가격 조건이 맞는 와이너리를 수십 곳 찾아다녔다고 한다. 이마트 관계자는 “한 캔에 2500원 하는 수입 맥주 두 캔 분량의 와인이라 가격대를 5000원으로 잡고 상품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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