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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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정기 주주총회(이하 주총) 시즌이 본격 시작된 가운데, 표 대결로 운명이 갈리는 기업들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주총을 코앞에 두고 치열한 ‘남매의 난’을 벌이고 있는 한진그룹뿐 아니라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의 만도 사내이사 재선임,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의 현대백화점 사내이사 재선임 여부가 주총 표 대결에 달려있다.


기관, 사내이사 재선임 제동 걸까

올해는 국내 30대 대기업 집단 중 17개 그룹의 상장사 지배 주주 가운데 동일인 및 동일인의 자녀·형제·친인척에 해당하는 23명이 사내이사 임기가 만료, 이들의 재선임 성공 여부가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가장 주목되는 인물은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이다. 만도는 3월 20일로 예정된 주총에 정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을 올린 상태다. 3년 전 정 회장의 만도 사내이사 재선임에 반대한 국민연금이 이번에도 반대표를 행사할지가 주목된다. 당시 국민연금은 정 회장이 2013년 한라(옛 한라건설)에 우회적으로 자금을 지원해 내부거래로 주주 가치를 훼손했다는 이유를 제시했다.

2월 초 기준 정 회장 우호표로 볼 수 있는 최대주주 및 특별관계자 지분율은 30.26%다. 반면 국민연금은 14.02%를 보유했는데, 이후 추가 매입을 통해 2월 말 기준 14.34%로 지분율을 높였다. 국민연금은 2월 초 만도의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일반 투자’로 변경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만도에 대해 사내이사 선임이나 배당과 같은 안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 회장 측 우호표의 지분이 많지만 나머지 기관, 소액주주의 표심이 어느 쪽으로 향하느냐가 변수로 남아있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의 현대백화점·현대그린푸드 사내이사 재선임도 주총(3월 25일) 표결에 달려있다. 정 회장은 현대백화점과 현대그린푸드 지분을 각각 17.09%, 12.7% 보유하고 있는데 일부 기관투자자들은 이 부분에 이해 상충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만도와 마찬가지로 국민연금은 현대백화점에 대한 투자 목적을 ‘일반 투자’로 변경했고 2월 말 기준 12.39%의 지분을 보유했다고 공시했다. 지난해 말 11.65%에서 소폭 늘었다.

무엇보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한진칼 경영권 분쟁이 업계 초미의 관심사다. 양측 모두 주총 이후의 장기전에 대비해 한진칼 지분을 꾸준히 사들이고 있다. 3월 11일 기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측은 총수 일가 지분(22.45%), 델타항공(14.9%), 카카오(2%), 대한항공 자가보험·사우회·우리사주조합(3.8%) 등 총 43.15%의 지분을 확보한 반면, 이에 맞서는 3자 연합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6.49%), KCGI(17.84%), 반도건설 계열사들(13.30%)을 더해 37.63%의 지분을 확보했다.

반면 각종 이슈로 떠들썩했던 효성은 예상외로 무난한 주총이 예상된다. 효성은 3월 20일 열리는 정기 주총에서 조현준 효성 회장과 조현상 효성 총괄사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을 승인받을 예정이다. 앞서 조 회장은 계열사 갤럭시아일렉트로닉스(GE)를 부당하게 지원한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데다 효성은 오너 지분이 낮은 기업에는 낮은 배당 성향을 보여 주주 환원이 미약하다는 지적을 받아 기관투자자의 주요 타깃으로 지목됐다.

그러나 단일주주로는 3대 주주인 국민연금(9.97%)이 상대적으로 조용한 행보를 보이면서 이들 안건이 무난하게 통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은 최근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313개 상장사 중 56개사의 보유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일반 투자’로 변경했지만 효성은 변경 대상에서 제외됐다.

현재 회사의 지분 구조도 조 회장 측에 유리하다. 2019년 9월 기준 조현준 회장(21.94%), 조현상 총괄사장(21.42%), 조석래 명예회장(9.43%) 등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자 보유지분 합계가 54.72%로 과반수가 넘는다.

이 밖에 주요 재계 이슈로는 22년 만에 현대자동차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난 정몽구 회장을 대신할 차기 이사회 의장이 누가 될지가 주목된다. 관련 업계에서는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보다는 이원희 현대자동차 사장이 맡을 가능성이 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최근 오너 일가와 이사회 분리를 통해 투명 경영과 이사회 독립성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에 섀도보팅 폐지까지, 정족수 미달 심화

상장사들이 직면한 최대 현안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다. 그렇지 않아도 섀도보팅(shadow voting·주주가 주총에 불참하면 다른 주주의 투표 비율을 의안 결의에 그대로 적용하는 제도. 2017년 12월 폐지) 폐지로 정족수가 부족한 데다 코로나19로 인해 주주 참여율이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적어도 약 240개 기업이 올해 정기주주총회에서 대주주 지분 부족 등의 문제로 주식 수 부족에 따른 안건 부결 사태를 겪을 것으로 관측된다. 2019년에는 188개사가 의결정족수 미달로 어려움을 겪었다. 2018년 76곳보다 두 배 늘어난 규모다.

상장사들은 섀도보팅 문제가 갈수록 개선되지 않고 더욱 심화되고 있다며 이 제도를 다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올해 주총을 개최하는 상장사 중 302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 중 절반 이상(52.6%)은 정족수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섀도보팅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혹은 의결 요건(총주식 수의 4분의 1)을 완화(29.8%), 전자투표제 도입 및 활용 확대(13.0%) 등의 의견도 제기됐다.

김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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