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희 가양주연구소 지도자반 수료 / 강진희 술아원 대표가 술 제조 설비 앞에서 제조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강진희
가양주연구소 지도자반 수료 / 강진희 술아원 대표가 술 제조 설비 앞에서 제조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과하주는 온도와 습도가 높은 여름에도 술이 상하지 않도록 한 선조의 지혜가 담겨 있는 술입니다. 육당 최남선 선생도 ‘경성과하주’를 ‘조선 최고의 명주 중 하나’라고 꼽았습니다.”

경기도 여주의 양조장 ‘술아원’ 강진희 대표는 전통술 중 유독 과하주에 꽂힌 양조인이다. 국내 대표적인 전통술 아카데미인 가양주연구소에서 2010년 우리 술 빚기 과정을 이수한 후 벌써 과하주만 5종을 내놓았다. 술아원 양조장 설립(2015년)보다 앞선 2014년 3월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특성을 살린 4종의 과하주 ‘술아’를 출시했다. 또 지난해 12월에는 최남선이 자신의 저서 ‘조선상식문답’에서 ‘조선 최고의 명주 중 하나’라고 소개한 ‘경성과하주’를 새로 내놓았다.

‘여름을 지나는 술’이란 의미인 과하주는 발효주인 약주에 알코올 도수가 높은 소주(증류식 소주 혹은 주정 희석액)를 약간 넣은 술이다. 약주 발효 초기에 독주를 넣음으로써 알코올 발효를 억제해, 결과적으로 술의 단맛을 오랫동안 유지하도록 했다. 냉장기술이 제대로 없던 조선 시대에 기온이 올라가는 여름철, 술이 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고안해낸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술이다. 과하주는 흔히 주정강화와인으로 알려진 포르투갈의 포트 와인, 스페인의 셰리 와인과 제조기법이 비슷하지만, 탄생 시기는 과하주가 100년 정도 앞선다.

술아원의 경성과하주는 여주햅찹쌀(100%)과 국내산 누룩, 정제수를 사용한다. 약주 발효 도중에 넣는 증류주는 경기미로 미리 빚은 약주를 상압 증류해 만들었다. 술아원 양조장 한쪽에 이를 위한 동(구리)증류기가 있다. 발효 후에도 약 1년 동안 저온 숙성을 거친 뒤 병입한다. 알코올 도수는 20도, 유통기한은 180일이다. 쌀 좋기로 유명한 경기도 여주에 있는 양조장 술아원에서 강진희 대표를 만났다.


경성과하주를 비롯한 술아원의 제품들.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경성과하주를 비롯한 술아원의 제품들.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대중적인 전통술이 아닌 과하주를 선택한 이유는.
“과하주는 굉장히 매력적인 술이다. 독하면서도 단맛이 강한 과하주 특유의 향은 약주의 향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주의 향도 아니다. 새로운 매력이 있는 향과 맛을 지닌 술이 과하주라고 생각한다. 과하주는 두 가지 술을 섞은 다음에 발효와 저온 숙성을 거치면서 섞기 전의 두 가지 술이 갖지 않은, 섬세하면서 깊은 향과 맛이 새로 생겨난다.”

술아원은 2014년 3월에 4종의 과하주 ‘술아’를 출시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특성을 살린 재료를 넣어 맛을 다양화했다. 봄 술인 ‘술아-매화주’는 약주에 매화꽃과 증류 주정을 넣는다. 증류 주정은 직접 내린 증류식 소주가 아닌 대부분 수입 원료로 만든 주정이다. 제품 가격을 낮추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95%의 주정을 40% 정도로 희석해 넣는다. 말린 매화꽃은 발효와 숙성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넣는다. 그래야 꽃향기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여름철에 피는 연꽃을 넣은 ‘술아-연화주’는 매화 대신 연꽃을 넣는다. 가을꽃 국화를 넣은 ‘술아-국화주’도 같은 방법으로 빚는다. 겨울 술은 꽃잎을 넣지 않은 순곡주 스타일로 만들었다.

과하주 빚기 과정에서 주정(혹은 증류식 소주)은 어느 단계에서 넣나.
“단맛을 내기 위해 약주 발효 초기에 주정을 넣는다. 알코올 발효는 효모가 당분을 먹고 알코올을 토해내는 과정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발효가 진행되면 술의 단맛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더운 여름철, 상온에 오래 두면 술병 안에서 발효가 진행돼 알코올 도수가 올라간다. 그런데 약주 발효 초기에 높은 도수의 술(증류 주정)이 첨가되면 효모가 더는 활동을 못 하게 된다.”

과하주는 역사 속에 어떻게 소개돼 있나.
“과하주 레시피는 가장 오래된 한글 요리책인 ‘음식디미방’에 짧게 나와 있다. 그러나 계량 단위가 지금과 달라 그대로 따라 할 수는 없다.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최남선 선생은 경성과하주를 ‘조선의 명주’로 소개했다. 최남선 선생의 저서 ‘조선상식문답’을 보면 먼저 ‘조선의 3대 명주’로 감홍로·죽력고·이강주를 소개한다. 그 외에 ‘경성과하주, 면천두견주 역시 잘 알려져 있다’라는 기록이 그 책에 있다.”

여름 한철에 마시는 술인 과하주를 봄 매화술, 여름 연꽃술, 가을 국화술, 겨울 순곡주 등 사계절 술로 다양화한 이유는.
“여름을 지난다는 뜻은 이 술을 여름에만 마신다는 뜻이 아니라, 더운 여름철에 마실 수 있는 술이니까 그만큼 오랜 기간 마실 수 있다는 의미다. 여름을 (상하지 않고) 지날 수 있는 술이라면 다른 계절은 얼마든지 지날 수 있다. 그래서 과하주를 사계절 마시는 건 당연하다고 본다.”

경기도 농업기술원의 이대형 박사는 경성과하주에 대해 “단맛이 강해서 높은 알코올 도수(20도)가 잘 느껴지지 않으며, 풍부한 곡물향과 더불어 저온에서 오래 숙성하면서 만들어진 과일향(바나나와 배)이 돋보이는 술”이라고 평했다.

술아원은 2019년 5월에 고구마 증류주 ‘필’, 복분자를 넣은 약주 ‘복단지’를 새로 내놓았다. 품질 좋기로 유명한 여주산 고구마를 발효시켜, 상압식 증류기로 고구마 증류 원액을 추출해 만든다. 증류 후 2년간 숙성해서 병에 넣는다. 복단지는 쌀을 주원료로, 복분자를 부재료로 만든 약주다.

고구마 증류주 ‘필’은 증류 직후 알코올 도수가 42도인데, 25도로 낮춘 까닭은.
“여주산 고구마 술을 발효한 뒤 증류해서 내리면 알코올 도수가 대략 42도 정도 된다. 여기에 물을 타서 25도 제품을 만들어 ‘필’이란 이름을 붙였다. 도수를 25도로 한 것은 아직 국내에서 고구마 소주가 대중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접한 고구마 소주는 일본 제품이었는데, 일본 고구마 소주는 25도 제품이 많았다. 발효는 대략 7~8일밖에 걸리지 않지만, 증류 후 2년간 숙성을 거쳐 완성된다.”

복단지는 어떻게 만들었나.
“복분자가 많이 들어가서 과실주 같지만 쌀이 주원료인 약주다. 고문헌에도 레시피가 나와 있지만 과일이 부분적으로 들어간 약주를 만드는 방식이다. 쌀과 과일을 같이 넣어서 발효를 시켜 만든다. 시중의 복분자술은 당도가 낮아 가당(설탕 성분 첨가)을 하지만, 복단지는 단맛을 쌀로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