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리이화여대 철학과, 중앙일보 논설위원, 제일기획 상무,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 초대 센터장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이나리
이화여대 철학과, 중앙일보 논설위원, 제일기획 상무,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 초대 센터장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20년간 무수히 많은 여성이 회사를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헤이조이스’ 이나리 대표는 평기자로 시작해 논설위원, 기업 임원 등을 거쳤다. 그의 위치가 조직에서 높아질수록 주변의 여성 동료는 더 많이 사라졌다. 사내 인맥보다 업무에 충실했던 여성 동료들은 쉽게 밀려났고 결혼과 출산으로 한순간에 경력이 단절됐다. 이나리 대표는 2018년 일하는 여성들의 네트워킹과 커리어 개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국내 최초 여성 네트워킹 멤버십 서비스인 ‘헤이조이스’를 창립했다. 

5월 26일 서울 역삼동 사무실에서 ‘이코노미조선’과 만난 이나리 대표는 “고용 시장이 실력 중심의 수시 채용으로 급변하는 가운데, 불안정성은 더 커졌지만 오히려 여성에겐 더 많은 기회가 열렸다”며 “시대에 발맞춰 커리어를 키우고 자신을 지지해줄 동료를 만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서울 역삼동 헤이조이스 라운지에서 멤버들이 일·휴식·독서를 하고 있다. 사진 헤이조이스
서울 역삼동 헤이조이스 라운지에서 멤버들이 일·휴식·독서를 하고 있다. 사진 헤이조이스

창업한 지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인가. 
“기존에 없던 ‘일하는 여성’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발견한 것이 가장 큰 성과다. 이들에게 이름을 붙이고 가치를 부여한 것은 국내에서 헤이조이스가 최초다. 그 결과로 지난해 20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고 유료 회원 수가 800여 명이 될 정도로 규모도 커졌다. 며칠 전 미국에선 워킹우먼 멤버십 스타트업 ‘치프(Chief)’가 1500만달러(약 185억원) 투자를 유치했다. 해외에선 일을 삶의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여성을 위한 산업이 이미 하나의 큰 시장으로 성장했다.”

헤이조이스에서 말하는 고객인 ‘일하는 여성’은 누구인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여성이다. 헤이조이스는 여성들이 자신이 원하는 다양한 일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지속함으로써 사회적 자존감과 경제적 독립을 강화할 수 있도록 커리어 개발을 돕는다. 더 나아가 여기서 새로운 커리어의 기회를 얻기도 한다.”

새로운 커리어의 기회라고 한다면.
“예컨대 거대 정보기술(IT) 기업 및 주요 스타트업들이 모임이나 프로그램에서 만난 회원을 여럿 채용해 갔다. 경력직 수시채용이 잦은 기업들이 사람을 직접 만나보고 괜찮으면 뽑아가는 것이다. 스타트업 종사자들도 서로 투자자를 소개해줄 뿐 아니라, 팀원을 구한다. 함께 사업계획서 작성 모임을 하던 여성들이 창업을 해 투자 유치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끈끈한 네트워크는 구직과정에서 도움으로도 이어진다. 회원들은 서로의 회사 및 직무를 검색하고 온라인 채팅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최근에는 기업 최종 면접을 앞둔 회원이 해당 회사 현직자에게 메시지를 보내 면접 팁을 얻기도 했다.”

헤이조이스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
“취미·관심 역량을 기반으로 10명 안팎이 각종 모임을 하는 ‘클럽조이스’, 퍼스널 브랜딩, 서비스 기획, 영업 협상 등 공통의 프로젝트를 전문가와 함께 4주간 완성하는 ‘프로젝트 조이스’, 성공한 여성 리더를 연사로 초청하는 ‘콘조이스’ 등 다양한 이벤트와 워크숍을 하고 있다.”

어떤 여성들이 멤버로 활동하고 있나.
“다양한 직종에 걸쳐 멤버들이 분포해 있다. 가장 많은 직업군은 유통·IT·광고·마케팅 종사자다. 연차는 1, 2년 차부터 10년 차까지, 24세부터 33세 사이 소위 ‘밀레니얼’이 가장 많다. 그러나 20대가 중심이 되는 다른 커뮤니티와 다른 점은 10년 차 이상인 40대 여성도 200명에 육박한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롤모델이 될 여성 선배를 만나기 어려운 젊은 여성들이 이곳에서 동기부여를 받는다. 반대로 시니어 멤버들은 수년간 쌓아온 전문성을 기반으로 직접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이끌어본다. 이를 통해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후배들의 존중을 받으며 자신감을 얻는다.”

젊은 멤버의 성공 사례가 궁금하다.
“동종 업계 선배들을 만나고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빠르게 성장한다. 예를 들어 2년 차 새내기 마케터가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짧은 시간에 직무 역량을 높인 사례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헤이조이스에서 작은 모임을 직접 이끌어보고 이벤트 연사로 서보더니 브런치에서 쓴 마케팅 관련 글이 유명해져 관련 행사에 초청돼 발언을 하고 마케팅 전문 사이트 고정 필진이 되기도 했다. 회사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면서 최근에는 3억원짜리 광고 프로젝트를 주도하게 됐다.”

하지만 이러한 기회는 회사 안에도 있다.  왜 회사 밖에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교육 기회를 얻어야 하나.
“시대가 변했다. 이젠 살아남으려면 회사 밖에서 인맥을 만들고 정보를 얻어야 한다.
그 이유는 첫째, 평생직장 개념이 없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한 회사 혹은 한 업종에서의 네트워크만 관리하고 작동 방식을 이해하면 그 회사에서 정년을 맞이할 수 있었고 그래서 사내 정치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젠 평생 한 직장을 다니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내가 이직을 원치 않아도 업계나 기업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떠나게 될 확률이 높아졌다.
둘째, 한 직군에 오래 있었다고 전문가로 인정받기 어려워졌다. 오늘날의 마케팅은 과거와 너무 다르다. 데이터 보는 일이 80%이고 개발자 출신이 최고마케팅책임자(CMO)를 하고 있다. 20년 동안 마케팅 일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없다.
셋째, 한 회사에서 차근차근 승진하는 건 이제 옛날이야기가 됐다. 많은 회사가 프로젝트 단위로 사람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특정한 일을 할 최적의 사람을 그때그때 찾을 것이며 프리랜서 비중이 높아질 것이다.”

회사만 믿고 버틸 수 없는 시대가 왔으니 회사 밖으로 나서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회사가 나를 책임져주지 않는 시대에서 우리는 회사 밖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고 나에게 새로운 일과 기회를 가져다줄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립된다. 한 회사에서 쌓은 인맥과 그 회사에 최적화한 역량은 경쟁력이 없다. 외부에서 나의 평판을 형성하고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내야 한다.”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들도 똑같은 니즈가 있지 않을까.
“맞는 말이다. 남성들도 똑같은 서비스를 필요로 한다. 다만 술, 골프, 담배로 상징되는 중년 남성들의 네트워킹 방식에서 여성들은 더 쉽게 소외된다. 이러한 기존 회사 내 네트워크에 익숙하지 않은 여성들이 회사 밖에서 안전하게 관계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더 느껴 시장이 형성된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온라인에 최적화한 커리어 발전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착수했고 모든 오프라인 프로그램을 촬영해 온라인으로 제공하고 있었다. 또, 여성의 커리어 개발에 관심을 갖는 여러 기업과 B2B(기업 간 거래) 교육 회사에서도 제휴 연락이 많이 온다. 여성들이 포기하지 않고 커리어를 이어나가 산업과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