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상 사진관 운영(1994~2012년), 한국전통주연구소 전문가 과정 이수, 화양 경영(2013년~) / 사진 화양
이한상
사진관 운영(1994~2012년), 한국전통주연구소 전문가 과정 이수, 화양 경영(2013년~) / 사진 화양

춘하추동 계절별로 특색 있는 네 가지 술로 유명한 ‘풍정사계’의 특징은 녹두가 들어간 누룩인 ‘향온곡’으로 빚은 술이란 점이다. 술(약주) 색깔도 다른 술보다 황금색이 도는 게 특징이다. 전통 누룩 향온곡은 녹두 10%, 나머지 90%는 밀로 만든다.

풍정사계는 한마디로 누룩 술이다. 누룩이 아낌없이 들어간 술이다. 누룩 비중이 쌀 함유량의 10%에 이른다. 국내 전통술 중 누룩을 가장 많이 쓰는 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누룩 술은 최근의 전통술 트렌드와는 맞지 않는다.

새로 전통술 개발에 뛰어든 신세대 양조인 대부분은 누룩취를 없애기 위해 누룩 비중을 줄이고, 일본식 개량 누룩인 ‘입국’ 사용을 늘리고 있다. 누룩을 덜 넣으면 누룩 냄새는 덜 나지만 누룩의 본래 기능인 발효가 잘 안 되기 때문에 개량 누룩 혹은 효모를 집어넣어 발효를 활성화한다.

그런데 풍정사계를 만드는 이한상 화양 대표는 “누룩을 쓰지 않은 술은 우리 술이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누룩을 제대로 만들면 누룩취도 없는데, 누룩을 잘 만들 궁리는 안 하고 누룩을 적게 넣을 생각만 한다”며 아쉬워한다. 양조장 이름인 화양은 ‘조화양지’의 준말로 ‘조화롭게 섞어 술을 빚는다’는 뜻이다.


이한상 대표가 술을 빚을 때 사용하는 누룩. 사진 화양
이한상 대표가 술을 빚을 때 사용하는 누룩. 사진 화양

풍정사계 춘은 어떤 술인가.
“풍정사계의 시작은 봄, 약주다. 10년이 걸렸다. 2006년도에 술을 만들겠다고 뛰어들었지만 10년 지난 2015년에야 춘을 만들었다. 풍정사계 춘 하나 만드는 데 10년이 걸렸다. 술 배우기 시작하면서 ‘약주 하나만 제대로 만들자’고 작정했다.”

약주를 가장 먼저 만든 이유는.
“약주는 맑은 술이다. 반면에 탁주는 여러 가지 잡맛이 들어가 있다. 약주는 단점이 신랄하게 드러나는 술이다. 잘못 만들면 그 결과가 그대로 나온다. 술을 빚은 잘잘못이 바로 드러나는 술이 약주다. 약주 하나만 잘 만들면 탁주나 소주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술의 진검승부는 약주에서 결판난다.”

10년이나 걸린 이유는.
“개성 있는 내 술을 만들려면 우선 내 누룩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만의 누룩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제대로 된 누룩 만드는 데 10년을 보냈다. 입국으로 술 빚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거기에 손대고 싶지는 않았다. 누룩은 잘 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만들어진 누룩을 법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잘 띄운 누룩을 잘게 빻아서 여러 번 아래위로 뒤적거리며 말리는 작업이 누룩 법제다. 우리 조상들은 낮에는 햇볕에 말리고, 밤에는 이슬을 맞게 하여 수분을 공급하는 식으로 술이 잘 발효되도록 누룩을 법제했다. 누룩 법제가 번거롭긴 하지만 누룩의 나쁜 향을 없애는 데는 필수다.”

누룩에 따라 술맛도 달라지나.
“누룩은 만드는 장소, 만드는 사람에 따라 조건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누룩 자체가 똑같을 수는 없다. 제각각인 누룩으로 술을 빚으면 술맛도 다 다를 수 있다. ‘나만의 누룩’을 잘 만들어 술을 빚으면 ‘나만의 개성이 있는 술’이 된다. 개성 있는 술은 결국 개성 있는 누룩에서 나온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공장에서 만드는 천편일률적인 입국으로 술 빚는 전통술 제조업자가 많은 게 현실이다. 전통술 양조인조차 누룩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술에 배어있는 누룩취는 다들 싫어하지 않는가.
“누룩 향에는 긍정적인 향과 부정적인 향, 두 가지가 있다. 부정적인 향은 누룩을 잘못 만들었을 때 나는 향이고, 긍정적인 향은 누룩을 제대로 띄웠을 때 나는 향이다. 흔히 사람들이 ‘누룩취’라고 하는 것은 부정적인 향을 말한다. 이 누룩취는 누룩 본래의 향이 아니라 잘못 만들어진 누룩의 고약한 냄새다. 사람들이 잘못 만든 누룩으로 술을 빚어놓고선 ‘전통 누룩으로 빚으면 누룩취가 강하고, 술맛도 일정하지 않다’라고 불평한다.”

물 좋기로 유명한 충북 청원군 내수읍에 있는 화양 양조장을 찾아가니 양조장 처마 밑에 전에 없던 대형 증류 설비가 비닐에 덮인 채로 놓여 있었다. 기존의 증류 설비보다 세 배나 큰 규모다. 이한상 대표는 “증류식 소주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중국에서 증류 장비를 들여놓고도 증류 공장을 짓지 못해 일 년 이상 비닐도 뜯지 못한 채 보관해왔다”고 했다. 이 대표는 최근 198㎡(약 60평) 규모의 새 공장을 완성했다.

새 증류기가 본격 가동되면 소주 생산량은 얼마나 늘어나나.
“세 배 정도 늘어난다. 지금 쓰고 있는 증류기는 용량이 160ℓ다. 한 번에 160ℓ의 술을 증류할 수 있다. 새 증류기는 500ℓ용량으로, 세 배 정도 규모가 크다. 현재 소주는 증류 후 1년간 숙성한 다음 병에 넣어 판매하고 있다. 앞으로 생산량이 늘어나면 숙성 기간을 1년에서 3년으로 늘릴 생각이다. 숙성기간이 길어지면 맛이 더 부드러우면서도 깊어진다.”

약주인 ‘풍정사계 춘’ 다음으로 만든 술은.
“겨울 술인 소주(풍정사계 동)다. 약주를 증류하면 소주가 된다. 또 춘을 탁하게 거르면 탁주가 되는 거고. 여름 술인 과하주는 약주에다 소주를 약간 넣어 만든다. 원래 술은 약주·탁주·소주 세 가지인데, 우리 조상들은 기온이 높은 여름에도 술이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과하주’를 만들어 마셨다. 쌀·누룩·물만으로 술을 빚으면서 약주·탁주·소주·과하주까지 만드는 양조장은 전국에 풍정사계뿐이다.”

술 생산량을 늘릴 계획은.
“올해 새로 설치할 증류기가 제대로 가동되면 증류소주 생산량은 많이 늘어날 수 있지만 약주를 비롯한 나머지 술은 당분간 생산량을 늘리기 어렵다. 무리하게 양을 늘리다 보면 맛이나 품질이 떨어질 수도 있다. 양을 늘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맛의 유지’다. 언젠가는 우리 술도 쇠퇴기가 오겠지만, 이 술을 소비자가 찾는 동안에는 지금의 맛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내놓고 싶다. 누룩 술이 흔치는 않지만, 누룩으로 술을 만들면 이런 맛이 나온다는 걸 몇 년 동안은 더 알리고 싶다.”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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