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카 룬드마크 CEO 내정자가 3월 2일 핀란드 에스푸 노키아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10년 전 노키아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고, 앞으로 노키아의 모습도 지금과는 전혀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블룸버그
페카 룬드마크 CEO 내정자가 3월 2일 핀란드 에스푸 노키아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10년 전 노키아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고, 앞으로 노키아의 모습도 지금과는 전혀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블룸버그

핀란드 통신장비 업체 노키아가 최고경영자(CEO)를 전격 교체한다. 5세대 이동통신(5G) 시장에서 경쟁사 화웨이와 에릭슨에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자 초강수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

노키아는 3월 2일(현지시각) 라지브 수리 CEO 후임으로 ‘핀란드의 한국전력’ 격인 ‘포텀’을 이끄는 페카 룬드마크 CEO를 임명했다. 8월 물러나는 수리 CEO는 노키아가 주력인 휴대전화 단말기 사업을 포기한 2014년 위기 상황에 수장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취임 직후 160억달러(약 19조원)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프랑스 알카텔 루슨트를 인수하는 결단을 내리며 주력 사업을 전환했다. 덕분에 노키아는 1990~2000년대 세계적인 휴대전화 회사에서 통신장비 회사로 변신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노키아의 상황은 좋지 않다. 우선 노키아가 막 시작된 세계 5G 통신장비 레이스에서 기회를 놓쳤다는 평이 많다. 시장조사 기관 델오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노키아의 시장 점유율은 18.9%로 3위다. 1위인 화웨이가 미국의 총공세에도 저렴한 가격으로 세계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며 격차를 벌렸다. 2위 자리를 놓고 다투던 에릭슨이 23~26%대의 꾸준한 점유율을 보이는 반면 노키아의 점유율은 등락이 심했다. 실제로 2월 말 기준 노키아의 5G 통신장비 계약 건수는 68건으로 화웨이(91건), 에릭슨(81건)에 못 미치고 있다.

사실 그동안 시장 상황은 노키아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5G 통신장비 분야에서 화웨이의 부상을 지켜보던 미 행정부는 지난해 보이콧을 본격적으로 선언하며 화웨이 죽이기에 힘을 쏟고 있다. 에릭슨도 지난해 고위급 임원이 연루된 뇌물 사건으로 미 법무부에 10억달러 벌금을 선고받아 이미지에 타격을 입기도 했다.

문제는 노키아가 자사에 유리한 환경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노키아 경쟁력 상실의 가장 큰 원인은 기술 개발이 지연된 탓이 크다. 노키아는 자체 개발 칩 ‘리프샤크’를 개발해 가격을 낮추는 전략을 취하고 있었다. 칩 개발에 노키아의 핵심 경쟁력이 달려 있는 셈이다. 그러나 차세대 칩 개발이 미뤄지며 장비 제품군을 늘릴 수도, 가격을 떨어뜨릴 수도 없는 상황에 놓였다. 이 때문에 수익성도 악화해 2017년 이후 영업이익이 적자와 흑자를 반복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알카텔-루슨트와 합병 이후 내부 상황이 매끄럽게 정돈되지 않은 것도 문제로 꼽는다. 인터넷프로토콜(IP), 라우터 등 유선 통신장비 강자인 알카텔-루슨트 인수로 이동통신 분야에 강점이 있던 노키아가 종합 포트폴리오를 완성하긴 했지만, 이후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기존 합자를 통해 흡수한 지멘스와 2015년 합병한 알카텔-루슨트의 사업을 노키아와 통합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노키아는 안테나·광케이블 등 장비부터 소프트웨어 등 기타 서비스까지 모두 고객에게 제공하는 ‘엔드 투 엔드’ 전략을 추구했다. 합병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였지만, 이는 5G 통신망 교체에 집중하는 현 시장 상황과 괴리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직 임원의 말을 인용해 “타협이 너무 많았고, 5G 시대 리더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집중도 부족했다”고 전했다.

노키아의 좋지 않은 상황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10월 회사는 배당금 지급을 중단하고 실적 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당시 4.72유로이던 주가는 급락, 현재 2.85유로 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시가총액이 40%(약 17조원)가량 날아간 셈이다. 최근 필리핀 최대 통신사 PLDT도 최종 파트너로 화웨이를 선택했다. 노키아는 올해 중 필리핀에 있는 엔지니어 700명 규모의 연구·개발(R&D) 시설을 철수할 계획이다.


에릭슨 따라잡는 것이 신임 CEO 과제

신임 룬드마크 CEO의 가장 큰 임무는 독주하는 화웨이와 경쟁사 에릭슨을 잡고 기술 주도권을 되찾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에릭슨이 위기에서 턴어라운드(실적 개선)를 이룬 2016년의 상황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당시 에릭슨은 모바일 네트워크 장비 업계의 경쟁 심화로 실적이 악화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사업 다각화를 추진했으나 그마저도 수익성에 부담이 됐다. 이때 등판한 뵈르에 에크홀름 CEO는 회사 몸집을 줄여 핵심 사업에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그 후 2년간 회사는 총 1만5000명 이상의 구조조정과 경영진 교체를 단행했고, 수익성 없는 계약을 해지하는 등 5G 분야에 자금을 쏟아부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이동통신 네트워크 사업자인 버라이즌과 AT&T도 5G 설비 투자에 주력하는 등 시장 상황이 녹록지만은 않다”고 분석했다.

노키아는 재건을 위해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연달아 마벨, 인텔 등 기지국·중계기용 부품을 만드는 회사와 협력 계획을 발표했다. 협력을 통해 리프샤크를 채용한 장비를 많이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plus point

제지 만들던 회사가 휴대전화 1위 회사로 다시 네트워크 장비 회사로…두 번의 부활

왼쪽부터 노키아의 히트 상품인 휴대전화 ‘노키아 2110’과 알카텔-루슨트를 인수한 장본인 라지브 수리 CEO. 사진 노키아·블룸버그
왼쪽부터 노키아의 히트 상품인 휴대전화 ‘노키아 2110’과 알카텔-루슨트를 인수한 장본인 라지브 수리 CEO. 사진 노키아·블룸버그

종이와 고무, 케이블을 만들어 팔던 핀란드의 문어발 회사 노키아가 휴대전화 사업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것은 1992년 이후의 일이다. 당시 요르마 올릴라 노키아 최고경영자(CEO)는 이 시장의 성장성을 예견하고 기존 사업을 팔아 마련한 자금을 휴대전화 사업에 고스란히 투자했다. 휴대전화 모델 노키아 2110, 자체 운영체제(OS) 심비안 등을 잇따라 히트시키며 1998년 모토롤라를 제치고 세계 1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노키아는 이후 14년간 1위 자리를 지켰다.

아이폰 등장 이후 스마트폰 시장 재편에 발맞추는 데 실패했지만 노키아는 2016년 부활했다. 라지브 수리 CEO가 선임된 지 2년 만이었다. 그는 2015년 프랑스 네트워크 장비 업체 알카텔-루슨트를 인수·합병하며 단숨에 글로벌 네트워크 장비 업체로 올라섰다. 휴대전화 사업부를 마이크로소프트(MS)에 헐값에 매각하면서 118억유로까지 주저앉았던 노키아 매출액은 2016년 236억유로로 두 배가 됐다. 2016년 11억유로 적자였던 영업이익도 1년 만에 1600만유로를 기록했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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